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각부터 서울산부인과까지 거리조성

 

세월호참사로 인해 전국이 우울한 가운데 사람들은 멘붕상태에 빠져있다. 너무 많은 어린 생명들이 아직도 찬 바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고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게을리 하지는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다.

 

19일 오후 팔달구 행궁동 통닭거리로 나갔다. 그곳에서 수원시상인연합회 최극렬 회장과 영동시장 아트포라 김춘흥 작가가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작업은 팔달구 정조로 810번 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용성통닭에서 장안로로 나가다가 보면 우측에 서울산부인과가 있다. 이곳에서부터 종로사거리 여민각까지 좁은 골목길이 정조로 810번길이다.

 

 

추억의 거리조성한다.

 

상인연합회 최극렬 회장은

여민각에서 서울산부인과까지 좁은 골목길에 새집이며 새의 형태를 걸어 골목길을 꾸미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이곳은 연세가 드신 분들이 많이 이용하는 골목입니다. 이곳을 추억의 거리로 조성해 사람들을 불러들일 생각입니다. 이곳에서 좁은 골목을 걸으면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만들려고요.”

 

19일에는 팔달주차장 내 건물과 경수사우나 외벽인 펜스, 그리고 옆 모텔주차장 외벽 등에 새집과 새의 모형을 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좁은 골목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행궁으로 오는 관광객을 자연스럽게 통닭거리로 유도를 하고, 다시 전통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행궁은 많은 외지관광객들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들이 대부분 낮에 잠시 들렸다가 돌아가 버리기 때문에 무엇인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구경거리를 만들어 주어야죠. 그래서 행궁 맞은편 여민각서부터 이 정조로를 따라 통닭거리로 유입이 되게 만들고, 다시 그 사람들이 전통시장을 찾아오게 만들자는 것이죠.”

 

 

통닭거리에는 조형물도 세워

 

통닭거리에는 수원문화재단에서 두 곳에 조형물을 세웠다. 용성통닭과 진미통닭 사이에 난 정조로 800번 길을 가로질러 닭과 달걀, 그리고 깃털을 올린 조형물을 세웠다. 그리고 치킨타운 앞에는 포토죤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행궁을 찾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통닭거리를 거쳐 전통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수원문화재단이 통닭거리에 조성한 조형물 때문에 이곳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연계를 할 수 있는 동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민각에서 정조로 810번 길을 걸으면서 이곳에서 설치미술을 구경하면서 사진도 찍을 수 있다면, 돌아가서도 추억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 길을 추억의 길로 이름을 붙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낡고 좁은 골목길이었다. 그런데 새집과 새의 조형물을 우중충한 벽에 설치를 함으로 새롭게 변신을 한 셈이다. 앞으로도 이 작업을 계속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과는 차별화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이렇게 이 골목에 새집과 새를 붙여 설치를 하고, 통닭거리로 찾아와 통닭도 먹을 수 있다면 관광객들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길을 따라 전통시장을 찾아오면 지동교 인근에 설치한 수많은 새집들이 연계가 됩니다. 한 마디로 행궁부터 지동교까지 동선을 작품으로 채워나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본격적인 관광의 계절이 돌아왔다. 해가 갈수록 외지에서 수원을 찾는 사람들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데, 그들이 이곳을 찾아와 무엇인가 즐길 수 있고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추억의 길.’ 앞으로 수원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생떼 같은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이 벌써 4일 째 그 찬 바닷물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럽겠습니까? 제발 살아만 와준다면 좋겠습니다. 어째 이리도 그 아이들을 꺼내주지 못하는지 시간이 갈 때마다 마음만 더 탑니다.”

