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은 강원도 여행으로 쌓인 피로 풀어내고 새 기운 얻어

 

음력 815일을 추석(秋夕)’이라고 한다. 가을이 깊어진다는 말이다. 추석이 되면 모든 열매들이 결실을 맺어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하기에 추석을 한가위라고도 한다. 올 추석은 태풍 링링으로 인해 많은 걱정을 했다. 전통시장도 태풍으로 인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매상을 올렸다고 한다.

 

더구나 과수농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결실을 앞둔 과수들이 태풍으로 인해 많은 열매들이 낙과가 되는 바람에 올 일 년 농사를 망쳤다고 한다. 결실을 맺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과수농가는 한숨만 몰아쉬고 있다. 가을 소득을 기대하면서 일 년 동안 정성들여 키운 과수가 못쓰게 되었으니 그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날 길을 떠났다. 평소에 수원을 벗어날 수 없는 나로서는 예전보다 짧은 기간의 추석이지만 마음먹고 길을 나선 것이다.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강원도 여행이라 마음을 설레며 떠난 길이다. 추석귀성으로 인해 길이 막힌다고 하지만 그동안 강원도를 여행하면서 막히지 않는 길을 익혀두었기 때문에, 고생스럽지 않게 강원도 고성군 최북단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추석은 근친과 반보기를 하는 날

 

추석이 되면 사람들의 마음도 풍족해진다. 그만큼 풍성한 먹거리들이 이 계절에 상위에 오르기 때문이다. 하기에 설날보다 추석이 항상 풍족한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풍요로운 계절이다 보니 부모를 떠나 멀리 외지에 나가있는 자식들도, 이날 부모형제를 찾아보는데 이를 근친(覲親)’이라고 한다. 추석 때는 시집을 간 딸도 친정을 찾아가 부모를 뵙는다.

 

시집간 딸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친정으로 나들이 하기가 쉽지 않다. 하기에 농사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먹을 것이 풍부한 계절인 추석 때를 전후해 근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근친을 할 수 없는 딸들은 친정과 시집의 중간 지점에서 부모를 만나게 된다. 이를 반보기라 한다. 이때는 좋은 음식을 서로 준비해서 만나게 되며, ‘반보기는 근친과는 달리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기 때문에 그리움의 정은 배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

 

나야 근친도 아니고 반보기도 아니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며칠이라도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명절 때 뿐이라 추석연휴 기간 중에 여행을 떠난 것이다.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길을 나선다지만, 서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나로서는 고향이라는 곳을 찾아간다는 것이 남의 이야기처럼 만 들린다. 먼 길을 달려 근친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하는 것으로 낙을 삼고 있다.

 

그나마 단 2~3일이라도 도심을 떠나 바닷가나 산을 찾아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새롭게 앞으로 해야 할 일 등을 정리하는 것으로 근친이나 반보기를 대신한다, 마침 최북단이라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에 정수암이라는 작은 절이 있어, 그곳을 찾아가 일 년 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자 길을 나선 것이다.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새롭게 시작하는 추석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두 사람의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음력 7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하였다.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을 부르며 놀았다고 하는데, 이를 가배라 해서 추석의 시원으로 보고 있다.

 

풍족한 먹거리와 모든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즐길 수 있는 명절인 추석. 올해는 일요일까지 연 4일의 연휴를 맞게 되었다. 추석을 맞아 매년 일 년이면 몇 차례씩 만났던 사람들을 찾아본 여행. 물론 남자인 내가 친정을 찾아간 것도 친정 식구들을 만난 것도 아니지만 그동안 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의형제들을 만나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새로운 힘이 솟는다.

 

올 추석은 나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의미있는 추석연휴가 되었다. 새로운 기분으로 일상생활로 돌아온 날. 근친과 반보기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그에 못지않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새로운 기운으로 열심을 내보아야겠다.

 

대부도는 경기도 안산시에 속해 있는 섬이다. 안산시는 공업단지가 가장 많은 곳으로 변해, 문화재들을 찾아보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도 몇 점의 소중한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전역에 많은 문화재들이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안산시 대부북도에는 쌍계사라는 전통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흔히 쌍계사하면 하동 쌍계사를 떠올리지만, 그 외에 여러 곳에 쌍계사라는 사명을 가진 사찰들이 있다. 안산시 대부북동 1058에 소재한 쌍계사는 1660년 경 취촉대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다섯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물이 나와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사찰에 보관된 <정수암성조기(淨水庵成造記)>에 의하면 1689년 죽헌비구가 정수암을 중창하여 없어진 후, 1745년 그 자리에 다시 사찰을 세워 1750년부터 쌍계사라 불렸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찰 내에서 만력4(萬曆四年 : 1576)에 제작된 기와가 발견되어, 16세기 후반부터 이 지역에 사찰이 운영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널찍한 경내에 봄기운이 완연해

 

4일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를 하여 답사를 떠났다. 안산시에 소재한 몇 곳의 문화재와 쌍계사, 그리고 대부도와 연결이 되어있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선재도와 영흥도를 둘러볼 계획으로. 안산시 별망성지를 돌아 찾아간 쌍계사. 극락보전을 중심에 두고 한편에는 삼성각이,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약수가 나온다는 용바위를 보전하는 전각이 있다.

 

너른 마당에는 봄볕이 완연하다. 약간의 찬바람이 불고는 있지만, 절을 찾아가는 산길에는 벌써부터 농사꾼들의 작업이 한창이다. 최초로 창건할 당시에는 경기도 남양부지 서령대부도였다는 대부북도 쌍계사. 쌍계사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1호인 쌍계사 목조여래좌상과 제182호인 쌍계사 현왕도, 그리고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0호인 아미타화상도를 소장하고 있다.

