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리는 늘 사람을 기쁘게 만든다. 그것이 무슨 노래가 되었던지, 노래는 사람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만드는 마술 같은 힘을 갖고 있다. 그런 아름다운 소리를 극찬할 때, 사람들은 흔히 천상의 소리라는 표현을 한다. 그 천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수원시 영통구 매탄2196-97 매원감리교회 지하 연습실을 찾아가보았다.

 

매주 2회에 걸쳐 오전 1030분부터 오후 1230분까지, 이곳을 가면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가 있다. 수원 레이디스 하모니합창단.(단장 장미숙) 1991산남어머니합창단이란 이름으로 창단을 한 합창단은, 199441일자로 레이디스 하모니합창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벌써 21회나 되는 정기공연을 마칠 정도로 연륜이 묻어있는 합창단이다. 25명으로 구성된 레이디스 하모니합창단은 1991년 창단을 한 후, 1992 ~ 2012년 동안 총 80회의 공연을 가졌다. 수원 한 여름밤의 음악축제, 연무대 월드컵 전야축제, 수원합창제, 장애우를 위한 송년음악회, 마예 오현규 음악 50주년 갈라콘서트, 나라사랑 음악회, 야한음악회 등 수많은 공연으로 시민들을 즐겁게 하였다.

 

연습벌레들의 모임, 레이디스 합창단

 

한 번 모이면 두 시간. 일주일에 두 번씩 모일 때마다 지휘자의 지도에 따라 열심을 낸다.

 

소리를 낼 때는 그냥 탁 던지듯 그렇게 내세요.”

 

 

지휘자(박종복. 반주 박현선)의 설명을 듣고 다시 또 연습을 하고, 가사를 정리하고 또 연습을 하고. 전공자들이 아니기에 많은 요구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표정들이 즐겁다. 노래란 남을 기쁘게 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즐거워야 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표정들이 사뭇 밝기만하다.

 

저희는 일주에 2회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정기공연이 닥치면 3회로 연습을 늘리죠. 막바지에는 아예 12일로 합숙을 들어갑니다.”

 

10년 째 단장을 맡고 있다는 장미숙(54). 너무 오래 단장을 맡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단장을 오래 맡을 만큼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노래가 좋아 합창단에 들어왔고, 벌써 18년이란 세월을 합창단에서 생활을 해왔단다.

 

 

처음 우만동에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회 회장을 맡았는데, 한 어머니회장이 합창 단원이었어요. 그 어머니를 따라 합창단에 발을 디뎠죠. 그것이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세월이 되었네요.”

 

많은 우여곡절도 겪었다고 한다. 오래 단장을 하다가 보니, 이제는 임원들과 눈빛만 교환해도 서로의 속사정을 다 알고 있다는 것.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재정적으로 열악한 합창단이다 보니, 단장으로서 많은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공연 등에 지원되는 금액이 극히 일부예요. 그러다 보니 정기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후원회의 도움도 받지만,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해요. 그런 일이 가장 힘들죠.”

 

그래도 이렇게 합창단의 일원으로 공연을 할 때, 남편과 아이들이 찾아오면 남모를 자긍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노래를 하면서 열정이 생기고, 당당해졌어요. 이런 활동은 자기개발도 되지만, 딴 모임보다는 즐거움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노래를 한다는 것이 즐거워 한 때 수술을 받고도 목에 붕대를 감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죠.”

 

한 때는 37명이나 되던 단원들이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자꾸만 줄어들어, 지금은 25명이란다. 지금도 연습을 하다가 나가는 단원들은 모두 생활을 하기 위해서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담을 해준 분들. 좌로부터 박은영 의싱부장, 장미숙 단장, 권순선 소프라노 파트장


 

하모니를 이루듯 세상과 화합하는 법을 배워

 

소프라노 파트장인 권순선씨도 벌써 레이디스 하모니합창단의 단원이 된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노래가 좋아 딴 곳에서 노래를 하다가, 친구를 따라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저는 노래를 좋아해서 합창단 단원이라는 것이 정말 좋아요. 단원전체가 하모니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습을 통해서 스스로 기량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것도 즐겁고요

 

연습에 참가하여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늘 즐겁다고 한다. 합창단 단원으로 처음 시작을 했을 때는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늘 집안에서 좁은 시야를 갖고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공연을 하고 연습을 다니면서 사물을 보는 시각이 넓어졌다고 한다.

 

 

남편과 아이들도 지금은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많이 도와주고 있고요. 노래를 하고나서 가정도 예전보다 더 원만해졌어요. 물론 공연을 하고 연습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죠. 갈등도 있고 감동도 있지만 그런 것은 공연을 마치고나면 서로가 이해를 하고 등을 두드려줄 정도로 관계개선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레이디스 하모니합창단원이 된 것이 뿌듯하다고 한다. 정기공연 등을 할 때는 예산이 많이 부족해 어려움이 따른다고 하는 박은영 의상부장은 앞으로 더 많은 공연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더 좋은 공연도 하고 싶고요라고 한다. 벌써 창단된 지가 22년이 지난 레이디스 하모니합창단. 그 감미로운 음의 조화만큼, 모든 사람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합창단이 되기를 고대한다.

