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 ~ 1960년 옛 수원 사진전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인 옛 수원 사진전(1900~1960) - 렌즈 속 엇갈린 사진전에서 우리는 무엇을 만날 수가 있을까? 419일부터 전시를 시작해, 623일까지 계속되는 특별기획전을 찾아가 보았다. 과거 수원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수원 사람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 것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에, 만나기도 전에 가슴이 뛴다.

 

특별기획전으로 열리고 있는 엇갈린 시선들은 모두 세 부분으로 구분이 되어있다. 1부는 식민지의 초상으로 제국의 시선으로 본 수원의 모습이다. 2전쟁의 그늘은 타자의 시선으로 본 수원의 모습들이다. 3부인 수원의 재발견은 자아의 시선으로 본 수원을 그려내고 있다.

 

 

흩어진 자료들을 모으다

 

전시관에는 다양한 영상과 함께 1900~1960년대의 수원사람과 수원풍경을 촬영한 사진들을 시기와 성격에 따라 구분하여 놓았다. 사진에 대한 세부사랑은 제목과 시기, 촬영자, 소장자 순으로 표기를 해놓았으며, 촬영자가 불분명한 자료는 생략하였다. 전시에 사용된 자료들은 수원박물관의 소장 자료이거나, 기관 및 개인 소장자로부터 대려를 받은 자료들이다.

 

사진을 제공한 사람들은 김동휘를 비롯해, 김영호, 김풍호, 이명자, 이영자, 조성근, 최기호, 홍승민(홍의선 촬영사진 소장) 진 굴드, 게리 헬쎈, 국립민속박물관, 서울대농학도서관, 경기지방경찰청, 수원시사편찬위원회, 수원화성박물관 등이다.

 

 

식민지의 초상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일제는 자신들의 수탈과 폭압을 조선의 근대화라고 미화시켰다. 일제는 사진 속에서 봉건적이고 낙후된 조선을, 마치 자신들이 근대화를 시킨 것처럼 선전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 사진 속의 조선은 쇠락해가고만 있었다. 1920년대 문화말살정책을 편 일제는 구습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이 갖고 있던 전통적 모습과 풍속 등을 말살하려 든 것이다.

 

식민지의 초상은 쇠락한 조선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헤르만 산더의 사진에 보이는 팔달문과 남공심돈은 멀쩡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현재 남공심돈은 사라지고 말았다. 정조의 진영을 봉안한 화령전은 일본군들에게 점령을 당했으며,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은 기와가 다 깨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지금은 현대식 다리로 놓인 매향교가, 1907년의 헤르만 산더의 사진 안에는 단단한 석교(石橋)로 놓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까지도 창룡문은 제 모습을 지켜내고 있었으나, 봉돈은 다 무너져 내려 이미 제 구실을 할 수 없었다. 제국의 렌즈에 담긴 수원은 활력이 없고 뒤떨어진 문화를 가진, 낙후된 인물들과 풍습으로 새롭게 바꿔야 할 대상이었다.

 

전쟁의 그늘 속 수원과 사람들

 

6,25 한국전쟁. 그 피해는 수원이라고 비켜가지 못했다. 창룡문과 장안문은 폭격으로 인해 무너져버렸고, 길거리에는 미군들이 넘쳐났다. 아이들은 전쟁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 탱크 위에 올라가 있고, 수원비행장에는 쉴 새 없이 비행기들이 날아올랐다. 수원역에는 피난을 가기위해 사람들이 화물칸 위에 위험스레 올라가 있는 모습도 보인다.

 

 

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방화수류정 인근은 피난민 촌으로 바뀌고, 창룡문은 위에 전각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미군들은 이렇게 무너져 버린 화성을 촬영하기에 바쁘고, 전쟁 통에 가족을 잃은 아이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진 굴드와 게리 헬쎈의 렌즈에 잡힌 수원사람들의 모습은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1950년대 수원의 재발견

 

동문은 도망가고, 서문은 서 있고,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서지고...“ 화성의 4대문에 대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말이 씨가 되었을까? 정말 항간에서 떠도는 말 그대로 되었다. 하지만 수원은 1950년대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뒤, 새롭게 교육과 문화의 도시로 재탄생하였다.

