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전국의 모든 사찰은 연등을 단다. 연등은 대개 두 종류로 구분이 된다. 대웅전 등 전각 안에 다는 1년 등과, 절 마당에 다는 1일 등이다. 1년 등은 가족들의 안녕을 위하여 달고, 1일 등은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물 중 등 공양으로 드린다고 한다. 부처님 오신 날에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절을 찾아 기원을 드리고 부처님의 가피를 입기를 기원한다.

 

수원에는 크고 작은 절이 있다. 아침 일찍 여기저기 절 분위기를 한 번 보겠다고 돌아보았다. 각 절마다 모인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예불을 올리고 있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가내의 안녕과 자손들의 부귀공명 등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몇 곳에는 커다란 등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글귀도 보인다.

 

 

40여개의 등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극락왕생 염원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는 고성주(, 60)씨는 스님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토속신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만신이라고 자처하는 고성주씨는, 수원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갖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고성주씨의 전안에도 일 년 등이 달렸다. 그리고 마당에는 100여 개가 넘는 등이 달려있다.

 

이 곳의 등은 이상한 점이 있다. 대개 영가를 위한 등은 백등이다. ‘세월호 참사 사망자 왕생극락 발원이라는 등표를 붙인 40여개의 등이, 신도들의 등 주변 밖으로 빙 둘러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등 중에서 10여개는 영가 등인 백등인데, 남은 30여 개의 등은 노란색과 분홍색이다. 꼬리표는 망자들의 극락왕생을 위한 등인데 왜 색등일까?

 

 

이유가 있습니다. 백등은 세월호 참사로 돌아가신 연세가 드신 분들을 위해 달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꽃다운 나이에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젊은 사람들과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은 그렇게 영가로 보낸다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요. 물론 백등으로 달아주어야 하지만 그들이 다음 세상에서는 저렇게 아름답게 다시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색등을 달았습니다. 그렇게 염원을 하는 것이고요.”

 

정리가 된 후에 위령굿도 할 터

 

그런 마음에서 영가 등을 백등이 아니고 색등으로 달았다고 한다. ‘무책임한 관계자들 때문에 정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수많은 젊은 생명을, 이렇게 떠나보낸다는 것이 마음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40년 세월을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베풀면서 살아온 고성주씨로서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수습하지 못한 귀한 생명들. 우리는 참 그들에게 면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사회가 썩는 것을 방조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제가 신을 섬기는 사람이다 보니,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망자의 넋을 달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지노귀굿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태가 수습이 끝나고 나면, 저희 전안에서 조용히 위령굿을 해 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미안함이 조금은 가실 것 같아서요

 

그렇게 좋은 일을 하면서 더 넓은 곳에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손사래를 친다.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내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타까운 젊은 생명들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사람들에게 굳이 알려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저 스스로도 그 아이들을 위해 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 아픔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젊은 목숨들을 잃었는데, 조용히 제가 해야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는 없으니까요. 그렇게라도 서로의 마음들이 풀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늘 남을 위해 세상을 사는 사람. 주변에 불편한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 누구보다 더 아파하고 그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고성주씨. 제발 이 사람에게서 마음을 좀 배워라. 하고 한날 남의 핑계만 대지 말고.

10월 10일 오후, 서장대에 올랐다. 늘 돌아보는 화성이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화성 때문에 어쩌면 수원을 잊지 못하는가 보다. 서장대에서 화서문을 돌아 돌아오는 길에, 장안동 화서문로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항상 보는 느끼는 것이지만 유난히 신령을 모시는 사람들이 많은 골목이다.

 

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신령을 모시고 남을 위한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지나는 길이다. 무속에 대한 책을 십여 권을 쓰고, 방송 일을 할 때도 무속에 대한 프로그램만 만들었기 때문인가 보다. 그런데 딴 집과는 달리 낯선 간판이 하나 보인다. ‘칠성궁 제석당’이란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터라, 무조건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새내기 제자 칠성궁 제석당

 

문 앞에는 ‘새 신제자’란 글이 보인다. 30세쯤 됐을까? 잠깐 소개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속인들은 신을 모신 곳을 ‘전안’이라고 한다. 그 신당부터가 딴 집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흔히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울긋불긋한 무신도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정갈하니 글로 써서 신령들을 모셨다. 그 앞으로는 산신, 용왕, 대신할머니의 상이 좌정하고 있다.

