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를 위한 정부간위원회(12.2 ~ 7, 아제르바이잔 바쿠)김장문화(Kimjang :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 등재키로 최종 확정하였다.

 

정부는 금번 회의에 외교부와 문화재청,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주유네스코대표부, 주아제르바이잔대사관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 파견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금번 김장문화등재 결정으로 아리랑(2012), 강강술래(2009), 판소리(2008),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8) 등 총 16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나눔과 공동체 문화 인정

 

특히, 이번 등재 결정 과정에서 24개 무형문화유산보호 정부간위원국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가정에서 전승되어온 김장을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렸다. 즉 동절기에 대비한 한국인들의 나눔과 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며, 사회 구성원들간 결속과 연대감 강화를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부여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겨울동안 주 찬이 되어 끼니때마다 밥상에 오르는 김장은 지난 20122월 문화재청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90%의 한국인이 직접 김장을 담그고 있다는 답변이었다. 이것은 김장문화가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지속되어 온 공동체에 의해, 자발적으로 전승되어 왔다는 점도 금번 등재 결정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국가로서의 한국의 이미지 제고

 

그동안 외교부와 문화재청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식문화인 김장문화의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유네스코 사무국 및 위원국들과의 접촉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이번에 김장문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 등재는 품격 있는 문화국가로서의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는 문화 융성을 국정 기조로 표방하면서, 지구촌 행복 시대 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외교부와 문화재청은 우수한 우리 문화를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고, 문화 다양성 및 인류의 창의성 증진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우리 무형문화유산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문화재청은 금번 등재 결정을 계기로 김장문화가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의 일부이자, 국민 생활문화로서 계속 확대, 전승될 수 있도록 무형문화유산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제정 등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노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민족의 가을철 풍습으로 정착

 

고려시대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에는 무를 소금에 절여서 구동지에 대비한다고 적고 있다. 이로 미루어 이미 고려 때에도 김장을 담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에 담그는 김장법의 원류는, 조선 후기에 수입된 고추와 깊은 관계가 있다. 17세기에 들어 문헌에 고추가 조미료로 사용된 기록이 보이기 때문이다. 17세기에 들어서 김장을 할 때 양념으로 고추와 마늘, , 생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김장을 담그는 일은 우리 민족의 가을철 풍습 가운데 하나이다. 김치는 겨울철부터 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기본 반찬으로 매우 중요하다. 특히 별다른 반찬이 없고 야채 구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에 김장을 담는 풍습은 겨울나기를 위한 첫 번째 큰일이었다. 김장을 담그는 법은 지역에 따라 또는 만드는 김치에 따라 매우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이웃간에 품앗이로 함께 모여서 담소를 즐기며 공동으로 김장을 담갔다는 점이다. 즉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요, 구성원끼리의 상호 연대감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수원은 김장 나눔의 산 도시

 

지난 7일 수원의 삼성전자 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랑의 김치담그기를 하기 우해서였다. 시가 15천만 원 상당의 배추 60,000kg을 담가, 수원의 각 기관을 통해 홀몸어르신들과 기타 김치를 담을 수 없는 가정을 돕기 위한 행사였다. 수원은 각 주민센터마다 김장 나누기 행사를 벌이고 있다.

 

이렇게 주민센터에서 주민단체에 의해 만들어진 김장은 잘 포장이 되어, 지역 내에 거주하는 홀몸어르신들과 소년소녀가장이 있는 집으로 배달이 된다. 한 겨울 우리의 대표적인 찬거리인 김장. 이번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 등재 확정으로 인해, 우리의 김장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

 

살다가 보면 좋은 날도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일확천금이 생긴 것도 아니고, 갑자기 횡제를 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 큰 횡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해 6월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아리랑’을 중국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리고 이어 세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 ‘아리랑’을 중국의 유산으로 등재, 추진 중에 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전역에서 불리던 아리랑이, 터무니없이 중국의 아리랑으로 등재될 위기를 맞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9년 8월 ‘정선 아리랑’을 가곡과 대목장, 매사냥 등과 함께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 목록에 올렸으나, 연간 국가별 할당 건수 제한 방침에 따라 정선 아리랑은 심사 대상에서 제외가 된 바 있다. 이후 남북 공동으로 한반도 전 지역 아리랑의 등재를 추진하려고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자, 2011년 1월 아리랑을 심사 우선순위로 정하고 6월 우리 정부 단독으로 등재 신청서를 냈다.

