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한 끝이 나를 불러

다시 돌아와 선

애월리 바닷가

 

不感

마른 생각 하나

솔숲에 묻는다.

 

꼭 손바닥만 하던

나의 열일곱,

시간은 늘

위태로운 몸짓으로

바다의 둥지 속으로 풀려가고

 

해풍에 절은 기다림이

점박이 나리꽃으로 붉던 날

억새꽃 마른 꽃대로

일어서던 섬이여(하략)

 

 

임애월의 시집 <정박 혹은 출항>에 실린 다시 애월리에서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2013년 새해 들어 첫 만남을 가진 시인 임애월(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석천리 거주, , 54). 그녀를 만난 곳은 허름한 수원천변의 한 선술집이다. 그런 곳을 마다않고 선뜻 자리를 함께 해준 임애월 시인의 본명은 홍성열(洪性烈)이다.

 

제가 필명을 임애월(林涯月)이라고 사용하면서, 사실은 많은 분들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숲과 물가 그리고 달, 그 세 가지를 아우르는 이름이거든요. 제주를 그리는 애월이란 호를 많은 분들이 시용하고 싶어 하셨는데, 제가 먼저 필명으로 사용을 하서 정말 죄스럽기도 하고요

 

책 읽기를 좋아했던 섬소녀

 

시인 임애월은 제주 출신이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5년 정도가 되었다. 정식으로 등단을 하기도 전에, 그 이전부터 벌써 문인지에 시가 실릴 정도였다. 그만큼 차곡차곡 쌓아왔던 어릴 적 책읽기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는가 보다.

 

기자님은 어릴 때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살던 곳은 어릴 적 교과서 외는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책을 읽는 것이 행복해 오빠들이 만화책을 빌려오면, 그것을 보고 자려고 밤늦게까지 졸린 눈을 부비며 기다리고는 했죠. 그래도 정말 재미있는 책은 국어 교과서였어요. 제가 초등학생 때 오빠가 중학교를 다녀서 오빠 국어책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죠. 오빠가 고등학생일 때는 제가 중학생인데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고는 했어요.”

 

어릴 적부터 책읽기가 좋았다는 섬 소녀 임애월은 그렇게 글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한 후 서울을 거쳐 수원으로 화서 정착을 했다. 아이가 중학교를 다닐 때 어머니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수원문화원(당시 심재덕 원장)에서 백일장이 있다고 주변에서 나가보라는 권유를 했다.

 

벌써 20년이나 지났네요. 수원에서 하는 백일장은 초, , , 일반으로 나뉘어졌는데, 당시 일반부는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참가를 했어요. 거기서 운 좋게 시 부분 장원을 한 것이죠. 그 뒤 임병호 선생님께서 하시는 문학 강의 등을 듣게 된 것이 본격적으로 시를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고요. 등단은 1999년에 했는데, 그 이전인 1998년에 경기시학에 글이 실리고는 했어요.”

 

시인이 되어 정말 행복하다

 

임애월 시인은 감성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 시상(詩想)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주저없이 여행을 떠난다고. 그곳에서 만난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쎄요, 사람들은 흔히 시인을 영감설과 장인설로 나누고는 하는데, 저는 영감설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지시에 의해서 80% 이상의 시를 쓰고 있으니까요. 시는 억지로는 되지 않잖아요. 오히려 억지로 글을 쓰려고 하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듯도 하고요. 그저 어느 순간 떠오르는 시어를 적어갈 때가 가장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듯해요

 

 

그저 막걸리 한 잔 앞에 놓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즐겁다. 시를 쓰면서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다.

 

세상 모든 사람은 직업을 가지면 정년이라는 것의 올무에 갇히게 되죠. 하지만 시인은 그런 것이 없어요. 저는 시인이 되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해요. 물론 시를 쓴다는 것이 생활에 수단은 되지 않겠지만, 기댈 수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죠. 시는 자신과의 대화라고 하잖아요. 이 다음에 더 나이가 먹어도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는 것이죠.”

 

표정조차도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 동안 <정박 혹은 출항><어떤 혹성을 위하여> 등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 시를 쓰면서도 지역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임애월 시인은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와 수원시인협회 이사, 국제 PEN 한국본부 경기자역위원회 사무국장, 유네스코 경기도협회 이사, 기전문화연구회 연구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수원문학상과 경기문학인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임애월 시인. 시인이어서인가? 마주 앉아 있으니 시인의 고향 제주 바닷가의 한적한 길을 걷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절반쯤 버리고 나니

바다가 보였다

남양만의 밀물이

가슴 속으로 흘러왔다.

 

임애월 시인이 살고 있는 화성시 우정읍 석천리를 그린 시이다. 늘 그렇게 자연과 대화를 하고 사는 임애월 시인. 언젠가는 그녀를 졸라대 바람을 따라 길을 나서고 싶다.

