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 오후 7시부터 수원청소년문화센터 온누리홀에서 열린 <신영복의 이야기콘서트 - 아름다운 동행>은, 400여명의 청중들이 세 시간의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하였다. 이날 콘서트는 영상 그림을 통해 관객들과의 교감으로 이루어졌으며, 사회는 탤런트 권해효가 맡아했다.

세 시간동안의 콘서트는 글씨와 그림영상으로 통한 신영복교수의 강연에 이어, 대한 송공회대학교 박경태, 김진업, 김창남 교수들이 함께 하는 ‘더숲트리오’와 수원시민사회단체협의회 이성호 공동대표, 신영복 교수 들이 엮어가는 대담, 그리고 더숲트리오의 노래공연으로 이어졌다.


아름다운 동행은 ‘관계’에서

현재 성공회대 석좌교수인 신영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등의 저서가 있다. 숙명여대, 육사 등에서 강의를 하던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20년간의 수감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 고뇌를 하던 신영복교수는, 인간성이 개조된 자기혁명을 이루어낸다.

이번에 수원시민사회단체협의회 주관과 수원시 후원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동행’에서도 스스로 그린 그림을 영상으로 설명을 하면서 강연을 이끌어 나갔다.



이날 강연의 주제는 세상 모든 것은 ‘관계’로 이루어지며, 그 관계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동행’에서 도출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 사회와 나를 돌아보고,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 향하는 연대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대답은 강연을 하는 신영복 교수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객석에 있는 관객들 스스로가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림영상으로 듣는 이야기들

1) 함께 맞는 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우산을 들어준다는 것은 남에게 의존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이로 구분이 되어 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행위에서는 ‘동행’이 불가능 하다는 것, 동행이란 이렇게 차별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동등한 위치와 환경이 만들어져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2) 갇혀있는 생각을 깨야

우리의 사고는 갇혀있다. 갇혀있는 생각을 깨트리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판단을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비판적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생각 자체가 갇혀있는 사고라는 것이다. 그러한 갇힌 사고를 과감히 깨트릴 때, 비로소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 생각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3) 책상 위로 올라서야

사람들은 책상 앞 의자에만 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언제나 버릇처럼 그렇게 책상 앞에만 앉는다. 그러나 책상 위에 올라서보면 세상이 달라진다. 더 넓은 세상이 보이고, 더 멀리까지 보인다. 스스로의 안목이 넓어지는 것이다. 항상 갇힌 생각으로 하는 행동, 그것처럼 사람을 소인배로 만드는 것은 없다.

이제 과감히 책상위로 올라가 더 큰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의 발전은 그런 것에서 가능하다. 그 넓어진 가슴을 열고 애정 어린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야, 진정한 동행이 가능하다.


우리 시대의 영원한 맨토인 신영복 교수의 강연은, 사회단체들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음을 질책했다. 이제는 사회운동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등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 할 때이며, 그런 해답은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가치를 갖고 동행을 하는 관계로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원 영통구 영통동 영덕대게 전문점

흔히 시쳇말로 이런 말을 한다. ‘누구도 먹는 데는 치사했다’는 말이다. 이 말은 그만큼 사람들은 먹거리에 신경을 쓴다는 말이다. ‘다음 뷰’ 등 포털이나 일간지, 심지어는 방송까지 먹을 것 소개 일색이다. 가끔 그런 정보를 믿고 찾아갔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아마도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12월 13일, 아우가 요즈음 한창 ‘활문어’가 제철이라고 한다. 활문어라면 살아있는 문어를 말한다. 낙지 정도야 산 것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큰 문어가 살아있는 것을 먹으려면 좀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 역시 먹는 데는 조금 치사했던 모양이다. 두말 않고 따라나섰으니 말이다.


살아있는 해산물만 취급하는 전문점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 1040-6번지 영덕대게 전문점. 사실 은근히 기대를 하고 간 것은, 대개 한 마리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예전에 영덕에 가서 대게를 물어보았다가 한 마리에 이십 만 원이라고 하는 바람에, 입맛만 다시다가 돌아선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이 집은 신선도를 제일로 치는 집이라고 한다.

수족관에는 꽃새우, 대게, 활문어, 골뱅이 등 살아서 수족관을 가득 채운 활어 들이 차 있다. 바닷물을 사용해 신선도를 유지한다는 이 집의 수족관 온도를 보니 2.9도C이다. 3도 정도에서 보관을 해야 한다는 이 해물들은 기온이 높아지면 전부 죽어버린다고.




수족관 안에 있는 생물들입니다. 유리를 통해 찍어서 선명하지가 않지만, 분위기만 느껴 보시라고...

