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 전수소가 문을 열었다. 경기도당굿 남부지부 승경숙 지부장이 경기도당굿의 전수를 위해 마련한 전수소의 개소식에는, 경기도당굿 전수교육조교인 장영근을 비롯해 전수생 등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경기도당굿 남부지부의 개소식을 축하해 주었다.

 

경기도당굿이란 경기도와 서울 근교의 마을에서 열리는 대동굿이다.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위해 열리는 마을굿으로 한 수 이남 지역에서 주로 열린다. 경기도당굿의 시원은 대개 200년 정도로 알려져 조선조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시흥 군자봉 도당굿의 경우에는 고려 때부터 전래했다고 하고 있어, 조선조 이전에도 마을굿이 전승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전통예술의 모체 경기도당굿

 

경기도당굿은 대개 세습남무인 화랭이들이 굿을 이끌어 가고 있으며, 음악과 장단 등도 판소리 기법으로 나타난다. 하기에 경기도당굿은 우리 전통예술이 모체가 되며, 많은 춤을 생성한다. 경기도당굿에서 파생된 춤은 태평무를 비롯하여, 진쇠춤, 제석춤, 터벌림, 군웅춤, 도살풀이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태평무와 도살풀이 등은 중요무형문화재로 독단적인 춤의 유파를 만들어 냈으며, 진쇠춤, 신칼대신무 등도 경기도당굿의 류파로 본다. 특히 판배개창이라는 굿꾼들의 소리는 경기, 충청간의 판소리인 중고제의 시원이라는 설까지 있어, 경기도당굿이 얼마나 예술성이 뛰어난 굿인가를 알 수가 있다.

 

특히 경기도당굿의 춤과 장단, 소리와 음악 등이 다양하게 발달이 되어 우리 전통예술의 산실로 자리를 잡고 있다. 조선시대에 120년간이나 존속이 되었던 화성 재인청(才人廳)이 수원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재인청에 속한 무리가 3만 여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가히 이 지역의 전통문화가 오늘날까지 이어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경기도당굿에서 파생이 되었거나, 굿에서 추워지는 춤은 고 오수복 선생의 군웅굿 중에서 활춤, 제석거리의 장삼놀이, 중요무형문화재인 태평무와 도살풀이, 남무인 화랭이들이 추는 터벌림과 진쇠춤, 고 이동안 선생에게서 전해 진 엇중모리 신칼대신무 등이 있다.

 

 

군웅굿의 활춤

군웅굿은 경기도당굿에서는 가장 중요한 굿거리 제차이다. 일반적으로 굿에서 군웅굿은 혼자 진행하는데 비해, 경기도당굿에서는 쌍군웅이라고 하며 군웅상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진행을 한다. 군웅굿은 화랭이들이 군웅노정기라서 해서 군웅이 해동 대한민국으로 나오게 된 내력을 풀어내는 소리이다. 경기도당굿의 전 보유자였던 고 오수복 선생이 살아생전 가장 많은 연희를 한 군웅굿의 활춤은 도당굿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제석굿 중 장삼놀이

제석은 인간의 수명재복을 관장한다는 신이다. 제석굿은 일반적으로 중부권 이북의 굿에서는 간단하게 처리가 되지만, 경기도당굿이나 경기안택굿에서는 중요한 굿거리 제차 중 하나이다. 특히 경기도당굿에서는 군웅굿과 쌍벽을 이루는 제차로 제대로 굿거리를 진행하자면 11번이나 장단이 바뀌기도 한다. 제석굿의 가장 화려한 춤사위는 바로 장삼놀이이다. 장삼을 펄럭이며 추는 장삼놀이는 춤으로도 손색이 없다.

