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정월 나혜석이 그랬는가 보다, 나혜석의 이름을 딴 거리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물론 행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원 도심에서 계층을 가리지 않고 이 거리처럼 많은 사람이 찾아드는 곳은 없을 것이다. 726일 오후에 찾아간 나혜석 거리는 마침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정월 나혜석은 1896428일 수원군 수원면 신풍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에는 수원 삼일여학교(현 수원 매향여고) 1회로 졸업하고, 191317세에 진명여자보통학교를 3회로 졸업했다. 진명여고를 졸업한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유학생으로 동경여자미술학교에 입학한다.

 

나혜석은 21세인 1917년부터 정월이라는 호를 사용해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23세인 1919년에는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소설인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했다. 그해 3,1독립운동 참가로 6개월간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이듬해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을 한 나혜석은 다음해 여성 최초의 시인 <인형의 집>을 발표한다.

 

 

수많은 최초를 기록한 나혜석

 

31세인 1927년에는 여성최초로 세계일주여행을 한다. 그리고 파리에서 미술수업을 받는다. 1929년에 귀국한 나혜석은 1931년에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고 남편인 김우영과 이혼을 한다. 1939년에는 <이혼고백서>를 발표하고, 1935년에는 현 팔달구 지동으로 귀향을 해 <반도 여성에게> 등 시와 수필을 발표한다.

 

그리고 수원에서 수원 서호, 화령전 작약 등 200여 점의 작품으로 개인전을 개최했다. 41세 때는 수덕사로 만공스님을 찾아간 나혜석은 본격적인 구도를 시작한다. 42세 때는 수덕사, 마곡사, 다솔사, 해인사 등을 오가며 마지막으로 집필한 <해인사 풍광>을 발표한 후, 1948121052세로 서울시립 자제원(현 용산구청 자리)에서 무연고자로 사망했다.

 

 

정월 나혜석에 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나혜석이라는 여인이 우리 문화사에 남긴 족적은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나혜석을 기리고자 하는 거리인 나혜석거리. 수원시 권광로 188번 길은 항상 사람들로 만원이다.

 

나혜석거리 예술시장 많은 사람들 몰려

 

나혜석`거리에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이 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바로 4월부터 10월까지 마지막째주 토요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이곳에서 예술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예술시장은 직접 작품을 만들어 이곳에 나와 구매자들애게 판매를 할 수 있다. 나혜석거리 예술시장 운영위원회가 주관을 하는 이 행사는 60여명이 넘는 작가들이 참여를 한단다.

 

 

많이 참여를 할 때는 엄청납니다. 아마 거의 100여명 정도 작가들이 참여를 하는 것 같아요. 작가들이 다양한 작품들을 들고 나오기 정말 좋은 작품들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나혜석거리 예술시장과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는 한 주부는 너무나 살 것이 많아 즐겁다고 하면서, 연신 무엇인가를 흥정하고 있다. 작품을 들고 나왔다는 한 사람은 시간이 5시부터 8시까지라 조금 아쉽다고 한다. 8시까지로 시간을 정한 것은 이 거리가 8시부터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좌판을 깔기 때문인 것 같다고.

 

 

나혜석을 기리기 위한 거리. 그곳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4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에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작품들. 어린 학생들도 참여를 한 이 예술시장으로 인해 앞으로 더 많은 발길을 이곳으로 끌어들일 듯하다.

 

대안공간 눈’, 수원 팔달구 북수동 232-3에 소재한 갤러리이자 창작공간이다. 이 곳은 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것은 행궁벽화골목의 구심점이자, 많은 전시회 등을 기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멋진 공간 속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작가들의 작품까지 구경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

 

이런 대안공간 눈이 벌써 문을 연지 10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수많은 기획전시를 해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 대안공간 눈의 걸어 온 10, 걸아 갈 10- 비빔밥 뷔페()712일까지 열린다, 주말이 되어 공간 1, 2 전시실과 원도우 갤러리에는 180여명의 작가들이 그림이 빼꼭 차 있다.

