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에서 충북으로 넘어오는 길목인 조령 삼 관문에서 소조령을 향하여 흘러내리는 계류가, 20m의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수옥폭포. 단원 김홍도가 초대 현감으로 부임하기도 했다는 이곳은 '옥을 씻는다'고 할 만큼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명절 연휴에 꼭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는 길목에 이 폭포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이다.

 

정자에서 바라본 한 겨울의 얼어붙은 수옥폭포
 

사극 다모와 여인천하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수옥폭포는, 지난 해 MBC 대하드라마 '선덕여왕'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여름철에야 폭포의 아름다움을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하지만 폭포가 꼭 여름에만 아름다울까? 겨울철에 보는 폭포의 모습은 또 어떤 아름다움이 있을까? 그 모습을 보기위해 설 연휴에 찾아들었다. 여름철 주변 암반과 노송들이 어우러진 폭포는 절경이다. 하지만 설이 지난 명절에 찾는 수옥정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 줄까? 

 

연풍현감 조유수가 지은 옛 수옥정

 

폭포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정자. 여름이면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흥을 돋우고, 겨울이면 빙벽으로 변하는 폭포를 보면서 술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곳. 수옥정은 바로 그런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정자이다. 정자가 처음 지어진 것은 숙종 37년인 1711년이다. 당시 연풍현감 조유수가 청렴했던 삼촌인 동강 조상우를 기려 정자를 짓고, 정자의 이름을 '수옥정(漱玉亭)' 이라 했다. 이는 폭포의 암벽에 적힌 글이 증명을 한단다.

 

물이 언덕에 부딪쳐 흐르는 모습이 옥 같다는 뜻이니, 가히 이곳의 경치와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당시의 수옥정은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의 수옥정은 예전 수옥정이 있던 자리에, 1960년에 팔각정으로 새롭게 꾸몄다. 한 겨울 노송의 가지에는 하얀 눈이 쌓여, 그 무게로 가지들이 적당히 밑으로 처져있다. 엊그제 내린 눈을 치우지 않아 눈을 밟고 걷는 기분이 좋다. 발 밑에서 들리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이 눈길을 하염없이 밟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눈이 쌓인 노송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수옥정의 겨울정취


오늘의 수옥정은 암벽에 얼어붙은 빙벽과 그 틈새로 녹아 흐르는 물줄기 그리고 노송에 쌓인 눈꽃과 함께 서 있다. 이 수옥정을 조선조에 처음으로 연풍현감 조유수가 지었다고 하지만, 이미 그 이전에도 이 수옥폭포에 자리를 잡은 사람이 있다. 전하는 말로는 고려 말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정자를 짓고 머물렀다고 한다.

 

공민왕은 이 수옥폭포가 바라보이는 곳에 작은 정자를 지어 소일했다고 하니. 나름 수옥정의 역사는 오래다. 공민왕이 이곳에 와서 행궁을 지었다는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자 하나 쯤은 지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바위 틈 사이에 얼어붙은 고드름

 
신비하고 아름다운 빙벽

 

얼어붙은 수옥폭포의 신비함

 

수옥폭포는 3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류의 두 곳은 깊은 소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 확인할 수가 없으니 안타깝다. 밑에서 바라보는 폭포 하나만 갖고도 이렇게 절경이다. 밑에 소는 얼음이 얼어있고, 중간에 바위의 틈새 사이에도 천정에 고드름이 달려있다. 암벽에 얼어붙은 빙벽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가 부족하다.

 

수옥폭포에는 얼음 밑으로 물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두라마 여인천하와 다모, 그리고 최근에 선덕여왕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날이 풀리면서 조금씩 녹기 시작한 얼음이 물이 되어 소리를 내며 폭포 아래로 흐른다. 그 또한 여름 시원한 물줄기와 다른 정취이다. 폭포주변 나무에도 고드름이 달렸다.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져 신비한 겨울철의 장관을 연출한다. 겨울에 보는 폭포의 신비함. 매번 많은 폭포들을 찾을 때마다,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것만을 보아왔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겨울에 만난 폭포는, 우리가 알지 못한 또 다른 풍광을 맛보게 한다. 아마 이 풍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또 다른 수옥정의 모습과 함께.

