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연, 이주영, 이해균, 정세학, 차진환 작가 작품 만날 수 있어

 

남문로데오거리에 소재한 길가 갤러리인 남문로데오갤러리는 한 때 젊음의 거리였던 로데오거리에 소재하고 있다. 남문로데오거리는 애경백화점 등 수원역에 대규모 매장이 입점하면서 젊은이들이 떠나 거리가 텅 비어버렸다. 남문로데오상인회는 떠나버린 젊은이들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그렇게 자구책을 강구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가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이었다.

 

남문로데오상인회는 거리를 되살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를 쓰고 있으며, 그 중 하나가 바로 거리미술관의 조성이었다. 거리에 있는 유료주차장 외벽을 거대한 거리 갤러리를 조성해 젊은이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것이다. 처음 로데오상인회의 노력으로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듯했으나, 아직도 로데오거리는 예전의 호황을 불러오지 못했다.

 

그런 로데오거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남문로데오거리 상인회는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고, 그 결과 많은 갤러리들과 청소년문화공연장, 남문아트홀 등 전용공연장 및 소극장을 유치했다. 하지만 아직도 남문로데오거리는 한 때 극장이 6곳이나 있었을 때와는 달리, 젊은이들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데오거리갤러리서 민미협 작가들 전시

 

28일 오후, 남문로데오거리를 찾아갔다. 거리갤러리인 남문로데오갤러리에 수원 민미협의 산루리작가회 회원들이 전시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930일까지로 민미협 산루리 작가회 회원인 이오연, 이주영, 이해균, 정세학, 차진환 등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 중 전세학 작가와 이주영 작가의 작품은 몇 번이고 만났던 작품들이다. 정세학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인가? 로데오거리에 소재한 해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때였다. 작가 정세학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니 올해로 만 58세다. 추계예술대학교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공미술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1998년에는 와우 프로젝트 - 달리는 도시철도로 문화예술관(지하철 7호선 설치) 작업에 참여했다.

 

작가는 2006년에는 Art in City 대전 홈리스 프로젝트 예술 감독을 맡았으며, 실학축전 2006년 미술감독, 서울 Hi Festival - 남대문 성곽 잇기 설치, 동해시 매화1 벽화 미술감독 등을 맡아 추진했다. 그런 정세학 작가의 작품을 수원 전시관에서 몇 번이고 만나면서 작품에 꽤 정이 들었었나 보다.

 

 

제주도의 바다냄새를 그려내는 작가 이주영

 

작가 이주영은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은 지가 오래되었다. 민미협 수원지부장을 맡기도 한 이주영 작가는 한 때 수원에서의 작품활동을 접고, 제주도로 내려가 그곳에서 제주도의 풍물을 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후 다시 수원으로 돌아 온 이주영 작가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늘 자신은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1980년대부터 1990년 초까지 격동의 세월에 미술운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의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민초들이 한이 깃들어 있다. 그의 작품소재가 항상 자연과 더불어 우리가 늘 만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풍경인 것도 이주영 작가의 작품을 담아내는 특징이다.

 

전시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이주영 작가의 작품은 그대로 민초들의 삶이다. 언제인가 이주영 작가의 전시를 찾아갔다가 낯익은 그림들을 만난 적이 있다. 바로 비탈과 골목이 유난히 많은 지동의 골목을 그려 전시를 연 것이다. 그런가하면 제주에서 만난 풍광과 야생화들을 그려 전시를 가진 적도 있다.

 

이주영 작가는 늘 민초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그림을 그려오면서 자신이 가장 행복한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그린 작품들의 가격이 엄청날 것이라면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순수한 작가들의 색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남문로데오갤러리 전시관이다. 아직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으니 시간을 내어 로데오거리를 찾아가보길 권한다.

 

4회 이주영 개인전을 찾아가다

 

해움미술관’, 수원시 팔달구 교동 91-1 지하에 자리한 미술관이다. 컴컴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넓은 전시관이 나온다. 새로 미술관을 개장해 첫 전시인 4회 이주영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1010일부터 시작한 전시는 116일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작가 이주영은 중앙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전시실 안에는 벽에 그림들이 걸려있다. 그런데 이 그림들을 보다가 낯익은 모습들이 보인다. 한계령과 골목길들. 그 골목길들이 왠지 낯이 익다. 한계령이야 헤아릴 수도 없이 넘은 곳이다. 그런데 이 골목들이 왜 눈에 익을까? “지동 골목입니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골목이니까요.” 작가의 설명에 ~ 그랬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골목을 그리는 이주영 화백

 

이젠 작가라는 말보다는 화백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한 세월을 보냈다. 벌써 54세라는 나이를 먹었지만, 그는 아직도 소년과 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그림을 그린 햇수에 비해서 많은 개인전을 갖지는 않았다. 3회의 개인전을 수원미술관에서 가졌다.(2003, 2009, 2011) 그리고 이번에 4회째 개인전을 연 것이다.

 

단체전은 미술동인 새벽전, 환경미술전, 나눔회전, DMZ, 우리가 서야 할 이 땅에서 전, JAALA, 아시아는 지금 전, 수원민미협전, 인권미술전, 백만송이 실루전, 동인전 등 많은 단체전에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현재 민족미술협회, 나눔회, 교동창작촌 회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그림엔 아픔이 실려 있었다.

 

29일 오후 해움미술관을 찾았다. 작가 이주영은 수원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죠. 사실은 어릴 때 지독한 소아마비를 앓았어요. 1년 정도 일어설 수가 없으니 앉아서 즐길 수 있는 것이 그리기와 만들기 증 앉아서 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없었죠. 그림에는 어릴 적부터 소질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랬기에 지금은 자신의 화실을 갖고 사람들을 가르칠 수가 있다고 한다. 수원시 팔달구 교동 86-1번지 이층에 이주영 화실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전시실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림이 남다르다. 어릴 때의 아픔이 있어서인가? 그의 그림 속에는 진한 아픔이 있다. 이리저리 비뚤어진 골목길, 그리고 그 골목길에서 집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의 쓸쓸한 뒷모습. 가을이 서리서리 내린 한계령. 그가 즐겨 그리는 그림들 속에는 아픔이 실려 있었다.

 

격동의 세월을 그림으로 표현 해

 

그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왜 그림을 그립니까?”라고 물었다.

그려야 하니까요. 저에게 그림은 운명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죠. 좋아하는 것들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표현 중에 가장 잘 맞는 것이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물론 그림을 그리면서 아픔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80년대부터 90년 초까지 격동의 세월에 미술운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의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 진한 슬픔이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10년 그림을 떠나 있었어요. 안성, 평택 등으로 돌아다니면서 그림에서 손을 땠죠. 그런데 그림이 도난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수원으로 올라왔어요. 선배의 화실 한 귀퉁이에 공간을 만들어 그림을 그렸죠. 그러다가 지난해에 화실을 마련했어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을 가르치는데, 수입은 영 시원찮아요. 하지만 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 행복이 바로 그림에 있다고 한다. 이주영 작가는 자신이 갖고 있는 많은 그림들이 돈으로 따지면 엄청날 것 이라고 하며 웃는다. 시간이 지나면 더 부자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웃는 그의 미소을 보면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깊은 아픔 속에서 스스로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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