 

붉은 색을 띤 조명도 없다. 대신 신상 앞으로는 축원카드가 나란히 놓여있다. 아마도 축원중인 신도들인 모양이다. 한편에 놓인 점상에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든지, 책상 위에 종이와 연필 등이 놓여있다. 수원시 장안구 315-2, 3층에 마련된 황인애(가명, 여, 30세)를 그렇게 만났다. 이제 겨우 전안을 차려놓은 지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단다.

 

 

 

신병으로 인해 술로 보낸 20대

 

전안에서 만난 황인애에게 내림을 하기 전에 어떤 무병(巫病)을 앓았느냐고 물었다.

 

“23세 정도 되었는데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평소에 입에도 못 대던 술을 무지하게 먹어댔죠. 그러다가 보니 직장생활을 하면서 조그마한 가게라도 열 생각으로 열심히 모아두었던 돈을 다 탕진하고 말았어요. 이상하게 몸이 아픈데 딱히 병명도 나오지 않고요. 무릎에 물이 잡히고 십자인대가 다 망가졌다는 거예요. 수술을 해도 걸을 수는 있지만, 정상적인 생활은 할 수 없다고 병원에서 이야기를 하고요”

 

그래서 지인의 소개로 생전 처음 점집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병이니 신령을 모셔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 그러나 선뜻 그런 것에 동조를 할 수가 없어 많은 고민을 했다.

 

“밤에 잠을 자려고 하는데 몸에 진동이 와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왜 소변을 보고나면 몸서리를 치잖아요. 그것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떨림이 오기 시작하더니, 그 떨리는 시간이 멀지 않고 매초마다 그런 현상이 일어났어요. 잠을 못자 무섭기도 하고 밤새 울었죠.”

 

그렇게 변해버린 자신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저것이 날마다 술을 먹더니 미쳤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단다. 일 년 간을 그렇게 보내면서 날마다 꿈을 꾸었는데, 그 꿈조차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는 황당한 것이었다고.

 

“정말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저수지에 마네킹이 빠졌는데 건져놓으면 사람이 되거나, 제가 산에 배를 타고 올라가거나, 애들이 옷을 사들고 집으로 찾아오거나 하는 꿈을 꾸었어요. 또 모르는 남자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놀래기도 하고요.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아니면 밤새 여자들의 노래소리가 들리기도 하고요”

 

 

 

이런 이야기로 미루어 황인애는 이미 자연통신이 된 상태에서, 3년 전에 내림굿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림굿을 받고 난 후, 수술을 하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는 다리가 아픈 것이 말끔히 나았다는 것이다.

 

“가리를 잡고 나서 관악산을 여럿이서 갔는데, 그 꼭대기를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았죠. 몇 발만 걸어도 무릎 통증이 심했거든요. 그런데 몇 발 옮겨보니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픈 거예요. 그래서 동행을 한 사람들에게 먼저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단박에 정상까지 올라갔죠. 참 지금 생각해도 신병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어요.”

 

‘타인능해’가 되고 싶다는 그녀, 무당이라 상처도 받아

 

내림을 받고 일 년 동안은 선생을 따라 산천을 찾아다니면서 허궁 기도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해에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올 6월에는 채널 A라는 TV에 출연도 하면서 손님들이 많이 찾아 왔어요. 덕분에 생활이 조금 여유로워지고요. 그래서 모인 쌀을 갖고 경로당을 찾아갔는데 필요없다고 가져가래요. 아마도 제가 무당이라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상처를 받기도 했단다. 생활에 꼭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어서 도울 생각을 했지만, 돈을 달라고 하는 바람에 돌아오고 말았다고.