 

 

전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어

 

벽마다 눈이 아플 정도로 차 있는 작품들. 지나 온 10년을 회상하고 다가올 10년을 준비한다는 대안공간 눈의 개관 10주년 기념전은, 지난 10년 세월동안 이곳에서 전시회를 가진 많은 작가들과 앞으로 대한공간 눈에서 전시를 할 작가들의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10년 세월을 대안공간 눈이 어떻게 걸어왔는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또한 앞으로 10년간 대한공간 눈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계획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한다. 작가들에게 있어 예술 활동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삶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기에 이번 180여명의 작가들이 작품을 마치 비빔밥처럼 전시장 벽면 가득 전시하고 있다.

 

 

기획자는 이렇게 전시된 많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관람을 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매함으로써 작가들에게 힘을 보태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사실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어느 누구나 모두 탬을 낼만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번에 구입을 하면 조금은 구입가격을 내릴 수 있다고 누군가 귀띔을 해준다.

 

현재까지 400회 이상을 전시한 대안공간 눈

 

대안공간 눈은 2005423일 개관을 하였다. 개관 이후 줄곧 지역의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한 대안공간 눈은, 작가와 주민 관광객들을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연계해왔다. 또한 이러한 소통을 통하여 문화예술 활동을 확장하고 지역을 활성화시킨 비영리 전시공간이다.

 

 

2005년 개관전으로 백두대간 - 히말라야 프로젝트 보고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400회 이상의 전시를 지원하였으며, 또한 대안공간 눈이 소재한 팔달구 행궁동을 예술마을로 변화시키는 행궁동 사람들 -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 프로젝트2010년부터 꾸준히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주말을 맞아 대안공간 눈을 가족들과 함께 찾아왔다는 한 광광객은

이렇게 멋진 갤러리가 있다는 것이 놀랐습니다. 도심 속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된 어느 시골의 한적함 같은 분위기에 그냥 푹 빠져버렸다. 마실 것도 있고 180여명이 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감상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림 관람을 마친 후에 집사람과 상의해서 한 점 구해가도록 해보아야겠다.”고 한다.

 

지나 온 10, 그리고 앞으로 다가 올 10. 대안공간 눈이 지역을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일을 하 것인지, 사뭇 기대가 된다.

 

수원 도심을 가로지르는 수원천에 명품 조각품이 최근 설치돼 눈길을 끌고 있다. 얼마 전부터 지동교를 비롯한 여러 곳에 설치된 미술품이 수원천을 거니는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조각들은 자연생태하천으로 거듭난 수원천의 자연환경과 함께, 인근 전통시장과 지역주민, 관광객을 아우르는 수원천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추진한 결과물이다.

 

수원문화재단(대표이사 라수흥)은 수원천의 역사와 생태, 문화 등에 대한 소재를 바탕으로 도시하천으로 복원된 수원천의 새로운 변모를 담았다. 수원천의 공공예술 프로젝트 구간은 화홍문과 매교 사이 2km이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물놀이’, ‘꽃바람에 나비 날아든다.’, ‘상도의 벽6개 작품을 지동교, 구천교 등 인근 옹벽 등에 설치했다.

 

 

팔달문 앞 시장의 상도의 벽

 

11일 오전 수원천을 걸어보았다. 모처럼 맞는 휴일에 많은 사람들이 수원천을 따라 걷거나, 수원천의 쉼터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동시장에서 수원천으로 내려가면 지동교 아래 바깥벽에 상도의 벽이란 글씨가 보인다. 이 작품은 수원천변을 중심으로 9개 전통시장(남문로데오, 미나리광시장, 못골시장, 시민상가시장, 영동시장, 지동시장, 팔달문시장, 패션1번가, 구천동 공구상가)에서 30년 이상 영업에 종사한 상인들을 선정하여 상점의 가훈과 상인의 손도장을 핸드프린팅(브론즈)하여 설치한 것이다.

