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신복(神服)을 차려입은 여인이 주변의 눈길도 의식하지 않은 채 대성통곡을 한다. 왜 내림굿을 할 때는 모두가 저렇게 울어야 할까? 하긴 울만도 하다. 사회에서 남들이 흔히 말하는 무당(巫堂)’이 되는 날이다. 예전처럼 집제자로서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그저 사람들과는 달리 접신이 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10일 오전부터 시작 된 내림굿. 이 날 내림을 받은 사람은 현해탄을 건너 온 재일교포 2세이다. 일본 요코하마에 거주하고 있는 송미영(47)이 주인공이었다. 이날의 굿은 엄밀히 따지자면 내림이 아닌 가리굿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리굿이란 이미 자연통신 등으로 신당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다시 제대로 내림을 받는 행위를 말한다.

 

 

왜 접신이 되면 다들 울지

 

부정을 친다. 굿판에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부정굿이란 굿판의 모인 모든 사람들과 굿판을 정화시키는 굿거리이다. 모든 부정을 다 가셔 내림굿이 온전히 신령들이 흠향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차이다. 그러고 나서 굿이 시작되었다. 시작한지 한 시간 쯤 지났을까, 송미영이 신복을 입고 굿판에 들어섰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송미영은 한국말을 다 알아듣기는 하지만 표현을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했다. 거기다가 굿판에서 그 많은 신령들을 일일이 호명하기도 쉽지가 않다.

일본의 신당은 우리하고는 많이 달라요. 우리는 큰 절을 하는데 일본의 무당들은 허리만 굽혀 인사를 해요. 우린 굿판에서 타살굿같은 데서만 피를 보는 굿거리가 있는데, 일본은 꼭 굿을 하면 닭 같은 것들을 잡아 피를 뿌려요.”

이날 내림굿의 주제자인 고성주(, 60. 수원시 지동)의 말이다.

 

 

송미영은 굿판에 들어서자마자 도약을 하기 시작했다. 도약이란 접신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행위이다. 그러고 나서 목을 놓아 엉엉 울기 시작한다. 왜 내림굿을 받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목 놓아 우는 것일까?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삼국시대까지처럼 단의 주인이요. 집제자가 아니다.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당이라고 해서 제대로 대우를 해주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굿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이날 굿판에 함께 들어 선 사람들이 연신 곁에서 말을 한다.

참지 말고 다 풀어버리세요

울고 싶으면 마음대로 우세요. 그러고 나서 다시는 울지 마세요.”

오늘까지는 마음껏 울고 내일부터는 울지 마라. 이제는 신령님들이 너를 보호하실 테니 앞으로는 울 일도 없다

목을 놓아 울던 송미영의 표정이 달라진다.

 

 

신복을 갈아입으면서 춤을 추던 송미영은 언제 그렇게 목을 놓아 울었냐는 듯, 피리와 장단에 맞추어 날아갈 듯 춤을 춘다. 거리를 마친 송미영에게 절을 받고 난 고성주가 쪽을 찐 머리에 비녀를 질러준다. 이로써 신아버지와 신딸의 관계가 형성이 된 것이다. 고성주는 직접 내림굿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요즈음은 내림을 받은 지 3년이 안된 무당들도 내림을 한다.

 

저는 정말 내림굿을 하고 싶지 않아요. 제 평생 직접 내림굿을 해준 신딸들은 몇 명 없어요. 얼마나 아픈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 아픔을 전해줄 수가 없어서요.”

고성주의 말처럼 이날 굿판에 함께 참여한 이정숙(, 58. 부천거주) 등 두 세 명밖에 신딸이 없다. 절을 받은 고성주에 이어 이정숙 등이 송미영과 맞절을 한다. 신의 형제로 맺어진 것이다.

 

 

일본 땅에 또 한 명의 무당이 태어나다.

 

일본에도 무당들이 상당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신도들을 갖고 있는 무당도 있다는 것. 하지만 그들은 우리나라의 무당들과는 달리 신당인 전안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날 굿판에서도 연신 한국과 일본의 신들이 잘 합수 받아 불려라고 덕담을 해준다. 산거리를 할 때는 우리나라의 모든 산신령들을 호명하고 난 뒤, 일본 후지산의 산신령까지 거명을 한다.

 

신의 존재는 무소불위(無所不爲)라고 했던가? 가지 못할 곳이 없고, 어디나 다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일본 땅이라고 신이 없을 것인가? 굿판이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이다.

