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한달 간이나 10월 1일 축제에 매달렸다. 출연자 섭외에서 부터 프로그램 작성, 팸플릿 시안, 거기다가 전시준비까지. 버거운 나날이지만 표가 나지 않는 것이 축제의 기획자이다. 성공을 하면 그냥 넘어가고, 자칫 큰 효과를 얻지못하면 욕은 혼자 다 먹어야 하는 것이 축제의 기획이다. 준비도 어렵지만, 행사 당일 혹 사람이라도 모이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노심초사 해야만 한다.

10월 1일 남원 요천가 사랑의 광장에서 열린 '남원민군한마당축제'. 이릅부터가 남다르다. 제63회 국군의날 기념으로 열리는 이 큰잔치에는 출연자만도 300여 명. 단 하루만에 하는 행사치고는 큰 행사에 속한다. 이 축제를 위해 남원시청이며 주최측인 7733부대를 운천스님과 함께 참 뻔질나게도 드나들었다.


복합적인 기획으로 승부를 걸다

행사당일 프로그램은 다양했다. 전통과 현대, 젊음과 패기가 넘치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군과 민이 하나로 어우러져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보듬어 주는 그런 축제장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문예공모까지 10월 1일로 끌어드렸다. 그리고 어딜가나 1시간 이상 소요가 되는 개막식을 없애버렸다. 꼭 축사를 할 기관장들은 무대가 바뀔 때, 잠시 비는 시간을 이용하여 1분 이내의 인사를 하게했다. 관람객들이 지리함을 갖지 않게 최선의 배려를 한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모든 준비는 착착 진행이 되었다. 군인들은 주민들에게 보여줄 군 장비 전시와 사진전. 그리고 서바이벌 총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다. 또한 10월 2일 '노인의 날'을 위한 축제를 겸했기 때문에, 남원보건소에서 10여명이 동참하여 어르신들의 건강을 살펴보기로 했다. 



유치원과 초등부 학생들이 문예공모전에 학부형들과 함께 참가를 하였다.(위) 이 공모전에서 입상을 한 미술작품들은 '갤러리 선'에서 잔시를 할 예정이다. 남원보건소 의사와 간호원들이 어르신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가운데) 전시가 된 군수장비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시 자리를 옮겼다. 선원문화관 내게 전시공간인 <갤러리 선>에서는 연당 강현숙의 '내 마음의 풍경'전이 열려 그 개막식이 이루어졌다. 이 전시 역시 민군한마당큰잔치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다. 선원문화관 이사장인 운천스님을 비롯하여 오늘 행사의 주최측인 7733부대장 김종태 대령 내외, 남원교육지원청 박주영교육장 등 인사들이 개막식을 가졌다.


당일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강현숙의 '내 마음의 풍경'전 개막식과 작가에게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는 사람들 

개막전부터 행사가 시작되다.

2시 20분 개막식을 하기 전부터 무대에는 '신관사또부임행차'가 자릴잡고,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2,5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객석에는 1,500명 정도의 관람객들이 자릴 잡았다. 군장비 전시회와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의 그리기와 글짓기에도 200여명이 참가를 하여, 부모님들까지 500여명의 인원이 무대 밖에서 열심을 내고 있는 중이다.

오후 2시 20분 굉음을 내며 행사장으로 다가 온 헬기에서는 장병들이 밧줄을 타고 적을 불시에 공격하기 위한 전술훈련인 패스트로트가 선을 보였다. 그리고 7733부대 연대장인 김종태 대령과 장병 50여명이 무대에 올라 개막선언과 함께 관람객들에게 '충성'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인사를 했다. 


식전 행사로 진행된 '신관사또부임행차' 곤연과 관람을 하고 있는 관람객들

35사단 군악대는 그 전에 광한루원 앞에서 출발을 하여 춘향교를 건너 행사장까지 시가행진을 한 후이다. 첫 무대는 군악대의 연주로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남원시림합창단의 아름다운 선율이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군인들만 500여명, 그리고 공연단 전체가 300명이 넘는 큰 무대였다. 합창단의 공연에 이어 특공무술을 선모일 때는 연신 환호와 박수가 그치지를 않았다.

다음으로 6개 부대 120명의 병사들이 서로의 힘을 자랑하는 기싸움에서는 용기의 상단에 꽂힌 꿩장목을 먼저 뺐는 시합이었다. 젊은 장병들답게 고함소리와 서로 부대의 명예를 걸고 상대방의 장목을 빼앗느러 함성이 그치지를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여고댄싱팀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무대는 장병들의 환호속에 진행이 되었다.



