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 말을 들을 때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그릇에 원가로 따져서 1,000원을 잡아도, 2만 그릇이면 2천 만 원이나 되는 거액이다. 그런 금액을 선뜻 후원을 하겠다니, 처음에는 얼떨떨하다.

 

46(),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가 볼 수밖에.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23-3에 소재한 장애인 생활시설인 바다의 별’. 이곳에 스님짜장을 봉사하기로 한 날이다. 비는 내리지만 그래도 봉사를 하는 분들이, 벌써 주방에 들어가 야채를 써는 등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짜장스님인 운천스님과 함께 박정운 국민은행 수원 화서동 지점장이 짜장을 볶고 있다) 

 

박정운씨 봉사하는 자리에서 밝혀

 

바다의 별에는 색다른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평일에는 봉사를 할 수 없는 은행 직원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박정운(국민은행 화서동 지점장)씨와 함께 찾아 온 이들 10여명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바로 일을 시작한다. 누구는 밀가루 반죽을 하고, 누구는 짜장을 삶아낸다. 그런가 하면 배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 저희 지점 직원들이 저와 함께 봉사를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저희들이 일을 도와야죠. 평일에는 아무리 봉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오늘 이렇게 주말에 스님짜장 봉사를 하려고요.”

 

밖에서는 배식 준비가 한창이고(위) 주방 안에서는 스님이 면을 뽑고 있다. 모자를 쓴 이는 e수원뉴스 김우영 주간

 

박정운씨는 오래전부터 짜장스님과 친분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 어떻게 도와 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스님이 수원에 올라오셔서 봉사를 하실 때마다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원가 1,000원씩을 잡아 2만 그릇을 제가 후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후원을 하면 스님이 편안하게 짜장 봉사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죠

 

 

좋은 일을 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

 

주방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국민은행 화서동 지점에서 장애인 가족들에게 나누어 줄 요구르트와 귤 등도 준비를 했다. 장애인 생활시설인 바다의 별에서 묵고 있는 70여 명의 장애인들이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식판과 그릇에 스님짜장과 단무지, 요구르트와 귤 등을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 남짓 식사시간이 끝났다. 그리고는 일반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돌아갔다. 하지만 주방에는 박정운씨를 비롯해 국민은행 봉사자들이 열심을 내고 있다. 그릇을 세척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대걸레를 들고 식당 바닥을 닦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 국민은행 화서동 지점 직원들이 그릇을 세척하고 았다

 

이렇게 열심히 봉사를 하는 분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거기다가 박정운 국민은행 화서동 지점장께서 2만 그릇을 후원하시겠다고 하니, 절로 힘이 납니다. 앞으로 수원에서 스님짜장 봉사를 할 때는 아무런 걱정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있어 세상이 살 맛 난다.

 

짜장스님(남원 선원사 주지 운천스님)은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다. 사실 스님짜장 봉사를 하면서 전국을 다니지만, 적지 않게 들어가는 경비를 감당하기가 수월치는 않다는 것. 지리산에서 캔 야생 돼지감자를 이용한 국우차판매로 봉사를 하지만, 요즈음은 그것도 전과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생활이 팍팍해졌기 때문이란다.

 

봉사를 한 국민은행 화서동 지점 직원들과 스님이 기념촬영을 했다(맨 앞 줄 좌측이 박정운 지점장) 

 

스님께서 좋은 일을 하시다가 부상까지 당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 먼저라도 스님이 봉사를 하시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 결정을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직원들과 함께 스님의 봉사를 도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 아직은 온기가 있는가 보다. 적지 않은 돈을 쾌척하겠다는 박정운씨의 마음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참여하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짜장스님이 봉사를 하다가 부상까지 입은 것에 대한, 조그마한 보상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사랑실은 스님짜장’의 주인공인 운천스님, 참 억세게도 전국을 돌아다니신다. 가는 곳마다 인기 만점인 이 스님, 혹 나중에 대권 도전을 하실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농담이지만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시는데, 혹 누가 알리요. 아마도 지금 대권에 참가를 하셔도 꼴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이젠 유명한 스님이 되셨다.

 

짜장스님인 운천스님은 천년 고찰인 남원 선원사의 주지스님이시다. 하지만 사람들은 ‘운천스님’이라고 알기보다는, ‘짜장스님‘으로 더 잘 통한다. 늘 짜장면 봉사를 다니시기 때문이다. 더운 날은 짜장면이 상하기 쉬워, 잠시 주춤하셨다. 하지만 선선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다시 봉사가 시작되었다.