 

19일 오후 6. 화성 행궁 광장에 모인 1500여 명의 무리들 중에서 열심히 합장을 하고 기원을 드리던 송아무개(, 49)의 말이다. 자신의 아이도 그 아이들 또래라고 하면서 제발 살아만 있기를 바란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원래는 석가모니의 탠생을 축하하는 봉축대법회로 마련을 한 자리이다. 그리고 행궁을 떠니 장안문과 연무대를 돌라오는 장엄한 연등행렬로 이어져야만 했다. 그런 장엄의식을 모두 내려놓았다. 그리고 부처님께 모두가 하나가 되어 빌고 또 빌었다. 징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희생자 추모 및 실종자 무사귀한 기원대법회로 마련을 했다.

 

 

두 시간 가까이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수원시불교연합회와 수원시 연등축제행사위원회가 마련한 진도 여객선 희생자 추모 및 실종자 생환 기원 대법회19일 오후 6시부터 두 시간 가까이 수원 화성 행궁 앞 광장에서 열렸다. 지성스님의 법고로 시작을 한 기원법회는 추모 및 생환기원 묵념, 삼귀의, 찬불가,반야심경 등으로 이어졌다.

 

수원시불교연합회 회장인 성관스님(수원사 주지)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인사말에 이어 4개 종단 대표인 팔달사 주지 혜광스님(조계종), 무학사 주지 혜성스님(태고종), 용고아사 주지 천덕스님(천태종), 유가심인당 덕운정사님(진각종)과 신도대표의 기원사가 이어졌다. 참석한 인사들의 기원사에 이어 용주사, 수원사, 청련암, 봉녕사 등의 신도들로 이루어진 불교연합합창단의 음성공양이 있었다.

 

 

간절한 마음 담은 기원발원문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 주지 정호스님의 법문이 있은 후, 탑돌이에 이어 청련암 주지 도문스님의 추모 및 생환기원 발원문이 이어졌다.

 

만 중생을 어여삐 여기사 지혜와 자비구족하신 부처님!

오늘 수원시 불자들과 시민들은

청천벽력 같은 세월호 좌초로 인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실종자들의 무사 생환을 간절히 기원하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끝까지 배에 남아 아이들을 가족 품으로 인도하시고

천금같은 목숨을 내 놓으신 승무원들과 희생자 영가님들이여!

그대들이 진정한 지장보살님이요, 아미타부처님이십니다.

그대들의 거룩한 살신성인의 희생정신

부디 모두는 내내생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어둡고 차가운 바다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꽃같은 목숨들이시여!

둘도 없는 가족과 사랑하는 친구들이 함께 있음을 잊지 말고

절대로 절대로 희망의 끈을 놓지말고 살아만 있으시라

이제 곧 그대들의 손을 잡아 주리니 꼭 살아만 있으시라

자비로우신 부처님의 무량가피가 함께 할지니

꼭 꼭 살아만 있으시라

꽁꽁 얼은 땅 녹여내고 봄바람 오듯

그대들 우리 곁으로 그렇게 살아오리니(이하 하략)

 

 

두 시간 가까이 기원대법회가 진행되는 동안 수원시불교연합회의 불자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두 손을 모아 간구를 했다. 기념법회가 진행되는 동안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들도 보였다. 열심히 두 손을 모으고 간구를 하던 정아무개(, 55)씨는

꼭 살아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세월호에 아이들과 함께 승선해 실종자 명단에 낀 선생님들 중에는 수원시민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제 오랫동안 교사생활을 하시고 그 마무리를 아름답게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하신 분들이라 더 마음이 아프네요.”라고 한다.

 

수원 화성행궁 앞에 모인 많은 불자들이 두 손 모아 간구한 진도여객선 희생자 추모 및 실종자 무사생환 기념대법회. 그 많은 사람들의 간구가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처님의 가피가 모든 이들에게 비치기를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봉축 점등식이 9일 오후 6시 30분부터 수원 화성 행궁 광장 조형탑 앞에서 열렸다. 불기 2558년을 기념하는 이날 봉축점등식에는 수원시 불교연합회 회장이자 수원사주지인 성관스님을 비롯하여,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 주지인 정호스님 등이 함께 자리를 했다.

