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바닷가를 지나다가 보면, 해안가에 작은 집이 있는 것이 보인다. ‘당집’이라고 하는 이 집들은 풍어와 바닷길의 안전을 비는 제의를 하는 곳이다. 대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은 딴 곳과 달라, 바다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잃는 것은 물론 그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불행을 막기 위한 당고사를 지내거나 풍어제는 지낼 때, 아무래도 일반적인 마을의 동제(洞祭)보다 더 많은 금기를 지키게 된다. 바닷길의 무사고와 풍어를 위한 마을의 제의는 3일간이나 하는 것도, 모두 살아가는 동안 평안을 바라기 때문이다.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동백나무숲 안에도 당집이 있다.


500년 역사의 마량리 당집

마량리 당집은 그 역사가 500년이나 되었다고 전한다. 당집에는 서낭을 5분이나 모시고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서낭을 모신 것은 500여 년 전 이 마을에 일어난 불행한 일 때문이다. 500년 전 이 마을의 주민들은 뗏목을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풍랑이 몰아쳐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단다.

이 마을에 사는 한 노파의 남편과 자식이 그렇게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를 못했단다. 그러던 중 바다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용왕을 모셔야 마을이 편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 노파는 용왕에게 지극정성으로 빌었나보다.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해안가에 가보라고 했는데, 그 해안 백사장에서 널을 하나 발견했다.


두 가지로 전해지는 전설

그 널 안에는 서낭 5분과 동백나무의 씨가 들어있어, 서낭은 당집을 지어 모셔놓고, 씨는 해안가에 뿌렸다고 한다. 그것이 현재의 동백 숲이 되었으며, 마량리 당집 안에 모셔진 서낭이 그 다섯 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전설은 두 가지로 전해진다. 그 하나는 동백 숲을 조성한 것은 수군첨사라고 하며, 그 조성시기도 300여 년 전이라는 것이다. 서천군의 소개에는 300년으로, 마량리 동백 숲과 당집에는 500년으로 기록이 되어있어 보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아마도 그저 지역에 전해지는 전설이기 때문에, 그렇게 다른 것인가 보다 하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전설이라고 해도, 마을의 안녕과 풍어, 뱃길의 무사고 등을 기원하는 것이라면, 그 추정연대를 같게 소개를 해야 할 것이다. 마을 노파의 전설은 500여 년 전, 수군첨사의 전설은 300년으로 되어 있어,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두어야할지 난감하기도 하다. 아마도 수군첨사의 300년 보다는, 노파의 500년이 당집과 더 어울린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뱃길의 안녕과 풍농을 위한 당제

마량리 당제는 마을주민들이 제가 있기 며칠 전부터 집집마다 쌀 한 되씩을 거두어 들인다. 이렇게 집집마다 쌀을 걷는 이유는 모든 가정이 다 편안하기를 바라는 뜻에서이다. 그렇게 걷어 들인 쌀을 이용해 제물을 마련하는데, 화주와 선주의 일을 도와주는 화장, 그리고 당제에서 대를 잡는 당굴 등을 선정한다.



제관을 선출할 때는 생기복덕을 가리고, 집안에 산모가 있거나 환자가 있는 집은 가려낸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3일간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당제는 선창제를 시작으로 독경, 대잡이, 마당제, 용왕제, 거리제로 이어지며, 수십 개의 만선기와 풍어기를 당 주위를 꽂아놓는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으로 지어진 당집 안에는, 선반에 남녀 각 두 분씩의 모형을 모셔놓았다. 아마도 다섯 분을 모셨다고 했는데, 한 분은 위패로 모신 듯하다. 아직 마량리 풍어제를 보지 못해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지가 궁금하다. 오랜 세월 풍어와 바닷길의 무사고를 위해 서낭에게 빌던 마량리. 아마 오늘도 뱃길을 지켜주는 서낭님들이 있어, 마을이 풍요로운가 보다.


고사로다 고사로다 고사덕담을 들어보소(중략)

천지간 가져갈 때 하늘 열려 땅 생기니

일월성신 갖추었구나

만물이 생겨나고 모든 생명 피어날 때

하늘에 명을 얻어 우리조상이 생겼구나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김혜란 창)


천지현황 조판 후에 혼돈세계 길탄말가

일대국이 건설되고 건부곤모 가결하니

음과 양의 조화로다. 태양태음이 일월이요

산수조공을 살펴보니 인황씨가 조종이라

학을 눌러 대궐 짓고 대궐 앞에는 육조로다

육조 앞에는 오영문, 오영문 앞에는 삼각산인데

각도 각읍을 마련할 제 인왕산이 주산이요 종남산은 안산이라

(가장 보편적인 고사덕담의 사설)



‘고사덕담’이 있다. 말 그대로 고사를 드리면서 덕담을 하는 것이다. 고사덕담은 대개 정초에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지신밟기를 할 때, 마을의 풍물패 중에서 소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는 한다.


말 그대로 일 년의 평안을 축원하다.


고사덕담을 정월에 하는 이유는, 이렇게 정월에 덕담을 들어야 그 해가 평안하다는 속설 때문이다. 고사덕담을 할 때는 북이 옆에서 장단을 넣어준다. 고사덕담은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처음에는 그 가정이 생긴 내력부터 먼저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어서 자손축원과 액을 막아주는 달거리인 홍수맥이를 한 후, 풍년을 축원하는 농사풀이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고사덕담을 할 때는 집집마다 대청에 고사상을 차린다. 고사상은 소반에 쌀말이나 함지박에 쌀을 가득 담고, 그 위에 촛불을 켠다. 북어를 한 마리 꽂은 후 실타래를 걸쳐놓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루떡을 해 같이 올리기도 한다. 이때 올려지는 쌀은 모두 풍물패들이 가져간다. 주인은 특별히 풍물패를 위하여 음식을 준비해주기도 한다.


쌀을 올려놓는 것은 집안의 풍요와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며, 북어는 만복을 기원한다. 실타래는 자손들이 수명장수 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시루떡은 축귀를 의미한다. 이렇듯 그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풍물패들은 고사덕담을 하면서 그 집안의 평안과 풍농, 그리고 자손창성을 기원한다.


이댁 가중 전에 어린 아기씨

날이면 물이 맑고 밤이 되면 불이 밝아

부귀공명 발원이요. 자손창성 축원이라

부모님께는 효자동이 형제간에는 우애동이

친척 간에는 화목동이 이웃 간에는 귀염둥이



서로에게 나누어 주는 덕담


그렇게 준비를 한 음식과 술은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인다. 그리고 쌀과 축원에서 나온 돈은 마을을 위하여 사용을 한다. 고사덕담 안에는 마을 전체가 함께 잘 되기를 바라는 공동체가 있다. 누구나 함께 한다는 공동체 속에, 무엇 하나라도 나눈다는 ‘우리‘가 있는 것이다.


고사덕담은 애가 복을 갖는 것이 아니다. 마을 집집마다 고루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민족의 심성이다. 이런 우리의 전통적인 정초 문화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이기주의와 물질숭배주의가 팽배해 있다. 본연의 우리모습을 잃은 것이다. 올 신묘년 한 해 모든 가정에 고사덕담을 축원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본질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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