 

 

 

짜장봉사 쉽지는 않은데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베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스님이 남들을 위해 베푼 짜장면의 그릇 수가 3만 그릇이 넘는다. 한 그릇에 4,000원이라고 계산을 해보아도, 1억 2천만 원 어치를 봉사를 한 셈이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다. 봉사를 할 때마다 따라간 봉사단원들의 인건비를 계산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이렇게 시간과 정성, 그리고 많은 땀을 흘리며 봉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먹는 것일 테죠. 생각해 보세요 배가 고픈 사람들이 가장 부러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저희가 다니는 곳 중에는 군부대도 있고, 먹고사는데 있어서 굶주리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려고 하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죠. 그 분들에게 찾아가 짜장면 한 그릇을 드실 수 있도록 한다면, 작은 행복을 맛보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쉽지 않은 봉사인데도 불구하고, 일 년에 50회 정도의 봉사를 한다. 많은 달은 한 달에 10회 이상을 봉사를 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긴 하죠. 저야 그렇다고 쳐도 봉사단들은 정말 힘듭니다. 그렇다고 돈을 드리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봉사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늘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죠.”

 

이제 짜장봉사는 일상이라는 스님

 

9월 22일, 전라남도 순천시 북정 2길 20에 소재한 순천북초등학교 강당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시끌벅적하다. 순천시 라이온즈 클럽 등이 주관하는 경로잔치에 많은 어르신들이 모이셨다. 이 자리에서 짜장봉사를 하시기 위해 일찍 순천으로 향한 짜장스님과 봉사단. 커다란 가마솥을 차에서 내려 짜장을 볶느라 부산하다.

 

 

 

강당 무대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각종 공연도 마련되었다. 모처럼 이런 행사에 참석을 하신 어르신들은 마냥 즐겁다고 하신다. 들통에 짜장을 담아 어르신들께 배식을 하는 짜장스님은 땀을 흘리시면서 열심히 나누어드린다.

 

“고기도 안들어 갔는데 정말 맛있구먼.”

 

어르신들의 그 한 마디에 쌓인 피로가 가신다고 한다. 500명 쯤 모이신 어르신들은 그렇게 강당 바닥에 발을 펴고 앉아 짜장밥을 드셨다.

 

“스님이 절에서 불경을 외고,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급식을 하는 것도 좋은 공양구죠. 이제 짜장봉사는 저의 일상입니다. 그리고 다 많은 분들께 해 드릴 수 있도록 해야죠. 가을이 되었으니 이제 돼지감자도 열심히 캐야 합니다.”

 

 

 

짜장스님이 지리산에서 야생하는 돼지감자를 캐는 것은, 그것으로 차를 만들어 파시기 위해서이다. 그 돼지감자를 판돈으로 짜장봉사를 다니신다. 하지만 그것만 갖고는 늘 부족하다. 그래도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스님은 밥차가 한 대 있었으면 더 많은 분들께 봉사를 할 수 있다고 안타까워하신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께 짜장봉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함께 나누는 것보다 좋은 공덕은 없으니까요”

남원 천년 고찰 절집인 선원사에는 예쁜 녀석들이 지난 해 입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녀석이 약 한 달 전에 귀여운 녀석들을 낳았다고 하네요. 이 녀석들 암 수 한 마리씩인데 아직 젖도 떼지 못했습니다. 엄마 곁을 따라다니다가 사람들이 오면 쫄쫄거리고 따라 나옵니다.


하얀 색이 솜털 같기만 한 포메라이안 두 녀석인데 엄마를 떨어져서도 곧잘 놉니다.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요. 두 녀석과 함께 있으면 걱정 근심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역시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끼들은 다 귀여운 것 같습니다. 이 녀석들 좀 보시죠.


  

이 녀석이 숫놈입니다. 그래도 으젓하죠.


두 녀석은 꼭 붙어 다니네요. 아직 어려서인지









혜민스님은 미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 출가를 해 스님이 되셨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한 마디로 잘 나가는 대기업에 있다가, 환경운동가로 돌아서 수원시장이 되었다. 두 사람 다 범상치 않은 이력을 갖고 있다. 6월 10일 오전 10시 30분. 수원시 팔달구에 소재한 화성박물관 야외무대. 특이한 경력을 가진 염시장과 혜민스님이 대한불교청년회 회원 600여명과 조우를 했다.

 

이 자리에서 사회자의 질문을 대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청년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 행사는 대한불교청년회 창립 92주년 기념으로 열린 ‘정조의 꿈, 孝 문화강국을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로, 전국불교청년대회로 열렸다.