이번에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다양한 문화재에 관련된 영상을 제작해 올리는 ‘헤리티지 채널’에서 영상 제작을 한다고 해서 함께 답사를 나가보았다. 문화재를 답사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소개하는 <러브人 문화유산>이라는 코너에, 소개가 된다는 것이다.

이번 촬영을 하면서 그동안 20년 가까이 전국을 돌며 문화재를 답사하고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문화재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 남들은 그런 나를 두고 ‘미쳤다’라고 곧잘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그 ‘미쳤다’ 라는 표현이 그리 듣기 싫지가 않았다. 스스로도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늘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사적 파사성 / 2009, 10, 18 답사

‘힘들다’ 느낄 때에 채찍질이 되다

사실 요즈음은 힘들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모든 여건이 점점 그렇다. 시간을 이용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체력적으로도 많이 떨어진다. 역시 세월은 속일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 그래도 아직은 ‘팔팔한 청춘’이라고 말은 하지만, 남몰래 저려오는 팔다리는 어쩔 수가 없으니 말이다.

촬영 중에 프로듀서가 묻는다. ‘왜 문화재 답사를 하는 것인가?’를. 그렇게 질문을 하면 딱히 대답을 찾지 못하겠다. 왜? 라는 질문이 참 낯설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문화재 답사가 ‘왜’가 아닌, ‘당연’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적부터 그렇게 당연히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문화재 답사는 일상이요, 당연이다. 답사를 하지 않으면 도대체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렇게 돌아다녔는데도, 돌아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다. 그렇기에 늘 마음이 조급하다.

나에게 문화재 답사는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

겨울에 찾아간 수옥폭포 / 2010, 2, 15 답사

나는 왜?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한다. ‘문화재 답사란 나에게 있어서는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 이라고.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석불이며, 탑, 마애불 등을 돌아보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문화재는 과거 선조들과 나를 연결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 생명이 없는 돌과 바위, 그리고 나무들과 스스로 대화를 하면서, 지금의 내가 과거의 선조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난 답사를 할 때마다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왜'가 아닌 '당연'이라는 해답을 찾는다.

내가 선조들에게 묻는 것이 바로 ‘왜?’이다. 왜? 무슨 마음으로 이것을 조성하였을까? 왜? 그 오랜 세월을 이렇게 피땀을 흘린 것일까? ‘왜’는 바로 내가 만난 문화재에게, 그리고 그것을 조성한 낯모르고 이름 모를 선조들에게 묻는 말이다.

그 왜는 때로는 엉뚱한 해답을 가져오기도
한다. 물론 그 해답이라는 것이, 나 스스로의 답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문화재로 인해 선조들과 이야기를 한다. 그 안에서 왜? 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재는 바로 남의 것이 아닌 우리 것

문화국가, 문화재사랑. 참 말로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저 마음으로나마 문화재를 소중하게 알아야한다는 생각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그러나 과연 마음으로나마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이 정말 궁금하다. 아마 다만 몇 사람만 있어도, 그 마음들이 모아지면 상당한 힘을 가질 것이란 생각이다.

단종이 귀향길에 물을 마셨다는 어수정(여주 골프장 안에 있다) / 2009, 11, 11 답사 

문화재가 국가소유, 지자체소유, 아니면 개인소유일까? 아니다. 그것이 비록 법적인 주인은 국가나 지자체, 혹은 개인일지 몰라도, 그것은 남의 것이 아닌 바로 우리 모두의 것이다. 하기에 우리가 지켜내야 한다. 혹 우리 것이니까 함부로 해도 된다는 멍청이 같은 생각을 하지는 말자. 우리 것이기에 소중히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재 답사. 아마 그런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했다면, 벌써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내가 살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오늘도 짐을 싸들고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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