수족관을 들여다본다. 싱싱한 대게들이 서로 엉켜있다. 그 위에는 동해에서 잡혔다는 꽃새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집에서는 닭새우도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날은 닭새우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꽃새우는 독도 인근 심해에서 잡히는 것으로, 청정지역의 해물로 손꼽힌다. 한편에는 걸망에 담긴 문어가 움직이고 있다. 저 녀석 조금 후의 운명을 모르는 것인지. 그 모습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킨 나야말로, 정말 속물이 틀림없다.

이 집의 특징은 밑반찬이 많이 없습니다. 자칫 해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색깔 좋은 문어가 입안에 넣으면 그대로 사라진다는....


영덕대게 전문점에서 먹는 활문어의 맛

이 집의 특징은 밑반찬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쌈을 싸먹는 <날김>과 해초라고 하는 <꺼시래기>, 그리고 곰피라고도 하는, 썰물대 낮은 곳에 서식하는 다시마과의 갈조류인 <쇠미역> 등이다. 그리고 초장과 과일 샐러드, 따끈한 미역국 정도이다. 이렇게 밑반찬을 많이 놓지 않는 이유가 있단다. 밑반찬을 많이 놓으면 정작 활문어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또힌 입이 닿도록 이야기를 하는 음식물 찌꺼기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라고도 한다. 괜히 손님들이 잘 먹지도 않는 밑반찬 잔득 차려놓아야 잔반만 많이 남아, 괜한 찌꺼기만 배출하게 된다는 것. 

잠시 후 접시에 담아 문어가 나왔다. 살짝 데친 문어를 김에 놓고, 거기다가 쇠미역과 꺼시래기를 함께 올린 후 초장을 찍어 입에 넣어본다. 찬찬히 씹으며 음미를 해보니, 동해바다가 입 안에 가득하다. 제철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 맛인지. 그저 쫄깃한 문어가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남들은 음식 평을 하라고 하면, 글을 잘들도 쓴다. 하지만 나야 맛에 대해서는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늘 생각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 좋은 말이라도 미리 배워둘 것을. 그 문어의 쫄깃한 맛을 다 보기도 전에 골뱅이를 삶아 내왔다. 이 맛은 또 다르다. 살아있는 것을 그 자리에서 데쳤으니, 그 싱싱함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영덕대게 전문점에서 맛본 문어와 골뱅이. 요즈음 이 집을 찾는 단골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활문어라고 한다. 아마도 제철에 바닷가까지 가지 않아도 본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종류의 해물들은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다. 들어오는 가격이 매일 다르다보니, 제일 좋은 가격이 ‘싯가’라는 이야기이다.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살아있는 것들. 요즈음 대충 시세가 꽃새우는 1kg에 13만원, 대게는 10만원 정도이며, 문어는 7만원, 골뱅이는 6만원 정도라고 한다. 아우 때문에 맛본 문어와 골뱅이. 아마도 며칠은 그 맛이 입안에 감돌고 있을 듯하다. 전문점에서 먹는 맛이란 그래서 다른 것인지. 정말로 소중한 분들의 만남이나,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추천하고 싳은 집이다.



(주) 영덕대게 전문점은 사전에 예약을 해야 이용하기가 수월하다. 특히 평일보다는 주말이나 휴일이 이용하기가 좋다고 한다.

(예약전화) 031) 206 - 2567 / 영통 수원우편집중국 건너편 골목

저녁에 사람을 만나서 밥이라도 먹으며 담소를 하고자 하면, 딱히 어디로 가야 좋을지 난감할 때가 있다. 전국을 이곳저곳 답사를 할 때는, 더 더욱 먹을 것 때문에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 낯선 곳이라 어느 집이 음식을 맛깔스럽게 하는 집인지, 선뜻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입이 까다롭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적당히 맛이 있어도, 하루 종일 걷고 난 다음 먹는 음식은 꿀맛일 경우가 있다. 워낙 음식의 맛에 대해서는 남들처럼 미식가가 아닌 나이기에, 항상 정해놓고 음식점을 드나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나지만 전국을 다니면서 몇 집은 나름대로 잘 찾아가는 곳들이 있다.


수원 영통의 장수 돌 곱창

수원 인근에서는 나름대로 몇 집의 단골집들이 있다. 음식 맛도 좋으려니와 주인장의 후덕한 마음 씀씀이 때문이다. 언제 찾아가도 항상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집이지만, 늘 살갑게 맞아주는 안 주인장의 따스한 마음이 사람을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 1036-4번지에 소재한 ‘장수 돌 곱창’ 집은, 국내산 횡성 한우를 이용해 조리를 하는 곱창집이다. 음식의 종류야 이것저것 몇 가지가 있지만, 내가 즐겨먹는 것은 ‘마늘곱창구이’와 '곱창전골'이다. 불판에 횡성한우 곱창 안에 통마늘을 넣어서 맛을 낸 것인데, 잘 익은 것을 한입 베어 물면 마늘의 향이 입안에 가득차는 것이 좋다.



