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춤을 춘다고 하면 남들은 조금 정신이 빠진 사람이 아닌가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권선구 호매실동 629-2에 가면 춤추는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보호수호 지정되어 있는 이 소나무는 수령이 230년 정도가 된 우리 소나무인 육송이다. 19821015일 경기-수원-20으로 보호수 지정을 받았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으로 높이는 20~35m에 이른다. 겨울에도 항상 푸른빛을 유지하는 상록수로 그림, , 노래 등에 소재로 우리에게 친숙한 식물이다. 껍질은 거북등처럼 세로로 넓게 갈라지며 줄기 밑은 회갈색이고 윗부분이 적갈색을 띤다. 바늘잎은 8~9cm 길이로 두 개가 한 묶음이 되어 가지에 촘촘히 붙는다.

 

나무줄기가 붉다고 하여서 적송(赤松)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주로 내륙 지방에서 자란다고 육송(陸松)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잎이 다른 나무에 비해 연하다고 하여서 여송이라고 하거나 여인의 지태를 닮았다고 해서 여송(女松)이라 부르기도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소나무들

 

우리나라에는 많은 소나무들이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소나무들은 다양하게 분포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품종에는 나무줄기가 곧추 자라는 금강소나무, 가지가 밑으로 처지는 처진소나무, 줄기 밑에서 많은 가지가 갈라지는 반송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중에 그동안 답사를 하면서 만난 소나무는 보은 속리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 속초 설악동 소나무(천연기념물 제351), 고창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 이천 도립리 반룡송(천연기념물 제381), 장수 장수리 의암송(천연기념물 제397),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409) 등을 만나보았다.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소나무

 

17일 칠보산을 오르기 전에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수원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가 없기 때문에 그 나무의 생김새로 보아 보호수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먼저 가보았다. 높이 15m 정도에 밑동둘레가 2.5m 정도이다.

 

껍질은 붉은색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색을 보이는 나무는 그리 흔하지가 않다. 거기다가 생육상태도 양호하다. 수령이 짧아 천연기념물이 지정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멋들어지게 잘 자란 소나무이다. 앞으로 다가가 보기만 해도 절로 감탄이 쏟아진다. 이런 정도의 소나무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20년 넘게 전국을 다니면서 문화재 답사를 하는 동안 많은 천연기념물과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나무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 2년 전인가 경북 문경 동로면에서 충북 단양군 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가 동로면 적성리 965번지 도로변에, 수령 300년이 지난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소나무가 서 있는 곳을 무송대(舞松臺)’라고 부른다. 춤을 추는 소나무가 서 있다는 곳이다. 그 나무와 비교해도 오히려 더 아름답게 가지들이 춤을 추고 있는 듯하다. 그저 앞에 서서 감탄만 할뿐 딱히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옥에 티, 소나무 보호책 안에 무성한 잡풀더미

 

한참이나 소나무를 바라보고 감탄을 하고 있는데 눈에 띠는 것이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 주변을 둘러서 보호책을 설치했는데 그 안에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옆에는 몇 기의 묘가 보이는데 주변을 말끔히 정리했기에, 보호수 철책 안에 잡풀들이 눈에 더 거슬려 보인다. 여름철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곳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멋들어지게 춤을 추고 있는 보호수 한 그루. 나무줄기에 외과수술을 한 자국만 보아도 마음이 짠한데, 거기다가 잡풀까지 무성하게 자라나있는 것을 보니 더 마음이 아프다. 저렇게 잡풀들이 자라나 있어 혹 소나무의 생육에 지장이 있지는 않을까? 그저 한 시간 정도면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을 텐데. 앞으로는 답사를 다닐 때 낫이라고 한 자루 들고 다녀야 할까보다.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e수원뉴스 시민기자와 담당자 등 30여명이 떠난 ‘시민기자 워크숍’.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가 보니, 꽤 많은 양의 사진을 찍었다. 700여장의 사진을 정리하다가 그 안에 꽤 그럴 듯한 풍경이거나, 아니면 시민기자들이 놓친 곳들도 있어, 내 나름대로 10경을 정해본다.

 

사실 이렇게 워크숍을 떠나, 2박 3일을 돌면 나는 나름대로 녹초가 된다. 쉴 새 없이 찾아다니고, 사진을 찍어대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딴 분들은 몰라도 이미 20년이 넘게 우리 문화재를 찾아 전국을 헤맨 나이기 때문이다. 장서에는 3,000여장의 CD에, 전국에 산재한 문화재을 퐐영한 자료들로 차 있다.

 

 

 

먼저 걷고 돌아본 이번 워크숍

 

이번에도 다를 바가 없다. 단체가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만큼 더 열심을 내어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소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혼자 미친 듯 돌아다닌 답사 길에 미안함이 조금 가시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해설사의 설명 중에는 들어야 할 이야기도 많고, 모르고 있던 부분도 있다. 이참에 꼭 한마디 할 만은 해설사들이 너무 오래 사람들을 붙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 시간에 한 곳이라도 더 많이 보아야 할 사람들이다. 시민기자들도 기자이다. 기본적인 소양을 이미 갖추고 있는 분들을, 생 초보 다루듯 해서야 그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가?