 

 

환경운동을 한 시장과 하버드대를 나온 수재 스님의 조우

 

11시가 넘어서면서 기온은 30도 가까이 올랐다. 그냥 앉아있기만 해도 땀이 흐른다. 야외무대 주변에는 나무들이 있다고 하나, 바람 한 점이 없는 날이다. 종이모자로 겨우 햇볕을 가렸다고는 하지만, 흐르는 땀을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이다. 패널로 초대가 된 혜민스님이나 염태영 수원시장 두 인물이, 결코 평탄치 않은 세상을 살아왔기에 할 이야기도 많은 듯하다.

 

“저는 경제적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별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막내 동생이 대학이 졸업하고 난 뒤 환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막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돈벌이를 하겠다고 생각을 했기에, 남들이 좋은 직장이라는 것을 떨치고 나온 것이죠. 그 후 10년 동안 급여 없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 당시 여러분들이 조금 전에 지나 온 매향교서부터 지동교까지 복개를 한 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격적으로 환경을 생각하면서 반대운동을 펼친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었고, 제가 시장이 된 후로는 수원천 살리기와 남수문 복원 등을 이루어내게 되었습니다. 남수문은 두 번의 홍수로 피해를 입은 지 90년 만에 복원을 하였죠. 여러분들의 역사와 비슷합니다.”

 

수원을 찾은 대한불교청년회 회원들과의 대화를 하는 염태영수원시장(좌)과 혜민스님(가운데)

 

염태영 수원시장의 말에 대한불교청년회(이하 대불청) 회원들은 박수로 환호를 했다. 이어서 마이크를 받은 혜민스님은

 

“대한민국은 참 이상한 곳이다. 딴 나라에서는 그 사람의 능력을 갖고 평가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를 제일 먼저 물어본다. 그 사람의 실력하고는 관계없이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를 더 중시한다. 이런 풍토는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들도 외로움을 느끼는가?

 

사회자의 질문에 염태영수원시장은 ‘당연히 외로움을 느낀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연과 함께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친구들과 아울려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에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화성발물관 야외무대에서 패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대불청 회원들

 

“행정이란 여러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집니다. 시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마음 같아서는 모든 분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도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행정입니다. 그럴 때 제 마음과는 달리 서운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럴 때는 참 외롭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라는 대답이다.

 

외롭지 않는냐는 질문에 대해 혜민스님은

 

“내가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 때, 나는 그런 뜻으로 하지 않았는데 그 말을 곡해하는 경우가 있다. 일을 잘 하려고 했던 것을 갖고 시기하고 질투를 하는 경우를 만나면 참 외롭다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 나는 우리 마음에 있는 울분을 삭히는 법을 먼저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억울하고 힘이 들 때는 친구들과 대화를 한다. 친구들이야말로 가장 좋은 대화의 상대이다. 내가 억울한 사정을 가장 잘 들어주면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동지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보면 외롭다는 것은, 결국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불필요한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염태영 수원시장

 

한 시간 여의 패널로 초청된 염태영수원시장과 혜민스님에 대한 공통적인 질문이 끝나고, 대불청 회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회원은 ‘가진자들에 대한 횡포로 인해 정신공해를 당했는데, 이럴 때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이 질문에 대해

 

“시민들의 표를 언어서 당선된 시장도 일종의 권력자이다, 하지만 정치인과 행정가는 다르다. 국회의원이라는 정치인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지만, 시장의 권력은 중앙에서 나누어 준 1%의 힘 밖에는 없다. 그런데 행정을 하는 시장은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나는 주민들과 ‘느티나무 밑 대화’를 많이 한다. 그리고 늘 찾아다니면서 행정을 펼친다. 시민들의 사연을 듣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시장이 되려고 노력한다. 하기에 시장에게 권력을 대해 이야기를 하라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헤민스님의 대답은 수행자이기 때문에 염태영시장의 대답과는 달랐다.

