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장안구 하광교동 광교저수지에는 지난 해 조성한 목책 길이 있다. 이 길은 1.9km 정도로 벚꽃이 필 철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꽃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이 목책 길은 광교산 산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산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목책 길을 걸어 다리를 건너 후 광교저수지 수변 길을 즐겨 걷고는 한다.

 

이 길은 이제 수원의 명소 중 한 곳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걷기도 하고, 연인끼리 다정하게 걷기도 한다. 지금은 세월호 참사로 잠시 중단되었지만, 주말이면 이곳에서 거리로 나온 공연을 즐길 수도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 목책 길은 많은 사람들이 걷다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세월호의 아픔이 주렁주렁

 

이 목책 길 1.9Km 중에 1.5Km 정도에 종이에 쓴 글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바로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한 사람들의 글이다. 25일 오후, 목책 길 중 저수지를 낀 방향으로 길에 붙은 종이들이 바람에 날린다. 그 날림은 마치 채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젊음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사람들은 중간 중간에 노란 색 가는 천을 빼서 리본을 만들고 간다.

 

엄마가 속상해 꼭 돌아와

울지 마 아가 엄마가 기다려

어른으로 정말 미안하다. 힘내자! 사랑한다.’

얼마나 무섭니 희망을 버리지 마

많이 힘들지. 조금만 기다려 줄래? 꼭 다시보자 - 기적을 믿으며

얘들아 포기하지 마 가족들이란 따듯한 밥 먹어야지

울고 울고 또 울고 기다려 기다려 구해줄게 - 선생님이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눈물이 흐른다. 모든 국민들의 마음은 한결 같은 것이다. 그 아이들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오기 때문이다. 찬 바다 속에서 얼마나 춥고 공포에 떨었을까? 그런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적어 놓은 글귀들이다.

 

광교저수지 목책 길에 걸린 이 서원지는 기적의 편지 - 수원시민의 기도이다. 글을 읽다가보니 그렇게 눈물이 흐를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 어린 생명들이 이렇게 무참하게 사그라져야 한단 말인가?

 

 

구구절절이 눈물 맺힌 사연

 

우리나라 미래의 희망. 미안하다. 구해내지 못해서

언니 오빠들 사랑해요. 힘내세요(민서)’

사랑한다. 얘들아 아프지 말고 더 좋은 세상에 태어 나거라. 그리고 행복하길

 

수천 장의 종이에 적힌 수원시민의 기도.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그 수많은 간절함도 외면해 버린 것일까?

 

정말 대한민국의 어른이라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습니다. 저희도 자식들을 키우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그 아이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네요. 무엇이라고 변명을 할 수 있겠어요. 그저 이렇게 속 타는 마음을 종이에 적어 걸어놓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사죄를 하고 싶은 것이죠.”

 

 

노랑색 리본을 매달고 있던 정수영(, 44)씨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린 것만 같다. 함께 산행을 왔다가 이 노랑리본과 서원지를 보고, 집에 가서도 며칠 째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 신아무개(, 44)씨는

 

어린 학생들이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요? 그 시간이 짧거나 길거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나라가 도대체 이런 재난에 누구하나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정말 제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이번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습니다.”라고 한다.

 

광교저수지 목책 길에 나붙은 수원시민의 기도와 노란리본. 그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아이들은 그 차가운 바다 속에서 몸이 식어갔다. “미안하다 얘들아. 정말 미안하다.” 노란리본 하나를 묶으면서 속으로 눈물을 흘려보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 하지만 이 목책 길에 걸린 수많은 수원시민의 기도는 잊지 말기를 바란다.

