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뜬금없는 질문이다. 왜 내가 그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 살고 안 살고를 대답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지만, 남의 일에 말려들기 싫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굳이 나에게 대답을 요구한다면 난 단연코 못살지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늘 자주 가는 집이 있다. 그저 무료할 때면 한 번씩 찾아가는 집이다. 그러다가 보니 주인장 내외분들 하고도 친하고, 그저 흉허물 없이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 집이 술집이다 보니 별별 사람들이 다 드나든다. 그 별별 사람 중에 정말 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볼 때마다 남자가 바뀌는 여자

 

이 집에 단골이 한 사람 있단다. 그런데 이 분 나이가 꽤 먹을 만큼 먹었다고 한다. 가진 것이 좀 있는지는 몰라도 항상 술을 먹으러 오면 자신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돈 좀 있다고 하는 사람이, 올 때마다 거의 남자들이 달라진다고 한다. 한 번도 한 사람과 동행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매일 남자를 바꾸는 분은 여자이다. 그리고 함께 오는 사람들은 당연히 남자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온다고 하는 이 여자분, 올 때마다 남자가 바뀐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을 했다. 돈께나 있다고 하면 사업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거래처 사람들과 동행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문제의 답은 빨리도 내려진다. 그 근처에 콜라텍인가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곳을 드나드는 여자라고 한다. 그리고 동행을 하는 남자 역시 그곳에 출입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곳에서 만나 함께 와서 술을 한 잔하고 나면 술값은 꼭 여자가 내고, 남자는 여자가 말하는 것에 대해 맞장구를 열심히 친다는 것이다.

 

 

그 콜라텍인가 하는 곳에서는 그 여자 분이 돈께나 있는 사모님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내 돈 갖고 내가 쓰는데 왜 참견을 할 것인가? 한 마디로 그 여자 분이 와서 팔아주는 술도 적지 않다고 하면서, 그 여자 분에 대해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를 들으니, 글쎄다 남자를 참 거시기하게 대우를 하면서 왜 데리고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 남자가 다 자기 것이여.

 

바로 저 여자야. 맨 날 남자 바꾸는 여자가

무료해서 술을 마시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에 들린 술집이다. 간단한 안주 한 가지를 시켜놓고 두어 잔 마셨는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주인이 말을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서 몇 번 본 듯한 얼굴이다. 굳이 그동안 이상하게 보지 않았던 것은, 술집에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또 바뀌었네. 저 여자 세상 남자가 다 자기 것인 줄 아나봐?”

굳이 그 다음 말은 들어야 할 필요가 없다. 나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침 술 집 안은 여기저기 사람들이 차 꽤 시끄럽다. 그런데 그 여자 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 참, 그래서 어쩌자고. 그냥 술이나 처먹어

가까운 곳에 자리를 한 덕분에 앙칼지게 남자를 향해 쏘아붙이는 목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순간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는 좌불안석이다. 사람들이 꽤 있는 술집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여자에게 술이나 처먹어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랴. 무슨 일이기에 저렇게 지청구를 듣고도 얼굴만 벌게져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둘이서 술 한 병을 비우더니 여자는 술값을 계산하고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린다. 이번에도 역시 단 한 마디로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빨리 따라오지 않고 머 해라고. 참 돼먹지 않은 여자란 생각이다. 주인이 그 여자는 이제 나이가 50대 초반이라고 한다. 돈께나 있다는 여자 분, 입고 다니는 입성부터가 명품인 듯하다. 그런데 저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왜 저렇게 나이가 어린 여자에게 꼼짝을 못하고 끌려 다니고 있을까?

 

생긴 것도 예쁘고 돈도 많다는데 소개 한 번 해줄까?”

주인의 농이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당신 같으면 저런 여자 데리고 살겠어?”

(사진은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에스컬레이터는 요즈음 상용화 되어있는 추세이다. 어딜 가나 위층으로 이동을 하려고 하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을 한다. 그런데 이 에스컬레이터로 인해 봉변을 당한 사람이 있다. 이 분 아마 앞으로 에스컬레이터를 보면, 피하고 싶을 것이다. 명절 연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죄 없이 봉변을 당했으니.

문제는 경사가 급한 에스컬레이터에 짧은 치마를 입고 올라 탄 여자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남이야 짧은 치마를 입거나 말거나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정말 황당할 듯하다.

- 사진은 내용과 관계가 없습니다. 뉴시스 이미지 사진을 인터넷 검색으로 빌려왔습니다.

