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받은 무녀들은 '맞이굿' 혹은 '진적굿'이라는 굿을 합니다. 이 굿은 신내림을 받은 무녀들에게는 가장 크고, 장엄한 굿입니다. 즉 자신이 섬기고 있는 신격들을 위하는 굿으로, 일년에 한 번, 혹은 3년에 한 번씩 큰 굿을 하는 것이죠. 이러한 굿은 일반인들은 접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맞이굿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맞이굿을 가장 정성스럽게 올리는 무격이 바로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사는 고성주(남, 56세)입니다. 18세에 내림을 받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봄 가을로 맞이굿을 올립니다.  생생한 맞이굿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사진으로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시간마다 한 번씩 들어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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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판에는 늘 해학이 넘친다. 예전에는 대감굿을 할 때면, 전문적인 ‘무기(舞技-춤추는 사람)’들이나 소릿광대들이 굿판을 찾아들었다. 대감굿은 지금처럼 한 거리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각 거리마다 끝에 질펀한 대감놀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감굿에서 춤을 추고 소리를 하였다.

11월 2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소재한 고성주(남, 55세)의 ‘진적굿(진적굿은 신을 모시는 무속인들이 자신이 섬기는 신을 위한 굿을 말하다)’ 판은 흥이 넘쳤다. 춤을 추는 무희들과 소릿광대가 자리를 함께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소리를 듣고 자란 타고난 소리꾼

박종국(남, 57세)은 타고난 소리꾼이다. 어릴 적부터 마을에서 소리꾼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어릴 때 시흥 읍내 탑골에 살았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집을 지을 때 하는 지경닺는 소리 등 많은 소리를 듣고 자랐어요. 참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요. 그 어린나이에 무엇을 알고 그랬는지. 한 번은 상여를 쫓아가 공동묘지에서 잠을 잔적도 있어요. 밤이 늦었는데도 아이가 들어오질 않으니 집안이 발칵 뒤집혔죠. 경찰들에 의해 집으로 갈 수 있었는데, 집에 가서 혼도 많이 났죠.”

굿판에 초청이 되어 부채 하나를 손이 들고 신바람 나게 ‘변강쇠타령’을 불러대는 박종국씨.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 산타령의 이수자이던 박종국씨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0호 수표교다리밟기 소리부문예능보유자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당시 큰 만신 집이 있었는데, 그곳서 구경을 하다가 늦게 들어와 혼도 많이 났다고 한다.

“아마 음악이 저에게는 팔자인가 봅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보컬을 조직해 공연도 하고, 무명가수로 야간업소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어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소리판

그런 끼가 있어서인가 자신에게 맞는 소리를 찾다가 우리소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선소리 산타령의 보유자였던 고 정득만 선생과 현재 서울 휘몰이잡가의 보유자인 박상옥 선생께 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그 동안 수원에서도 많은 제자들을 가르쳐 온 박종국씨는 판소리를 마당극화 하여 무대에 올리기도 하는 등, 많은 공연을 하였다. 언제나 타고난 소리꾼으로 자신의 소리를 잃지 않고 이어간 것이 오늘의 자리에 있게 한 것인가 보다.

소릿광대는 재담이 뛰어나야만 한다. 판소리의 소리꾼만이 아니라, 어느 소리를 하든지 재담이 없으면 소리판이 영 밋밋해진다. 소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좌중을 휘어잡는 재담이다. 그런 면으로 볼 때 박종국씨의 재담은 언제나 재미있다. 수많은 무대에 작품을 올리면서 직접 연출을 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 소리로, 박수로 굿판의 흥을 절정으로 오르게 한 소릿광대. 아마 이 날 장구를 대한민국 최고의 장구잽이라고 하는 장덕화 선생이 잡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굿판의 흥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것이 우리 굿의 재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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