 

29일 오전 수원시 연무동 전입신고 마쳐

 

만인보의 저자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고은(80)시인이 경기도 수원시민이 됐다. 수원시는 광교산 자락인 상광교동에 그동안 생태박물관이나 전시장 용도로 매입해둔, 옛 이안과 원장의 개인주택을 리모델링해 고은시인이게 제공했다. 광교산 자락에 있는 이 집은 지하 1, 지상 1, 연면적 265규모로 서재와 작업실, 침실 등을 갖추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체류하며 문학축제 참가, 강연, 북 투어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 귀국한 고은 시인은, 그동안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만정리 대림동산 전원주택단지에서 30여 년째 거주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해왔다. 고은 시인은 인문학 도시 구현을 목표로 하는 수원시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지난 19일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행정동 연무동)으로 이사했다.

 

 

수원시 인문학 도시 구현에 박차

 

수원시는 그동안 수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친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계의 대부인, 고은 시인을 모셔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은시인 모시기를 추진해왔다. 고은시인은 끈질긴 수원시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수원시민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고사를 해오기도 했다.

 

19일 수원으로 자리를 옮긴 고은시인은 지난 20일 부인과 함께 경기도문화의전당을 찾아, 공연관람 후 가진 리셉션 현장에서 오랫동안 살며 정들었던 안성을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아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수원에서 새로운 삶과 문학을 시작하게 돼 기쁘다며 그동안의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이로써 수원시는 인문학 도시 구현을 추구하는 품격 있는 문화예술도시로 한 단계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수원시의 한 관계자는 문화예술특구를 지정하고, ‘고은문학관건립 등 인문학적 이미지를 갖춘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날 것이라고 전했다.

 

 

한 때는 승려생활도 한 고은 시인

 

고은(본명: 고은태(髙銀泰), 193381~ )시인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참여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전라북도 옥구 출생으로 호는 파옹(波翁)’이며 본관은 제주이다. 전북 군산고등보통학교 4학년을 중퇴하였다. 한국 전쟁 시기였던 1952년 일본 조동종의 군산 동국사에 출가하여, 중장 혜초로 부터 일초(一超)’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 승려가 되었다.

 

1958년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폐결핵>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60년대 초에 본산(本山) 주지, 불교신문사 주필 등을 지냈으며, 1960년 첫 시집인 피안감성을 출간하고 1962년 환속하여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동안 발간한 고은시인의 시집으로는 <피안감성(1960)>, <해변의 운문집(1964)>, <신 언어의 마을(1967)>, <새노야(1970)>,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1974)>, <부활(1975)>, <제주도(1976)>, <고은 시선집(1983)>, <시여 날아가라(1987)>, <너와 나의 황토(1987)>, <대륙(1988)>, <만인보(萬人譜)(연작: 1986 ~ 201049)>, <독도(1995)>, <허공(창비, 2008)> 등 많은 시집과 소설, 에세이집 등이 있다.

 

 

수원의 문학적 위상 높아져

 

고은시인은 29일 오전 1115분 경, 비가 뿌리는 가운데 홍성관 장안구청장의 안내를 받아 연무동 주민센터에 들어섰다. 연무동 주민센터 입구에는 고은시인, 행복한 연무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있다. 고은시인이 입구에 들어서자 연무동 여직원이 꽃다발을 드렸으며, 곧 이어 전입신고를 마쳤다.

 

수원시인협회 김우영 회장은 고은시인이 수원시민이 된 것을 환영한다면서

고은 시인은 그동안 로벨문학상 수상자 명단에 이름이 자주 거론 되었던 우리 문학계의 큰 별이다. 이런 분이 수원시민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인문학 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으로서는 큰 힘을 얻었다. 앞으로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고 하면, 수원은 문학사에 길이 빛날 도시로 명성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다.

 

 

겨울 文義(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신성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달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小白山脈(소백산맥)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고 서서 참으면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文義(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다참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여름의 부용꽃인 듯

준엄한 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文義(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민음사(1974)에서 펴낸 문의 마을에 가서라는 고은 시인의 다섯 번 째 시집에 수록된 시이다. ‘문의마을에 가서는 친구의 장례식에 참가했던 경험을 시로 옮긴 것으로서, 고요하고 적막한 겨울 마을을 배경으로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순간의 깨달음을 서정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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