올 해는 독일여자와 우크라이나여자도 내림을 해 달라고 해요. 우리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말귀는 다 알아들어요. 이러다가 앞으로는 전 세계에 신딸을 두게 생겼어요. 느지막이 세계일주를 하게 생겼죠.”

 

10시간에 걸친 내림굿이 지노귀굿을 끝으로 모두 끝났다. 11일 오후 비행기로 요코하마로 돌아간다는 송미영. 이것저것 자상하게 챙겨주는 고성주를 보면서, 신으로 맺어진 부녀사이지만 오히려 친 부녀보다 더욱 애틋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많은 신령들을 모시고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야 할 딸이기 때문인 듯하다.

태평소 소리가 골목 안을 찢어놓게 울린다. 징과 바라가 그 소리에 더해진다. 빠른 박자로 두드려대는 소리에, 사람들이 골목 안으로 모여들었다. 대문 밖에서 까치발을 딛고 무슨 일인가하여 집안을 들여다본다. 4월 8일(일)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274-36호, 이정숙의 봄맞이 굿이 열리고 있다.

 

맞이굿이란 신을 모시는 기자(祈子 : 흔히 무속인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들이 자신이 모시는 신과 수양부리(자신의 신자들)을 위해 일 년에 한 번, 혹은 삼 년에 한 번씩 커다란 잔치를 베푸는 것을 말한다. 봄에는 ‘꽃맞이 굿’. 가을에는 ‘단풍맞이 굿’이라고 부르는 이 맞이굿은 기자들에게는 가장 큰 굿이기도 하다.

 

 

굿은 마을의 축제였다.

 

부천 원미구 도당동에 소재한 재래시장인 강남시장 뒤편의 주택가 골목이다. 이층 옥상에서 아래로 내려 건 오색의 천이 바람이 흔들린다. 마당에는 상이 차려져 있다. ‘천궁맞이’가 시작되었다. 천궁맞이란 하늘에 굿을 하는 것을 알리고, 모든 신령들이 굿청으로 좌정을 하라는 ‘신맞이 의식’이다.

 

이 날의 당주 이정숙이 불사제석의 신복을 걸치고 부채와 방울을 들고 거성을 한다. 좁은 집안을 감안해 골목길에도 마을 주민들을 위한 상이 차려졌다. 과거 우리네 풍습에 어느 집에서 굿이 있다고 하면, 그 날은 온 마을의 잔칫날이었다. 누구나 굿을 하는 집으로 가서 먹을 것을 나누고, 굿판에 함께 동참을 할 수가 있었다. 아이들도 어른도 모두가 참여하는 마을 전체의 축제였던 것이다.

 

 

인간의 서열보다 진한 신의 서열

 

굿판에서 사람들은 굿을 하는 무녀들의 신탁이라는 ‘공수’에 울고 웃고를 반복한다. 조상거리라도 할 냥이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다 알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날 이정숙의 맞이굿에서는 특별한 것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 기자들은 내림굿을 해준 사람들을 ‘신의 부모’리고 하고, 내림을 받은 사람들을 ‘신의 자식’이라고 한다.

 

이 신의 부모나 신의 자식은 인간세상의 부모자식과는 또 다른, 신으로 인한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다, 나이와는 전혀 관계없이 부모와 자식이 이루어진다. 이정숙은 수원 팔달구 지동 거주 고성주의 ‘신딸’이다. 이날 이정숙은 자신의 맞이굿을 하면서 고성주에게 ‘작두물림’이라는 의식을 함께 거행했다.

 

무당들은 작두를 탄다. 그러나 아무나 작두를 타는 것은 아니다. 작두별상 등 작두신령이 모셔져야 작두를 탄다. 이런 작두를 타는 형태는 내림을 주관한 신의 부모가 작두를 탈 경우 ‘작두물림’이라는 절차를 통해 ‘신의 자식’에게 대물림을 하는 것이다. 하기에 이 작두물림을 하는 의식은 상당히 성스러운 행위라고 표현을 할 수 있다.

 

 

 

 

대물림을 해야 하는 작두신명

 

“저는 신어머니인 최씨어머니에게서 작두물림을 받았습니다. 제 신어머니는 신딸 5명에 신아들 저 하나가 있었는데, 누나들은 아무도 작두물림을 받지 못했죠. 저 하나만 작두물림을 받았어요. 제가 내림을 받고 난 뒤 한 2년 정도 있다가 작두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받기가 두려웠다고 한다. 당시는 마을에서 작두를 타는 만신이 왔다고 하면, 인근마을 사람들까지 모여들고는 했다. 그만큼 작두를 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그것도 작두물림을 한 작두만신이라야, 무당으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요즈음처럼 작두를 그냥 내림을 받았다고 타는 것이 아닙니다. 작두는 꼭 신의 부모에게서 작두내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올바른 신명이 신의 자식에게 전해지는 것이죠. 우리 신딸들도 작두를 모셔놓고 있고, 그동안 탄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작두물림을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한 신명 줄을 가진 신의 자식이 되는 것이죠.”

