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 안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194호인 창덕궁 향나무. 수령이 거의 800년 가깝다고 한다.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상나무, 노송나무로도 불린다. 이 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도 쓰이며 정원수나 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고 있는 창덕궁의 향나무는 2010년 태풍의 피해로 인해 손상은 되었지만, 뿌리부분인 밑동의 둘레가 5.9m 정도이다. 가지는 동서남북으로 1개씩 뻗어나갔는데 남쪽 가지는 잘라졌고, 북쪽 가지는 죽었으며, 동쪽 가지는 꼬불꼬불한 기형으로 자랐다. 나무의 모양은 마치 ()’이 하늘을 오르는 모습처럼 생겼다.

 

 

높이가 12m나 되는 창덕궁 향나무

 

창덕궁의 향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인 창덕궁 향나무.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2m 정도에, 뿌리부분인 밑동의 둘레가 5.9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 12.2m에 남북 7.5m로 넓게 퍼져있다.

 

창덕궁은 태종 4년인 1404년에 왕실의 별궁으로 창건된 곳이다. 창덕궁의 향나무는 창덕궁 창건후 상당히 큰 향나무를 다른 곳에서 창덕궁내로 옮겨 심었다고 하며, 이 나무의 수령을 약 800년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에 있어서 고관대작이라 하더라도 임금님이 부르실 때만 비로소 들어갈 수 있었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 전해지는 설로 볼 때, 이 향나무는 궁안에서 왕가의 왕족들만이 볼 수 있던 고귀한 나무였다. 이 나무는 왕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왕가의 온갖 화려한 모습을 보고 지내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닭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은 향나무가 최고

 

원래 향나무의 목재는 향불용으로 쓰였고, 옛날에는 울릉도에서 자란 향나무를 제일로 쳤다고 한다. 그것은 닭의 울음소리도 듣지 않고 자란 울릉향으로 제사용 향을 피우는 자가 가장 효자(孝子)’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

 

일반적인 향나무는 키는 20m, 지름은 1m에 이른다. 1년생의 가지는 초록색, 2년생은 적갈색, 3년생은 자갈색을 띠며, 오래된 나무의 수피는 얇게 벗겨지고 흑갈색을 띤다. 우리나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있는 향나무들은 모두 자생지를 포함해, 모두 12그루가 전해지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48호와 49호는 울릉군 서면 남양리 자생지와,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소재한 향나무 자생지이다. 울릉도에 가장 좋은 향나무가 자생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좋은 향은 울릉도에서 생산이 되었다. 수령이 가장 오래된 것은 제88호인 순천시 송광면 이읍리의 향나무와,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양령리에 소재한 향나무로 수령이 800년을 지났다고 한다.

 

제향을 모실 때 향을 피우기 위해 사용했던 항나무. 창덕궁 안에 있는 향나무는 특이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늘 그렇게 생육이 좋아서, 앞으로도 천년 세월을 더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이곳을 찾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제167호인 반계리 은행나무. 가을철에 보면 반계리 은행나무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천연기념물이 되려면 이 정도 위용은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반계리 은행나무의 높이는 34.5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는 자그마치 17m에 달한다. 동서로 38m 정도에 남북으로는 31m 정도의 거대한 나무다. 밑동의 둘레만 해도 15m 정도이니 이 나무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수령은 800년이 지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가을엔 주변이 온통 노랑색

 

이 나무가 가을에 물들기 시작하면 그 멋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반계리 은행나무만큼 무성한 나무가 흔치 않다. 또한 균형이 잘 잡혀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중 가장 아름답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이 나무를 즐겨 찾는 이유는 땅위로 솟아나온 나무의 뿌리 때문이다. 밑동을 둘러 쌓고 있는 돌출된 뿌리들을 보면, 마치 용틀임을 하는 듯하다. 정말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용 몇 마리가 서로 은행나무를 차지하려고 자웅을 겨루는 모습이다. 그래서 나뭇잎이 무성할 때가 되면 모든 일을 마다하고 반계리로 달려간다.

 

 

 

어깨를 펴고 하는 자랑. “나 천연기념물이야”

 

멀리 천연기념물 제167호인 반계리 은행나무가 보인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 위용이야 어디로 갈까? 나무 밑으로 들어가 위를 쳐다보니, 세상에 정말 아름답다. 나무 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과 하나가 된 은행잎들이 몽환적이다. 그 너머 아직도 초록빛을 띤 은행잎들도 함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밑에서 올려다 본 은행나무. '아~' 하고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직은 노랑 옷으로 갈아입지 않았지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다. 아니 오히려 햇볕사이로 보이는 초록색의 조화가 만들어진 멋진 색깔이 더욱 아름답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이 마을에 살던 성주이씨 가문의 한 사람이 심었다고도 하고, 이곳을 지나 가던 법력 높은 대사가 물을 마신 후, 짚고 가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고도 한다. 이런 전설이야 어느 곳에나 있지만, 은행나무 안에 흰 뱀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계리 은행나무는 신성한 나무로 여긴다. 또한 은행잎이 한꺼번에 물이 들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랜 성상의 흔적, 나무 혹

