수원은 예부터 무자(巫子)들이 많던 곳이다. 아무래도 화성이 건립된 전후로 팔달문 앞에 장이 형성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권이 형성되었다는 소리는 그만큼 재물이 풍부했다는 이야기이다. 하기에 도성에서 쫓겨난 많은 무격(巫覡)들이 수원을 생활 근거지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월 초사흘(음력 1월 3일) 이 되면, 무자의 집에서는 일 년의 액을 막는 ‘홍수맥이’를 시작한다. ‘홍수’란 ‘횡수(橫數)’를 말하는 것이다. 즉 나쁜 일이 닥치는 운세를 ‘횡래지액(橫來之厄)’이라 하였는데, 그것을 홍수라고 표현을 한 것이다. 홍수막이는 전문적인 무격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즉 무격의 힘을 빌려 정월 초사흘부터 보름까지, 일 년 간의 나쁜 수를 막아내는 것이다. ‘홍수를 막는다.’ 라는 뜻을 지닌 홍수막이를 사람들은 ‘홍수맥이’라고 한다.


홍수막이를 정월 초사흘부터 정월 보름까지 하는 것도, 지신밟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날 시작해서 같은 날 끝나는 것을 보면, 이 두 가지가 모드 일 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정월에 이루어지는 우리네의 모습. 이런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쉽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네 마음까지 달라진다고 해서야. 지킬 것은 지켜가는 것이 도리란 생각이다.

줄을 이어 기다리는 사람들

홍수막이를 하는 현장은 늘 분주하다. 남들보다 먼저 축원을 해야 더 좋을 것 같다는 사람들의 심성 때문이다. 쌀말에 초를 꽂고 축원을 하는 동안,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기원을 한다. 자손들이 한 해 동안 탈 없이 잘 자라고, 집안에 흉사가 없도록 비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한결 같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번지 고성주(남. 56세)는 벌써 신내림을 받고 이 길로 들어선지 40년 가까이 되었다. 그 긴 세월을 한결같이, 정초만 되면 신자들을 위한 축원을 하느라 목이 쉰다. 그래도 남들처럼 커다란 물질을 요구하지 않는다. 당연히 신을 모시고 있는 무자로써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이다. 정월 초사흘에 시작하는 홍수막이는 보름이 되어야 끝이 난다.

대물림으로 찾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서울에서 왔다는 이모씨(여, 46세)는 “이렇게 정초에 홍수막이를 하고나면, 일 년 동안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딴 곳처럼 큰 돈 안 부르고 일 년 간의 축원을 해주는 분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저희는 지금 대물림 단골이에요. 아이들도 앞으로 계속 이렇게 정초가 되면 와서 축원을 받을 테죠”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의 신자들은 모두 대물림 단골들이다. 할머니가 다니던 집을 며느리가 다닌다. 그리고 벌써 그 다음대가 물려받기 시작한은 집들도 있다. 전안(신을 모신 신당)에 반드시 앉아 징을 치면서 축원을 하고 나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줄을 모른다고 한다. 축원을 하는 고성주나, 하루 종일 자신의 순서를 가다리는 사람들이 한결같은 마음이다. 이 한 해도 오직 편안하게 지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4대째 전통방법으로 진행하는 홍수막이

고성주의 홍수막이는 벌써 4대 째 내려오는 무가(巫家)의 독특한 방법으로 진행을 한다. 할머니에 이어 고모와 고모의 신딸인 최씨, 그리고 고성주로 이어지는 무가의 전래집안이다. 지금의 단골들도 내개 3~4대를 이어오는 단골들이라, 집안 내력을 하나하나 다 알고 있다고 한다. 처음 이집을 찾는 사람들은 혼란이 오기도 한다.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모두가 ‘아범’이나 ‘어멈’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신도들은 고성주를 나이에 관계없이 ‘아버지’라고 호칭을 한다. 모두가 신과 인간의 고리로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옛날 ‘단골네’들의 유풍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딴 곳 같았으면 벌써 문화재로 지정을 하고도 남을법한 전통이다.