 

내빈과 합창단, 불자 등 500명 정도가 참석을 한 이 날 봉축 점등식은 봉축연합합창단의 찬불가가 은은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삼귀의, 반야심경, 성관스님의 인사말씀으로 이어졌다. 참석 내빈들의 축사에 이어 점등과 법고공연, 청법가 순으로 한 시간 남짓 이어진 이날 행사는 4월 19일 연등축제와 제등행렬에 앞서 점등식을 갖게 된 것이다.

 

 

1300년을 이어 온 연등회

 

사월초파일이 되기 전에 등에 불을 밝히는 연등회는 신라시대로부터 1300년을 이어 온 유서깊은 행사이다. 고려시대에는 연등회, 조선시대에는 관등놀이를 이어간 전통이 깊은 축제인 연등회는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하는 행사로 베풀어진다. 이 연등회는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방법의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연등회는 번뇌와 무지로 가득한 어두운 사바세계에 부처님의 지혜로 불을 밝히고 모든 중생이 가피를 입을 수 있도록 축원을 하는 뜻있는 행사이다. 수원 연등축제는 불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스스로 만든 등을 들고 나와 연무대에서 시작해 팔달문과 장안문을 돌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의식이기도 하다.

 

 

장엄한 점등식에 모두가 환호하다

 

봉축연합합창단과 안산시립국악단의 연주로 축가 등이 행궁광장으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참석을 한 인사들이 점등을 하자, 행사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합장을 하면서 축하를 해주었다. 축사에 나선 염태영 수원시장은

“오늘 이렇게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봉축 점등식에 참석해 주신 많은 불자들과 시민들과 함께 축하를 드린다. 부처님께서는 2558년 전에 이 땅에 중생들을 위해 스스로 영화를 버리고 고행의 길로 잡아들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점등을 하고 연등을 하는 이 의식도 이미 1300년을 이어 온 전통이다. 오늘 점등식을 맞이해 우리 시가 더욱 발전을 하고 시민 모두가 부처님의 축복을 더 많이 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봉축 점등식 행사에 참여를 한 불자는

“오늘 이렇게 2558년 전에 우리 중생을 위하여 사바세계에 나트신 부처님의 덕을 칭송하는 자리에 참석을 하게 되어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이 행사를 계기로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평온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처님이 이 땅에 나투신 뜻을 모두가 온전히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했다.

 

 

19일에도 행궁광장에서 다양한 행사 열려

 

19일에는 화성 행궁 광장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불교문화 한마당이 열릴 예정이다 또한 당일 오후 5시부터 열리는 연등축제 때는 1부 봉축법요식(오후 5시 ~6시 30분), 2부 봉축문화제가 6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열리게 되며, 3부 제등행렬은 오후 7시 30분부터 10시까지 화성행궁-팔달문-장안사거리-장안문을 거쳐 화성행궁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날 행사를 돕고 있던 수원사거사회의 회원이라고 밝힌 한 불자는

"오늘 이렇게 행사를 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바가 참 크다. 앞으로 부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겠다. 모든 사람들이 다 부처님이 마음을 닮은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시방세계가 모두 극락이 아니겠느냐? 오늘 이 행사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평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고 했다. 

(사진은 수원시청 공보관실 김기수 주무관)

 

5일 오후 1시가 조금 지나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수원천 위에 걸린 매향교로 파발마들이 달려왔다. 정조대왕이 화성 행궁으로 납신다는 파발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세 필의 말은 그렇게 대로를 달려 행궁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뒤이어 많은 무리들이 행궁을 향해 열을 지어 행진을 했다.

 

218년 전 정조대왕은 개혁정신과 당대 과학의 힘을 집대성하여,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화성이라는 아름다운 성을 축조했다. 이 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으며, 사적 제3호로 지정이 되었다. 화성은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과 개혁사상의 산물이다. 강한 국권을 지향하던 정조대왕은, 가장 강한 군대인 장용외영의 무사들을 훈련시켜 이 화성을 지키게 만들었다.