 

 

화랭이 춤인 터벌림

터벌림 춤은 도당굿 판에서 화랭이들이 추는 춤이다. 화랭이들이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기 위해 꽹과리를 들고 반설음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터벌림은 굿판의 터를 벌린다혹은 터를 불린다등의 뜻이며, 도당굿의 굿거리 제차 중 화랭이들이 한 사람씩 나와서 춤을 춘다. 터벌림의 장단은 3분박 5박자로 15/8 박자로 두 장단이 한 짝을 이룬다. 반설음장단은 경기도당굿의 손굿과 터벌림 등에 사용이 된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는 엇중모리 장단을 사용한다고 하여서 붙여진 명칭이다. 춤꾼인 고 이동안 선생으로부터 전승이 되었다. 이동안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인청에서 기예를 익힌 재주꾼이다. 엇중모리는 4분의 20박으로 장단이 빠르고 경쾌하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는 망자의 한을 달래는 춤으로, 빠른 장단과는 달리 느린동작으로 종이로 만든 신칼을 어루듯 추는 춤이 일색이다.

 

중요무형문화재인 경기도당굿. 16일 수원 인계동에 문을 연 경기도당굿 남부지부의 개소로 인해, 지역의 중요한 전통예술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비록 보유자가 타계를 해 전승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전수소를 통해 앞으로 더 많은 발전을 하기를 기대한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은, 경기도 일원의 각 마을 도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안과태평을 위한 마을굿이다. 경기도당굿은 한수 이남의 경기도 전역과 현 인천광역시의 섬까지 걸쳐 연희가 되던 마을 제의로, 화랭이라고 하는 세습무들에 의해서 전승이 되어왔다.

 

19901010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이 된 경기도당굿은 보유자인 고 조한춘과 고 오수복이 세상을 떠난 뒤, 아직도 보유자 지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는 경기도당굿보존회에서 모든 행사 및 각 도당의 제의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전승에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는 경기도당굿 남부지부 승경숙 지부장을 만나보았다.

 

 

처음에는 낯설기 만한 경기도당굿

 

현재 경기도당굿 이수자인 승경숙 지부장은 1986년 내림굿을 받은 후, 주로 한양굿을 배워 굿판에서 나름 잘 불리는 무녀였다. 그러다가 1993년 경기도당굿 보유자인 오수복 선생님의 권유로 경기도당굿의 전수생으로 입문을 하게 된다.

 

“1993년에 처음으로 당시 경기도당굿의 보유자이신 오수복 선생님을 뵙고 도당굿에 첫발을 내딛었어요. 당시는 경기도당굿에 이름만 들어도 내로라하는 분들이 모두 문하생으로 있었죠. 거기서 함께 끄트머리에 서서 무녀제 도당굿의 제차를 배웠어요. 오수복 선생님께서는 도당굿에서 무녀가 맡아하는 부정, 제석, 군웅 등 여자가 할 수 있는 굿거리를 저희들에게 알려주셨죠.”

 

처음에는 경기도당굿이 낯설기만 했다고 한다. 경기도의 판소리인 판배개 창으로 불러대는 도당굿의 소리가 따라 하기조차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힘든 도당굿의 춤사위며 장단, 소리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전수교육조교인 고 방돌근 선생 때문이라고. 고 방돌근 전수교육조교는 이 시대의 마지막 전악이라고 할 만큼 도당굿의 장단과 경기 시나위를 구가하고 있던 악사였다. 할아버지가 경기도의 대금 시나위의 창시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유지 받들어야

 

낮에는 오수복 선생님께 도당굿의 굿 제차를 배우고, 저녁에는 방돌근 선생님께 도당굿의 장단과 무가를 배웠어요. 경기도당굿은 신이 나지도 않고 까다로운 장단과 사설로 인해 고통을 받기도 했죠. 배우다가 보니 점점 그 깊이에 빠져들게 되고, 나중에는 도당굿의 소리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어요.”

 

그렇게 경기도당굿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도당굿의 모든 행사에서 거리를 맡아 자신이 가진 재주를 선보였다고 하는 승경숙 지부장. 기획 공연만 해도 50여회에 도당굿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개인공연도 2회나 가졌다.