 

팔달문 앞에 자리한 9개의 전통시장은 조선시대 정조대왕의 명에 의해 조성된, 문안시장과 문밖시장이었다. 이곳은 정조가 직접 내탕금을 들여 조성을 한 시장이며, 윤선도의 후손들을 이곳으로 모아 상권을 형성한 곳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수원천의 옛날을 기억하다

 

지동교 아래 지동시장 쪽으로 벽면에 설치된 물놀이, 1950년대 전쟁의 아픔을 뒤로한 채 수원천에서 물장구치며 물놀이를 하던 당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벽에 부조로 조성을 한 이 작품은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생활오폐수, 생활쓰레기 등 각종 오염으로 악취가 진동했던 수원천을, 생태하천으로 변화시키고자하는 소망이 아이들이 수영하는 모습으로 투영시킨 것이다.

 

수원천 지동교 아래 조성된 이 물놀이 작품을 보고 있던 시민 김아무개(, 69)씨는

옛날에 우리가 이 수원천에서 어린 시절을 이렇게 보냈어요. 그때는 입을 것도 마땅치 않고 특별하게 놀만한 공간이 적어, 수원천이 많은 아이들의 놀이터였죠. 지금 이렇게 벌거벗은 아이들을 형상화 한 것을 보니 옛날 생각이 떠오릅니다. 앞으로 수원천을 시민들이 깨끗하게 수질관리를 잘하면, 물이 더욱 맑아질 테고 그때는 이런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겠죠.”라고 한다.

 

 

주변시장과 어울리는 작품을 조성

 

구천교 인근에 마련한 작품 일터는 구천동 공구상가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제작한 것이다. 공구상가 내 대장간에서 작업하는 일꾼들의 모습을, 역동성 있는 형태로 조형화 했다. 대장간에서 일하는 이미지를 통해,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전통기법의 매개체 역할과 기초산업이란 의미를 부여해 경제 활성화에 대한 바람을 담았다.

 

이런 예술작품이 이곳 공구상가 앞에 마련되었다는 것이 의미가 큽니다. 사실 저희 공구상가는 지금 여러모로 상당히 힘든 시기에 있는데, 이런 작품들이 더 많이 늘어나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이런 작품을 감상하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희 공구상가가 활성화가 되었으면 합니다.”

 

공구상가에서 작업을 한다는 한 분의 이야기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디자인 총괄한 김경환 작가는 생태하천 수원천 복원의 의미에 충실한 공간구성, 상인들과 연계한 참여의 장소 등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왜 하필 남한강의 자갈과 모래를 이용한 그림을 그릴까? 그리고 그런 재료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될까?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다. 여주군 대신면 보통리에 거주하는 이영학씨(·51). 민족미술협의회 회원이면서 여주 민예총 미술분과위원회인 <여미울>의 회원이다.

 

강가 갈대숲의 고라니야 까투리야

그 옆의 버들 숲아

물 위에 두둥실 떠 있는 청둥오리야

 

그림에 붙어있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내 심장에 붉은 깃발을 꽂아 달라'고 절규를 하고 있다. 지역신문에 매주 그림을 그려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는 이영학씨. 그 그림은 순전히 남한강에서 재료를 구한 강돌인 자갈과 모래가 전부다. 그 재료를 갖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 <사람>, <어쩌나> 등의 제목으로 그려대는 그림 속에는 이영학씨의 고뇌가 배어있다.

 

4대강을 상징한 걸개그림. 이영학씨를 비롯한 여주 민미협 회원들의 공동작품이다. 아이와 물고기, 그리고 용동치는 물결, 그곳에 포클레인이 삽질을 하고 있다. 그 속에는 숱한 문화재도 함께 훼손당한다

 

자연은 왜 건드린데요?

 

골재, 모래와 자갈.

아니 수 억 년 흘러내려 쌓이고 쌓인

우리 조상들의 살과 뼈와 퇴적물.

그것을 마구 퍼 먹고 있다.

 

자연은 사람이란다. 그 안에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을 표현한 그림은 파격적이다. 모래 위에 강돌을 놓아 사람의 형상을 표현했다. 강돌이 발가락이 되고 뼈마디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강돌과 모래가 우리 생명의 원천임을 부르짖는다.

