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구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 자리한 전통시장인 ‘영동시장’. 수원 화성의 팔달문 앞에는 9개의 시장이 모여 있다. 이곳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하면서 장시를 연 곳으로, 그 역사가 2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영동시장은 여러 장들과 함께 모여 있는 장으로, 200여 년 전부터 개장된 장터였던 곳이기도 하다.

 

영동시장은 2~30리 밖에서도 이용하는 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영정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5일장으로 열리던 시장은, 1949년 수원이 시로 승격이 되면서 영동시장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영동시장은 수원천을 끼고 상가와 상점이 발달되어 있으며, 300개 정도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대형장이다.

 

 

영동시장 이층 문화공간 아트포라

 

영동시장은 그동안 시장을 살리고, 주변 대형매점들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영동시장 이층에 빈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조성을 한 것이다. 이곳은 ‘문화예술 종합공간 아트포라’라고 명칭을 붙여, 10여 개의 공방이, 이층으로 올라가면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아트포라에 입주한 예술가들은 오직 예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임대료나 전기세, 수도세 등도 모두 받지 않는다. 그리고 아트포라의 작가들의 공방 맞은편인 좌측에는, 커피숍과 미장원 등이 자리를 하고 있으며 중앙에는 전시공간과 뒤편에 대강당이 자리한다. 워낙 넓은 공간을 이용하다가 보니 전시 공간 앞이 휑하니 비어있어서, 조금은 무엇인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6월 6일 현충일. 오후에 영동시장 아트포라를 찾았다. 그런데 2층에 비어있던 공간이 무엇인가 가득 채워져 있다. 워낙 넓은 공간이라 다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30%의 공간에 전시를 해 놓은 것들이 보인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쉴 자리입니다”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 몇 분이 한 공방에 모여 있다. 평소 안면이 있어 더위도 피할 겸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공간에 전시가 되어있네요. 그동안 휑한 것이 보기가 좋지 않았는데, 저렇게 전시를 해놓으니 보기가 좋습니다.”

“그래요. 그 전시물들이 모두 손님들이 쉴 수 있는 의자랍니다. 그저 아무나 이곳에 오셔서 대화도 나누고, 편히 쉬어갈 수가 있는 곳이죠.”

“그러고 보니 2013화성국제연극제가 열리던 행궁 광장에서 본 것들도 있네요.”

“예, 원래는 이곳 아트포라에 손님들이 찾아오시면 마땅히 쉴 공간이 없어서 마련한 것인데, 국제연극제에 먼저 선을 보인 것이죠. 그곳에서는 보지 못한 것들도 꽤 있고요. 앞으로 이 빈 공간을 다 채우려고요”

 

 

학생들과 함께 작품제작에 직접 참여를 한 김춘홍 작가의 대답이다. 그러고 보니 행궁 광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보인다. 스피커 두 개를 연결해 차이가 나게 만든 의자며, 여행용 가방에 여러 가지 무늬를 넣어 만든 의자. 그리고 그저 여기저기 놓인 것들이 다 앉을 수 있도록 재창조가 된 것이다.

 

“어디 아까워서 사람들이 앉을 수나 있겠어요?”

“앞에다가 앉을 수 있는 의자라고 적어 놓아야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분들이 이곳을 좋아할 것 같아요”

 

작가들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다양한 형태의 의자. 한 곳에 앉아본다. 작품 위에 앉았다는 묘한 기분이 든다. 이런 아름다운 의자라면 어느 누가 마다할까? 아트포라가 입주를 한 뒤, 달라지고 있는 영동시장이다. 더 많은 작가들을 위해 장소를 마련하겠다는 영동시장 상인회 이정관 회장의 말마따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변화를 해야 할 때인 듯하다.

처음 문화센터 등을 찾아다니면서 서예로도 사람들의 치유가 가능하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애를 먹고는 했죠.”

 

올해로 서예를 시작한지 30년이 되었다. 예전에는 미술대학에 서예과가 없었다. 단지 취미생활로 시작한 것이, 서예가 좋다가 보니 어쩌다가 서예가라는 호칭이 붙게 되었단다.

