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을 치고 피리를 분다. 사람들은 길게 늘인 흰 소창을 어깨에 메고, 성주지경다지기를 부른다. 지경다지기란 땅을 단단하게 다진다는 뜻이다. 집안의 액을 물리치고 안과태평과, 동티가 나는 것 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4일 오후 오산시 세교동 모회사에서 벌어진 경기안택굿 보존회(회장 고성주)의 무격들이 주관을 한 재수굿 한마당.

 

오후 5시 경부터 상을 차리기 시작해, 이 회사의 재수를 빌어주는 경기안택굿이 시작을 한 것은 오후 6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그리고 굿이 끝난 시간은 5일 오전 2시가 조금 안돼서이다. 그 재수굿 중 집안에 성주신(城主神)을 놀리는 성주굿은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이날 굿 중 정말 잔치다운 굿거리였다.

 

 

성주신은 가신 중의 으뜸

 

성주굿(혹은 성주거리)은 안택굿 등의 제차에도 나타나지만, 집안의 가장의 나이가 27, 37, 47, 57, 67세 등과 같이 7의 수가 드는 해 10월에 택일하여 별도로 성주굿만 따로 제차를 행하기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10월에 집집마다 무당을 데려다 성조신(成造神)을 맞이하여, 떡과 과일을 베풀어 놓고 빌어 집안의 편안함을 바란다.’고 적고 있다.

 

성주는 가신 중의 으뜸이다. 어떤 형태의 집이 되었던지 그 집에는 성주가 좌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신 중의 으뜸인 성주는 대개 대들보나 안방의 문설주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이것은 성주를 받을 때의 경우이고, 일반적인 안택굿이나 재수굿 등에서는 성주를 별도로 모시지 않는다.

 

 

열린 축제의 진수 보여주는 성주굿

 

성주굿은 재담과 해학, 춤과 소리, 그리고 신성(神性)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열린 축제의 가장 흥겨운 제차이다. 먼저 성주올리기라고 하여 동쪽으로 뻗은 솔가지를 꺾어, 소지로 묶는다. 그리고 쌀을 담은 그릇에 솔가지 성주대를 꽂아 조무(굿을 도와주는 무당) 한 사람이 그 자리를 붙들고 앉는다. 주무는 징을 치면서 성주신은 청배한다.

 

성주가 내리면 성주대가 움직인다. 성주대는 성주가 뜬다고 하는 경우에는 밖으로 뛰쳐나간다. 집안에 좌정해야 할 성주가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그 성주를 모셔 집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애를 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날은 마침 성주가 바로 회사의 이층으로 올라가 대표 권아무개(, 46)의 집무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신탁인 공수를 주고 난 후, 다시 굿청에서 내려와 권대표와 함께 신바람 나게 춤을 춘다. 성주굿의 재미는 바로 이런 놀이판에 있다. 우리 굿은 그냥 축원을 하고 신탁인 공수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질펀한 춤과 소리, 그리고 놀이가 함께하기 때문에 열린 축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성주굿의 백미 지경다지기

 

성주굿의 백미는 성주지경다지기이다. 집안의 대들보에 흰 소창을 길게 묶어 내리지만, 이날은 회사의 공장과 사무실을 겸한 곳에서 굿이 이루어져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끝에 소창을 묶고 길게 늘여놓았다. 그리고 고성주회장과 무녀들이 그 끈을 어깨에 메고 지경다지기를 했다.

 

지경다지기는 성주축원을 한 다음에 경기 창으로 소리를 한다. 소리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흥겹다. 절로 춤이 나온다. 그렇게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땅을 밟는 것이다. 춤을 추면서 땅을 밟는 행위는 기본이 잘 다져져 회사가 잘 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한 시간 여를 그렇게 소리를 하고 난 뒤, 성주상에 실타래와 함께 묶어 놓았던 북어를 집안의 높은 곳에 모셔놓는다.

 

성주굿이 끝났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다. 그래도 누구하나 피곤한 기색이 없다. 또 이야기보따리가 열렸다. 굿판은 웃음과 해학이 넘친다. 그런 열린 축제 마당인 굿이 있어 경기안택굿은 전승이 되어야 한다. 그 마지막 제차를 혼자 지켜가고 있는 고성주회장의 존재가, 굿판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1년 6월 20일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81번지에 소재한 한옥. 평소에는 한정식을 하는 옛집에서 수원안택굿 한마당이 벌어졌다. 이날 굿을 주관한 남무(男巫) 고성주(남, 55세)는 4대째 강신무의 맥을 잇고 있는 흔치 않은 무가(巫家)의 사람이다. 오전에 준비를 마치고 오후 2시경부터 시작한 안택굿은 밤 12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예전 같으면 밤새 굿을 해야만 하지만, 요즈음은 주변에서 밤늦게까지 굿을 하면 신고가 잦아 12시를 넘기지 않는다. 이날의 안택굿은 경기도 굿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것으로, 그동안 쇠퇴되어 가고 있던 경기도 강신무굿을 재조명 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대청에서 앉은부정을 하고 있다. 집안에 든 모든 부정을 가셔내는 절차이다.(위) 본향상에 꽂힌 숟갈과 실타래(가운데) 이날 안택굿을 주관한 고성주(남, 55세) 


걸판진 수원 안택굿

원래 수원은 강신무들 중에서도 큰 만신이라고 불리는 만신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이다. 이렇게 큰 만신들이 수원으로 모여 든 것은 한양 성중(城中)에서 축출을 당해 성 밖으로 쫓겨난 강신무들이, 노량진에 자리를 잡아 ‘노들만신’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냈다. 그런 만신들이 수원부가 있던 수원에 상권이 크게 번창하자, 이곳에 터를 잡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맥을 이었다고 본다.