 

선생님들께 그냥 받은 재주잖아요. 열심히 할 수밖에요. 그동안 많은 곳에 공연을 다녔어요. 선생님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면서 수많은 공연을 했죠. 때로는 박물관에서 때로는 산사에서, 어디든지 도당굿을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달려가서 공연을 했죠. 당시 연세가 많으신 오수복 선생님께서 노구를 이끌고도 도당굿의 전승을 위해 애를 쓰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 선생님들이 이젠 한 분도 세상에 있지 않다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고 방돌근 선생은 첫 개인발표회를 며칠 앞두고 세상을 하직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기도. 보유자이신 오수복 선생도 20111217일 세상을 하직했다.

 

선생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후,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산의 굿당에서 선생님의 지노귀굿을 해드렸죠. 두 분의 선생님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시고 난 뒤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들께 배운 재주를 널리 퍼트려야 하겠다고. 그래서 오산에 경기도당굿 남부지부를 개설했어요.”

 

 

그동안 50여명의 전수생 키워내

 

20121월부터 6개월 과정으로 경기도당굿의 기본적인 학습을 시작한 전수생들은, 그동안 114, 28, 316, 415명 등 53명에 달한다. 경기도당굿은 그 특성상 일반 굿과는 제차가 다르기 때문에, 6개월 과정으로는 배울 수가 없다. 하기에 꾸준히 학습을 하고 행사에 자주 참석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 오산에서 전수생들을 학습시키다가 보니 이동거리가 멀어 전수생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수원 팔달구 인계동 지하에 20여 평 정도 되는 연습실을 마련했어요. 선생님들께 배운 것을 온전히 전수시키고자 마음을 먹었죠. 이달 16일에 전수소를 개소하려고요.”

 

전수소의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 인계동 지하에서 만난 승경숙 지부장. 경기도당굿의 온전한 전수 보전을 위해서 앞으로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한다. 남들은 어렵다고 배우기를 꺼려하지만, 선생님들께 배운 재주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서 어려움을 참아내야 되지 않겠느냐며 각오를 다진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된 경기도당굿이 온전히 전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동은 대한국이요 경기도는 삼십칠관 마련하여

광화는 일품이요 광주는 이품

수원은 정삼품이요 안산은 군수수령 내명은 부사또라

 

10월 8일 오후 7시, 오산시 마등산 자락에 자리한 역말굿당 한 편에서 15명 정도의 사람들이 장단을 치면서 부정무가를 부르고 있다. 경기도당굿 중, 굿을 시작하기 전에 거리부정에서 부르는 무가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은 서울을 비롯한 한강 이북지방과, 수원, 인천 등지에서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목적으로 하는 마을굿이다. 도당굿은 매년 또는 2년이나 그 이상의 해를 걸러, 정월 초나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굿을 말한다. 현재의 경기도당굿은 경기도 일대의 한강 이남지역에 전해져 오는 마을굿으로, 지금은 부천의 장말에서만 완전한 형태의 경기도당굿을 볼 수 있다.

 

 

 

경기도당굿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을 동산의 소나무 숲 등에 300년이 넘었다고 전해지는 도당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신 ‘당가리’나, 도당신을 상징하는 신목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를 통해 대대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3일씩 거행이 되던 경기도당굿

 

대개 마을의 도당굿은 오전에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에 끝이 난다. 하지만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일부지역에서는 3일간이나 굿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굿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도당굿을 영위하는 무격들은 집안으로 대를 이어 기능을 연마하고, 음악과 무용에 뛰어난 세습무들이 진행하기 때문이다.