 

 

신비한 용바위, 유리 밑으로 물길이

 

극락보전에 들려 참례를 한다. 언제나 사찰을 들어서면 먼저 하는 의식이다. 꼭 돈독한 신앙심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문화재가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서 용바위가 있다는 전각을 살펴본다. 앞에는 병을 낫기를 기원하는 촛불들을 켜 놓았다. 용바위의 물길이 흐르는 곳은 유리로 막아 놓았다.

 

방석이 그 위에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 물길 위에서 앞에 걸린 용왕신의 탱화를 보고 절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조금은 섭섭한 생각이 든다. 그 몸에 좋다는 물을 한잔 떠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 물을 발견한 것은 정수암이라는 절을 처음으로 창건한 취촉대사가 발견을 하고 그 자리에 암자를 지었다고 전한다.

 

 

전하는 설에 의하면 취촉대사가 이곳을 지나가다 산 중턱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용 다섯마리가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에서 깬 취촉대사가 그 자리를 파보니 용바위 밑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여겨 그 자리에 정수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 물에는 철분 및 탄산수가 많아 위장병 및 피부병에 좋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약수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쌍계사의 뒤편으로는 소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듯하다. 개구리가 동면을 깨고 나온다는 경칩을 하루 앞둔 5일 찾아간 대부북도 쌍계사. 그곳에는 이미 봄이 발치 앞까지 와 있었다.

지붕에 쌓인 눈의 높이가 150cm란다

 

연일 일기예보와 뉴스에서 강원도 북부지역의 눈 소식을 전한다. 미시령은 눈사태로 인해 통행이 금지되었고, 진부령에는 최고 120cm의 눈이 쌓였다고 한다. 중장비를 동원해 눈을 치우고는 있지만, 그것도 큰 도로뿐이지 골목이나 외떨어진 마을 등에는 아예 손도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강원도 지역 여기저기에 벌써 고립된 마을들이 생겨나고, 구조요청을 하고 있기도 한단다. 5일 동안이나 잠시도 쉬지 않고 쏟아진 눈은 이미 눈이 내린다는 감상적인 눈이 아니고, 그야말로 폭탄이라고들 한다. 단순한 눈사태가 아니라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고들 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올 것인지. 목요일에는 또 눈 소식이 있다고 하는데.

 

문을 열 수도 없을만큼 눈이 쌓여있고 밨으로는 나갈수도 없다고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더니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 119번지에 소재한 정수암. 지난해 잘 아는 스님 한 분이 이곳에 인법당을 마련하셨다. 늘 찾아간다 하면서도 마음만 앞설 뿐, 자주 갈 수가 없는 것이 거리도 거리지만 도통 여유를 찾을 수가 없다. 그곳까지 다녀오려면 적어도 23일 정도는 시간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불안하다. 진부령이면 양양과 고성의 경계인데 그곳에 120cm의 눈이 왔다면 스님이 계시는 곳은 그곳보다 더 북단인 화진포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었다.

 

스님 안녕하세요?”

, 눈이 너무 많이 왔어요.”

밖에 출입도 안 되시죠?”

출입은요. 겨우 공양간 다니는 길만 치웠어요. 지붕에 쌓인 눈을 재보니 150cm 정도 되네요.”

여기서는 제일 많이 온 곳이 120cm라고 하던데

넓은 지역을 일일이 잴 수가 없을 테니까요 신고는 했는데 여기까지 들어올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큰 길도 아직 못치우고 있다는데.”

스님 불편하신 것은 없으세요.”

, 쌀 있고 땔 것 있으니 살 수 있죠. 동안거 한 번 제대로 하고 있네요.”

 

창문까지 내린 눈이 쌓여있다.(위) 아래는 길을 내고 찍은 사진에는 눈이 처마까지 쌓였다

 

스님의 밝은 웃음소리에 안심을 한다. 언제니 세상을 늘 그렇게 긍정적으로 사시는 분이다. 물론 스님이라는 수행자의 신분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스님은 사람을 만나면 참 재미있게 만들어 주신다. 함께 자리를 하는 사람 모두가 웃느라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남에게 웃음을 준다.

 

보내온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해

 

스님과 통화를 마치고 잠시 뒤에 문자가 들어온다. 연이어 들어오는 문자를 열어보니 스님이 묵고 계신 곳을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여 보내셨다. 그 사진을 보다가 그만 경악을 하고 말았다. 이것은 눈이 온 것이 아니고 눈 폭탄이라고 해야 옳다. 길을 겨우 냈는데 그 길이, 쌓인 눈이 무너져 내려 막혀버렸단다.

 

좌측에 세워둔 차가 보이지 않는다. 차를 눈이 덮어버렸다(위). 길을 내려고 치우다가 눈 사태를 만났다고

 

스님 이웃에 연세가 많으신 분이 전화를 걸어 당신이 강원도에 사신 것이 50년이 넘었는데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단다. 그렇게 눈 폭탄이 퍼부어서 비닐하우스며 축사 등에도 많은 피해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저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스님. 일기예보에는 강원도의 기온이 떨어져 눈이 그대로 얼어버렸다고 보도를 한다.

 

스님 건강하시고 몸조심하세요.”

그저 이런 문자 하나로 마음에 위안을 삼는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 그저 안녕하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새삼 자연의 무서움을 깨닫는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떠들어보았자, 결국 자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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