 

 

수시로 화성 행궁으로 행행을 한 정조

 

조선조 제22대 임금인 정조대왕은 재위 24년간 총 66회의 행행을 하였다. 이는 1년 평균 약 3회 정도를 행행을 하였다는 것이다. 정조대왕의 행행은 아버지인 장헌세자의 묘소 참배가 그 절반을 차지하였다. 1789년에 아버지인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를 양주 배봉산에서 화산으로 이장하여 현륭원(顯隆園)’이라 칭하고, 해마다 1월 혹은 2월에 신하들을 거느리고 원을 참배하였다.

 

<원행정례>에 의하면 정조대왕이 현릉원으로 원행을 할 때는 창덕궁 돈화문을 나서 수원 현릉원의 원소재실까지의 지명과 행궁, 교량 등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 밑에 2행으로 지역 경계나 지역 간의 거리를 기록해 놓았다. 이 원행정례에 의하면 시흥로의 경우 전 노정의 길이는 83, 교량 24곳이라고 밝히고 있다.

 

 

행궁 앞 상설 한마당 개막

 

5일 수원 화성 행궁일대는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바로 능행차반차도에 기록된 8일간의 화산릉 행차가 재현이 된 것이다. 수원 화성 행궁 앞에서 1년 동안 펼쳐지는 화성행궁 상설한마당이 시작되는 날에 이루어지는 어가행렬로 인해, 주변은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능행차반차도는 정조대왕이 어머니인 경의왕후(=혜경궁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아버지 장헌세자가 묻힌 화성 현릉원을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능행차반차도는 정조대왕화성행행반차도또는 화성행차도라고도 한다. 반차도란 궁중의 각종 의례장면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1795년 음력 윤 2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이루어진 정조대왕의 화성 행차에는 어머니인 경의왕후를 비롯하여 두 누이인 청연군주와 청선군주가 동행하였다. 그 외에 우의정인 채제공을 비롯하여 문무백관과 나인, 호위군사 등 6천명이 동원되었다. 정조대왕의 능행차반차도에는 이들 가운데 1,779명의 사람과 말 779필의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파발 뒤에 이루어진 어가행렬

 

5일 이루어진 어가행렬은 연무대에서 화성 행궁까지의 길지 않은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행렬 또한 약식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 장엄함은 그 적은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당시의 모습을 기억해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먼저 말 3필이 정조대왕이 화성 행궁에 행차함을 알리는 파발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뒤이어 경기감사, 훈련대장 등 말을 탄 정조대왕 당시의 인물들이 지나고, 뒤편에는 말을 탄 정조대왕과 어머니인 가마에 오른 혜경궁 홍씨가 이어졌다. 주변에 구경꾼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행궁을 행해 가는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외국의 방송사들까지 촬영에 열심이다.

 

정말 멋있습니다. 이런 행렬은 수원이 아니면 어디서 볼 수 있겠습니까? 제가 수원시민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만 합니다. 정말 행복하네요.”

 

길에게 어가행렬을 구경하고 있던 한 시민의 말이다. 이렇듯 행궁 앞 상설한마당의 개막일에 만난 정조대왕. 2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대왕의 백성사랑과 그 품위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대보름을 낀 주말과 휴일에는 여기저기 행사가 너무 많다. 미처 다 못가는 곳이 있을 정도로 행사가 있다 보니, 열심을 낸다고 해도 한 두 곳에 그칠 수밖에. 15일은 정월 대보름 다음날이지만 수원에서는 화성 행궁 광장에서 하루 늦춰 대보름 행사가 열렸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한 듯.