이 집 마늘곱창구이의 특징은 심한 마늘 냄새가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함께 불판 위에 올라오는 대창은, 찧은 마늘을 넣어서 건강에도 좋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랄 수밖에.

몸에 좋고 독성을 해소하는 곱창

곱창이 좋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일이다. 『동의보감』에는 곱창의 효능을, 「정력과 기운을 돋우고, 비장과 위를 튼튼히 해준다. 오장을 보호하며, 어지럽증(혈압)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다. 당뇨, 술중독, 몸의 독성해소, 장내해독, 이뇨, 피부미용, 피로회복, 골다공증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본초강목』에도 「음식의 성질로는 온하다고 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비위를 보호하고 게우거나 설사하는 것을 멎게하고, 소갈과 수종을 낫게한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곱창에 마늘까지 들어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영통 장수돌곱창 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집을 찾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맛도 맛이지만, 주인과 종업원들의 살가운 손님맞이가 더 마음에 든다’고 한다.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하는 집

그래도 전국을 다니면서 꽤 많은 음식을 맛본 나이다. 그런데도 영통 장수돌곱창 집을 찾아가면 늘 기분이 좋다.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하면 더 더욱 편해지는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12월 7일, 오후에 들린 집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 많은 사람들로 종종걸음을 치면서도, 한 사람도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는 것이 이집 주인의 심성이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지만, 늘 웃음 띤 얼굴로 맞아준다. 장수돌곱창은 그야말로 사람 사는 정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집이다. 요즈음에는 두 곳에 체인점을 냈다고 한다. 이젠 어엿한 체인망을 갖춘 본점인 셈이다. 부부가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젠 체인망까지 갖추는 모양이다. 그도 기분 좋은 일이다.

고단백 저 콜레스테롤 성분인 곱창. 씹는 맛도 일품이지만 술안주로 함께 먹으면, 분해작용이 뛰어나 위벽 등을 보호한다고 한다. 이러한 곱창에 20여 가지의 각종 양념을 첨가해 맛을 더했다. 맛이 고소하고 쫄깃해 씹는 맛이 일품인 수원 장수돌곱창.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을 때 찾아가면 좋을 듯하다. 작은 방도 준비되어 있어, 늘 편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수원지역의 맛집을 소개하라고 한다면, 그 중 몇 안 되는 집 중 한곳으로 늘 추천하는 집이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248번지에 소재한 비구니의 요람 봉녕사. 봉녕사는 비구니 승가대가 있는 절이다. 봉녕사의 용화각에는 고려시대의 석불로 보이는 석조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이 석조삼존불은 대웅보전 뒤편 언덕에서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닦던 도중에 출토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석조삼존불상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을 배치하고 있다. 불상과 연화대좌는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이 되었는데, 모래가 많이 섞인 화강암으로 조성을 하였다. 삼존불 모두가 뚜렷한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는데, 이는 오랜 시간 땅 속에 파묻혀 마모가 된 것으로 보인다.


마모가 심한 석조삼존불

삼존불의 중앙에 좌정하고 있는 본존불의 얼굴모습은 원만한 편이다. 그저 편안한 느낌을 받게 하는 본존불의 머리 부분은 파손되어 있고, 눈, 코, 입 부분은 심하게 마모가 되어 희미하다. 법의는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오른쪽 어깨가 노출된 우견편단으로, 법의의 주름도 상당히 도식화 되어있다.

오른손은 무릎에 놓고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는데,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조각을 하였다. 밑에 받치고 있는 좌대인 연화대는 일석으로 2단으로 되어있으며, 가운데가 잘록하고 아래 위가 넓게 조성하였다. 연화대 위편은 커다란 앙련을 조각하였는데, 사이가 너무 벌어지게 잎이 조성되어 있어 매우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아래쪽 연화대에도 앙련이 흐릿하게 조성이 되어있으나, 상당히 마모가 심하여 정확하지가 않다. 본존불은 전체적으로 비례가 맞지 않는 편이다. 얼굴은 네모나게 조성을 하였는데, 양편의 귀는 어깨에 까지 늘어졌으며, 목은 두꺼워 얼굴의 넓이와 목이 뚜렷하게 구별이 되지 않고 있다.

섬세한 연화문이 새겨져 있는 협시불

12월 6일, 봉녕사에서는 큰 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되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묘엄명사의 영결식과 다비식에 참석한 사람들로 인해, 각 전각마다 발 디딜 틈이 없다. 그 틈에도 문화재를 답사하겠다고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촬영을 한다.