수원시립교향악단 신임악장 한경진.

“음악은 나에게는 인생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음악과 나는 별개로 떼어놓고는 생각을 할 수가 없죠.”

우리나이로 33세. 많지 않은 나이에 수원시림교향악단의 악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한경진. 2월 2일(목) 오전,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연습실에서 만나보았다. 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들의 영향을 받아 접하게 된 바이올린이 인생의 반려자가 된 셈이다.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아

“부모님들이 모두 바이올린을 하셨어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접하게 되면서, 스스럼없이 바이올린을 선택하게 되었죠.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크지 않은 병원이지만, 그곳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피아노도 없는 작은 병원의 무대이긴 했지만, 아마도 그런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들은 칭찬이 오늘을 있게 한 듯합니다. 그 때 사람들이 ‘정말 잘한다.’, ‘감동을 받았다’ 혹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음악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춘기에도 방황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정말 잠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외에는 음악과 함께 생활을 했다.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영재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독일의 베를린 국립음대, 라이프치히음대를 졸업하였다.

“독일로 건너가 바로 몸이 상당히 안 좋았어요. 그래서 한 일 년 정도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외에는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죠.”

어릴 적부터 영재로 소문이 나

한경진은 어릴 적부터 탁월한 기량을 선보였다. 7세 때 월간음악콩클을 비롯하여, 일본 시모노세키콩클, Nuri 바이올린 국제콩쿨, 세계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부산음악콩클, KBS신인음악콩클 등을 석권하였다. 젊은 음악도의 등용문이라는 동아음악콩클까지, 이렇다 할 모든 음악콩클에서 수상을 하였다.

그녀는 9세 때 서울시향과의 협연으로 음악계에 데뷔하였으며, 그 후 KBS교향악단, 수원시향,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부산시향, KNUA 오케스트라등과 협연하며 가는 곳마다 이슈가 되곤 하였다.

한국 최고의 명교수 김남윤의 지도하에 예원학교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입학 및 예술사를 졸업한 그녀는, 독일 베를린국립음대(HDK) Diplom 취득(최우수졸업), 라이프치히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교수 만장일치 만점 졸업하였으며, Meisterklassenexamen 을 전액 장학생으로 최우수 졸업을 하였다.

유학중 유럽의 교향악단들과의 협연기회도 많았다. 학교 내의 정기연주회는 물론이고, Jena Philharmonie , MDR(중부독일방송교향악단), Istanbul Chamberorchestra 와의 협연으로 이미 프로 연주자로서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실내악과 오케스트라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던 그녀는, 24세 때는 세계최고의 피아니스트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와 함께한 독일 방송교향악단(Deutsches Symphonie Orchester Berlin)에서 준단원을 역임하였다.


그녀는 Leipzighochschul orchester 악장을 역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과 유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여만든 Berlin Soloistkammermusik orcherster 에서 부수석 주자로, Berlin 교수협회, 학회, 대사관주체 초청연주 등 활발한 활동뿐 아니라 Mendelssohnhaus, Schumannhaus, Maarkleeberg, Jardhaus 등 초청독주회와 금호아트홀 챔버뮤직 소사이어티의 객원단원역임, Prof.Meinel 과의 Leipzig Trio 등 수많은 실내악 연주로 탁월하고 집중력 있으며 매혹적인 소리를 가진 음악가라는 평을 받았다.

앞으로 최고의 교향악단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싶어

“독일에서 10년 동안 생활을 하다가, 2010년 10월에 돌아왔어요. 귀국 후에는 예술의 전당 아티스트로 발탁이 되어, 2011년 4월 8일 예술의 전당에서 독주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금호 챔버뮤직소사이어티 연주와 앙상블 pan의 리더로도 활동을 했죠. 수원시향과는 협연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는데, 공연을 관람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세계 어느 유수한 오케스트라와 비교해도 수준이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번 수원시향의 악장으로 취임을 하게 된 것도 너무 기쁘다고 한다. 물론 심적인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분히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란 다짐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수원시향은 이미 정상의 위치에 있는 교향악단입니다. 역사도 30년이나 되었고요. 제가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했을 때쯤인 1982년에 수원시향도 창단을 하였습니다. 저와는 참 많은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이곳에서 제가 지금까지 다져왔던 모든 것으로, 주춧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남들과 어울리지를 못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본인은 잘 어울린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 한다.’고 웃으면서 대답을 한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악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한경진. 앞으로 그녀의 더 좋은 무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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