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182에 소재한 수원구치소. 요즈음 이 구치소 옆을 지나는 사람들은 벽면에 그려진 화려한 그림들 때문에 심심치가 않다고 한다. 그동안 구치소라는 건물의 특성상 사람들은 괜히 이곳을 지나기가 편치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구치소 외벽의 축대에는 공명선거를 독려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영통구 청명로 131. 위원장 성낙송)는 수원구치소(월드컵 경기장 건너편) 벽면의 축대에 공명선거 벽화를, 경기대학교 예술대 학생들 40여 명의 자원봉사로 조성했다고 밝혔다. 이 공명선거 벽화는 투표로 응원해요. 선거는 축제다. 돈선거, 기부행위 금지. 우리도 유권자다. 불법선거를 퇴치하라. 공명선거 기원6가지 테마로 조성됐다.

 

 

경기도 여러 곳에 벽화 조성해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64일 실시하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정책을 중심으로 법이 준수되는 가운데 축제의 선거로 치르기 위해 공명선거 벽화를 조성했다. 지난 329일에는 군포시에 소재한 중앙공원에, 수원대학교 미술동아리 학생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공명선거 거리벽화를 조성했다.

 

45~ 7일까지 수원구치소 담장 축대에 경기대 미술동아리 60명이 벽화를 조성했으며, 12~13일에는 오산역 앞 담장에 경기대와 수원대 각 60명이 벽화 조성을 진행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월드컵 경기장 맞은편에 벽화를 조성함으로써. 공명선거 분위기를 끌어올리자는 계획이다.

 

 

다양한 그림으로 알려주는 선거지식

 

벽화는 공명선거를 도출할 수 있는 그림들이 나열이 되어있다. ‘투표로 응원하세요.’란 벽화로부터 정책으로 승부를 지으라고 한다. 비방이나 허위사실을 날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옆에는 ‘64일은 정책에 홍보하는 날이 그려져 있다. 전국 어디서나 사전투표를 할 수 있는 날인 530일과 31일도 알리고 있다.

 

아이들이 풍선을 들고 있는 그림도 보인다. ‘선거는 축제란 그림이다. 나라의 올곧은 일꾼을 뽑는 선거는 정말 축제라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도 학연, 인연, 혹은 정당을 보고 뽑는 바보 같은 짓거리는 사라져야 한다. 선거를 제대로 할 때, 정책을 보고 올바른 판단을 할 때 비로소 행복이 온다고도 알리고 있다.

 

 

부정선거를 고발하는 번호는 국번 없이 1390이다. 부정선거를 목격하고 신고를 하면 보상금이 최고 5억 원에 위반 과태료는 최고 3천만 원이다. 기부행위, 돈 선거, 불법정치자금도 1390으로 신고를 하면 된단다. 물론 음식제공도 불법선거운동이다. 투표는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모두가 다 투표를 할 것을 독려하는 그림도 보인다.

 

분위기 쇄신에도 일조를 해

 

그리고 그 옆에는 다문화가정의 사람들도 투표권이 있음을 알리고 있다. ‘부정부패 나빠요, 지역주의 안돼요, 바른정책 좋아요라는 그림도 보인다. 30m 정도 길게 늘어선 공명선거를 유도하는 벽화. 이런 벽화를 지나는 사람들은 유심히 보고 간다. 한참이나 그림을 보고 있던 행인 한 사람은 이렇게 말을 한다.

 

 

이런 벽화도 참 재미있습니다. 돈을 들여 인쇄물로 공명선거를 유도할 것이 아니라, 곳곳의 벽에 이렇게 그림을 그려놓으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쉽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대학생들이 그려 놓은 선거 참여 벽화가 분위기 쇄신에도 일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전북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산130-1에 소재한,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4호 ‘석산리마애여래좌상(石山里磨崖如來坐像)’ 이 마애불은 이번이 두 번째 답사이다. 첫 번째는 물어물어 찾아갔지만 일몰 시간이 다 되어 그냥 돌아와야만 했다. 이 마애불은 적성면의 선돌마을을 지나, 도왕마을 쪽으로 1㎞ 정도 올라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번에 찾아갔다가 보지 못하고 와서인가, 늘 마음에 미련이 남아있던 곳이다. 이번에는 제일 먼저 이곳을 택해 답사 길을 잡았다. 6월 18일 아침부터 땀이 흐른다. 오늘도 어지간히 날이 찔 모양이다. 마애불이 500m 전방에 있다는 곳부터 걸어야 한다. 마애불로 인해 500m의 아픔이 있는 나이다. 예전에 500m 산 중턱에 마애불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올랐다가 곤욕을 치룬 기억이 나서이다.


