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말에 이란 말이 있다. '굿이나 보고 떡이자 먹자'는. 과연 이 말은 맞는 이야기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맞는다'가 정답이다. 예전 굿판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지금은 굿을 하번 과일, 육고기 등 음식을 많이 차리지만, 예전에는 전과 떡을 수북히 쌓아놓았다.

이렇게 음식을 많이 준비를 하는 까닭은. 굿은 열린 축제이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굿판을 모두에게 개방이 되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집에서 굿을 한다고 하면, 그 집으로 발길을 옮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떡과 전을 준비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굿판에 가면 '굿을 보고 떡을 먹는' 것이 그 당시의 풍습이었다.


굿, 어떻게 다가서야 할까?

요즈음 일부 종교인들은 '굿'을 '미신'이나 ;우상숭배' 혹은 '마귀' 등으로 표현을 한다. 난 당연히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굿에서 보이는 많은 신들이 미신이고 우상숭배 혹은 마귀라고 친다면, 세상의 모든 신격들은 다 우상숭배요 마귀가 된다. 왜 유독 굿판에 현신하는 신격들만이 그런 이야길 들어야 할까? 그것은 굿을 잘 모르고 하는 무식의 소치이다. 또한 굿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고, 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초 이래서 굿을 해왔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 이 모든 것을 '맞이굿'이라고 불렀다. 가끔 드라마에서 보이는 천관이나 천녀들이 지금 우리가 보는 굿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맞이굿이란 하늘의 신인 '천신'을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이런 의식을 할 때는 3일 밤낮을 먹고 마시고, 춤을 추며 노래를 했다.

이런 굿이 시대가 흐르면서 연
희적 성격을 접고, 신성만 강조하다보니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질이 된 것이다. '굿' 그 자체는 정말로 'good'이다. 이런 굿판에서는 항상 먹을 것이 넘치고 사람들은 밤새 웃고 떠들고 같이 울고는 했다. 굿을 하는 주인집에서는 문고리마다 떡을 끼워 놓는다. 굿판에 모인 아이들이 다니면서 그것을 막게 하기 위함이다. 나눔의 장소, 그곳이 바로 굿판이었다.

좋은 날도 없는데 굿판이나 한 번 벌려봐!

사람들은 왜 긋을 할까? 물론 굿을 하는 무격들의 인격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사회에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무격들 중에는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30년 가까이 혼자거 300여명이나 되는 어른들을 모시고 봄, 가을로 경로전치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굿, 그 자체가 아니라, 굿을 하는 사람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전해지는 '굿니아 보고 떡이나 먹자'라는 말은 그만큼 우리에게는 좋은 의미이다. 굿판에 가서 즐길만큼 즐기고, 그러고도 배불리 먹을 수가 있다면 이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잇을까? 그래서 굿판을 '열린 축제의 장'이라고 표현을 한다.

굿 중의 굿, 안택성주굿

굿판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곳이 바로 굿판이기 때문이다. 안택성주굿은 집안의 가신 중에서 가장 으뜸인 성주를 모시는 굿이다. 일부러 성주굿만 하는 경우도 있다. 집안의 가장의 나이가 29, 39. 49. 59. 69 살이되면 성주를 맞아 모신다. 이렇게 9이라는 숫자에 성주를 모시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속설에 '아홉수를 넘기기 힘들다'고 하기 때문인가 보다.

성주를 받는 모습이다. 성주신이 내리면 성주대가 움직이고, 성주를 모실 자리를 알려준다. 

이 성주굿은 정말로 흥이 난다. 대청에 두 사람이 마주 앉는다. 한 사람은 징을 치고, 또 한 사람은 참나무로 만든 성주대를 잡고 앉는다. 축원을 하면 성주대가 움직여 성주를 달 곳을 알려준다. 성주신은 집안의 대들보나 안방의  위에 자릴 잡는다. 성주를 모시고나면 대천에서 길게 소창을 늘여 놓는다. 성주풀이를 하면서 지신을 밟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밤새 웃고 마시고, 울고 떠들고 춤을 추면서 지새우는 것이 바로 굿이다. 이런 굿의 진가를 모르는 무지한 인간들이 괜한 소리를 한다. 요즈음은 이런 굿판 보기도 쉽지가 않다. 하도 떠벌리는 인간들이 많으니 점차 산 속으로 숨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살기 멋같은 요즘 같은 세상. 걸진 굿판이나 벌렸으면 좋겠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게.