4시간 30분이 넘는 공연시간. 그러나 자리에 앉은 관람객들은 자리를 뜰줄을 모른다. 한낮의 해가 아직은 조금 따가운데도 자리를 지키면서 함께 환호하고 박수를 치며 즐긴다. 남원시립국악단의 소고춤과 민요 한마당, 그리고 다시 여고 댄싱팀의 무대에 이어, 오늘의 메인 공연이라 할 수 있는 남사당 줄타기가 시작이 되었다. 줄위에 오른 어름산이가 줄을 한 번씩 건널 대마다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 아마도 그 위험한 어름산이에게는 이 박수소리가 가장 힘이되었을 것이다.




"정말 좋은 축제였네. 이런 구경을 사켜주어 정말 고맙네"

남사당 줄타기가 끝나고나서 기싸움의 준결승과 결승이 진행이 되었다. 모든 행사를 마친 시간은 5시 40분. 주변 정리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한다. "정말 좋은 축제를 보았습니다. 내 생전 그렇게 오랜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본 축제는 처음입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의 한마디 말씀. 아마도 이 소리를 듣기 위해 그 수많은 날을 고생을 한 것이나 아닌지. 





축제는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 딴 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 자리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관람객들도 함께 즐겨야 한다. 이번 남원민군한마당큰잔치가 추구했던 축제의 이상이었다. 




모든 행사가 끝났다. 맥이 풀린다. 축제 며칠전부터 감기몸살로 영 죽을 맛이다. 그래도 축제를 진행하는 것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 그토록 모든 것을 마치고나서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를 잤는지 모른다. '정말로 바람직한 축제의 표본을 보았다'는 한 분의 말씀에서, 우리는 그 모든 걱정과 고통을 잊고만다.         

7월 19일. 아침 일찍 ‘스님짜장’ 준비를 하여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 구서 전철역 옆에 마련한, ‘어르신 무료급식소’로 찾아가는 길이다. 7월 복중에 한 달에 10번 이상을 이렇게 전국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가다가 갑자기 차 안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에어컨까지 고장이 난 것이다.

창문을 열어보아도 찜통이다. 그래도 어찌 할 것인가? 세 시산 이상을 달려 도착했다. 지난 번에 한 번 다녀왔기 때문에, 분위기는 대충 알고 있는 곳이다. 오늘도 역시 배식시간이 아직 멀었는데도, 많은 어르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다. 밖으로는 전과 다름없이 긴 줄이 이어져 있고.



부산 혜일암의 어르신 사랑

부산 혜일암. 그리 크지 않은 절집이다. 주지 우신스님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지하철 근무자들과 적십자 자원종사자 등, 30여 명의 봉사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 중에는 어린 학생들도 보인다. 혜일암 신도님들은 부모님께 공양을 지어 올리듯, 매주 화요일마다 이곳에서 600~800명의 어르신들께 점심 대접을 하고 있다.

그 비용도 만만치가 않을 듯하다. 아마도 한 번 급식을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작은 암자에서는 벅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도 낯 한번 붉히지 않고, 매주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께 정성들여 지은 점심 공양을 하고 있다.


점심을 드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분들과 준비를 하기에 여념이 없는 혜일암 봉사자들

“할머니, 이곳에 자주 오세요?”
“거의 매주 와요. 저 스님이 화요일이면 맛있는 음식을 해주니까”
“오늘은 멀리 남원에서 짜장면을 해준다고 해서 일부러 나왔어요. 지난번에도 한번 먹었는데 맛이 있어서” 
 

어르신들은 그저 이렇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에 대해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힘들지만 어르신들이 혹여 끼니라도 굶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혜일암 봉사자들. 세상에 보살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누구는 무료급식을 반대한다고 생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스님짜장 배식이 시작되었다. 자원봉사자 가운데는 나이어린 학생들도 있다.

급식소의 노악사님들 정말 멋지십니다.

한창 배식이 시작되고 어르신들이 짜장면을 맛있게 드신다. 그런데 그 전부터 음악이 그치지를 않는다.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시는 어른도 연세가 70은 넘어 보이신다. 그리고 악기 연주를 하시는 분은 이미 80이 넘으셨다고 한다.


짜장을 드시는 어르신들과 연주를 하시는 노 악사님

“저 어르신들 매번 나오시나요?”
“자주 나오세요. 혜일암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날은 꼭 나오시는 것 같아요”
“연세가 꽤 되신 듯 한대요.”
“악기 연주하시는 분은 80이 넘으셨대요. 그래도 정정하세요. 이렇게 당신과 비슷한 또래의 분들에게 음악으로 조금 더 즐겁게 해주시기 위해서 연주를 하신데요”

아름답다. 늙어 주름진 손이 빠르게 선에서 선으로 이동을 하면서 아름다운 음률을 만들어 낸다. 누가 이 분들의 멋진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인가?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아름답다.

