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수원시 광교저수지 아래 광교공원에서는 아침 10시부터 물의 날 행사가 열렸다. 원래 세계 물의 날은 322일이지만, 수원에서는 토요일인 23일에 연 것이다. 이날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에 몰려들어 물의 중요성과,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에서의 물을 아끼는 법 등을 깨우치는 소중한 행사를 연 것이다.

 

물의 날 기념식을 마치고 난 뒤, 광교산에 있는 수원천의 발원지를 찾은 기념식도 함께 가졌다. 사실 수원에서는 수원천의 의미가 남다르다. 그것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성하면서 수원천을 화성 안으로 흐르게 축성을 했는가 하면, 수원펀 가까이인 팔달산에는 선사시대의 묘인 지석묘가 집단으로 발견이 되어, 아주 오래전부터 수원천 인근에 취락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9번이나 찾아 헤맨 수원천의 발원지

 

수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난 수원천의 발원지를 찾아 19번이나 광교산을 뒤지고 다녔다. 발원지를 찾을 때는 주로 건기인 눈이 내리지 않은 한 겨울이거나 4월과 7~8월을 이용한다. 그때 물이 부족한 하천들은 대다수가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한 여름이라고 해도 비가 많이 올 때는 피해야 한다. 땅 속에 스며들었던 물들이 흐르기 때문이다.

 

산에 오를 때는 물과 김밥 등을 넉넉히 준비해서 오른다. 하루 종일 8시간 이상을 산을 뒤지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설날에 올랐다가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식당 등이 다 쉬는 날이라 떡국의 국물을 빼고 가져갔는데, 날이 추운지라 떡국이 얼어버려 결국 얼음떡국을 한 겨울에 야외에서 먹기도 했으니.

 

 

발원지의 조건은 이렇다.

 

수원천의 발원지를 찾아다닌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이다. 몇 년 동안 우리나라의 강이나 하천의 발원지를 찾아보았기 때문이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금강의 발원지인 뜬봉샘,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 그리고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 등, 강과 하천의 발원지만도 꽤 많이 찾아보았다.

 

4대강의 발원지를 찾아다니면서 웃지 못 할 일도 많았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를 찾았을 때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을 때였다. 눈길에 몇 번이나 미끄러져 넘어졌는지 모른다. 데미샘은 꽤 많이 걸어야 한다. 한 여름에 찾아가는 길에 미쳐 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팔공산의 천상데미(해발 1,080m) 바로 아래에 있는 데미샘. 목이 말라 남들이 고로쇠물을 받는 것을 조금 마시다가 혼이 나기도.

 

 

금강의 발원지인 뜬봉샘을 찾은 것은 밤 11시 경이었다. 9시가 넘어 찾기 시작하다가 2시간 이상을 처음으로 찾아간 길에서 헤매기도 했으니, 그 고생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인적 없는 밤의 산길을 왜 그리도 겁이 나던지. 그렇게 발원지를 찾아다니면서 나름대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1. 반드시 용천수일 것

모든 발원지들이 갖는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 여기저기서 스며들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샘솟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용천수라고 한다. 용천수란 그야말로 그곳에서 샘이 솟아야 한다는 것. 용천수라는 명칭도 물이 솟다가 보면 수면보다 위로 솟는 모습이 용과 같다고 하여 부친 이름이다. 아니면 반드시 기포가 생겨야 한다. 기포가 없으면 주변의 지하에 있던 물이 고여 드는 것이다. 그것은 발원지가 아니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의 경우 검룡소 옆으로 더 큰 물줄기가 위에서 흐른다. 그러나 그 물은 솟는 물이 아니라 모여들어 흐르는 물이기 때문에, 더 높은 곳에 있어도 발원지가 되지 못한다.

 

2, 365일 마르지 않을 것

발원지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365일 일 년 내내 마르지 않아야 한다. 어느 한 순간도 마르면 이것은 발원지가 될 수가 없다. 발원지를 찾을 때 건기를 이용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마르지 않는 물줄기를 찾기 위해서이다.