경사 급한 기차역 에스컬레이터

기차를 타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을 할 것이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하면 대개 에스컬레이터로 이동을 한다. 그런데 그 에스컬레이터의 경사가 보통 급한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대형 쇼핑물의 에스컬레이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좁은 공간을 이용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자칫 연세가 드신 분들이나 아이들에게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을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그리고 승강장에서 이층 출구 이동통로로 올라가는 높이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높이는 높고 경사는 급하고, 아래쪽에서 고개라도 들라치면 정말 눈을 어디다가 두어야할지 모를 때가 있다. 더구나 요즘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이, 멀찍이 앞서서 올라가고 있다면 그야말로 난감하다.

죄 없이 봉변을 당한 남자 어찌하오리까?

누가 잘못을 한 것일까? 추석연휴라 기차역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데, 갑자기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난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니, 젊은 남자가 또 다른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유를 듣고 보니 참 가관이란 생각이다. 이 멱살을 잡은 남자 오히려 창피한 줄을 알아야 할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경사가 급한 에스컬레이터 밑에 서 있던 남자가 우연히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젊은 남녀가 있었는데, 아마 여자가 앞에 섰던 것같다. 그런데 이 남자가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여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고 한다.

그 순간 남자는 아무 생각없이 고개를 돌렸는데, 승강장으로 내려 온 여자의 일행인 남자가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치한으로 몰고 간 것. 남자는 우연히 위를 보았을 뿐이라고 하고, 여자는 한참을 쳐다보았다고 하고. 그러고 보니 이 여성분 치마가 유난히 짧다. 아마 아래서 올려다보았다면 속옷이 보일 정도 였으니.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참 남의 일에 참견을 할 수 없어, 그냥 보고 있었지만. 이럴 경우 누구의 잘못일까? 에스컬레이터를 경사가 급하게 만든 철도공사의 잘못일까? 아니면 짧은 치마를 입고 높은 곳에서 앞장 서 내려 온 여자의 잘못일까? 그런 여자를 뒤에 세우지 않고 앞에 세운 남자의 잘못일까? 그도 아니면 위를 올려다 본 남자의 잘못일까?

그러나 여자친구가 그렇게 짧은 옷을 입었는데도, 비탈진 에스컬레이터 앞에 세우고 내려온 이 남자야말로 제일먼저 비난을 받아야할 사람이다. 위를 보았다고 무엇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부터 반성을 해야할 듯. 심하게 짧은치마를 입고 경사가 급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시는 여성분들. 그냥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세요. 애매한 사람 잡지마시고. 요즈음 신 풍속도인 에스컬레이터, 알고보니 흉물이었네.

금연’이란 담배를 끊는다는 것이다. 담배는 ‘백해무익’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담배 한 대가 스트레스를 많이 완화시켜 준다고도 한다. 의학적으로야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본인들이 그리 생각한다면 그도 무엇이라고 할 수는 없다.

흡연인구가 줄어든다고 한다. 발표를 그대로 믿을 사람도 없겠지만, 실제로 생활을 하면서 보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만 같다. 실제로 흡연구역을 가보면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세상살이가 힘든데 담배라도 피워야지’하던 말이 생각이 난다.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계가 없습니다

흡연인구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

요즈음 철도역은 모두가 다 금연지역이다. 예전에는 기차 안에서도 마음대로 담배를 피웠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흡연 칸이 생겨났고, 이제는 아예 기차 안 어디서도 담배를 피울 수가 없다. 그러더니 기차역까지 금연지역이 되어버렸다. 역사 밖 한편에 마련해 준 흡연 장소, 그것도 문 앞에서 밀려나 저만치 역사 끝으로 떨어진 곳에 마련을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만해도 흡연을 할 수 있는 장소를 가면, 대개는 어른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젊은 청년들이 더 많이 보인다. 그것만이 아니라, 이제 갓 20대를 넘겼을까 한 아가씨들이 담배를 물고 있다. 주위에 시선일랑은 아예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물론 담배는 기호품이다. 자신이 알아서 피울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정서에는 젊은 사람, 그것도 젊은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조금은 조심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곁에 어른이 있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담배를 물고 연기를 내뿜는다. 아주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
우리 같은 사람은 어디 가서 피워?'

어제 남원으로 내려오기 위해 역사에 나갔다. 시간이 많이 남아 밖으로 잠시 나가보았더니, 웬 어르신 한 분이 화가 나 들어오신다. “젊은 것들이”란 말이 귀에 꽂힌다. 그냥 무시해 버리려다가 어르신께 여쭤보았다. 불편한 것이라도 있느냐고?