 

우리는 자연입니다. 인간이 자연을 벗어나 살 수 없듯이, 자연도 인간과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마구잡이로 보를 막고, 그곳에서 강동과 모래를 채취했습니다. 그것들은 수억 년 오랜 세월을 강바닥을 지켜 온 것들입니다. 그 안에 생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헤쳐 버리면, 그리고 그 돌과 모래를 채취하면서 치어나 알들은 온전히 남아있겠습니까? 이것은 자연에 대한 도전이요, 인간의 오만입니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짓이죠.”

 

강에서 태어나고, 강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여주군 대신면 보통리 허름한 옛집을 구해 작업실로 사용하는 이영학씨는 스스로 자연을 닮은 인간이기를 강조한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자연을 망쳐놓은 사람들도 죄인이고, 그것을 막지 못한 우리들도 죄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후손들에게 죄인입니다.”

 

사람 강돌과 모래를 마구 채취해 자연을 잃은 사람들은 뼈만 남아버렸다. 손가락 발가락까지 보이게 말라버린 사람들

 

작품에서 드러난 작가의 절규

 

이영학씨는 많은 개인전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부터 전국을 다니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은 모두 강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것들이다. 그렇게 자신의 속내를 작품 속에 드러내고 있다.

 

1996 개인전 '드러냄'(나무화랑)을 시작으로 2008 개인전 '엄마야 누나야'(여주군민회관), 경기통일미술전(안산문화예술의전당), 조국의 산하전(여주인천파주부산) 2009 용산참사'망루전'(평화박물관), 용산참사현장 개인전(레아호프), 생명의 강 (광주 5.18 기념문화관) 등의 전시가 모두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에 관한 것들이다. 지난해부터 이포보 현장 가까운 곳인 남한강에서 강돌과 모래를 가져다가 작업을 시작했다.

 

강을 진정코 막아 그 속살을 퍼낸다면

강이 아니여 깡이여 깡!

깡깡 어는 깡, 가만히 있지 않을 깡

수 천 수만의 세월의 역사를 깡그리 없앨 수도 있는 깡

 

작가는 강돌로 모래위에 ''이란 글씨를 썼다. 그 깡은 ''이 망가지면 ''이 된다는 것이다. 깡그리 생명을 없앨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자신의 고뇌를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그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강에서 만나야만 한단다.

 

 2009 여주 민족예술제 행사장에서 훼손되는 4대강을 주제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이영학씨

 

저는 그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연만이 우리 인간을 살릴 수 있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그 자연을 이렇게 깡그리 다 훼손시킨다면, 자연이 우리를 놓아두겠습니까. 그 업보는 그들 스스로의 자손들이 감당을 해야 할 것입니다

 

여주민예총 주관행사인 '민족예술제'에서 4대강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던 그이다. 대신면 남한강이 가까운 허름한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이영학씨. 그는 오늘도 남한강의 강돌과 모래를 재료삼아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남문 로데오 거리. 한 때는 젊은이들이 하루 종일 거리를 활보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이 거리에서 자신의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면서, 거리를 젊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거리가 숨을 죽이고 있는 듯하다. 젊음을 발산하던 ‘끼’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느 시장통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한가한 모습만이 남아있다.

 

90년 초 이 거리에는 극장만 해도 6곳이나 있었다. 그 극장 앞에는 늘 젊은이들이 장사진을 이루었으며, 사람들은 이곳을 ‘로데오거리’라고 불렀다. 그만큼 활발하던 거리였다. 8월 16일 찾아간 수원시 팔달구 남문 로데오거리.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 점포를 열어놓고 장사를 하는 상인들도 지쳐 보인다.

 

“한 때는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거리였죠.”

 

남문 로데오거리는 한 때 젊은이들이 줄을 이던 곳이다. 그런 거리가 이제는 사람들의 발길이 한산하다. 로데오거리 한편 4층에 있는 상인회 사무실을 찾아가 보았다. 무더운 날임에도 무엇인가 고민을 하고 있는 상이회 김한중 회장의 모습이다.