 

예전에 정보통신부에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을 때, 서예와 접하게 되었어요. 글씨를 쓰는 것을 워낙 좋아해, 틈이 나는 대로 서예에 몰두했죠. 취미생활을 하던 서예가, 저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이죠.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 좋아, 1994년에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서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해

 

처음에는 한문과 한글을 구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저 묵향을 맡으며 글을 쓰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체계적인 공부가 하고 싶어,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에 서예전공으로 미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에 공무원 생활을 접고 서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연금을 포기하고 퇴직금으로 서실을 열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난관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직 서예에만 몰두를 했다.

 

한문과 문인화도 그렸지만, 글을 쓰다가 보니 한글에 대한 애착이 생겼습니다. 그 매력에 빠져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한글의 서체에 많은 연구를 하게 된 것이죠. 지금 세계는 우리 한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한글의 세계화를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원 윤경숙(, 54) 선생은 서예가 점차 침체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워, 직장까지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실을 열어 한글 서체를 연구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접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생활서예에 심취하다

 

저는 생활서예라는 말을 합니다. 사람들에게 다가서기가 수월하기 때문이죠. 요즈음은 글씨를 갖고 캘리그래피라고 하여서 아름다운 글을 씁니다. 캘리그래피는 전통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아름다운 글씨를 말하는 것이죠. 이제는 글씨가 정보를 전달하는 문자의 기능을 뛰어넘어, 감성까지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 감성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캘리그래피가 되는 것이고요

 

원래 캘리그래피(Calligraphy)'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칼리그라피아(Kalligraphia)'에서 비롯된 말이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캘리그래피를 멋짓글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사회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마음이 메말라 거칠어지고요. 이런 사람들을 서에로 치유를 할 수 있습니다. 왜 음악이나 미술은 치유가 되는데, 서예는 안된다고 할까요? 저는 석사논문을 <서예치료에 관한 연구>로 받았습니다. 사람들을 가르칠 때 그분들이 서예를 하다가보니, 마음이 치료가 되는 듯하다고 합니다. 저도 서예를 하면서 치유가 되는 것을 느꼈고요.”

 

내면에 담고 있는 감성을 표현하는 것

 

그동안 국전초대작가가 되었지만, 그런 자리에 오르기까지 만만한 세월이 아니었다. 현재 수원미협 서예분과장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서원 윤경숙 선생은, 대한민국미술대전, 경기도미술대전, 전국휘호대회, 대한민국서예한마당, 공무원미술대전, 추사선생추모휘호대회 초대작가, 한국미협, 강물회, 묵향회, 서예치료학회 등에서 활동을 했다.

 

 

한글서학회는 한글을 세계에 알리는 단체입니다. 우리의 우수한 한글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홍보를 하는 것이죠. 저는 단지 한지에 글씨만을 갖고 작업을 하지는 않습니다. 버티컬이나 스탠드, 스카프, 방석 등 다양하게 한글을 사용하죠. 저희 공방 명칭이 먹즐방입니다. 먹을 즐기는 방이라는 뜻이죠.”

 

수원시 팔달구 영동시장 2층 아트포라에서 만날 수 있는 서원 윤경숙 선생은,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표출해 내고 있다. 영동시장 2층 전시실에서는 현재 윤경숙 선생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한글의 아름다움에 취해보고 싶은 사람은, 그곳에 들려 우리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수원은 지금 쓰레기와의 한 판 전쟁과 사랑을 겪고 있다. 길가마다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거나 마구 섞어 버린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아, 여기저기 쓰레기더미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일부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런 시의 방침을 비난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한 번 겪어야 할 홍역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분별한 쓰레기의 무단투기를 방치하란 말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그런 몰지각한 양심으로 인해, 시민들의 혈세를 탕진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쓰레기와의 한 판 승부를 하고 있는 요즈음, 쓰레기를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바로 영동시장 2층에 있는 아트포라 회원들의 쓰레기 재활용 소식이다.

 

 

아파트, 주택가에서 들고 온 쓰레기들

 

아트포라 공간 한편 바닥에 비닐천을 깔고, 그 위에 물감 칠을 한 조형물들이 놓여있다. 여행용 가방도 있고, 버려진 흔들의자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부수어진 새장들과 마네킹도 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쓰레기로 버려진 것들이다. 그런데 이 쓰레기를 주어다가 칠을 하고, 여러 가지 치장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무엇이 그립습니까?’