본존불의 좌우에 서 있는 협시불의 얼굴 형태는 원만한 편이나, 각 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정확한 모습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협시보살의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가린 통견으로 조성을 하였는데, 조각 등은 섬세하지 못하다.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내리고 있으며 원추형의 대좌에는 연화문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삼존불이 모두 평평한 느낌을 주는 영감 없는 조각 기법이나, 각 부분의 형식과 표현 수법이 도식화 되어 있다는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존불 모두 전체적으로 표현기법 등이 동일해, 한 사람의 장인에 의해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큰 스님의 다비식을 맞아 찾아간 봉녕사. 많은 사람들 틈에서 조심스럽게 촬영을 하고 나오면서 생각을 한다. 어쩌면 저 삼존불의 원력이 있어 이렇게 큰 비구니스님이 득도를 한 것이나 아닌지. 삼존불 촬영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봉령사 하늘에 무지개가 걸려 있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걷다(9) - 공심돈

공심돈, 우리나라의 많은 성곽 중 유일하게 화성에만 있는 축조물이다. 1796년 3월 10일 완선한 서북공심돈. 공심돈이 완공을 한 이듬해인 1797년 3월 서북공심돈을 둘러 본 정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서북공심돈은 그 건축물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아, 2011년 3월 3일에 보물 제1710호로 지정이 되었다.

원래 화성에는 모두 세 곳의 공심돈이 있었다.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 그리고 남공심돈이다. 하지만 현재 남공심돈은 사라지고, 동, 서북공심돈만이 남아있다. 공심돈은 높은 곳에 올라 적의 동향을 살피고, 공격하기 위한 시설이다. 공심돈의 형태는 특이하게 조성해, 마치 화성 안에 작은 고성(古城) 하나가 자리를 잡은 듯하다.


화서문 곁에 축조된 보물 제1710호인 서북공심돈과(위) 창룡문과 동장대 사이에 서 있는 동북공심돈(아래)

치성 위에 올린 특별한 구조물 서북공심돈

보물로 지정이 된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은 그 모양이 각각 특색이 있게 조성이 되었다, 서북공심돈은 3층 건물로 꾸며졌다. 치성 위에 올려놓은 서북공심돈은 아래 치성은 돌로 쌓았으며, 그 위에 상부벽체는 벽돌로 쌓았다. 그리고 꼭대기에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전각을 올려놓았다.



화서문 곁에 서 있는 서북공심돈은 그 안이 비어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릴 수 있도록 꾸며졌다. 그러나 화성에서 출입이 제한된 곳 중 한 곳인 서북공심돈은 커다란 자물통이 채워져 있어, 안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서운하다. 화성 안에서도 독창적인 형태로 조성이 된 서북공심돈, 아마도 정조는 이 축조물을 보고 만족하였던 것 같다. 모든 이들에게 마음껏 구경을 하라고 한 것을 보면.


3층으로 축조된 보물로 지정이 된 서북공심돈

둥근 고성을 연상케 하는 동북공심돈

현재 남아있는 또 하나의 공심돈은 바로 동북공심돈이다. 동북공심돈은 연무대와 동문인 창룡문 사이에 세워져 있다. 둥근 원형으로 조성을 한 동북공심돈은 성곽 안으로 들어와 성벽의 여장과 사이를 두고 조성을 하였다. 작은 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동북공심돈은 통로가 나선형으로 위로 오르게 되어있어 ‘소라각’이라고도 부른다.

세계문화유산 화성 가운데서도 가장 특별하게 조성이 된 동북공심돈. 동북공심돈은 기단석은 돌로 놓고, 그 위에 벽돌을 이용해 축조를 하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는 잠겨 있는 곳이 있다. 아마도 무기고 인듯하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공심돈 위로 오르는 나선형의 통로가 있다. 맨 위에는 역시 전각을 지었는데 사람들이 올라 주변을 살피고 있다.




화성의 공심돈을 처음으로 짓고 난 당시에도 이렇게 공심돈의 위에 올라 주변을 살폈을 것이다. 공심돈 위로 오르면 주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나선형으로 돌아 오르는 길 벽면에는 총안이 나 있다. 주변 어디로도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천혜의 작은 요새이다.

아름다운 공심돈에 매료당하다.

서북공심돈은 1796년 3월 10일에 완공을 하였으며, 동북공심돈은 정조 20년인 1796년 7월 19일에 완공이 되었다. 화성은 그 짜임새나 둘레에 비해 빠른 공정을 보이고 있는 것 또한 특이하다. 아마도 많은 기물을 사용하여 축성을 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들어갈 수 없는 서북공심돈. 그리고 나선형의 통로를 따라 위에 오른 동북공심돈. 그 위에서 주변을 살펴본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심돈을 축조할 수 있었던 당시의 선조들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전쟁을 하기 위한 성곽이지만, 그 아름다움에 빠져 길을 떠나지 못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지금의 모습들이 왠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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