 

수원 원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아리랑 축제(사진 / e 수원뉴스 김기승 시민기자)

 

중국의 이러한 아리랑을 중국의 민요로 탈바꿈을 시키려는 의도를 알아 챈 한국에서는, 다각도로 그들의 문화적 만행을 막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대규모 인원이 모여 아리랑이 우리 것임을 알리는 축제마당을 열었다. 수원시와 경기도가 2012년 6월 2일, ‘아리랑 아라리요 페스티벌’이라는 대규모 ‘아리랑 축제’를 벌였기 때문이다. 

 

이 날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제에는 1200명의 풍물단과 1000명의 연합합창단, 200명의 군악대, 150명의 도립국악단과 무용단, 4만5천여 명의 관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우리소리 아리랑을 부르며 즐거워했다. 이날 공연은 20초짜리 광고로 제작돼 지난 8월 한 달간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서 무려 1,500회 이사잉 상영돼 ‘아리랑’이 한국의 고유 문화유산임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도 마련했다.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우리 정부가 신청한 ‘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의 등재가 최종 확정됐다. 이로써 한국의 인류무형유산은 아리랑을 비롯해 종묘제례·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 단오제 등 총 15건으로 늘어났다.

 

앞서 무형유산위원회는 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의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으며, ‘아리랑이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되며 공동체의 정체성의 징표이자, 사회적 단결을 제고하는 역할을 한다. 아리랑이라는 하나의 유산에서 대단한 다양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아리랑의 등재로 무형유산 전반의 가시성이 향상되고 대화 증진, 문화 다양성 및 인간 창의성에 대한 존중 제고 등이 이뤄질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의 등재가 최종 확정되자, 문화재청 관계자는 “아리랑이 심사보조기구 개별심사에서 만장일치로 등재권고를 받음으로써, 무형유산으로서 아리랑의 중요성에 대한 국제적 인정 및 등재신청서 작성에 대한 한국의 전문성 발휘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로서 최초로 일부 전승자가 아니라 전 국민이 행하는 무형유산이 등재돼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가시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무형 유산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줬다”고 말했다.

 

수원 원드컵 경기장을 메은 아리랑의 함성(사진 / 윤갑섭 e수원뉴스 시민기자) 

 

아리랑은 우리 모두의 소리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아리랑은 지역마다 독특한 음색을 갖고 발달이 되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불리는 아리랑은 대개 3개 권역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태백산맥권의 소리로 강원도 특유의 메나리조로 불려지는 ‘정선아리랑’이다. 두 번째는 영남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불려지는 ‘밀양아리랑’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충남 일부와 경남서부, 전라도 일대에서 불려지는 육자배기조의 ‘진도아리랑’이 있다.

 

이 아리랑들은 그 지역의 명칭을 붙이기는 했지만, 사실 그 지역만의 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다만 1930년대에 아리랑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면서 지역의 특성상 명칭을 정했다고 볼 수 있다.

 

아리랑이 언제부터 우리나라 전역에서 불리게 되었는가에 대한 정확한 설이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아리랑의 창출근원에 논해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아리랑의 어원에 대해 가까운 것은 ‘님을 떠나 보낸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아리랑(我離郞)이란 생각이다,

 

아마도 전국에 많은 지명 중에 ‘아리랑고개’라고 지명이 붙은 곳에 전하는 전설 한 토막을 보면, 거의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하면서 부르는 이들과 듣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으로 엮어주는 우리의 소리 ‘아리랑’,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것 같기만 하다. 5천만의 대한민국이 15억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아 낸 오늘, 새롭게 태어난 아리랑을 부르는 모든 소리꾼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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