 

자아의 시선으로 본 수원은 망가지고 깨어졌지만, 생동감이 있다. 수원천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들과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 허물어진 성벽 위에서 그래도 꿈을 꾸는 아이들. 서호 제방에서 벌거벗은 채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그렇게 수원은 서서히 제 모습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찾아가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사진을 눈여겨보며 돌아본 렌즈 속 엇갈린 시선들. 우리는 이런 수원을 너무 잊고 살아 온 것은 아닐까? 아버지의 손을 잡고 관람을 하던 한 꼬마아이의 말에 고개를 돌린다. 아마 이 꼬마도 언젠가는 수원의 지난 모습을 또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렌즈 속에 남아있는 수원은 언제나 엇갈린 시선으로 제 자리에 있을 것이다.

 

아빠! 수원이 이렇게 다 망가졌는데, 어떻게 살아났어요?”


‘천성산(千聖山)’이 유명해 진 것은 지율스님의 금식으로 인해서다. 경남 양산시에 있는 천성산은 해발 922m의 산으로, 산의 정상에는 습지와 초원이 발달해 있다. 이곳 습지에는 도룡뇽을 비롯한 희귀종 동식물 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이곳에 대구와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철 공사로 인해 ‘원효터널’이 뚫리면서, 늪지의 훼손과 생태계가 파괴될 것을 우려해 지율스님의 금식투쟁이 계속되었다.

천성산은 계절마다 많은 등산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이번 답사 길에도 천성산을 답사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홍룡사를 오르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행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홍룡사 입구 주차장에 마련한 범종 모양의 화장실

아름다운 범종 모양의 화장실

이곳 천성산 홍룡사 입구 주차장에는 명물이 하나 서 있다. 바로 범종 모양으로 제작한 화장실이다. 가운데 장애우 화장실을 놓고, 그 좌우에 남자와 여자의 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모두 세 개의 범종이 자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아름다운 모양의 공중화장실이 많이 생겨나면서, 가히 화장실에 관한한 우리나라가 당연 최고란 생각을 한다.

화장실이 하도 멋있으니 어떻게 그냥 지나칠 것인가? 윤이 나 반짝이는 외형만 갖고 평가를 할 수는 없는 일. 밖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이왕이면 내부 구경을 하겠다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내부 역시 넓지는 않지만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은은한 범종이 울리는 것이 아닌가?



위로부터 남자, 장애우, 여자의 화장실. 제각각 특징이 있다.

깨진 범종,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범종 소리에 취해 소리가 나는 곳을 올려다보니, 위편에도 유리로 막아 밖의 나무들이 보이도록 조성을 하였다. 이쯤 되면 어디 내놓아도 장원일 듯한 화장실이다. 그런데 무엇인가 좀 이상하다. 소변기를 보니 소변기가 밖으로 삐죽 나와 있다. 벽도 부서져 있다. 이게 웬일인가? 이 아름다운 화장실 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범종 화장실 내부의 천정. 이곳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밖으로 나가보았다. 세상에 범종아랫부분이 깨져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소변기가 벽에 부착되어 있는 곳이다. 밖에서 깬 것 같지는 않고, 안에서 소변기를 잡아 당겨 바깥까지 부수어진 듯하다. 어째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주변에 장사를 하시는 분들에게 물어보니,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단다.


벽에서 떨어져 나온 소변기와 깨진 범종의 외벽

아마도 이곳을 들린 누군가가 술에 취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냐는 대답이다. 자세한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답게 만든 공중화장실을 부수어 놓다니. 괜히 밖에서 사진이나 찍을 것을 그랬나보다는 생각이 든다. 안으로 들어갔다가 마음 아픈 꼴을 보았으니. 제발 이렇게 공중이 사용하는 것을, 내 것처럼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일까? ‘누구야? 범종을 이렇게 깨트린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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