 

성주를 모시고 나면, 소창을 잡고 한바탕 춤을 추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누구나 다 이집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굿판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축제의 장'이고 끈끈한 공동체가 살아있는 곳이다. '굿이나 보고 떡을 먹는 곳'이기도 하다. 

2011년 6월 20일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81번지에 소재한 한옥. 평소에는 한정식을 하는 옛집에서 수원안택굿 한마당이 벌어졌다. 이날 굿을 주관한 남무(男巫) 고성주(남, 55세)는 4대째 강신무의 맥을 잇고 있는 흔치 않은 무가(巫家)의 사람이다. 오전에 준비를 마치고 오후 2시경부터 시작한 안택굿은 밤 12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예전 같으면 밤새 굿을 해야만 하지만, 요즈음은 주변에서 밤늦게까지 굿을 하면 신고가 잦아 12시를 넘기지 않는다. 이날의 안택굿은 경기도 굿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것으로, 그동안 쇠퇴되어 가고 있던 경기도 강신무굿을 재조명 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대청에서 앉은부정을 하고 있다. 집안에 든 모든 부정을 가셔내는 절차이다.(위) 본향상에 꽂힌 숟갈과 실타래(가운데) 이날 안택굿을 주관한 고성주(남, 55세) 


걸판진 수원 안택굿

원래 수원은 강신무들 중에서도 큰 만신이라고 불리는 만신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이다. 이렇게 큰 만신들이 수원으로 모여 든 것은 한양 성중(城中)에서 축출을 당해 성 밖으로 쫓겨난 강신무들이, 노량진에 자리를 잡아 ‘노들만신’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냈다. 그런 만신들이 수원부가 있던 수원에 상권이 크게 번창하자, 이곳에 터를 잡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맥을 이었다고 본다.

수원에는 전설적인 많은 만신들이 자리를 잡아 지역의 독창적인 굿을 만들어 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굿은 일 년간 집안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안택굿’이었다. 이러한 안택굿이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고성주가 수 십 년 만에 ‘수원안택굿’을 재현해 낸 것이다.



도깨비대감이 접신이 되면 쌀말에 뛰어올라 공수를 준다(아래)


방마다 가득 찬 사람들은 연신 웃고, 눈물을 훔치기도 하면서 굿판으로 빠져든다. 상마다 먹을 것을 가득 차려 놓고, 술 한 잔에 온갖 시름을 털어버리는 자리이다. 우리의 굿은 ‘열린 축제‘라고 한다. 누구나 다 그 자리에 참여를 할 수가 있으며, 굿판은 항상 문이 활짝 열려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입소문을 타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대감이 따라주는 술 한 잔에 웃고, 울고 난리법석이다. 사람들은 점점 굿판의 흥에 젖어들어 가고, 나중에는 춤까지 추어가면서 굿판을 즐긴다. 그야말로 걸판진 굿판이다.

도깨비대감이 납시다.

안택굿은 먼저 바깥굿이라고 하는 대문앞에서 지신밟기로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문 앞에서 모든 부정을 가시는 바깥부정을 치고 집으로 들어와 안당고사라고 하는 성주고사를 드린다. 성주고사가 끝나면 모든 사람들을 문 밖으로 나가게 하고 삼현육각을 울려 굿청을 정화시키는 ‘주당물림’을 한다.