수원에는 전설적인 많은 만신들이 자리를 잡아 지역의 독창적인 굿을 만들어 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굿은 일 년간 집안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안택굿’이었다. 이러한 안택굿이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고성주가 수 십 년 만에 ‘수원안택굿’을 재현해 낸 것이다.



도깨비대감이 접신이 되면 쌀말에 뛰어올라 공수를 준다(아래)


방마다 가득 찬 사람들은 연신 웃고, 눈물을 훔치기도 하면서 굿판으로 빠져든다. 상마다 먹을 것을 가득 차려 놓고, 술 한 잔에 온갖 시름을 털어버리는 자리이다. 우리의 굿은 ‘열린 축제‘라고 한다. 누구나 다 그 자리에 참여를 할 수가 있으며, 굿판은 항상 문이 활짝 열려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입소문을 타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대감이 따라주는 술 한 잔에 웃고, 울고 난리법석이다. 사람들은 점점 굿판의 흥에 젖어들어 가고, 나중에는 춤까지 추어가면서 굿판을 즐긴다. 그야말로 걸판진 굿판이다.

도깨비대감이 납시다.

안택굿은 먼저 바깥굿이라고 하는 대문앞에서 지신밟기로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문 앞에서 모든 부정을 가시는 바깥부정을 치고 집으로 들어와 안당고사라고 하는 성주고사를 드린다. 성주고사가 끝나면 모든 사람들을 문 밖으로 나가게 하고 삼현육각을 울려 굿청을 정화시키는 ‘주당물림’을 한다.

주당물림이 끝나면 본 굿이 시작이 되는데, 굿의 순서는 앉은부정 - 본향(산, 본향, 군웅, 산대감) - 안당제석거리(불사, 제석, 칠성, 중상바라) - 부인호구거리 - 대신거리 - 대감거리(양반, 성주, 몸주, 텃대감, 업대감) - 조상거리 - 안택성주거리 - 창부거리 - 서낭거리 - 터굿 - 뒷전(걸립, 지신, 맹인, 수비영산)의 순으로 진행이 된다. 이 많은 굿의 제차 중에서 본향(김진섭), 부인호구거리(이지선), 대신거리(김은실)을 뺀 모든 절차는 고성주가 맡아했다.

대감굿을 하던 무격이 갑자기 두 자루의 신칼을 들고 뛰더니 덥썩 쌀 말 위로 뛰어오른다. 도깨비 대감이 올랐다. 수원안택굿에서는 도깨비대감이 접신이 되면 쌀 말 위로 오른다. 안택성주거리로 접어들자 대들보에는 소창 한 필이 걸려 마당으로 늘어진다. 징을 앞에 놓은 고성주와 성주대를 잡은 김은실이 마주 앉는다. 대가림을 하기 위해서이다.





성주대를 잡고 축원을 하는 '대가림'(맨위) 성주대를 잡은 김은실이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성주를 모셔오기 위해서이다(두번 째) 성주를 좌정시켰다(세번 째) 대청에 걸린 소창을 잡고 춤을 추며 지신밟기를 하는 사람들(아래)


‘대가림’이라는 생소한 말에 사람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성주굿에서는 먼저 성주대를 잡고 성주축원을 하면 성주대가 성주를 모실 곳을 알려준다.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김은실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성주가 집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밖으로 달려나가 성주를 모셔왔다. 성주를 모시고 나면 굿판에 모인 사람들이 소리에 맞추어 소창을 잡고 춤을 춘다. 지신밟기를 하는 것이다.

“아니 이런 굿을 왜 안하는 것이여“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집 안에는 굿체 빠진 사람들이 일어설 줄을 모른다. 장고잽이 변남섭과 고성주가 대문간으로 간다. 뒷전을 하기 위해서이다. 뒷전은 굿판에 모여 든 모든 잡귀들을 잘 풀어먹여 보내는 거리이다. 그래야 집안이 편안해 진다는 것. 뒷전에서 맹인의 차례가 오자 고성주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온다. 맹인굿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대문간에 걸린 청솔가지. 악귀를 쫓는다고 한다(위) 대문간에서 뒷전을 하는 고성주와 변남섭(가운데) 맹인이 지팡이를 잡고 대문으로 들어오고 있다(아래)


예전에는 이 뒷전은 뒷전무당이라고 해서 뒷전거리만 전문으로 하는 무당이 따로 있었다. 굿판의 절정을 볼 수 있는 거리이다. 굿을 잘 마무리 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재담이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이봐 이 집 사장. 이런 굿을 왜 안보여 주었나.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굿판에서 연신 막걸리를 마시며 즐거워하던 어르신의 푸념이다. 10시간여를 울리고 웃기던 수원 안택굿 한마당. 굿이 끝난 시간은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돌아갈지를 모른다. 그만큼 아쉬움이 남는 축제였다.


2011년 6월 20일 수원에 있는 궁전이라는 한옥에서 전통경기도 안택굿이 열립니다. 이 굿은 4대째 무가(巫家)의 계보를 잇고 있는 고성주(남, 55세)씨가 경기도 굿의 정수를 보여주는 마당으로, 이제껏 볼 수 없던 질펀한 경기도 굿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경기도 굿은 세습무들이 진행하는 중요무형문화재인 경기도당굿과 강신무들이 굿판을 여는 강신무굿이 있습니다.

강신무굿인 경기도 안택굿에서는 성주굿에서 대들보에 소창을 걸고 굿판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 천을 잡고 지신밟기를 하며, 뒷전에서는 맹인풀이 등 해학이 넘치는 굿판이 펼쳐집니다. 이런 기회는 앞으로도 볼 수 없을 듯합니다. 하기에 블러거님들 중 관심이 있는 분 딱 세분만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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