이 쓰레기들의 제목이다. 쓰레기더미에서 주어 온 물건들이 새롭게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다. 가방은 옛 여행이 그리운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네킹은 칠이 되어 머리위에 나비를 부쳤다. 어릴 적 동심을 그리워하는 것이란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자연을 벗 삼아 놀던 어린 시절. 마네킹은 바로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된 것이다.

 

흔들의자 위에는 곰 인형 한 마리가 놓여있고, 흔들의자 다리 밑에는 스키가 붙어있다. 스키를 타러 다닐 때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버려진 아기침대는 다시 조형이 되었다. 어린 아기 때, 혹은 자신의 어린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렇게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새 생명을 얻었다.

 

 

버리면 쓰레기 모으면 자원은 철칙

 

이 작품들은 아트포라의 빈 공간을 채워줄 것이라고 한다. 혹은 시장 안과 지동교 인근에 조형물로도 설치가 된다고 한다. 행궁 앞에서 벌어지는 수원화성국제연극제 한 편에 쉼터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아트포라 회원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기가 막힌 발상이다.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다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다.

 

버리면 쓰레기가 되지만, 모으면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입니다’. 이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점점 아름답게 변해가는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자원을 길거리에 버리고 있는가를 반성해야 한다. 쓰레기와의 전쟁은 결국은 바보 같이 버려진 양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젊음의 손길에서 생명을 얻어

 

이렇게 주어 온 쓰레기들을 빈 공간과 쉼터의 예술작품으로 만드는데 열심인 젊음들이 있다. 비로 수원영리더스아카데미 회원들이다. 수원에 주소지를 둔 학생들이거나, 수원에 소재한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체이다.

 

현재 영리더스아카데미 회원들은 수원의 네 곳에 나뉘어 봉사를 하고 있다. 지동교 위에서 열리는 일요체험장과 영동시장과 아트포라, 수원역전시장, 그리고 생태교통수원2013’의 현장이다. 영동시장에는 모두 15명의 영리더스아카데미 회원들이 봉사를 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통시장과 예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시장문화를 창출하는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저희들은 그동안 아트포라와 영동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고민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시장에 오셔서 길을 묻거나 점포를 물어보시기도 하죠. 그래서 저희들이 토의를 거쳐 시장점포 지도와, 길 입구 표지 등을 제작할 것을 시장 측에 건의도 했습니다.”

 

 

영동시장 아카데미의 김주연(중앙대) 단장의 설명이다. 이날 쓰레기재활용 예술작품을 만들기에는 이금희(아주대), 신혜미(경기대), 인덕근(아주대), 김성빈(한신대), 임수영(동방여대) 등이 작업에 참여를 했다. 젊음의 손길에 의해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새롭게 변화를 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들 작업에 참여를 한 젊음들은 이야기를 한다.

봉사를 하다가 보니 자신감이 생기고 매사에 당당해졌다

절친한 사람들과의 만남만 있었는데, 폭 넓은 사교력이 생겼다

낯가림이 심했는데 매사에 자신감을 얻었다

기획 등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생겼다

잊고 있었던 미술적 재능감을 되찾았다

 

봉사도 하고 자신이 사회에 나아가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응용력이 생겼다는 젊음들. 이들의 손길에서 변화한 볼품없던 쓰레기들의 새생명 얻기. 이 시대에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행궁 광장과 시장통에서 만나볼 생명들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동시장의 대표이사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41일 영동시장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선임 된 이정관 상인회장. 49일 영동시장 상인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정관 회장은, 영동시장에서 어머니 때부터 60년을 금화한복을 운영하면서 영동시장을 지켜 온 영동시장의 터줏대감이다.

 

수원 화성의 팔달문 앞에는 9개의 시장이 모여 있다. 이곳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하면서 장시를 연 곳으로, 그 역사가 2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영동시장은 여러 장들과 함께 모여 있는 장으로, 200여 년 전부터 개장된 장터였던 곳이기도 하다.

 

 

문밖시장, 성외시장 등으로도 불려

 

우리 영동시장은 정조대왕 시대에 만들어진 팔달문 앞의 시장 영역으로 보아야 합니다. 지금 팔달문시장 인근의 장들이 모두 한 장터였다고 보아야죠. 영동시장은 1919년 재래시장 등록 후, 문밖시장(팔달문 밖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성외시장(성 밖에 개장이 되어있어 붙여진 이름) 등으로 불리며 4일과 9일에 장이 서던 곳입니다. 정식으로 장을 개설한 후 100년 가까이 된 유서 깊은 장이기도 하죠.”

