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은 많은 예인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도당굿은 한수 이남지역인 수원을 비롯한 인천, 시흥, 용인, 화성 등지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을 목적으로 매년 또는 2년이나 그 이상의 해를 걸러 정월 초나 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굿을 말한다.

 

현재 수원에서는 영동시장 거북산당과 고색동 도당굿, 평동 도당굿이 해마다 정해진 날에 굿판이 벌어진다. 경기도당굿은 집안에서 대를 이어 기, 예능을 연마하고, 음악과 무용에 뛰어난 세습무당인 화랭이들이 진행한다. 남자무당인 화랭이들은 줄을 타면서 재담을 하거나, 재주놀이를 하면서 굿을 축제분위기로 이끈다. 예전에는 기생들의 소리와 춤이 함께 곁들여졌다고 하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경기도당굿은 기, 예능보유자였던 고 오수복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아직도 기능보유자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국을 다니면서 열리는 도당굿판에서도 진쇠, 터벌림 등의 춤을 전문적인 춤꾼들이 판을 벌이기도 했던 경기도당굿은, 이제는 굿판에서 한 판 멋지게 춤판을 벌이는 모습조차 보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도당굿판에서 만난 춤꾼 김지혜

 

1년 동안 경기도당굿이 열리고 있는 굿판을 찾아가보았다. 그런데 도당굿의 전수생 중에 무녀나 화랭이, 혹은 악사 같지 않은 사람이 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춤을 추는 사람이란다. 춤을 추는 사람이 왜 도당굿판에서 열심히 뒷배’(대개 기능을 익혀 굿판에 서기 전에는 잔심부름 등을 하는 것을 말한다)를 보고 있는 것일까?

 

“2011년에 경기도당굿 전수생으로 등록을 했어요. 이애주(중요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 선생님의 승무전수관에 들어가 학습을 하게 되었는데,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도당굿을 만나게 되었죠. 경기도당굿에 들어와 목진호(경기도당굿 이수자) 선생님께 장단 등을 배우기도 했고요. 도당굿판에서 보이는 진쇠 춤이나 터벌림 춤으로 이수를 하고 싶어서요.”

 

그동안 무용을 하는 사람들이 도당굿판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도살풀이를 추는 사람들은 물론, 진쇠 춤이나 터벌림 춤을 추는 사람들도 흔히 도당굿판에 동참하여 춤을 추워왔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무용전공자가 이수자가 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김지혜(, 35. 경기도당굿 전수자)가 춤으로 이수를 받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경기도당굿이 워낙 춤과 소리 등에 뛰어난 굿꾼과 춤꾼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부터 배운 춤, 이제는 깊은 춤을 추고 싶어

 

군산 영광여자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무용부에 들어갔어요. 그때부터 한국무용을 비롯해 발레와 현대무용 등의 기본을 혹독한 체련단련과 함께 익히기 시작했죠. 하지만 집안에서 반대가 심해 고3 때 인문계로 전향했고, 아주대 심리학과에 입학을 했죠. 2009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대학이라는 녹색대학이 출범했는데, 이때 1기생으로 입학을 했어요. 경남 함양에서 여러 명이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이때 풍류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이애주 선생님의 특강을 듣고, 과천의 승무전수관으로 들어간 것이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경기도당굿을 알게 되었고, 벌서 3년 째 경기도당굿이 열리는 곳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춤꾼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고 있다는 김지혜는, 계양문회회관에서 사람들에게 살풀이와 입춤 등을 가르쳤다. 그 외에도 서울대학교, 봉원사, 운현궁, 남아사 마당공연 등에서 춤을 추었으며,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살풀이춤을 추기도 했다.

 

그동안 일본 동경 문화회관에서 황진이공연도 했고요. 영등포 아트홀 무대에 2013년과 올해 연속으로 올린 오다아 아리랑창극에 출연도 했어요. 10월에는 진주성 특설무대에서 열린 뮤지컬 촉성산성 아리아에 무대에도 올랐고요.”

 

경기도당굿의 독창적인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출 수 있는 화랭이춤에 푹 빠져있다는 김지혜. 이제는 굿판에서 한 바탕 멋들어진 춤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보아야겠다. 요즈음은 도당굿판에서 멋진 화랭이춤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웠는데,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세상을 산다는 김지혜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일반인들하고는 달리 저희들은 직성이 강하다고 하죠.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니까요. 아마 두 사람이 다툼이 일어난다고 하면 더 심하게 다툴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요

 

부부가 모두 신을 모시고 있다. 그것도 한 집에서 한 곳의 전안(신령을 모셔 놓은 신당)을 섬긴다. 이럴 경우 대개는 심하게 다투기가 일쑤라고 한다. 심지어는 모녀사이에도 전안을 차지하려는 신들 간의 싸움이 치열하다. 그런 시기와 다툼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20년 세월을 부부로 살아오면서 세상의 많은 아픔을 함께 하고 살았기 때문인가 보다.