산길을 접어드니 마음만 바빠 오고

마애불은 대개가 깊은 산중에 있다. 요즈음은 교통이 좋아 차가 들어가는 곳이 많지만, 그래도 아직 마애불은 걸어 올라야 하는 곳이 더 많다는 생각이다. 석산리마애여래좌상도 산을 걸어 올라야 한다. 산길로 접어드니 산이 그리 가파르지는 않다. 천천히 오르다 보니 숲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가끔은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이마의 땀을 식혀주기도 한다.

아무리 숲길이라고 해도 30도를 넘는 기온이라고 한다. 조금 오르다가 보니 목이 탄다. 그런데 물도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참고 오르는 수밖에. 누군가 나무계단을 놓았다. 고마운 사람이란 생각을 하고 오르다보니, 불과 얼마 오르지 않아 나무계단이 끝이 난다. 그리고 가파른 암벽 위로 길이 나 있다. 쌓인 낙엽에 미끄러져 한 발만 실수를 해도 저 밑으로 굴러 떨어질 듯하다.



조심조심 바위를 지나고 보니 좌측으로 누군가 이곳에 집이라도 지으려고 했는지 돌 축대가 보인다. 그렇다면 이 근처 어딘가에 마애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길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산죽이 자라 길이 보이지를 않는다. 산모기는 땀 냄새를 맡았는지 어지간히 달라붙는다. 산죽덤불을 헤치고 조금 올라가니 바위가 보인다.

고려시대에 조성한 마애불

바위는 약 2.5m 정도가 되는 듯하다. 몇 덩이로 나뉜 바위를 바라보니 좌측에 마애불을 새겨놓았다. 마애불은 오른쪽 대좌부분이 약간 떨어져 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수직으로 선 평평한 바위면에 두광과 신광, 불신, 대좌 등을 얕은 부조로 조각하였다. 커다란 바위가 머리 위를 덮고 있어, 그 오랜 시간을 비바람에 씻기면서도 온전히 남아 있었나보다. 마애불은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하여 얼굴이 큰 편이며, 항마촉지인을 한 채 결가부좌를 하고 앉은 좌상이다.



석산리 마애불의 머리 부분은 마치 두터운 모자를 쓴 듯 투박하게 표현을 하였다. 민머리에 큼직한 상투 모양의 육계를 묘사하였다. 얼굴은 큼지막하게 정사각형에 가까운 편이며, 눈은 마모되어 분명치가 않다. 그러나 큼직한 코와 두툼한 입술 등은 분명하게 남아있다. 입술은 가장자리는 쳐지게 표현하였으며, 입술과 이마 선을 따라 붉은색의 칠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고려시대 마애불은 왜 채색을 한 것일까?

삼도는 목이 짧아 몸의 상단에 걸쳐지게 표현되었으며, 몸은 얼굴에 비하여 유난히 작게 표현하였다. 아마도 이런 모습으로 볼 때 지방의 장인에 의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깨가 좁고 위축되어 있는 편이며, 법의는 오른쪽 어깨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왼쪽 어깨에 대의 자락을 걸친 우견편단식 옷차림이다. 법의 자락은 배 부근에서 결가부좌한 두 다리 위로 가는 주름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오른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아래로 내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연화대좌는 오른쪽 부분이 파손되었으며, 광배는 배 모양의 신광 안에 두광과 신광을 표현하였다. 광배의 여백을 따라 당초무늬를 선각하였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다.

두 번째 찾아가 만난 순창 석산리마애여래좌상. 얕은 부조기법과 토속화된 얼굴 표현, 그리고 평행밀집형의 옷 주름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행히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어서 그런가, 별다른 손상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이 마애불의 불신에는 채색을 하였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어, 고려시대 불상 조성의 또 다른 일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깊은 산중에 들어와 마애불을 조성하고 채색까지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합장을 하고 마음속에 간직한 서원을 말한다. 입술에 붉은 칠을 한 마애불이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고 입을 움직이는 듯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시원한 산바람이 산죽 잎을 흔들고 지나간다.


섬진강이 아래로 굽이쳐 흐르고 있고, 강 건너편에는 전라북도인 남원시 대강면 방산리가 된다. 뛰어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함허정은, 전남 곡성군 입면 제월리 1016번지에 소재한다. 현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2월 26일에 들려 본 함허정은 여기저기 보수를 한 흔적이 보인다.