 

우리네들이야 이런 영적인 것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찬찬히 설명을 듣다가 보니, 그 말이 맞을 것 같다. 옛 말에는 ‘영험은 신령이 주나, 재주는 배워야 한다.’고 했다. 신내림을 받으면 영험은 신령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굿을 하고 굿거리 재차를 익히고, 음식을 만들고 하는 등, 이런 모든 굿에 관한 것은 신의 부모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저는(이정숙) 아버님(고성주)에게서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혼이 나면서 배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버님의 신의 자식이라고 이야기들을 하지만,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작두물림을 받으므로 해서, 이제야 비로소 이버님의 신딸이 되었다는 것을요.”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하나를 제대로 배우고 익혔다고 한다. 잘못하면 눈물이 날 장도로 꾸지람을 하고, 그런가하면 포용을 하는 마음이 너무 커, 오히려 누가 될 것만 같았다고 한다.

 

“천년만년 억수같이 불려주마”

 

고성주의 신딸들은 작두물림을 받던 날 당의를 입었다. 그것은 고성주가 모시고 있는 작두별상이 남별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신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먼저 고성주가 작두를 갖고 논다. 그리고 작두를 신딸인 이정숙에게 넘겨주자, 작두를 갖고 마당에 마련한 작두를 탈 곳으로 나갔다.

 

작두를 잘 못 타다가 다친 사람들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가 있다. 부정이 타 발을 잘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작두 위에 오를 수 있어야, 영험한 만신으로 소문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작두공수’가 제일이라고 한다. 즉 신탁인 공수 중에는, 작두위에서 주는 공수가 제일 영험하다는 것이다.

 

작두 위에 오른 이정숙이 오방신장기를 받아들고 단골들에게 공수를 준다. 그리고 작두공수를 마친 후 작두위에서 내려섰다. 다음 날인 9일 화성시 매송면 송라리에 소재한 쌍룡사 굿당. 이곳에서는 역시 고성주의 신딸인 박현주에게 ‘작두물림’이 있었다. 올 봄 맞이굿에서 두 명의 신딸에게 고성주가 작두물림 의식을 행한 것이다.

 

“이제는 이 아이들이 제 신명을 따라 작두를 탈 때가 되었죠. 대개 작두물림은 맞이굿에서 전해지는 것이 정상적인 물림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두 명의 신딸들이 비로소 제 신명을 이어받은 것이죠. 이런 의식은 저희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의식입니다”

 

박현주가 작두 위에 올라섰다. 순간 일갈을 한다.

 

“천년만년 억수같이 불려주마”

 

그리고 오열을 한다, 그 눈물의 의미는 아무도 모른다. 작두를 갖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신도들은 눈물을 흘린다. 작두는 왜 눈물을 흘리게 만들까? 누가 그 서슬이 시퍼런 작두 위에 올라서기를 좋아할까? 어찌 보면 신령의 사람들이라는 징표치고는 너무나 가혹한 듯도 하다. 그런 작두물림을 받았으니 어찌 슬픔이 밀려오지 않을까. 이제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신령의 여인이 된 것이다.

“아버님의 손을 잡는 순간 무엇인가 뜨거운 기운이 저에게로 전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아, 나는 이제 신령님에게 시집을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바람이 불지를 않았으면 작두 위에서 내려오고 싶지가 않았어요.”

 

부천 도당동에 거주하는 고성주의 큰 신딸인 이정숙의 말이다, 수원시 팔달구 교동에 거주하는 작은 신딸이라는 박현주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작두를 어떻게 타지’ 하면서 걱정을 했는데, 아버지가 손을 잡고 작두를 넘겨준 후에는 그런 걱정이 싹 달아났어요. 얼른 작두 위로 올라가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를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이틀 동안 두 명의 신딸들에게 작두물림을 해준 고성주는 이렇게 말한다.