 

이 반계리 은행나무를 살펴보면 여기저기 혹 같은 것이 돌출이 되어있다. 그만큼 오랜 성상을 살아왔다는 징표인가 보다. 나무의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은데, 전하는 전설마저 신비하다. 그래도 아직 생육상태가 좋아 무성한 잎을 달고 있다. 가을 단풍이 들 때쯤 찾아간다면, 정말 아름다운 은행나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이 되면 사진깨나 찍는다는 분들이 전국 각처에서 모두 모여 든다. 시간을 내어 달려올 수 있도록 아름다운 나무이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한 그루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것은 그냥 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아무 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되는 것이 아니여."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나무가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은 것은 2008년 6월 16일이다. 전나무는 ‘젓나무’라고도 부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큰키나무를 말한다. 전나무는 흔히 펄프원료나 건축자재, 가구용을 많이 사용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전신주로 이용하기 위해 많이 심었다.

전나무의 높이는 20~40m, 지름은 일반적으로 1.5m 가량이 된다. 고산지대에서 잘 자라는 전나무는 나무껍질이 잿빛이 도는 암갈색으로 거칠다. 전나무도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비늘조각 모양의 표피를 갖고 있으며, 작은 가지는 회갈색이고 얕은 홈이 있다. 이러한 전나무 중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 온 것이, 바로 천연기념물 제495호로 지정이 된 전북 진안의 천황사 전나무이다.



겨울철에 만나본 전나무의 멋

천연기념물 중에서 나무들을 답사할 때는 계절에 맞추어야만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은 봄철과 여름철에, 은행나무는 여름과 가을에 답사를 한다. 그러나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과의 나무들은, 어느 때 찾아가도 좋은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진안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나무 천연기념물을 있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 며칠을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다.

최초의 전나무 천연기념물이라는 것도 그렇거니와, 자그마치 수령이 800년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그 위용이 어떠한지가 궁금하여 조바심이 난다. 무엇을 보아야겠다고 작정을 하면, 하루라도 빨리 가서 보지 않으면 병이라도 날 듯하다. 일요일 오후에 길을 잡아 진안으로 향했다. 남원을 출발하여 1시간 30분, 천황사 전나무가 있다는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로 접어들었다.


전나무 최초로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은 진안 천황사 전나무

천황사를 옆으로 두고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길이 미끄럽다. 더구나 추위에 여기저기 얼음이 언 곳도 있다. 조심스럽게 길을 올라 전나무가 있는 곳까지 닿았다. 밑에서 바라보는 전나무는,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저렇게 거목으로 자란 전나무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거목으로 자란 전나무의 아름다움

이 전나무는 천황사 남쪽 산 중턱에 자리한 ‘남암’이라는 암자의 번성을 기원하여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문화재청의 안내판에는 수령이 400년으로 되어 있고, 그 옆 석재로 된 안내판에는 800년으로 되어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정확한 것일까? 나중에 내려오다가 마을의 어르신께 물으니 800년이 지났다고 말씀을 하신다. 아마 그냥 보기에도 그 정도 수령은 되었을 것만 같다.

물론 문화재청에서 적은 것은 과학적인 측정방법에 의해 조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또한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전나무의 확실한 수령은 추정이 불가능한 것이 아닐는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것을 뜻하나 보다. 그러나 이 전나무가 천황사에 속한 암자인 남암의 번성을 기원하기 위하여 심었다고 하면, 의외로 해답은 간단하다. 천황사는 신라 헌강왕 때인 875년에 무염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그렇다면 그 뒤에 남암을 세웠다고 해도, 800년이라는 수령이 맞을 것으로 보인다.



밑동 한편에는 알 수 없는 구멍도 있어

이 전나무의 크기는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높이 35m정도에 가슴높이의 둘레는 자그마치 5.7m 정도이다. 이렇게 큰 전나무는 보기기 힘들다. 나무의 폭은 동서로 16.6m, 남북으로 16m 정도의 크기로 자랐다. 나무 밑동은 옹이가 진 듯 대단하다. 나무의 밑에서 위로 오르며 거북의 등껍질 같은 표피로 쌓여있고, 가지는 윗부분에 나 있다.

나무 밑을 돌다가 보니 팔이 드나들 정도의 구멍이 있다. 안을 들여다보아도 잘 보이지가 않는다. 무슨 짐승의 구멍 같기도 하다. 돌을 하나 던져보았다. 바로 소리가 나질 않는다. 이럴 때는 괜한 상상도 해본다.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의 전나무 중에서 가장 크다는 천황사 전나무. 전나무 중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최초의 나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밑동에 난 구멍과 수령이 800년임을 알리는 안내석

날은 쌀쌀하고 걸어 오르는 길이 미끄럽고 가팔라 힘은 들었지만, 오랜만에 만나 본 전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해 추운 줄도 모르겠다. 이런 즐거움만 있다면, 문화재 답사 길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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