 

“전남 구례 운조루에 가면 타인능해라는 쌀독이 있어요. 저는 그렇게 없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돈이 조금 모이면, 공부를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려고요. 제가 신령들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젠 그것을 없는 사람들에게 돌려주기도 해야죠.”

 

생각하는 마음이 착하다. 팔달산을 한 바퀴 돌아보겠다고 일어서는 그녀를 보면서 세상엔 참 별별 사람이 다 있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늘 착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는 그녀의 생각에 고마움을 느낀다.


 

 타인능해(他人能解) 
'모든 사람이 열게해 주위에 굶주린 사람이 없게하라' 라는 뜻.

조선시대 영조때 류이주 선생은 자신의 가옥 '운조루' 안 뒤주에 구멍을 내고 마개에'他人能解' 라는 글귀를 써두어 가난한 이웃에게 쌀을 꺼내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우리네 조상들의 나눔의 삶, 베품의 정신을 알려주고 있다.


요즈음 불교계가 시끄럽다. 하긴 어떤 종교라고 시끄럽지 않은 것들은 없다. 그곳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고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어제(28일)가 불기 2556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그 분은 이 땅에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주시기 위해 스스로 영화를 버리고 수행을 하셨다.

 

난 수행자가 아니기 때문에 불교의 깊은 가르침은 알지 못한다. 다만 그저 요즈음은 나름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을 할 뿐이다. 예전 같으면 열을 펄펄 내고 생 나리를 쳤을 세속의 시끄러움도, 요즈음은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마도 나이가 먹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른들 틈에서 배운 마늘을 가는 것을 겨들고 있는 세 살배기 꼬마 여자아이 고아라


 

‘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말의 진리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아이와 같이 살라고 하셨단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의 초심을 잃지 말라는 뜻인 듯하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있는 ‘고려암’을 찾아갔다. 아침 일찍 가까운 절집을 찾아갔다가 들려본 곳이다. 등을 달고 난 많은 사람들이 쌀에 촛불을 켜고 축원을 한다. 절집과는 또 다른 초파일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복잡한 와중에 한 꼬마 아이가 눈길을 끈다. 어른들이 매운 마늘을 까고 있는데, 그 틈에 끼어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뒤뚱거리며 걸음을 걷는 세 살짜리 여자아이이다. 웬만한 아이들 같으면 맵다고 울음이라도 울 것 같은데, 꿋꿋하게 곁을 지키고 있다. 그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소재 고려암의 전안에도 많은 등이 걸려있다. 아레는 쌀을 담은 그릇에 촛불을 켜 축원을 한다. 불교와는 또 다른 축원의 형태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만 자지러지는 줄 알았다. 전안(무당들이 신령님들을 모신 곳을 전안이라고 부른다)에 들어간 이 꼬마 아이. 이른들 틈바구니에서 신나게 따라서 절을 한다. 그 전에도 이 아이가 인사를 하는 것을 한참이나 웃었다. 어른들만 보면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아이 때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이 꼬마 여자아이 때문에 전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어찌나 천연덕스럽게 절을 따라 하는지, 그 모습이 너무 귀엽기 때문이다. 엉덩이를 하늘로 추켜올리고 절을 하는 모습에, 세상 사람들이 정말로 아이와 같은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세 살배기 여자아이 고아라가 어른들을 따라 절을 하고 있다


저 세 살배기 어린이가 무엇을 알 것인가? 그저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는 것이다. 난 그 모습에서 공부를 한다. 아이들을 키울 때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비록 세 살배기 어린 꼬마가 하는 짓이 귀엽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그 안에는 큰 공부가 숨어있는 것이다.

 

아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아이들이 성장을 하면서 그대로 어른들의 흉내를 낸다는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불화가 잦은 부모님들을 보고, 아이들은 결국 싸움 밖에는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에 세 살배기 꼬마 아이(여, 고아라)에게서 배운 부처님의 지혜. 역시 어른의 스승은 아이라는 말이 맞는 말인 듯하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