 

막말로 시기를 하고 질투를 해서 서로 헤어졌다고 하면, 저 사람보다 더 잘나고 착한 사람을 만나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사실 신들의 문제라고 하지만 그것도 알고 보면 사람들의 구실에 지니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아야죠.”

 

21일 오후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97-139 ‘일월신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곳. 이 집은 부부가 모두 신을 모시는 신제자이다. 막다른 골목길의 이층집 안에는 문 앞에서부터 각종 기물들이 눈이 띤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지 않은 실내에 빽빽하게 신령의 물품들이 차 있다.

 

 

부부가 신내림을 한지 벌써 20

 

부부는 비슷한 시기에 신내림을 받았다고 한다. 남편인 이용수는 올해 53세이다. 신내림을 받은지 20년이 지났다. 부인인 김상희는 46세로 21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부부가 되고나서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문제는 만들지 않고 살아왔다.

 

저 사람이 많이 이해를 해주고 있어요. 아무래도 그런 이해가 없으면 함께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테고요. 같은 길을 간다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남들보다 배나 더 어렵습니다. 그저 한 발 물러나 늘 양보를 하는 길만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죠.”

 

그저 그런 남편이 고마워서 무슨 일을 하던지 두 사람이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서 살다가 수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3년 정도 되었다. 지금 자리에 오게 된 것도 부인인 김상희의 꿈에 이 집을 현몽을 했다는 것이다.

 

원래 저희 같은 사람들은 막다른 집을 들어가지 않잖아요. 길이 막힌다고 헤서요. 그런데 집 사람이 이사 오기 전에 미리 이 집을 보았다고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집으로 들어왔어요. 비좁아서 많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참고 살아야죠.”

 

 

지독한 신병에 10세부터 귀신을 보았다는 김상희

 

남들은 제가 이런 소리를 하면 믿지 않겠지만 저는 10살부터 귀신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면 그것이 다 맞고요. 이미 그때부터 신병이 시작된 것이죠. 17살부터는 벽에다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바라춤을 춘다고 하기도 하고, 휴지를 들고 살풀이를 춘다고도 했어요. 그러다가 24살에 어머니 재수굿을 해주다가 신굿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죠.“

 

10세에 시작한 신병은 이미 14년이란 긴 시간을 괴롭혔다. 해마다 다리를 다치는가 하면 인대가 늘어나 걷기조차 힘들었다, 육신적인 신병과 함께 금전적인 신병이 온 것이다. 그때는 이미 깊어 질대로 깊어진 신병으로 인해 동자들이 눈에 보여 사탕을 사다놓기도 하고, 할머니들이 보여 자고 가라고도 하는 등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수도 없이 벌렸다.

 

 

잠옷 바람으로 나가서 한 걸립

 

정말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내림굿을 할 날짜를 잡았는데 수중에 갖고 있는 돈이 없잖아요. 당시는 이태원에 살았는데 제가 화장을 하고 잠옷을 입고 길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점을 보아주고 걸립을 한 것이죠. 그렇게 돈을 모아 수락산에서 내림굿을 받았어요.”

 

내림굿을 하고 난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손님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것이야 신령을 모셨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게 다치고 아프던 다리가 싹 나은 것이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정말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한다. 간판도 달지 않고 13년간이나 사람들을 보면서 상당한 재물도 모았다고 한다.

 

사람들을 매일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참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몇 년 쉬었어요. 너무 피곤하기도 하지만, 산다는 것이 버겁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수원으로 내려와 경기도당굿 이수자이신 승경숙 선생을 만났죠. 선생님의 굿을 보고 첫눈에 나도 이 길을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부부가 전수생으로 등록을 했다. 이 두 사람은 경기도당굿보존회 남부지부 공식 1기생으로 전수자 등록이 되었다. 앞으로 열심히 학습을 해 도당굿을 보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는 이용수, 김상희 부부. 아무쪼록 이 집 대문 앞에 내 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 전수자라는 명호답게 지역의 문화를 지켜갈 수 있는 동량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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