 

영동시장은 2~30리 밖에서도 이용하는 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영정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5일장으로 열리던 시장은, 1949년 수원이 시로 승격이 되면서 영동시장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영동시장은 수원천을 끼고 상가와 상점이 발달되어 있으며, 300개 정도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대형장이다.

 

 

영동시장에서 금화한복을 운영하던 어머니

 

이정관 회장이 장에 발을 내딛은 것은 어머니 때부터이다. 강원도 금화가 고향인 어머니가 피난을 나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영동시장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로부터 현재 아내가 운영하는 금화한복은, 60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영동시장을 지키고 있다.

 

어머니께서 하시던 금화한복을,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서 집사람이 맡게 됐죠. 저도 그때부터 영동시장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200154일 영동시장의 전무이사로 취임을 해 13년 동안 그 소임을 맡아 했죠.”

 

신풍초등학교, 삼일중학교, 유신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정관 회장은, 수원에서 태어나 수원에서 생활을 한 수원사람이다. 그리고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군을 제대하고 난 뒤,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재래시장 상인조직 활성화 방안을 위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인사조직 전문가이기도 하다.

 

 

영동시장은 상징적인 전통시장

 

우리 영동시장은 1층에 자리하고 있는 170여 개의 점포 중에서, 40여 개 정도가 한복을 취급하는 점포들입니다. 우리 시장은 예전부터 한복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던 곳이기도 하죠. 지금은 한복이 급격한 수요의 감소가 오고, 점차 사람들이 편리한 옷을 선호하게 되면서 한복의 입지가 좁아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동시장에서는 한복을 재조명하고자 무단한 노력을 하고 있죠.”

 

영동시장은 대중에게 한복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2001년부터 ()영동시장의 주관으로 한복맵시대회를 열고 있기도 하다. ‘한복맵시대회는 영동시장 내에 입점을 한 한복집들이 정성들여 제작을 한 한복을, 모델로 지원을 한 시민들과 함께 선보이는 축제이다. 이 한복맵시대회는 매년 화성문화제 기간 중에, 팔달문 지역 시장 거리축제로 선보인다.

 

영동시장은 상징적인 전통시장입니다. 시장이 대형화되고 다변화가 되면서 많은 전통시장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전통시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특화된 시장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정관 회장은 수원의 전통시장들이 어려움이 닥칠 시기에 중요한 소임을 맡았다. 수원역전 뒤편에 대기업의 종합 쇼핑몰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수원의 모든 시장들이 긴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시장은 오히려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함께 동반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반경 2km 정도의 상권들은 많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영동시장도 예외는 아니죠. 하기에 영동시장은 그들과 달리 특화된 시장으로 변화를 해야 합니다

 

 

문화와 즐거움이 공존하는 시장으로 만들 터

 

이정관 회장은 영동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한다고 한다. 13년 동안 영동시장의 전무이사를 맡아보면서 현장에서 느꼈던 것을, 이제 하나하나 개선을 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우리 시장은 예술 공간인 아트포라가 들어와 있어, 문화예술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장으로 새롭게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가 3층에 800평 규모의 공간이 있는데, 2층에 있는 홀을 3층으로 옮기고, 2층에 더 많은 예술 공간이 자리할 수 있도록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전통시장과 문화예술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장의 형태를 창출해 보아야죠.”

 

사람들을 시장이라는 공간으로 끌어들여야 시장이 살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이정관 회장. 영동시장이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전통시장의 새로운 모델로 탈바꿈하는 날이 기다려진다. 그것이 새롭게 전통시장의 수장으로 중요한 소임을 맡은 이정관 회장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원 영동시장 아트포라는 무한 변신 중

 

지난 해 1025, 영동시장 상가 안 비어있던 2층이 새롭게 단장을 했다. 전통시장인 영동시장이 공간 안으로 예술가들을 끌어들여 변신을 시도하였다. ‘아트포라는 예술을 뜻하는 ‘art'와 라틴어로 시장을 뜻하는 복수형인 ’fora'가 결합된 합성어이다. 아트포라는 영동시장 내의 상인들과 예술가들이 연계하여, 예술적 상품을 개발하고 지역주민이나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 실행하는 창작공간이다.