“어르신 건강하게 오래사세요. 그리고 좋은 음악으로 마음이 아픈 분들을 많이 위로해 주세요.”

괜히 에어컨이 나오질 않는다고 투덜거린 내가 낯이 뜨겁다.

6월 29일, 순천시 가곡길 82-5에 새롭게 문을 여는 '송광 실버하우스'에 모이신 분들에게 ‘스님짜장’ 봉사를 하고 난 다음날인 6월 30일, 아침 일찍 준비를 마치고 광주로 향했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거리고 내린다. 더위가 조금은 가셔지는 듯하지만, 불 옆에서 짜장을 볶고 면을 삶아야 하는 '스님짜장 봉사단'은 호강에 겨운 소리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1603-1에 소재한 송광종합사회복지관(관장 도제스님). 그 건물 지하에는 '자비의 식당'이 있다. 12시에 맞추어 스님짜장을 배식하기로 약속을 했기에 서둘러야만 한다. 복지관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께 식사 배달사업을 하고 있다. 복지관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주변 어르신들께 식사배달을 마치고 속속 모여든다.


송광종합사회복지관과 '자비의 식당' 현판


이런 난감한 일이 있다니.

배식 시간이 되기도 전에 식당 안은 미리 자리를 잡으신 어르신들로 만원이다. 괜히 봉사단원들이 마음이 바빠진다. 반죽을 하고 눌러놓은 밀가루를 면을 뽑는 기계에 넣고 돌린다. 처음에는 잘 빠져 나오던 면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아무리 기계를 다시 돌리지만 마찬가지이다.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짜장스님인 운천스님과 봉사단원들의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당황한 것이다. 어르신들은 와서 기다리시는데, 면이 뽑히지를 않는다. 이번에는 송광복지관 관장이신 도제스님까지 합세를 하셨다. 손수 눌러진 면을 칼로 썰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라도 300분이 넘는 어르신들께 스님짜장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께 식사를 날라다 주고 돌아오는 자원봉사자 학생과 스님짜장을 제공한다고 적은 안내판 


네 그릇을 드시다니, 너무하세요 정말

어르신들은 많이 드시지를 않으신다. 그래서 일부러 양을 적게 담았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짜장면을 쟁반에 받쳐 나를 때마다 손을 내밀어 한 그릇씩 들고 가버리신다. 뒤편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 앞에서 다 집어가면 우리는 언제 먹으라는 것이야”

금방 식당 안이 술렁거린다. 갑자기 식단 안에 냉냉한 기운이 감돈다. 복지관 선생님들이나, 자원봉사를 하는 학생들이나 다 난감한 표정들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드시겠다고 벼르고 계시는 분들인데.



면을 뽑고 있는 짜장스님인 운천스님. 면을 썰고 있는 것을 보시고 계시는 송광복지관장이신 도제스님(가운데) 짜장을 나르기 위해 줄을 선 봉사자들 


“안돼요. 아직 못 드신 분들도 계시는데”

결국은 밀고 당기기가 시작이 되었다. 300분에게 드실 것을 준비했지만, 여기저기 복지관 안에 자리를 잡으신 분들을 보니 더 되는 것만 같다. 거기다가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짜장을 들고 지나갈 때마다 슬쩍 집어가시는 할머니 한 분.

“아따 할머니 너무하셔 잉~ 우째 세 그릇이나 드신데“
”내가 언제 세 그릇을 먹었다고 그래.“
”내가 주욱 지켜보았는데 멀 그러셔“
“맞다. 세 그릇 째”



곁에서 드시던 어르신도 거드신다. 그래도 막무가내시다. 결국은 세 그릇을 다 드시고도 아직 양이 차지 않으셨는지. 그렇게 광주 송광복지관의 ‘스님짜장’ 봉사는 막을 내렸다. 뒤늦게 뒤처리를 하고 밥에 짜장을 넣어 먹는 봉사자들의 얼굴에 환힌 미소가 퍼진다. 

옛 풍습을 지키는 거창군 무촌마을 사람들

답사를 하다가 보면 이런저런 일을 많이 당한다. 마을에 들어가면 길을 묻거나 문화재의 소재를 파악하다가 보면,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이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경남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 무촌마을에 들렸다. 마을에는 경남 기념물 제198호인 수령 400년이 지난 은행나무가 서 있기 때문이다.