 

“저희 로데오거리는 1990년대 초만 해도 젊은이들이 하루 종일 북적였습니다. 하지만 수원역에 애경백화점이 문을 열면서 젊은이들이 그곳으로 옮겨갔죠. 6개의 극장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젊은이들이 떠난 자리는 마치 커다한 동공이 뚫린 듯합니다.”

 

김한중 회장은 그런 남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한다. 이제 상인회장을 맡은 지가 4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로데오거리가 살아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이런저런 많은 해결방안을 모색 중이라는 것이다.

 

 

“요즈음은 상인대학을 운영 중입니다. 우선은 상인들이 어떻게 이런 난관을 이겨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을 먼저 배울 필요가 있으니까요. 일주일에 화요맇솨 수요일 하루에 두 시간씩 20회, 총 40시간을 공부를 하게 됩니다.”

 

상인회 회장실 앞에는 책상위에 교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리고 한편에는 운동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상인들이 언제든지 이곳을 찾아와 체력단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식지도 만들어 새로 입점을 하는 상점들도 소개하고 있는 소식지로 인해,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구책 마련해 노력, 살아남기 위한 싸움

 

지금도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로데오거리에 또 하나의 악재가 겹쳤다. 바로 수원역사 뒤편에 롯데쇼핑몰이 들어오기로 한 것이다. 롯데쇼핑몰이 들어오면 더 어려운 난관이 다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상인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것.

 

 

“저희들은 이래저래 많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어려운데 더 어려워질 수도 있죠. 하지만 이럴 때가 호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손을 놓고 있는 것보다 무엇인가 노력을 해보아야죠. 그래서 빈 건물을 수원시와 협의하여 창업지원센터를 개설학도 200여명의 인원이 입주했습니다. 올해는 성장지원센터도 문을 열었고요.”

 

그것만이 아니다. 로데오거리에 있는 작가들과 지역 예술가와 함께 2012년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아름다운 테마거리 가꾸기를 추진하고 있다. 장기간 경기침체로 폐업중인 상당수의 빈 가게를 활용하여 야간조명을 설치하고, 그곳에 작품을 전시함으로서 우범지대로 전락하고 있는 거리를 아름다운 테마거리로 변화시키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빈 건물의 공실벽면에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죠. 그것만이 아니라 작품을 제출한 학생들에게는 자기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김한중 상인회장은 사업 추진을 위해 미술연합회와 협약식을 체결하였으며, 이로서 지속적인 미술작품을 제공받아 가로등에도 액자형 배너를 이용한 작품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해, 남문로데오 거리가 아름다운 테마거리로 바뀌어 보다 많은 시민이 찾게 되고 상권도 더욱 활성화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로데오거리 옛 명성 찾도록 노력할 터

 

“올해는 팔달산을 오르는 입구에 청소년문화공연장이 개설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청소년밴드가 공연을 합니다. 그리고 극장도 한 곳이라도 다시 유치하려고 의논 중에 있습니다. 벽면갤러리도 구상 중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면, 옛 젊은이들이 넘쳐나던 로데로 거리의 명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꼭 그렇게 만들어야죠.”

 

한 때는 젊은이들이 거리를 누비던 남문 로데오거리. 팔달문 앞에 형성된 상가 중에서도 가장 번화했던 곳이다. 그간 김한중 회장의 많은 노력으로 조금씩이나마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공실을 건물 주인들과 의논을 해 작가들의 공방촌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이미 건물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어차피 비워둔 공실을 저렴하게 작가들에게 입주를 허락해 조금이나마 활기를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죠. 저희들이 노력을 한만큼 이곳을 떠났던 젊은이들도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노력을 해보아야죠. 이런 저희 상인들의 노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도움을 바랍니다.”

 

올 9월 인접한 행궁동에서 열리게 되는 ‘생태교통 수원2013’에 몰려들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로데오거리로 끌어 들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하는 김한중 회장. 앞으로 달라질 로데오 거리를 기대하고 싶은 것은, 그런 끊임없는 노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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