정자 위에 오르니 시원한 섬진강의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2월 말이라고는 하지만, 오랜만에 날이 푸근했다. 바삐 몰아 친 답사 길이 땀이 배어나게 만들었다. 이미 시간이 꽤 되어서 오늘의 마지막 답사장소로 택한 곳이다. 함허정은 조선조 중종 38년인 1543년에 심광형이 지었다고 하니, 벌써 500년 가까이 섬진강 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셈이다.

전남 곡성군 입면 제월리 섬진강 가에 자리하고 있는 함허정. 전남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은지가 500년 가까이 되었다.

섬진강을 가슴으로 느끼다

심광형은 조선 중기에 광양과 곡성 등 여러 곳에서 훈도를 지낸 바 있는 당대의 문사로 이름을 떨쳤다. 이곳에 함허정을 지은 것은, 지역의 유림들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서란다. 그래서인가 이 정자를 일명 ‘호연정’이라고도 불렀다는데, 아마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뜻하는 것인가 보다.

함허정은 심광형의 증손자인 심민각이, 오래된 정자를 옛 터 아래쪽으로 옮겨 다시 지었다. 그리고 5대손인 심세익이 고쳤으며, 현재의 함허정은 1980년에 수리를 했다고 한다. 이번 답사에서도 함허정은 여기저기 손을 본 흔적이 있다. 팔작지붕인 함허정은 정면 네 칸에 측면 두 칸이다. 마루 한 칸을 3면을 트고 두 칸 반에 방을 드렸다. 현재 함허정을 오르는 계단 위에 놓인 일각문 앞으로는, 한단을 높인 높임 쪽마루를 놓았다.




멀리 무등산이 그림처럼 펼쳐 보인다. 그리고 정자 주변에는 고목이 된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다. 이곳에서 시원한 섬진강의 바람을 맞으며, 논객들과 세상을 논하고 시를 읊었을 것이다. 섬진강 흐르는 물에 마음껏 여유도 부려보았을 정자 함허정. 그곳에 서면 섬진강을 느낄 수가 있다.

수많은 편액들이 심광형의 됨됨이를 알게 해

안으로 들어가 정자를 한 바퀴 돌아본다. 한 단의 기단을 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정자의 기둥은 원형기둥으로 세웠는데, 바르게 다듬지를 않았다. 약간 굽은 것도 그대로 기둥을 세워 인위적이지가 않다. 거기다가 섬진강 쪽으로 세운 기둥들은 안쪽의 기둥들보다 더 많이 갈라져 있다. 아마도 비바람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신을 벗고 새로 보수를 한 마루 위에 오른다. 누마루 바닥의 찬 기운이 발바닥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가 위를 올려다보니, 수많은 편액들이 걸려 있다. 이 많은 편액들이, 함허정을 세운 주인의 심성을 일러준다.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했다는 것을 뜻한다.

함허정의 슬픈 모습이 보여

함허정 앞으로 보이는 섬진강은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아름다운 섬진강의 강바닥을 고르고 한편으로는 돌로 축대를 쌓는 공사다. 이곳도 강을 정리하고 있는 것일까? 함허정을 돌아내려오다가 밭일을 하고 있는 분에게 물어보았다.



“저 공사는 무슨 공사예요?”
“모르겠어요. 저렇게 강을 골라 한편에 자전거 길을 만든다고 하네요.”
“섬진강 긴 곳 중에 하필이면 이곳에만 그런 공사를 하나 봐요?”
“작년에 이곳에 물난리가 났는데, 그것 때문인가 보네요.”
“물난리가 나다니요. 장마 때 그랬나요?”
“아뇨. 날짜도 안 잊어버리네요. 작년 8월 16일에 이곳에 물이 범람했어요. 차도까지 물이 넘쳐서 통행이 제한되었으니까요”
“홍수가 매년 그렇게 나요?”
“아닙니다. 작년에만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물이 넘쳤는데, 그러고 나서 공사를 시작했어요. 저렇게 강폭을 좁혀놓으면 더 큰 물난리가 날텐데, 동네에서는 아무도 말 한마디를 안하고 있어요”

저렇게 강바닥을 고르고 축대를 쌓아버리면, 함허정은 무엇을 보게 될까? 물론 자전거 길을 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곳에서 여가를 즐길 수가 있다면 그도 새로운 풍속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굽이치며 흐르던 섬진강을 저렇게 만들어 놓으면, 함허정에서 바라보며 시심을 일깨우던 지난 시간은 모두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는지.


아마도 함허정에 올라 섬진강을 노래하던 수많은 시인묵객들은, 저런 모습을 반기지는 않을 것만 같다. 그보다 500년 섬진강을 노래하던 그 소리가, 이제 저 돌로 쌓은 인위적인 축대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함허정의 강노래도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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