 

“작무물림을 핼 때는 제 속은 숯검뎅이가 다 됩니다. 작두 위에 제대로 오르기는 할까라는 걱정부터, 과연 잘 불리는 기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죠. 작두날을 밟고 서는 것만 보아도 잘 불릴 것인가를 알 수 있으니까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틀 동안 두 명의 여인이 작두신령의 아내가 되었다. 그 작두신령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가 않다. 작두물림이라는 의식을 통해 같은 신명을 가진 무한한 힘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렇게 신의 부모와 신의 자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맙다고 큰절을 하는 신딸들. 아마도 고성주의 마음은 시집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같지 않았을까?

어느 종교가 그럴 수 있을까? 요즈음은 그저 종교란 것들이 어째 제 갈 길을 찾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다가 보니 마음이 불편해지면 사람들은 곧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는 한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에 소재한 고려암. 집 대문 앞에는 ‘경기안택굿보존회’란 간판이 걸려있다. 벌써 이 집터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온 지가 40년 가까이 되었다는 고성주(남, 56세). 크지 않은 몸짓에 천생 여인네 같은 모습이다.

말을 하는 것이나, 집안에 먼지 하나 돌아다니지 않는 모습을 보아도 그렇다. 도대체 이 넓은 집을 언제 다 쓸고 닦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18세에 신내림을 받고 지금까지 한 결 같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그저 묵묵히 하고 있다. “무녀가 할 일이 무엇이겠어요. 수양부리들 잘 건사하고, 늘 마음 편하게 살게 해달라고 비는 일 빼고는” 그래서인가 이 집의 단골들은 대개가 대물림 단골네들이다.


“아버님, 저희 아이가 잘될까요?”

나이가 동년배 인듯한 여인이 고정주에게 하는 말이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곧잘 귀를 의심하게 된다. 비슷한 나이에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저렇게 스스럼없이 쓰다니. “어멈아, 걱정하지마. 올 해는 잘 될 거야. 3~4월까지는 조금 힘들겠지만, 그 달 지나면 다 풀릴 테니.” 아버님이란 호칭이나, 어멈이라는 호칭이 그저 불편함이 없이 들린다. 그 또한 이 집의 내력인 듯하다.

“예전에 신부모님들이 그렇게 수양부리들을 불렀어요. 저도 그렇게 듣고 배운 것이죠. 우리 집은 대개 대물림 단골네들이라 오히려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단골네들이 불편하다고 해요”

그저 곁에서 듣고 있노라면 그 나긋한 목소리 안에 대단한 카리스마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춤 잘 추고, 소리 잘하고, 굿 잘하고. 도대체 빠질 것이 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고성주라는 사람은 어쩌다가 신내림을 받은 것일까?


맞이굿에서 신나게 창부를 놀고 있는 고성주(위) 신령을 모신 전안(아래) 전안은 밝고 먼지 하나가 바닥에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신령을 모신 전안은 어둡고 더럽다면 그 곳에 무슨 좋은 신령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저는 어려서부터 신병을 앓았어요. 그런 일로 인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다고 보아야죠. 저희 증조할머니께서 만신이셨고, 고모 또한 만신이었죠. 고모는 박씨네 집으로 시집을 갔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고모가 데려다 키우는 바람에, 남의 성을 갖고 살기도 했어요. 어릴 적부터 몸이 아파 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를 못했어요. 한 달이면 고작 일주일이나 학교를 갈 수 있었으니, 무슨 공부인들 제대로 했겠어요.”

그런 그가 그 많은 굿에서 사용하는 문서를 외우고 있는 것을 보면, 타고난 무당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 타고난 끼도 다 그런 길을 가기위해 준비를 한 듯하다. 수도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그냥 보낸 적이 없다. 하다못해 바쁘게 준비한 음식 하나라도 대접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18세에 받은 신내림,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도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런 일을 속속들이 본 사람들이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처음 내림을 하고 난 후 신령님들의 화분을 이천에 가서 모셔왔어요. 그런데 한 겨울인데도 뱀들이 득실거리는 거예요. 그러다가 제가 들어가니까 어디로 슬그머니 사라지데요.”

함께 동행을 했던 사람들이 정말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하기야 고성주의 기이한 행적으로 본다면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동안 수양부리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책으로 몇 권을 엮어도 모자랄 판이다. 하기야 40년 가까운 세월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명과 복을 주었으니, 그 많은 이야기들을 필설로 어찌 다하랴.


운 맞이 굿에서 수양부리에게 운시루를 건네주는 고성주(위) 굿판에는 악사와 무녀들이 함께 동참을 한다.