 

수원 화성의 팔달문 앞에는 9개의 시장이 모여 있다. 이곳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하면서 장시를 연 곳으로, 그 역사가 2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영동시장은 여러 장들과 함께 모여 있는 장으로, 200여 년 전부터 장터였던 곳이기도 하다.

 

 

문밖시장, 성외시장 등으로도 불려

 

정조대왕 시대에 만들어진 팔달문 앞의 왕이 만든 시장은 그 영역으로 보아, 지금 팔달문시장 인근의 장들이 모두 한 장터였을 것으로 보인다. 영동시장은 1919년 이후 문밖시장(팔달문 밖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성외시장(성 밖에 개장이 되어있어 붙여진 이름) 등으로 불리며 4일과 9일에 장이 서던 곳이다.

 

영동시장은 2~30리 밖에서도 이용하는 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영정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5일장으로 열리던 시장은 1949년 수원이 시로 승격이 되면서 영동시장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영동시장은 수원천을 끼고 상가와 상점이 발달되어 있으며, 200개가 넘는 점포가 입점이 되어있다.

 

 

영동시장이 들어서 있는 팔달문 앞의 장은 모두 9개이다. 하지만 수원의 전통재래시장 22곳 중, 거개가 팔달구인 팔달문 인근에 밀집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21곳의 장 중 팔달구에만 14개소의 장이 있으며, 권선구 3개소, 장안구 4개소, 영통구 1개소가 자리하고 있다.

 

한복의 맵시에 취할 수 있는 영동시장

 

영동시장은 1층에 자리하고 있는 170여 개의 점포 중에서, 40여 개 정도가 한복을 취급하는 점포들이다. 그래서인가 영동시장은 예전부터 한복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던 것이 점차 한복이 급격한 수요의 감소가 오고, 점차 사람들이 편리한 옷을 선호하게 되자 한복의 입지를 재조명하고자 무단한 노력을 했다.

 

 아트포라 공간과 전시공간인 아라

 

또한 대중에게 한복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2001년부터 ()영동시장의 주관으로 한복맵시대회를 열고 있기도 하다. 힌복맵시대회는 영동시장 내에 입점을 한 한복집들이 정성들여 제작을 한 한복을, 모델로 지원을 한 시민들과 함께 선보이는 축제이다. 이 한복맵시대회는 매년 화성문화제 기간 중에, 팔달문 지역 시장 거리축제로 선보인다.

 

아트포라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처음 아트포라가 영동시장 2층에 자리를 잡을 때는, 서편 일부 밖에는 자리하지 못했다. 개관 당시에는 전통시장 예술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모두 9명의 예술가들이 힘겹게 참여를 하였다. 개관 당시에 이곳에 입주를 한 작가들은 사진 조성근, 한복 이정화, 금속공예 어진선, 도자공예 안소원· 허영남, 서예 윤경숙, 회화 김춘홍, 한지공예 이혜순, 전통문양디자인 최윤경, 염색·직물공예 이정하 작가들이다.

 

아트포라의 모든 공방은 안이 들여다보이게 조성을 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전시 공간처럼 보인다

 

개관을 하고 난 뒤 이제 6개월 남짓. 아트포라가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2013년에는 330일부터 시작해 1019일까지 토요문화체험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체험은 토요일 15시부터 17시까지 운영을 하며, 금속책갈피 만들기, 종이죽으로 포장용기 만들기, 투명 장바구니 만들기, 흙으로 엽전 만들기, 단오부채 만들기, 꽃바람개비 만들기, 나도 화가다 등 다양한 체험이 마련되어 있다.

 

날이 따듯해지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영동시장의 창작공간인 아트포라’. 첫날 체험에 아이들과 함께 참가를 했던 박아무개(, 35. 서울)

 

이렇게 전통시장 안에 아름다운 작가들의 공방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앞으로 재래시장들이 이렇게 예술을 끌어안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한다. 그것이 예술과 재래시장이 동반 발전을 할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인 듯하다고 한다.

 

 

재래시장인 영동시장 안의 작가들의 산실인 아트포라.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더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기 위해 무단히 노력을 하는 작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더 한층 발전을 할 수 있는 작가들의 산실인 아트포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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