정월에 이루어지는 홍수막이. 일 년을 편안하게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축원을 마치고 오방신장기를 뽑게 해 일년의 공수(신탁)를 준다. 아마 홍수막이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것이 바로 이 공수대목을 일 것이다. 어느 달에 조심을 하라고 일일이 일러주고 난 후, 홍수막이를 하고 나오는 시림들의 얼굴에는 안도감 때문인지, 엷은 웃음이 보인다. 


고사로다 고사로다 고사덕담을 들어보소(중략)

천지간 가져갈 때 하늘 열려 땅 생기니

일월성신 갖추었구나

만물이 생겨나고 모든 생명 피어날 때

하늘에 명을 얻어 우리조상이 생겼구나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김혜란 창)


천지현황 조판 후에 혼돈세계 길탄말가

일대국이 건설되고 건부곤모 가결하니

음과 양의 조화로다. 태양태음이 일월이요

산수조공을 살펴보니 인황씨가 조종이라

학을 눌러 대궐 짓고 대궐 앞에는 육조로다

육조 앞에는 오영문, 오영문 앞에는 삼각산인데

각도 각읍을 마련할 제 인왕산이 주산이요 종남산은 안산이라

(가장 보편적인 고사덕담의 사설)



‘고사덕담’이 있다. 말 그대로 고사를 드리면서 덕담을 하는 것이다. 고사덕담은 대개 정초에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지신밟기를 할 때, 마을의 풍물패 중에서 소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는 한다.


말 그대로 일 년의 평안을 축원하다.


고사덕담을 정월에 하는 이유는, 이렇게 정월에 덕담을 들어야 그 해가 평안하다는 속설 때문이다. 고사덕담을 할 때는 북이 옆에서 장단을 넣어준다. 고사덕담은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처음에는 그 가정이 생긴 내력부터 먼저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어서 자손축원과 액을 막아주는 달거리인 홍수맥이를 한 후, 풍년을 축원하는 농사풀이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고사덕담을 할 때는 집집마다 대청에 고사상을 차린다. 고사상은 소반에 쌀말이나 함지박에 쌀을 가득 담고, 그 위에 촛불을 켠다. 북어를 한 마리 꽂은 후 실타래를 걸쳐놓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루떡을 해 같이 올리기도 한다. 이때 올려지는 쌀은 모두 풍물패들이 가져간다. 주인은 특별히 풍물패를 위하여 음식을 준비해주기도 한다.


쌀을 올려놓는 것은 집안의 풍요와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며, 북어는 만복을 기원한다. 실타래는 자손들이 수명장수 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시루떡은 축귀를 의미한다. 이렇듯 그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풍물패들은 고사덕담을 하면서 그 집안의 평안과 풍농, 그리고 자손창성을 기원한다.


이댁 가중 전에 어린 아기씨

날이면 물이 맑고 밤이 되면 불이 밝아

부귀공명 발원이요. 자손창성 축원이라

부모님께는 효자동이 형제간에는 우애동이

친척 간에는 화목동이 이웃 간에는 귀염둥이



서로에게 나누어 주는 덕담


그렇게 준비를 한 음식과 술은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인다. 그리고 쌀과 축원에서 나온 돈은 마을을 위하여 사용을 한다. 고사덕담 안에는 마을 전체가 함께 잘 되기를 바라는 공동체가 있다. 누구나 함께 한다는 공동체 속에, 무엇 하나라도 나눈다는 ‘우리‘가 있는 것이다.


고사덕담은 애가 복을 갖는 것이 아니다. 마을 집집마다 고루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민족의 심성이다. 이런 우리의 전통적인 정초 문화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이기주의와 물질숭배주의가 팽배해 있다. 본연의 우리모습을 잃은 것이다. 올 신묘년 한 해 모든 가정에 고사덕담을 축원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본질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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