 

사실 난 어디를 기거나 해설사들의 설명은 일체 거절하는 편이다. 문화재 기사를 20년 넘게 써 온 사람으로서, 그 해설이 오히려 글을 쓰는데 방해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첫 느낌을 글로 쓰는 나에게는 사실 해설을 듣는다는 것 자체도 부담이 된다. 이번 워크숍에서도 먼저 뛰고, 하나라도 더 취재해야 하는 나로서는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사비를 드려 통영을 가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나름대로 정한 워크숍에서 만난 풍광 10경

 

이번 2박 3일간의 워크숍 기간 중 해설사의 안내로 돌아본 시민기자들이 놓친 부분도 있을 테고, 함께 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10경을 선정해보았다. 제일먼저 전주 한옥마을의 지붕이다. 해설사가 안내하는 길로 따라갔다면, 이목대를 오르는 길에 있는 포토죤을 만날 수가 없다. 지붕과 지붕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한옥마을의 지붕은, 사진을 찍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거치는 곳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통영시 명정동에 소재한 사적 제236호인 충렬사 입구 건너편, 명정동 194번지에 자리한 ‘정당샘’이다. 이 샘은 1670년 제51대 통제사인 김경이 팠다고 전해진다. 충렬사에서 사용했다고 하는 이 샘은 처음에는 하나를 팠는데 물이 탁해, 또 하나를 곁에 팠더니 믈이 맑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샘 이름은 ‘일정(日井)’과 ‘월정(月井)’이라고 붙이고, 일정은 충무공 향사에 사용하고, 월정은 주민들이 사용했다. 이 두 물을 합하여 ‘명정’이라고 부른다. 이 우물곁으로 시체나 상여가 지나가면 물이 흐려진다고 하여, 지금도 이 우물곁으로는 상여가 지나지 못한다. 햇볕을 받지 않으면 물이 흐려진다고 하는 명정은, 우물을 보호하는 지붕을 덮지 않고 있다. 한번은 그 위에 팔각정을 지었더니, 마음에 돌림병이 돌았기 때문이란다.

 

두 번째는 사적 제402호인 통제영지 내에 있는 국보 세병관 동편 문밖에 서 있는 비석군이다. 통제영지는 통영시 문화동 602번지 일원에 있는 삼도수군 통제영의 본영이다. 당시에는 100여 동의 전각들로 차 있었다고 하니, 그 위용이 실로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는 현재 국보 제305호인 세병관을 비롯하여, 운주당, 백화당, 중영, 병고, 장원홍예문, 교방청, 산성청, 12공방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통제영지를 복원 및 보수를 하느라 부산하다. 세병관 동편 작은문을 나서면 만나게 되는 수많은 비석군들. 출입을 시키지 않아 일일이 확인을 할 수가 없지만, 역대 통제사들의 선정비 등이 아닐까 한다. 그 밑으로는 전각 안에 비가 하나 서 있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112호인 ‘두룡포 기사비’이다.

 

이 기사비는 통제사를 지낸 이경준의 치적을 기록한 이경준 사적비로, 조선조 인조 3년인 1625년에 제16대 통제사인 구인후가 세웠다. 이경준은 제5대와 9대 두 차례 통제사를 지냈으며, 두룡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 무장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동피랑벽화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통영항의 안편 강구안에 정박한 거북선과, 그 거북선이 있는 강구안의 저녁노을이다. 첫째 날과 둘째 날 돌아본 전주와 통영에서 만난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이충무공 유적을 돌아보다

 

세째 날인 14일, 통영유람산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찾아간 사적 제113호인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에 소재한 이곳은 선조 25년인 1592년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에서 왜선을 섬멸한 후, 선조 26년부터 30년인 1597년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으로 삼았던 곳이다. 두억포에는 임진왜란 때 전함인 판옥선과 척후선 등 100여척이 정박해 있었으며, 740여명의 수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매표소인 한산문을 들어서면 해안가로 길게 제승당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 바닷길에 서서 물을 바라보면 물속 바위에 하얗게 달라붙은 조개껍질이 보인다. 이 또한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과 어우러진 아름다움이었다. 제승당 곁에 서 있는 수루에 올라가면 한산만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한산만은 통영의 미륵도와 한산도 사이에 있는 만으로, 이곳은 안쪽은 넓고 입구가 좁다. 이 한산만은 수심이 낮아 소형선박들의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크고 작은 섬들과 낮은 수심, 여기저기 만과 포구들을 이용한 이순신 장군의 전략이 한산대첩의 승리를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하다.

 

아홉 번째는 제승당 안에 있는 적송들이다. 적송은 우리의 소나무로 나무가 단단하고 벌레가 먹지 않으며, 소나무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목재감이다. 이러한 적송이 유적지 안에 숲을 이루고 있다. 수백 년은 되었을 것 같은 소나무들의 아름다움 또한 멋지지 아니한가? 유적지 관람 후 다시 통영으로 돌아오는 배 뒤편에는 갈매기들이 따라붙었다.

 

승객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먹기 위해 따라오는 갈매기 떼. 배가 지나가면서 생기는 물길과 허공을 비상하여 과자를 따라 물속으로 풍덩 빠져드는 갈매기들. 그렇게 전주와 통영의 워크숍에서 만난 광경들은, 앞으로도 한참이나 기억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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