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기념물 제19호로 1973710일에 지정이 된 파장동 노송지대. 정조의 효심이 가득한 이곳이 요즈음 더럽혀진 주변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파장동에서 길게 지지대비로 향하는 약 5km 정도의 이 길은, 예전 정조대왕이 능침에 잠들어 있는 아버지인 장헌세자(사도세자)를 만나러 다니는 길목이었다.

 

이 길은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느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수령 200여년을 넘는 소나무들이 줄을 지어 있는 노송 길. 전국 파워소셜러 팸투어 둘째 날에 지난 317일에 찾아간 노송지대에는, 2차선 도로를 따라 양편으로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이 소나무들은 정조대왕 당시에 심었다고 하니, 아마 수령이 200여년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500주의 소나무를 심은 정조

 

경수간 국도를 따라 5km 정도에 조성되어 있는 노송지대. 기록으로는 이곳에 500주 이상의 소나무들이 살고 있어야 한다. 정조대왕이 부친인 장헌세자의 원침인 현륭원의 식목관에게, 내탕금 1,000량을 하사하여 이곳에 소나무 500주와 능수버들 40주를 심게 하였다고 했기 때문이다.

 

소나무들은 자라면서 솔씨를 퍼트려 새로운 종자를 키워내기 때문에, 200년이 지난 세월이라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현재는 대부분 고사하고 38(효행기념관 부근 9, 삼풍가든 부근 21, 송정초등학교 부근 8) 정도의 노송만이 보존되어 있다. 낙락장송이 울창한 이 자연경관은, 정조의 지극한 효성과 사도세자의 슬픔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어 길손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이다.

 

 

노송지대 주변 정비 아쉬워

 

이번 파워소셜러 팸투어에 찾아간 노송지대 주변은 어지러웠다. 여기저기 주변이 어수선 해 이곳이 문화재 지역인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문화재는 주변이 정리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소나무 길 사이로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어 소나무의 생육에도 지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나무는 매연에는 약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차량. 그리고 정리가 안 된 주변 환경. 정조대왕의 효심을 이야기하기에는 조금은 낯이 뜨겁다. 500주나 심었다는 소나무는, 당시에 심은 것들은 이제 겨우 40주 정도이다. 남은 소나무는 다 어떻게 된 것일까?

 

 

지금도 몇 그루의 나무는 생육이 좋은 편이 아니다. 파워소셜러들은 이구동성을 이야기들을 한다. 이곳의 차도를 변경하고 아스팔트를 걷어낸 후, 흙길로 조성을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니는 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한 소나무 주변에 모든 잡목을 옮겨, 소나무들을 온전히 괸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 가을 막걸리라도 부어 주어야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68-7에 소재한 운문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 제180호인 운문사 처진소나무가 있다. 이 소나무는 수령이 400년이 훨씬 지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처진소나무는 매년 봄, 가을에 운문사의 스님들이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리 주변에 뿌려준다. 그래서인가 항상 푸른빛을 띠고 있다.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파장동 노송지대에 소재한 소나무들. 이 소나무들은 정조대왕의 효심을 알려줄 수 있는 귀한 나무들이다. 이 소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수원도 봄, 가을로 소나무에게 막걸리를 주는 날을 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변의 나무들로 인해 영양분을 빼앗겨버려, 제대로 생육하지 못하고 있는 노송지대의 소나무들.

 

 

더 이상 이 나무들이 주변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강구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5월과 10월 날을 정해, 믹걸리를 주는 날을 정해주어야 한다. 그런 행사 하나로도 노송지대의 소나무들이 더 잘 자라날 수 있으며, 이 행사 자체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노송지대를 알릴 수도 있어, 모두에게 나무를 더 귀하게 여기는 계기도 될 것이다.

수원시 파장동에서 길게 지지대비로 넘어가는 길. 약 5km 정도의 이 길은 예전 정조대왕이 능침에 잠들어 있는 아버지인 장헌세자(사도세자)를 만나러 다니는 길목이었다. 이 길은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느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수령 200여년을 넘는 소나무들이 줄을 지어 있는 노송 길. 예수가 이 땅의 고통을 짊어지러 왔다는 12월 25일, 노송지대를 걸었다.

지난 23일에 내린 많은 눈으로 인해, 소나무가 있는 곳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럽다. 기온이 떨어진데다가 바람까지 분다. 손이 시려 사진을 찍기가 조금은 불편하다. 2차선 도로를 따라 양편으로 자란 소나무들은 정조 당시에 심었다고 하니, 아마 수령이 200여년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500주의 소나무를 심은 정조

경수간 국도를 따라 5km 정도에 조성되어 있는 노송지대. 기록으로는 이곳에 500주 이상의 소나무들이 살고 있어야 한다. 이산 정조(1776~1800)가 부친인 장헌세자의 원침인 현륭원의 식목관에게, 내탕금 1,000량을 하사하여 이곳에 소나무 500주와 능수버들 40주를 심게 하였다고 했기 때문이다.

소나무들은 자라면서 솔씨를 퍼트려 새로운 종자를 키워내기 때문에, 200년이 지난 세월이라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 고사하고 38주 정도의 노송만이 보존되어 있다. 이 노송지대는 경기도 기념물 제19호로 지정이 되어있으며 1973년 7월 10일에 지정이 되었다.



정조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노송 길 끝에 있다는 지지대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산 47-2에 소재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인 지지대비는 정조의 지극한 효심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 7년인 1807년에 화성 어사 신현의 건의로 세워진 비이다. 정조는 아버지인 장헌세자의 능을 참배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늘 이곳에서 거동을 멈추고 능침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 비의 이름이 ‘지지대비’이다. 지지대란 정조대왕이 이곳에 오르면 행차가 느릿느릿해진다고 하여, 느릴 ‘지(遲)’자 두 개를 붙여 썼다고 한다. 정조 이산의 그런 효심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노송지대일 것이란 생각이다.



노송이 길을 따라 울창한 이 길. 이 길에 얽힌 사연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무슨 이유로 정조 이산은 자신이 부친의 능침을 돌아보는 길목에 소나무를 500주나 심었던 것일까? 아마도 소나무의 생명이 길다는 것을 감안한 것은 아니었을까? 즉 소나무처럼 생명이 강한 조선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정조대왕의 효심 길을 따라 걷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자라기 힘든 메마른 곳에서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또한 사철 푸르른 잎을 지니기 때문에, 강인한 인상을 준다. 늘 변함없는 푸름 때문에 대나무와 함께 송죽지절(松竹之節 : 변하지 않는 절개)이라고 한다. 이렇게 소나무를 심어 놓은 이산 정조의 마음속에서는 변하지 않는 효심과 강인한 조선, 그리고 강한 왕조를 의식한 것은 아니었을까?


바람이 차다. 500그루나 되는 소나무들이 10분의 1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아마 제대로 관리가 되었다면, 이 일대는 정조의 효심을 가득담은 솔밭이 되었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양편으로 늘어선 소나무 사이를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차량들을 보며, 저 나무들도 언젠가는 매연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것은 이산 정조의 효심이 사라지는 것일 텐데 말이다.

(주) 요즈음 블로그 돌아가는 모습이 하도 한심해, 우측에 달았던 마크를 접었습니다. 같은 블로거들에게 상처주기를 일삼는 '자칭 파워블로거'라고 하는 사람들의 작태가 우스꽝스러워, 그런 것을 달고 있다는 것이 쪽을 까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는가는 글을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수일 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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