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다음이 주관하고 수원시가 후원하는 <제50회 수원 화성문화제>의 일정을 알려드립니다. 참가하시는 블로거들께서는 일정에 차질 없이 시간을 맞추어 참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별도의 연락을 수원시청 SNS팀 담당자가 연락을 할 것입니다.

 

모이는 장소

수원 화성 향궁 앞 생태교통 현장 파빌리온 안 프레스 센터

모이는 시간

9월 27일(금) 오후 2시(시간 엄수할 것)

 

 

27일 일정

오후 2시 프레스센터 집결

오후 2시 ~ 4시 생태교통 현장 개인 취재

오후 4시 30분 화성 봉돈 봉화올리기 촬영

오후 5시 화성열차 승차 성신사까지 열차로 이동

오후 5시 30분 ~ 6시 40분 수원성에서 양념갈비로 저녁

오후 7시 수원화성문화제 개막행사 참석

오후 9시 숙소로 이동 및 숙소 배정

오후 9시 30분 통닭거리 이동

 

 

28일 일정

오전 8시 사랑채에서 조식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개인별 화성문화재 행사 취재

오전 12시 중식

오후 1시서부터는 각자가 알아서 취재를 하시면 됩니다.

점심식사 후에 돌아가실 분은 알아서 가시면 됩니다.

시민퍼레이드 및 능행차 연시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됨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문의 사항은 온누리에게 전화로 문의 바람

  

참 까다로운 샘도 다 있다. 샘을 보호하기 위해 샘 위에 전각을 지으면 마을에 돌림병이 돌고, 상여나 시신이 근처로 지나가면 물이 탁해진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샘 이름도 ‘명정(明井)’이라고 한단다. 통영시 명정동에 소재한 충렬사의 입구 길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는 샘이다.

 

이곳 사투리로 ‘정당새미’라고 부르는 이 샘은 현재 경상남도 기념물 제273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이 우물이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다만 그 전부터 있던 샘을 1670년 제51대 통제사인 김경이 중수하여 지금의 샘처럼 조성을 했다고 한다. 샘을 조성한지가 벌써 350년 가까이 되었다.

 

 

 

두 개의 샘이 나란히 자리해

 

샘은 네모나게 조성하여 두 개가 나란히 있다. 위샘은 ‘일정(日井)’이라 부르고, 아래샘은 ‘월정(月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월정 안에는 푸른 이끼가 가득 끼어있다. 아마도 청소를 한지가 꽤나 오래 된 듯하다. 월정은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두 개의 샘의 물은 맑은 편이며, 샘의 아래쪽에는 길고 네모난 큰 물 가둠 장소가 있다.

 

이렇게 두 개의 샘이 있는 것은 처음에 위샘을 팠는데, 물이 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 밑에 샘을 하나 더 팠더니 물이 맑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샘을 판 후 물의 배출량까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샘을 합하여 ‘명정’이라고 부른다. 원래 이 명정은 충렬사에서 전용을 하였으나, 이 근처에 민가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식수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정당새미에 얽힌 전설

 

문화재 담사를 하면서 우물에 얽힌 전설을 많이 들었다. 마을마다 공동우물에는 한 가지씩의 전설은 꼭 있는 법이다. 그 전설 중 가장 많은 것은 ‘샘이 넘치면 마을에 경사가 있고, 마르면 마을에 흉사가 생긴다.’거나 ‘샘의 물자리를 찾는데 지나가는 백발노인이나 노승이 샘 자리를 가르쳐 주었다.’ 라는 등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그런 곳이 없겠지만, 옛날에는 물이 있는 곳에 마을이 생겨났다. 물은 그만큼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하기에 마을에서 사용하는 우물이 탁해진다는 것은, 곧 그 마을의 폐허를 불러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통영의 명정샘에도 이런 전설이 전하고 있다.

 

 

 

명정은 두 개의 우물이 나란히 있다. 일반적인 샘처럼 깊지도 않다. 그러나 물은 얕지만 매우 맑다. 이 우물은 주위로 시신이나 상여가 지나면 물이 탁해진다고 한다. 지금도 이 명정샘 곁으로는 상여가 지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샘을 보호하기 위해서 두 개의 샘 위에 팔각정으로 지붕을 만들었더니, 마을에 질병이 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샘은 그대로 노천 샘으로 남아있다. 이 두 개의 샘인 일정과 월정은 그 용도가 다르다. 일정은 충렬사에서 제향을 지낼 때 사용하고, 월정은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우물을 촬영하고 있는데 어느 어르신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신다. 우물 기사를 쓰려고 사진을 찍는다고 했더니, 얼른 나오라는 것이다.

 

 

 

“다 찍었습니다. 나갈께요.”

“거긴 외부사람이 들어가면 안 되는 우물인데”

“무슨 이유가 있나요?”

“이순신장군의 제향 때 사용하는 우물인데, 외지사람들이 드나들면 부정타거든”

 

그 이야기에 할 말이 없다. 아직도 이곳 우물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명정샘 주변 사람들.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전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마을주민들이 그렇게 영험한 샘으로 믿고 있기에 보존이 잘 되는 것이겠지만.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