 

 

세습무인 화랭이들은 남자무당으로, 줄을 타면서 재담을 늘어놓거나 재주를 보이면서 굿을 축제분위기로 이끈다. 예전에는 도당굿판에는 기생들의 소리와 춤이 곁들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기, 예능적으로 뛰어난 도당굿의 제차

 

경기도당굿은 굿을 하기 전날 당주 집에서 벌이는 ‘당주굿’으로 시작한다. 다음 날 아침에는 당주집에서 굿당까지 올라가는 중간에, 길거리에서 부정을 가시는 ‘거리부정’을 친다. 요즈음에는 대개 강신무인 여무들이 주로 굿을 하기 때문에, 거리부정도 여무들이 많이 맡아서 하는 편이다.

 

굿당에 도착하면 주변의 잡귀잡신에게 시루를 먹이는 ‘안반고수레’, 굿을 벌일 장소를 정화하는 ‘부정굿’, 신대를 꺾어 든 마을의 대잡이에게 신이 내리면 당가리 앞으로 가 도당신을 모시고 굿청으로 되돌아오는 ‘도당모시기’, 마을의 장승과 공동우물, 원하는 집을 돌며 마을과 집안의 평안을 비는 ‘돌돌이’, 굿당에서 군웅마나님께 대취타연주를 올리는 ‘장문잡기’ 등으로 순서가 진행이 된다.

 

그런 다음으로는 도당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굿을 잘 받으셨는지를 알아보는 ‘시루말’을 한다. 시루말은 시루가 쉽게 들어 올려지는 가로 확인한다. 이어서 제석청배와 바라춤을 추는 ‘제석굿’, 군웅조상과 도당조상, 본향조상을 모셔서 집안의 평안과 자손번창을 축원하는 ‘본향굿’, 화랭이들이 한 사람씩 나와 춤과 묘기를 보이는 ‘터벌림’, 손님인 마마신을 위한 ‘손굿’으로 이어진다.

 

다음으로는 경기도당굿에서만 볼 수 있는 화랭이와 무녀가 함께 군웅상을 마주하고 진행하는 쌍군웅춤인 ‘군웅굿’, 날이 밝아 도당신을 도당으로 다시 좌정시키고 돌아오는 ‘도당보내기’, 고깔과 장삼 차림의 화랭이가 놀며 동네축원과 영산수비를 풀어주는 ‘중굿’,에 이어, 굿판에 따라든 잡귀들을 풀어 먹여 보내는 ‘뒷전’으로 굿은 끝난다.

 

 

 

 

오산은 경기도당굿의 남다른 지역

 

경기도당굿은 음악과 장단도 판소리기법을 따르고 있어, 예술성이 뛰어나고 전통문화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산과 경기도당굿의 관계는 특별하다. 그것은 오산 부산리(현 부산동)에 재인청 3대 대도방의 가문인 화랭이 이용우 일가가 대를 이어 살았기 때문이다. 현재도 오산 부산동에는 도당굿을 펼치던 당집이 보존되고 있으며, 이용우의 후손들이 살고 있기도 하다.

 

마등산 역말 굿당이란 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경기도당굿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경기도당굿 이수자인 승경숙(여, 57세)은

 

“그동안 경기도당굿은 예술적으로 뛰어난 굿거리 제차임에도 불구하고, 전승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점이 안타까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당굿을 전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죠. 3년 전부터 1기생 17명을 데리고 시작한 도당굿의 전수가, 올해로 3기생을 맞았습니다.”

 

 

 

 

일일이 소리를 하고 장단을 치는 법 등을 알려주는 승경숙은, 도당굿 기, 예능보유자였던 고 오수복 선생에게서 춤과 소리를, 전수조교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 방돌근 선생에게서는 장단 등을 학습했다.

 

“오산은 도당굿이 가장 활발했던 곳이란 생각입니다. 3대 째 재인청의 도대방들이 직접 도당굿을 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제가 배운 그대로 많은 전수자들에게 전승을 시킬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한 번 도당굿이 옛 모습대로 활성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야죠.”

 

열심을 내어 도당굿의 소리와 춤을 배우고 있는 전수생들. 언젠가는 저들이 도당굿의 굿판에 서서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도당굿 제차를 해낼 것이다. 그래서 오산에는 새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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