마침 무촌마을 은행나무가 서 있는 옆에는 마을회관이 있고, 그 옆에 정자가 있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고 계시다. 이 은행나무는 원줄기에서 새싹이 나와 흡사 세 그루의 나무가 모여 있는 듯이 보인다. 가지는 8개가 사방으로 뻗어 자라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암나무로 가을이 되면 많은 은행을 수확한다고 한다.


무촌마을 마을안에 자리잡은 수령 400년의 은행나무. 이곳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마을에서는 이 나무를 할머니 당이라고 한다. 정월 보름에 지낸 당제 때 쳤던 금줄이 쳐져 있다.


마을 사방에 당산이 있는 무촌마을

이 은행나무 앞에는 제단이 있다. 돌로 만든 제단의 앞쪽에는 ‘당산제단’이라고 음각이 되어있다. 이 당산을 마을에서는 할머니 당이라고 부른다. 이 할머니 당에는 비린 음식을 제수로 차리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 당제에 대해서 질문을 드렸더니, 어르신들이 굳이 이장님을 찾는다. 마을을 찾아오신 손님들에게 이장이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들을 하시는 것을 보니 마을 이장님보다 윗분들이시다. 그리고 당제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아시는 듯하다. 그런데 굳이 이장님을 불러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잠시 후 무촌마을 이민언(남, 68세) 이장님이 정자로 오시고 나서, 본격적인 마을 당제에 대해 들을 수가 있었다. 이장님과 어르신들은 앞장서 마을에 있는 네 곳의 당산을 안내를 해주신다.



당제를 가장 먼저 지내는 할아버지 당으로 오르는 길 양편으로는산죽이 하늘을 가란다. 제단은 두개가 놓여있으며 하나는 산신단, 또 하나는 .주산신제단'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아래편 돌 밑에는 정우러 보름에 당산제를 올린 후 제물로 사용한 돼지머리를 묻는 곳이라고 한다


사람은 자고로 근본이 있어야 해’

마을 산제당이라고 하는 할아버지 당을 찾아가면서 동행을 하시는 어르신께 슬쩍 물어보았다. 왜 꼭 이장님이 오셔서 말씀을 하셔야 하는 가를. 그랬더니 간단하게 대답을 하신다.

“사람은 자고로 근본이 중요한 것이지. 우리 마을의 가장 어른이 이징님 아니신가? 그래서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당연히 이장님한테 들어야 하지”

산제당인 할아버지 당을 올라가면서 계단에 나 있는 풀을 뽑으신다. 할아버지 당 근처에도 금줄을 둘러놓았다. 참나무인 당산나무는 밑동의 둘레가 2m 가 넘을 듯하다. 몇 년이나 묵은 나무냐고 질문을 드렸더니, 아주 오래 되었다는 것 밖에는 알 수가 없다고 하신다.

산제당에는 산신당이라고 쓴 제단이 있고, 그 옆에는 ‘주산신제단’이라고 쓴 돌이 놓여있다. 이곳이 바로 가장 먼저 제를 올리는 할아버지 당이라는 것이다. 이곳에 제를 지낼 때는 돼지머리를 사용하며, 제사를 마치고 나면 그 돼지머리를 땅에 파묻는 다는 것이다. 제단 옆에는 커다란 돌이 보이는데, 그 밑에 돼지머리를 통째로 묻고 내려온다고 한다.


동구당산이라 부르는 아들당산과 대곡천 옆 논둑에 쌓아 올린 며느리당산


돌탑으로 쌓은 아들당산과 며느리당산

할아버지 당을 돌아보고 마을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마을 입구라고 하는 곳에 자리한 아들당산으로 향했다. 아들당산은 우측으로 연수사를 들어가는 길 건너편 산 아래, 돌을 쌓아 만든 누석탑의 형태로 조성을 하였다. 이곳에도 금줄을 쳐 놓았는데, 이 당산을 ‘아들당산’ 혹은 ‘동구당산’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며느리당산은 마을의 북쪽 대곡천이 흐르는 곁 논둑에 자리하고 있다. 며느리 당산 역시 돌탑을 쌓아놓았다. 네 곳의 무촌마을 당산은 마을을 에워 쌓고 있는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다. 어르신들은 당산제를 정성을 다해 드린다고 말씀을 하신다. 인근에 있는 마을들도 당산제를 지내지 않다가, 마을에 화가 있어 다시 시작을 하였다고 귀띔을 해주신다.


마을 옆으로 흐르는 대곡천. 예전에는 이곳에서 정월이면 집집마다 용왕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마을에서 사용하는 당산제 축문. 아들당산의 축문으로 네 곳 모두 축문이 있다.