“저기 좀 보셔. 새파란 것들이 담배 꼬나물고 있는 꼴을”

그러고 보니 젊은이들과 아직 앳된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담배를 피우러 나갔던 어르신이 그 모습을 보았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있어서요?”
“그럼 저기서 저 어린 사람들하고 나하고 맞담배질을 해야겠소?”

아마 어르신 생각에는 그것이 몹시도 불편하셨나보다. 하기야 연세가 드신 분들 앞에서는 담배를 삼가는 것이 우리네 습속이었다. 그것이 꼭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보기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런 점이다. 금연을 하라고 하면서 모두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지역으로 설정을 하고, 그 한편에 내동댕이치듯 흡연구역을 만들어 준다. 그러면 그곳에서는 어르신들이나 젊은이들이나, 그저 함께 담배를 맞대고 피울 수밖에 없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담배를 피우는 연령은 다양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꼬우면 담배 끊어’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젊은이들에게 어른을 공경하라고 가르치는 나라. 그리고 담배는 해롭다고 끊기를 바라는 나라. 적어도 이런 나라라면 아주 사소한 것 정도는 생각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르신들이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조차 불편한 나라가 되어서야, 어디 이 나라에서 삼강오륜이나 어르신 공경을 찾을 수가 있겠는가? 스스로 돼먹지 않은 나라로 만들어가고 있는 분들, 어떻게 좀 해봐봐!

세상을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본 이야기 하나를 해야겠다. 체질적으로 연애이야기는 맞지도 않거니와, 표현력 또한 부족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도 머쓱하긴 하다. 그러나 지금도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참으로 아까운 여자를 놓쳤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를 당당하게 만드는 여자

지금이야 세상이 많이 바뀌어졌다. 하지만 사람의 심성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아마 지금 세상에도 이런 여자가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총각 때니 아마도 내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어섰을 때쯤으로 기억이 된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동료였으니, 벌써 40년은 지난 이야기이다.


한 직장에 있는 동료와 연애를 한다는 것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늘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설레기도 하니까. 또한 복도에서라도 마주치면 눈인사라도 하고 지나치지만, 그 또한 직장생활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당시는 근무를 마치고 데이트를 한다는 것이, 분위기 좋은 곳을 찾거나 좋음 음식을 먹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가까운 곳에 있는 길을 걷는다거나, 음악다방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시는 것이 고작일 때이다. 그런데 그렇게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고 계산을 할 때면, 내가 들고 다니는 책을 슬그머니 집어간다.

그리고는 핸드백을 열어 무엇인가를 책갈피에 끼워, 다시 책을 돌려준다. 책 표지를 열면 그 안에는 언제나 빳빳한 지폐 몇 장이 들어있다. 그것으로 계산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언제나 앞장 서 문을 나선다. 남자를 당당하게 만드는 행동이다.

무용을 하는 이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인가 위였다. 아마도 그 친구 집안에서 반대가 없었다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 길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는 집 안의 반대라는 것이 그리 쉽게 넘길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결국 그 친구는 외국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지금 같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았을 텐데 말이다.

결코 앞서지도 나대지도 않는 여자

당시는 길을 걸을 때도, 지금처럼 찰떡 붙듯 왜 붙어 다니지 못했는지 모른다. 지금 젊은이들이 보면, 머 이런 바보 같은 연인이 다 있나 하겠지만. 길을 갈 때도 한 번도 앞장 서는 일이 없었다. 다만 앞을 설 때는 어쩌다가 길거리에 몇 개 없었던 육교라도 오르려면, 항상 한 발 앞서 육교를 오른다.

그런 행동이 하도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왜 육교를 오를 때는 나보다 먼저 오르는가를. 대답을 듣고 참으로 세상을 올곧게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자가 험한 길을 걸을 때는 남자가 뒤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남들 보기에 남자가 여자를 보호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처음 여자를 새겨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두고두고 잊히지가 않는 것이, 아마도 이런 마음 때문인가 보다. 남자를 편하게 하는 여자. 그리고 남자를 당당하게 만들 줄 아는 여자. 이런 여자가 지금도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연애에 대한 글을 써보질 않아 표현력이 부족하여 고작 이렇게 밖에 표현을 할 수가 없지만, 아마도 이런 여자가 있다면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무조건 잡아야 내 인생이 잘 된다는 생각이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새록새록 생각이 나는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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