 

“나만 피해를 당하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피해를 입게 된다. 그렇다고 상대방만 원망하고 미워한다면, 결국 그 피해를 보는 쪽 역시 나이다. 하기에 먼저 내가 왜 피해를 보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그 다음에 나를 스스로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것이 권력 앞에서 내가 그래도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2시간 정도의 대화를 마친 후 염태영수원시장은 대불청 회원들에게 수원을 자주 찾아줄 것을 부탁 한 뒤, 남원에서부터 새벽길을 나서 짜장봉사를 하러 온 사랑실은 짜장 운천스님’에게 고생이 많다면 위로의 말을 남겼다. 운천스님 또한 수원출신으로 후배이기 때문에 더 반갑다고 기념촬영까지 함께 했다. 스님짜장을 먹고 있던 한 회원은

 

 

짜장면을 먹기위해 늘어선 줄과, 염태영수원시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운천스님 

 

“오늘 참으로 감명 깊은 시간이 되었다. 그래도 인구 110만의 자치단체를 이끄는 시장님이 나와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는가 하면, 많은 법문으로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신 혜민스님과 같은 자리에서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도 감사한다. 무엇보다 남원서부터 수원까지 짜장봉사를 와 주신 운천스님과, 선원사 신도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남원시 도통동 392-1에 소재하고 있는 천년고찰 선원사. 선원사는 신라 헌강왕 원년인 875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도선국사가 남원의 지세를 실펴 보니, 객산인 교룡산이 주산인 백공산보다 강해, 지세가 약한 주산의 힘을 돋아주어야 남원이 번창할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하였다는 것.

백공산의 모체는 천황봉 밑 만행산의 줄기이므로, 만행산의 힘을 빌어 교룡산의 힘을 누르고자 선원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선원사는 한 때는 가람의 크기가 만복사에 버금가는 큰 사찰이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다. 그 후 조선 영조 30년인 1754년에 부사 김세평이 현재 양로당의 전신인 노계소 신도계와 협의하여 복구하였다고 한다.

도심 속에 자리한 선원사. 좌측이 약사전, 우측이 대웅전이다. 전각 앞게 각각 두 개씩의 문화재 안내판이 서 있다.

보물이 있는 도심 속의 절 선원사


선원사는 도심 한 복판에 자리한다. 예전에는 남원팔경 중 ‘선원모종’이라고 하여, 해질녘 울리는 선원사의 종소리가 은은히 울리는 것을 한 경치로 삼을 정도였다. 선원사에는 보물 제422호인 철조여래좌상과 동종, 약사전 등의 유형문화재와, 문화재자료인 대웅전 등이 소재하고 있다.

도심 속에 있는 고찰답게 선원사에는 심심찮게 관광객들과 외국인들도 찾아든다. 도심 속에 이러한 고찰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색다르게 느껴지는가 보다. 그들은 선원사에 들려 무엇을 가장 먼저 살펴볼까? 그것은 바로 약사전과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문화재의 안내판이다. 안내판이란 그 절에 어떠한 소중한 문화재가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으로, 문화재의 보존과 홍보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이다.



약사전과 약사전 앞에 세워진 문화재 안내판.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보물 철조여래좌상과(가운데) 유형문화재 약사전의 안내판이다.

지워진 안내판, 사람들이 들여다보면 낯 뜨거워

남원은 문화재가 많은 곳이다. 여기저기 산재한 문화재의 양으로 따지면, 볼거리가 다양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남원에서 문화재를 찾아보기란 정말로 힘들다. 어딜 가나 길거리에 서 있는 안내판에는 만인의총과 광한루원 밖에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이 두 곳의 사적과 명승은 남원을 대표할만한 문화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문화재는 큰길서부터 유도를 하는 안내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어느 곳을 가든지 큰 길에 서 있는 문화재 안내판을 보고 문화재를 찾아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문화재도 없고, 역사도 입증되지 않은 사찰은 버젓이 공식적인 안내판에 소개가 되어있고, 정작 역사가 입증되어 있는 사찰은 그 어디에도 안내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대웅전과 유형문화재인 동종 안내판과 문화재자료 대웅전 안내판. 그러나 정작 유형문화재인 동종은 약사전 안에 있었다.

더구나 보물 등 문화재가 소재하고 있는 선원사 등은 어디에도 길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선원사 약사전과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네 개의 문화재 안내판은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글자가 다 지워져 식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안내판이 이 정도인데도 새로 제작 중이라는 말만 한다는 것이다.

각 지자체마다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하나라도 더 많이 알리고, 그것을 이용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다. 요즈음은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 등에 관심을 갖고 자녀들과 답사를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남원의 문화재는 모두 꽁꽁 숨어 있다. 제대로 된 유도를 하는 안내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지워져 알아볼 수조차 없는 안내판 때문이다.



문화예술도시라는 남원. 과연 이 모습을 보고도 그런 자랑을 할 수 있으려는지. 낯 뜨거운 이러한 안내판. 하루 빨리 시정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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