축관을 지내셨다는 어르신께서 축문을 가져다주신다. 컴퓨터에 저장을 해 놓고 매년 그 해에 맞게 출력을 하여 사용을 하신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고로 근본이 있어야한다고 말씀들을 하시는 무촌마을 어르신들. 이장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아도, 이 마을이 얼마나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어, 오늘도 무촌마을은 모두가 탈 없이 지내는가 보다.


‘스님짜장’은 요즈음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가는 곳마다 ‘스님짜장’을 찾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렇다고 자랑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자랑을 할 일도 아니다. 이렇게 버스를 몰고 전국을 다니는 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헐벗고 외로운 사람들과 그저 맛있는 음식 한 그릇을 나누고 싶어서이다.

‘헐벗은 이에게 옷을 주어 의복공덕을 하였느냐
배고픈 이에게 음식을 주어 급식공덕을 하였느냐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어 해갈공덕을 하였느냐
깊은 내에 다리를 놓아 월천공덕을 하였느냐‘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상여소리의 한 구절이다. 이 소리는 ‘무가 회심곡’의 사설에서도 보인다. 사람들은 그저 이 소리를 듣고 흘려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 몇 가지 공덕을 논하는 것은 우리에게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우리도 ‘스님짜장’이 먹고 싶어요.

전화가 걸려 왔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자장면을 좀 해 줄 수 없느냐는 질문이다.

“저희가 한 600명 정도를 매일 무료급식을 하고 있는데, 자장면을 한 번 해주고 싶어서요.”
“언제쯤 필요하신데요?”
“가급적이면 빨리 했으면 해서요. 그런데 저희는 거리가 좀 멀어요”
“거리는 관계없습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라도 저희가 필요하면 달려가니까요”

요즈음 인터넷을 통해 스님짜장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5월 한 달만 벌써 9곳을 다녀왔으며, 이 달에만 7,000 그릇의 자장면을 급식한다. 가격으로 따져도 한 그릇에 4,000원이면 28,000,000원의 금액을 무료로 급식을 한 셈이다. 왜 이렇게 전국을 다니면서 자장면을 만들어 무료급식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 땅에 아직도 스님짜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봉사를 다니다가 보니, 그 경비 또한 만만치가 않다. 그뿐 아니라 연일 봉사를 하느라 사람들도 힘이 들어 하기도 한다. 준비를 하고 먼 길을 달려가 봉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준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아

스님짜장이 찾아가는 곳은 복지관에 계시는 어르신들, 군장병들과 전경, 장애우들, 그리고 무료급식소 등이다. 전국 어디나 전화가 걸려오면 날을 잡아 준비를 한다. 말이 그렇지 한 달에 10번이면 3일에 한 번은 이동을 해야 한다. 먼거리는 새벽부터 눈을 부비며 차에 오른다. 연이어 이틀이 걸리는 날은 쉬지를 못한다. 다녀와서 바로 다음 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님짜장은 현장에 가서 자장을 볶아야 한다. 그러다가 보면 커다란 솥 두 개를 항상 차에 싣고 다녀야 하는데, 그 무게가 상당하다. 거기다가 100명분의 면을 준비하려면 20kg짜리 밀가루 한 포를 다 반죽을 해야 한다. 1,000명이면 자그마치 열 포대를 반죽을 해야 한다. 시간으로 따져도 반죽을 하는 데만 10시간 이상이 걸린다. 거기다가 자장면에 들어가는 각종 야채와 콩고기 등도 준비를 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준비하는 데만 하루가 걸린다. 연이틀 봉사를 나가려면 그야말로 비상이 걸린다. 한편에선 밀가루를 반죽하고, 한편에서 야채를 썰어댄다. 그러면서도 연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몸에 밴 봉사정신 때문이다.


곳은 많은데, 정말 많은데’

‘스님짜장’의 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신기한 듯 바라다본다. 그리고 바로 웃음을 터트린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스님짜장이다.

“여보세요. 여기는 광주에 있는 장애우 복지관인데요. 이곳도 와 주실 수 있나요?”
“당연히 가야죠. 이렇게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더 고맙죠.”

갈 곳은 정말로 많다. 그러나 아직은 봉사하는 인원도 부족하고, 그 많은 곳을 모두 다니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 주변에 정말로 아픔을 당하고 있는 분들에게, 정성이 가득한 자장면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싶다. 갈 곳은 많은데, 정말로 좋은 방법이 없을까?

(주)밀가루와 야채 등을 후원하시고 싶으신 분은 연락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063)631-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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