주당물림이 끝나면 본 굿이 시작이 되는데, 굿의 순서는 앉은부정 - 본향(산, 본향, 군웅, 산대감) - 안당제석거리(불사, 제석, 칠성, 중상바라) - 부인호구거리 - 대신거리 - 대감거리(양반, 성주, 몸주, 텃대감, 업대감) - 조상거리 - 안택성주거리 - 창부거리 - 서낭거리 - 터굿 - 뒷전(걸립, 지신, 맹인, 수비영산)의 순으로 진행이 된다. 이 많은 굿의 제차 중에서 본향(김진섭), 부인호구거리(이지선), 대신거리(김은실)을 뺀 모든 절차는 고성주가 맡아했다.

대감굿을 하던 무격이 갑자기 두 자루의 신칼을 들고 뛰더니 덥썩 쌀 말 위로 뛰어오른다. 도깨비 대감이 올랐다. 수원안택굿에서는 도깨비대감이 접신이 되면 쌀 말 위로 오른다. 안택성주거리로 접어들자 대들보에는 소창 한 필이 걸려 마당으로 늘어진다. 징을 앞에 놓은 고성주와 성주대를 잡은 김은실이 마주 앉는다. 대가림을 하기 위해서이다.





성주대를 잡고 축원을 하는 '대가림'(맨위) 성주대를 잡은 김은실이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성주를 모셔오기 위해서이다(두번 째) 성주를 좌정시켰다(세번 째) 대청에 걸린 소창을 잡고 춤을 추며 지신밟기를 하는 사람들(아래)


‘대가림’이라는 생소한 말에 사람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성주굿에서는 먼저 성주대를 잡고 성주축원을 하면 성주대가 성주를 모실 곳을 알려준다.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김은실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성주가 집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밖으로 달려나가 성주를 모셔왔다. 성주를 모시고 나면 굿판에 모인 사람들이 소리에 맞추어 소창을 잡고 춤을 춘다. 지신밟기를 하는 것이다.

“아니 이런 굿을 왜 안하는 것이여“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집 안에는 굿체 빠진 사람들이 일어설 줄을 모른다. 장고잽이 변남섭과 고성주가 대문간으로 간다. 뒷전을 하기 위해서이다. 뒷전은 굿판에 모여 든 모든 잡귀들을 잘 풀어먹여 보내는 거리이다. 그래야 집안이 편안해 진다는 것. 뒷전에서 맹인의 차례가 오자 고성주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온다. 맹인굿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대문간에 걸린 청솔가지. 악귀를 쫓는다고 한다(위) 대문간에서 뒷전을 하는 고성주와 변남섭(가운데) 맹인이 지팡이를 잡고 대문으로 들어오고 있다(아래)


예전에는 이 뒷전은 뒷전무당이라고 해서 뒷전거리만 전문으로 하는 무당이 따로 있었다. 굿판의 절정을 볼 수 있는 거리이다. 굿을 잘 마무리 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재담이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이봐 이 집 사장. 이런 굿을 왜 안보여 주었나.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굿판에서 연신 막걸리를 마시며 즐거워하던 어르신의 푸념이다. 10시간여를 울리고 웃기던 수원 안택굿 한마당. 굿이 끝난 시간은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돌아갈지를 모른다. 그만큼 아쉬움이 남는 축제였다.


2011년 6월 20일 수원에 있는 궁전이라는 한옥에서 전통경기도 안택굿이 열립니다. 이 굿은 4대째 무가(巫家)의 계보를 잇고 있는 고성주(남, 55세)씨가 경기도 굿의 정수를 보여주는 마당으로, 이제껏 볼 수 없던 질펀한 경기도 굿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경기도 굿은 세습무들이 진행하는 중요무형문화재인 경기도당굿과 강신무들이 굿판을 여는 강신무굿이 있습니다.

강신무굿인 경기도 안택굿에서는 성주굿에서 대들보에 소창을 걸고 굿판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 천을 잡고 지신밟기를 하며, 뒷전에서는 맹인풀이 등 해학이 넘치는 굿판이 펼쳐집니다. 이런 기회는 앞으로도 볼 수 없을 듯합니다. 하기에 블러거님들 중 관심이 있는 분 딱 세분만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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