수원 행궁 - 화서문 뒷골목에서 만난 이야기들

 

뒷골목을 걷다가 보면, 의외로 재미가 있다. 우중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뒷골목에는 의외로 이야기꺼리들이 숨어 있다. 요즈음 수원의 뒷골목을 ‘기웃거리는 재미’에 푹 빠진 것도, 그런 재미를 붙여서이다. 그리고 그 뒷골목에서 만나는 음식 한 가지 정도나, 살아가는 이야기가 하나 덤으로 붙어 온다면 그야말로 재수있는 날이란 생각이다.

 

어제 줄기차게 퍼붓던 비가 밤늦은 시간에 그쳤다. 오늘은 모처럼 아침부터 시원한 바람이 창문을 넘어 들어온다. 이런 날이면 좀이 쑤셔 붙어있을 수가 없다. 수첩과 카메라 한 대 달랑 들고 뒷골목을 찾아 나섰다. 화성 행궁 앞에서부터 화서문까지 가는 골목길은 고작 700m 정도이다. 그 안에는 어떤 모습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시장님 하늘에서 우리학교를 지켜주세요‘

 

행궁 앞을 벗어나 화서문 쪽으로 길을 시작하면 신풍초등학교 정문이 나온다. 그 앞으로는 요즈음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진 찍기에 바쁘다. 해바라기와 수세미, 호박 등이 달려있는 커다란 화단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옆에는 잘 가꾼 텃밭이 있다. 신풍초등학교는 수원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이다. 그런데 그 담장에 현수막 하나가 눈길을 끈다.

 

‘우리 신풍초교 동문이신 고 심재덕 시장님, 116년 역사 이 학교 하늘에서 꼭 지켜주세요’

 

이런 문구가 조금은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116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신풍초등학교가 2013년까지 광교신도시로 옮겨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신풍초등학교는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오래된 학교다. 1896년 수원군 공림소학교로 개교하여, 일제 수난기와 6·25사변을 거치면서 도내에서는 최초로 초등교육의 뿌리를 내린 터다.

 

 

 

수원교육청 앞에는 심심찮게 신풍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이 학교자리는 원래 화성행궁이 서 있던 곳이다. 행궁 복원을 시작할 때부터 이전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학부모와 선생님들, 그리고 동문들까지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화성 행궁의 복원도 생각해보아야 할 국책사업이다.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할 때인 듯하다.

 

이야기꺼리는 찾아보면 되는 것이지

 

짠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몇 발자국만 걸으면, 외형상으로는 지저분한 건물 하나를 만나게 된다. 수원시에서 매입을 하여 부수려던 건물 하나를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준 곳이다. 레시던시 입주작가들은 나름 활발한 활동을 한다. 이 건물 벽에는 작은 그림 도판들이 빼꼭 들어차 있다. 그것을 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좌측으로 난 차도를 따라 걸으면 화령전 솟을 문이 나온다. 화령전은 사적 제115호이다. 화령전은 조선 제22대 임금이었던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던 건물이다. 23대 임금인 순조는 아버지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본받기 위하여, 순조 1년인 1801년에 수원부의 행궁 옆에 건물을 짓고 화령전이라 하였다.

 

화령전 앞에는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마도 신풍초등학교 아이들인 듯하다. 크고 작은 아이들이 모여서 번호를 따라 외발로 뛰는 놀이가 재미있다. 그런 놀이를 잃어가고 있는 요즘 아이들이 왠지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걷다가 보니 전봇대를 타고 오르는 넝쿨이며, 대문 앞 화분에 심어놓은 고추들이 보인다. 그 또한 길을 걷는데 감초역할을 한다.

 

고추 화분이 놓인 집 대문간에는 이런 문구가 걸려있다. ‘주의 소독함‘, 얼마나 지나가면서 고추들을 따가기에 이런 푯말가지 붙여 놓았을까? 남의 고추를 말도 않고 따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겠다.

 

 

 

길 끝에서 만난 초가집, 선술집이 따로 없네.

 

길 끝에 화성이 보인다. 꺾인 길을 돌아서니 그 끝에 초가집 한 채가 보인다. 주인장의 말로는 한 30여년 정도 된 집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음식과 술을 판다. 그야말로 화서문과 어우러진 선술집처럼 느껴진다. 낮 시간이라 술을 한 잔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붙어있는 가격표가 재미있다.

 

뒷골목, 난 왜 침침한 뒷골목이 좋은지 모르겠다. 혼날 말이지만 뒷골목은 낙후된 곳일수록 정겹다. 그런 곳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인가 보다. 그 뒷골목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 역시 난 뿌리부터가 서민인 듯하다. 하기야 좋은 집에 좋은 차타고 거들먹거려보았자. 땅 속에 들어가면 한 줌 흙이 되기는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