“그동안 정말 많은 수양자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는 했죠. 매일 보다시피 했던 사람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그들의 극락왕생을 위한 지노귀굿을 하면서 속으로 울기도 많이 했죠. 그럴 때마다 제가 팔자가 사나운 사람이라고 슬퍼했죠.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축원을 해주면서, 자식들이 모두 잘 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아마 전 다음 세상에도 우리 수양자식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남의 본이 되는 것이 만신의 길이라고 하는 고성주

지노귀굿을 할 때면 유난히 공을 들이는 만신 고성주. 그가 가진 품성은 평소 하는 행동을 보면 그대로 보인다. 벌써 30년 가까이 자비를 들여 경노잔치를 열었다. 고기를 삶고, 음식을 하고 술과 음료를 대접한다. 거기다가 자신이 가르친 춤꾼들이 모여 춤을 추기도 한다. 구경을 하는 어르신들도 절로 흥이 난다. 한 해도 거르고 넘어간 일이 없다.

함께 굿을 하고 있는 신딸인 이정숙. 이들은 영적인 부녀관계이다.


“아버님 여기 있던 밥 통 어디갔어요?”
“고장 나서 내다 버렸는데”
“멀쩡한 것이 왜 고장이 나요?”
“위에서 떨어졌어”
“아니 그 무거운 것이 떨어졌으면 장판이 흠집이라도 났어야죠.”

이쯤 되면 그 밥통이 어디로 갔는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남을 준 것이다. 문제는 그 밥통이 고가의 밥통이라는 것이다. 뒤에서 이야기를 한다.

“그럼 어떻게 해. 어멈이 나이가 먹어서 밥을 하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있는 것 주어야지”

그렇게 집에 있는 물건들을 남을 주기를 좋아한다. 물건을 하나 사겠다고 하면, 수양자들이 먼저 알고 있다. ‘얼마나 갖고 계시겠느냐고’.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집안을 깨끗이 하고, 남을 도우면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만신의 할 일이라고 제자들에게 누누이 강조를 한다.


3월 23일 금요일. 지동에 소재한 고성주의 집 전안(신령들을 모셔 놓은 곳)에서는 ‘운맞이 굿’이 열렸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일이 잘 풀리지를 않아 운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맞이도 아무나 할 수는 없다. 운이 들어야 한다고 한다. 이 집을 드나들다가 보면 이상한 일을 보게 된다. 수양자들이 굿 날짜를 안 잡아준다고 삐치기도 한다. 딴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3대를 대물림을 하는 신도들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고성주에 대해서 잘 안다.

“평생 혼자 사시는 분이잖아요. 신령님과 결혼을 했다고 늘 말씀을 하시니까요. 아버님은 평생을 아마 자식들 걱정하다가 저렇게 늙으실 겁니다. 굿을 하나 가르치셔도 적당이가 없어요. 굿을 해도 나쁜 소리를 못하게 하시죠. 만신이 악담을 하면 그렇게 된다고요. 무조건 좋은 소리만 하라고 하시죠.”

함께 굿판에서 굿을 하던 신딸(내림을 받은 사람을 신딸 혹은 신아들이라고 부른다. 영적인 부모가 되는 것이다)인 이정숙의 말이다. 비슷한 나이면서도 정말 친 부모를 모시듯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만신 고성주의 삶의 모습이다.

“내 잘되게 도와줄게. 다 힘들다 오 해후 년에는. 그래도 너의 대주 하는 일 잘 되게 해주마. 내가 불려주시마.”

지노귀굿(천도굿)을 할 때는 더 많은 신경을 쓴다는 고성주


듣기만 해도 힘이 솟아날 듯하다. 7시간 정도를 지나 굿은 끝이 났다. 제단에 차려졌던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가는 수양부리의 얼굴에는, 집안에 들어설 때 얼굴에 가득했던 그늘이 보이지를 않는다. 굿을 하기 위해 차렸던 음식들을 말끔히 치우고 나서, 한 마디 한다.

“만신은 세상 사람들 마음속에 모든 시름을 다 받아야 해요. 그리고 그것을 다 풀어주어야죠. 만신이 먼저 제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신령이 도와주나요? 요즈음 종교가 도대체 제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해 마음이 아파요. 아마도 신령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두려울 텐데 말이죠. 건성으로 신령 탓만 하는 것 같아요”

3월 28일. 자신의 수양부리들이 신령님들께 올리는 진적굿을 앞두고 온갖 집안치장에 한창이다. 도배를 새로 하고, 부엌에 기물도 정비했다. 더 깨끗한 마음을 갖고 신령을 섬기기 위한 작업이라고 한다. 언제나 그런 마음가짐이 오늘까지 대물림 자식이라는 수양부리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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