 

오후 2시부터가 행사 시작이지만 그보다 30분 먼저 행사장에 도착을 했다. 한 곳에서는 부스에서 먹거리를 팔고 있고, 여러 개의 부스마다 윷놀이, 연날리기, 널뛰기 등 대보름에 걸 맞는 축제의 신청자가 줄을 서있다. 거기다가 한 편에서 인절미를 만드느라 부산하다. 역시 대보름은 민족의 명절이라고 볼 것과 즐길 것이 많다.

 

 

대취타로 행사 대보름 행사 시작

 

줄 연이 하늘 높게 나르고 있다. 저런 연은 행사장마다 찾아다니는 것인지 대보름의 단골손님이다. 아이와 함께 연날리기를 하고 있는 이아무개(, 38. 행궁동)씨는 아이에게 연 날리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하지만 실은 본인이 더 즐기고 있는 듯하다.

 

주말이라 집도 근처고 해서 아이와 함께 대보름 축제를 즐기러 왔어요. 예전에 어릴 적에 연 날리기를 많이 했는데 이렇게 아들과 함께 날리고 있으니 제가 어려진 것 같습니다, 정말 재미있네요.”

 

오후 2시가 되자 행궁 앞 간이무대에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수원문화원 대취타대가 나팔과 소라, , , 바라 등을 울리면서 행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수원시장을 비롯하여 수원시의회 의장, , 시의원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했다.

 

 

25년째 행궁 앞 대보름 행사 이어져

 

오늘 행궁 대보름 축제는 벌써 25년째 이곳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대보름 한마당에 참석을 해주신 수원시민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해는 제가 주부님들과 함께 널뛰기를 했는데 얼마나 잘 뛰시든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작년에는 한복을 입고나와 많이 불편했는데 올해는 제대로 한 번 뛰어보려고 간편하게 복장을 하고 나왔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오늘 하루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수원시장의 인사말에 이어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대보름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는 줄다리기입니다. 그런데 이 줄다리기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습니다. 줄은 남녀가 나뉘어져 다리는데 반드시 여자가 이기죠. 남자들이 힘이 없어 지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이겨야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해서 일부러 져주는 것입니다. 놀이 하나에도 양보의 미덕이 깃들어 있는 것이 우리 대보름 축제죠. 오늘 여러분들도 마음껏 즐기시기 바립니다.”라고 했다.

 

 

대보름 한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널뛰기며 연날리기, 윷놀이 등을 즐기면서 주말의 오후를 즐기는 중에 한편에서 풍물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행궁 광장에 마련한 집에서 지신밟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즐기면서 연신 자신이 풍장을 치는 듯 즐거워한다.

 

우리의 4대 명절 중 하나인 대보름

 

정월 대보름은 설날, 추석, 동지와 함께 우리민족의 4대 명절 중 하나이다. 대보름을 이렇게 큰 명절로 치는 것은, 이때를 전후해 농촌에서는 농사일의 시작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대보름에도 많은 풍속이 있다. 아홉 집을 다니면서 오곡밥과 나물을 먹는 백가반을 비롯하여, 마을마다 열리는 줄다리기, 지금은 사라진 석전과 횃불싸움, 달집태우기, 그리고 다리밟기 등도 모두 대보름의 풍속이다.

 

 

오늘 엄마하고 같이 놀러왔어요. 오전에 연날리기도 했고요. 인절미를 준다고 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떡메로 친 인절미를 나누어주는 긴 줄에 서 있는 한유미(, 8) 어린이는 기다려도 즐겁다고 한다. 대보름의 풍성함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꼬마 아이들이 투호놀이를 하는 것을 연신 카메라에 담아내는 어머니들이 아이가 제대로 하지 못하자, 답답한지 자신이 던져본다. 그래도 안들어 가기는 매한가지.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크게 웃는다.

 

대보름 한마당에서 즐길 수 있는 마음의 풍성함. 아마도 대보름이라는 명칭에서 오는 여유인 듯하다. 우리 선조들이 즐기던 놀이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사람마다 환한 웃음으로 즐기는 한마당 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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