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안에서 신발과 동전, 지폐가 마당으로 뿌려진다. 그것은 어찌보면 이 사회를 질타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이 항아리라는 갇혀진 공간속에서 갖고 있는 수많은 재물을 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깨트려 소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9월 11일 오후 5시부터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417-24에 소재한 수원시미술전시관 앞에서 펼쳐진 김석환의 행위예술이다. 이 행사는 (사)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가 주최하는 2012 수원예술인축제 기획전인 ‘소통·메시지’의 식전행사로 펼쳐졌다.

 

 

수원미술전시관 소통과 메시지 전을 열다

 

‘소통·메시지’전은 9월 11일(화)부터 17일(월)까지 열리며,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수원시민과 예술인이 함께 예술적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메시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술, 세대, 장르를 떠나 변화의 혁신을 추구해, 멈춤이 아닌 진화와 화합으로 소통함에 그 내적사고를 둔 전시이다.

 

107명의 수원미술협회 회원들이 참가한 이번 전시의 개막식에는 노영관 수원시의회 의장을 비롯하여, 수원시장을 대신하여 참가한 박흥식 문화교육국장, 수원문화재단 유완식 대표이사와 김훈동 수원예총회장 등이 참석을 하였다.

 

 

 

소통, 독 속에 피는 사랑

 

식전행사로 펼쳐진 행위예술가 김석환의 ‘소통, 독 속에 피는 사랑’은 구조물로 만든 소와 지게 위에 올린 독을 소품으로 사용을 했다. 처음에 관객들에게서 걷은 돈과 관객들의 신발을 독 안에 넣고, 김석환의 행위예술이 시작이 되었다.

 

신발은 우리가 걸어 온 흔적들을 담고 있다. 신발은 아득한 옛날부터 걷기 시작하여, 먼 훗날까지 걸어야 하는 메신저와 같은 상징물이다. 우리는 이 신발을 신고 걸으며 세대와 거리, 공간 등을 넘어 소통을 하게 된다. 이 소통은 아주 오래전부터 앞으로의 미래까지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걸을 것이다.

 

 

 

신발은 시대의 상징이다. 깨진 독 속에서 주화를 찾아 신발 안에 채우는 작업은 미래의 유물을 발굴하는 것과 같은 현장의 상징한다. 그리고 그 유물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가 된다. 이것이 바로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김석환은 이 행위에 대하여

 

“신발의 의미와 유물과의 만남은 많은 상상과 미학을 우리에게 던지지만, 이는 존재론에 대한 하나의 회귀로 시공간을 통시합니다. 연기는 미래와 현재를 잇는 정화된 시각적 소통을 연출하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한다,

 

 

행위가 이루어지는 동안 권미강(여, 47세. 전국작가협회 회원)의 ‘독 속의 사랑’이라는 자작시낭송이 곁들여졌다,

 

내가 첫발을 떼었을 때

너는 온전히 내 발의 길 위에 서 있었다.

내가 첫 발자국을 남겼을 때

너는 이미 나와 똑 같은 발자국으로

내 흔적을 찍었다.

대지의 숨결이

너와 내 발자국의 흔적들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켜켜이 쌓여진 너와 나의 발자국들

저 각양각색의 흔적들

한 켤레의 이름으로 하나가 된 우리.

 

‘허무처럼 큰 공간은 없다.’

함께 길을 떠나 얽혀진 흔적들이

검은 항아리 아가리 속으로

추억을 던져 넣은 첫 발걸음의 기억들아!

텅 빈 것 속에 텅 빈 마음을 던져 놓은 들

채워지지 않는 허무, 꽃으로 피다(이하 하략)

 

 

독 속에 있던 신발은 그 안에 돈이 담긴 채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소의 꽁무니에서 흰 연기를 뿜으며 배우는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어쩌면 저 흰 연기가 시공을 초월하는 여행을 하는 물체의 뒤편에서 추진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소통이 없이 막힌 인간들에게 소리라도 치는 듯, 굉음을 내면서 말이다.

답사를 많이 다니는 나로서는 장거리 여행이 기본이다. 버스를 많이 탈 때는 5~6시간 정도가 기본이기 때문에, 차로 이동을 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바로 터미널에 있는 공중화장실이다. 일단 속을 비워야 장거리 여행을 해도 안심을 하게 되니까.

버스는 대개 출발을 하고나서 2시간 정도가 지나야 휴게소에 들린다. 하기에 2시간 정도 참을 만큼은 속을 비우는 것이 편하다. 8월 29일 일요일, 대전에 가서 일을 좀 보고 천안으로 향했다. 버스를 이용해 답사를 하다가 보면 시간이 곧 돈이다. 버스를 자주 갈아타다가 보면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답사를 하느라 29일 오전 9시 반에 길을 나서 대전을 거쳐, 천안지역을 답사한 후 돌아왔다.

공중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사람

어제따라 천안지방은 국지성 호우가 줄기차게 쏟아졌다. 그래도 나선 길이 아니던가. 몇 곳의 답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천안시외버스 터미널로 들어섰다. 표를 사놓고 보니 시간이 20분 정도 여유가 생긴다. 늘 하던 버릇대로 공중화장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젊은이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나온다.

마침 그 칸만 비어있는지라, 방금 나간 칸이지만 들어섰다. 그런데 웬 봉지가 하나있다. 안을 보니 신발이 들었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 밑으로는 옷도 있다. 한 마디로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입었던 것은 버리고 가 버린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를 알 수는 없다. 멀쩡한 신발과 옷이다. 그런데 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입었던 것을 버리고 간 것일까?

옷 보따리를 들고 따라 나가 보았지만,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버려진 옷가지가 아깝기도 하거니와,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야 검정고무신을 신고 학교를 다닐 때 사람이다. 흰 운동화 한 켤레를 사면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도착지의 공중화장실에서도 신발이 든 봉투가 있었다.

하기야 그때와 지금은 세상이 다르다. 하지만 멀쩡한 옷가지를 공중화장실에서 갈아입고, 입었던 것을 버리고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옷을 들고나가 분리수거함에라도 넣으려고 하니, 한 분이 그냥 버리란다.

“아깝지 않으세요?”
“하루에도 그런 옷가지 수도 없이 나와요”
“옷가지가 왜 나와요?”
“낸들 알겠소. 갈아입고 그냥 버리고 가요. 돈이 남아돌아가는지”

할 말이 없다. 그냥 놓아두고 나오면서도 영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힘들여 번 돈일 텐데. 그리고 이렇게 멀쩡한 것인데. 목적지에 도착을 해 일부러 공중화장실을 한번 열어보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엇이람? 봉지가 있어 열어보니 그곳에도 운동화가 하나 들어있다. 이것 역시 멀쩡하다. 세상이 어찌 이렇게 변했을까? 공중화장실이 이렇게 변장을 하는 곳으로 변하다니. 이곳에서 변신을 하고 이성친구라도 만나러 가는 것일까? 그래서 벗은 옷가지를 갖고 다닐 수 없으니 버린 것은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든다.

굽이 조금 닳았지만 멀쩡한 신발이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고 하지만, 멀쩡한 옷가지를 공중화장실에서 바꾸어 입고 버리고 가는 사람들. 앞으로는 시외버스터미널에는 헌옷 수거함과, 신발 수거함이라도 비치를 해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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