 

3. 반드시 지표로 흐를 것

발원지에서 솟은 물이 흐르다가 어느 장소에서 지하로 스며들어 끊어진다면 그 또한 발원지가 될 수 없다. 발원지의 물들은 아무리 작은 물줄기라고 해도 반드시 지표를 흐르면서 주변의 물은 합해 큰 줄기가 되기 때문이다.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의 경우 옹달샘 정도이지만 그 물은 계속 지표를 흐르면서 주변의 물을 합해 물줄기가 커지게 된다. 발원지에서 솟아난 용천수가 흐르면서 잠시라도 땅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진다면, 그것은 이미 발원지의 조건이 될 수가 없다.

 

 

4. 가장 멀고 가장 높을 것

발원지가 갖는 조건 중 하나는 바로 가장 높고, 가장 멀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물이 솟는 장소 중에서 가장 높고, 가장 길어야 발원지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물의 발원지를 찾는다는 것은 조심스럽다. 모든 생물의 생명의 근원이 되는 곳이 바로 강이나 하천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한 겨울에 찾은 검룡소 주변에는 눈 위에 수없이 많은 동물들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바로 생명들이 그 처음의 물을 먹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물의 발원지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정자를 지을 때 옛 선인들은 무엇을 먼저 생각했을까? 우선은 물과 숲이다.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에는 송림이 우거졌다면, 그것이 정자를 세우는데 최적의 조건이었을 것만 같다. 전국을 다니면서 보면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 정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 모두가 빼어난 절경에 자리를 하고 있다.

앞으로는 물이 흐르고, 기암절벽 위에 정자가 서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노송 몇 그루가 정자를 가린다. 한편은 대숲이 있어, 바람이 불때마다 대숲이 화답을 한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 정자 하나가 서 있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자연을 무시하는 처사가 될까? 그렇게 아름다운 정자 송석정(松石亭)은, 전남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 762번지에 소재한다.



고고한 자태로 서 있는 송석정

당쟁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을 한 양인용이 처음으로 지었다고 전하는 송석정. 양인용은 제주인으로 자는 ‘여함(汝涵)’이요, 호는 송석정(松石亭)이다. 조선조 명종 10년인 1555년 을묘 12월에,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양산립의 장자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강직한 송석정은 소시에 등과하여, 종사품인 훈련원첨정에 이르렀다.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등극하면서, 당시의 조정은 당쟁으로 인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광해군이 등극해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유폐시키자, 공은 이를 반대하는 충간을 광해군에게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공은 이곳으로 낙향하여 정자를 짓고 자호를 붙여 ‘송석정’이라 당호를 지었다.



글 속에 남아있는 송석정의 마음

대장부 어지러운 때를 만나
거룩한 진리안고 숲속에 있네.
궁약은 경서 속에 달래보고
공명은 물거품으로 생각하도다.
소나무 어루만져 달아실(=月谷) 바라보며
돌덩이 헤아리며 용두암을 거닐어보네
이 깊은 애정(哀情)을 뉘와 더불어 논할까
좋은 벗들 찾아와 머물었건만

송석정의 원운(原韻)에 보면 나라를 향한 걱정을 하면서 단장의 애한을 달래고 있다. 이곳에서 여생을 보낸 공은 많은 시인묵객들과 교류를 하면서 지냈다. 정자 안에 빼곡하게 걸린 수많은 시판들이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절경’이란 말이 어울리는 정자 송석정

송석정이 차음으로 지어진 것은 400여 년 전이다. 8월 21일 전라남도 답사를 하면서 찾아간 송석정. 많은 사람들이 정자에 올라있다. 무슨 일인가해서 다가갔더니, 공의 후손들이 모임이 있는 날이라고 한다. 바쁜 답사 일정만 아니라면, 나도 그 안에 끼어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권하는 술잔을 마다하고 돌아서려니, 공이 한마디 할 것만 같다. ‘술 한 잔 마시지 못하고 돌아서는 주변머리 없는 인간’이라고.

송석정은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팔작집이다. 덤벙주초를 놓고 원형의 기둥을 세웠다. 중앙에 한 칸 온돌을 놓아, 주변경치를 사시사찰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방은 사방을 모두 열어 위로 걸게 하였으며, 한편 마루를 높여 그 아래 아궁이를 두었다.



주변으로는 암반이 솟아있고, 노송들이 가지를 뻗고 있다. 그 밑으로는 물이 흐르고, 앞으로는 들판이 펼쳐진다. 정자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자리에 서 있는 송석정, 그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하기란 쉽지가 않을 듯하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 다시 한 번 찾아가는 길에는, 그 곳에서 공의 마음을 읽기 위해 술 한 잔 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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