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말입니까? 선생님 덕분에 파출소 신세까지 졌다니. 아마도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지 않으면 오해의 소지도 있습니다. 하기에 끝까지 정독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40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보니 참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습니다. 세월이 언제 이리 되었는지....

 

제가 다니던 학교는 한 학년에 한 학급만 있는 특수음악 학교였습니다.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늘이 바로 ‘스승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참 잊지 못할 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3년 동안 담임을 맡으셨던 이 선생님은, 제게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시기도 합니다.

 

 

검소가 몸에 배신 선생님

 

어릴 적 가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속으로 꽤나 웃고는 했습니다. 선생님이 속옷을 기워 입는다는 말씀에. 하기야 1960년대 중반 누구나 속옷을 기워 입었을 때입니다. 당시야 모두 뻣뻣한 광목으로 된 속옷을 입었을 때니까요. 지금 사람들이 들으면 ‘설마’라고 하겠지만, 당시는 너나없이 광목으로 된 속옷을 입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입다보면 앞쪽보다 먼저 뒤쪽이 떨어집니다. 실제로 많은 접촉을 하게 되는 뒤쪽이 닿아 구멍이 나는 것이죠. 그러면 뒤쪽을 갈아 반대로 입으신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설마’라며 배를 잡고 웃었지만, 능히 그럴 만도 하단 생각을 합니다. 워낙 검소함이 몸에 배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3년을 두고 보아도 양복 한 벌로 3년을 보내신 분입니다.

 

그렇다고 생활에 쪼들리지는 않으셨던 듯합니다. 성북동에 꽤 넓은 땅을 갖고 계시면서,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하셨으니까요. 그런 선생님 때문에 파출소 신세까지 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음만 나옵니다.

 

 

선생님 댁에서 생긴 일

 

당시 선생님 댁은 성북동이고 제가 사는 곳은 돈암동입니다. 멀지 않은 곳이죠. 한 마디로 동과 동이 그리 멀지 않게 접해있는 곳입니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댁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왜 그랬는지. 선생님 댁을 찾아가면서 제가 사들고 간 것이 식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리 배부른 시절이 아니었으니, 식빵을 사들고 가 그것으로 점심을 대신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댁에서 빵을 찍어 먹으라고 내 놓으신 것은 꿀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당시 벌을 상당히 많이 치셨습니다. 집 뒤편이 산이기 때문에 그곳에 양봉의 벌통이 즐비하게 서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꿀에 찍어먹는 식빵. 아마 그 당시는 그 무엇보다도 맛이 있는 잠심이었을 것입니다. 함께 동행을 한 친구녀석과 둘이 꿀 한통을 다 비웠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외출에서 돌아오신 사모님께서 울안에 가득 달린 포도송이를 몇 개 따시더니, 집에서 키운 것이니 맛이라도 보라는 것입니다. 그 맛 또한 일품이었죠.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해

 

문제는 그때부터입니다. 속이 이상하게 부글거리더니 열이 실실 나기 시작합니다. 오래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게 먼 일입니까? 꿀과 포도가 뱃속에서 사단이 된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 영 죽을 맛입니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어이, 거기 학생들 이리와 봐”

“저요?”

“그래 너희들”

 

바로 선생님 댁을 내려오면 길가에 서 있는 파출소 앞에서 한 분이 불러대는 겁니다. 무슨 일인가해서 갔더니, 다짜고짜 파출소 안으로 밀어 넣는 겁니다. 당시는 학생이 대낮에 얼굴이 벌겋게 되었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 이러세요?”

“대낮에 학생녀석들이 술을 먹고 다녀”

“저희 슬 안 먹었는데요”

“그런 하~ 해봐”

 

이런 세상에 점심 때 먹은 포도와 꿀이 뱃속에서 발효가 되었는지. 술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포도주 냄새가요. 일단 엎드리라고 해서 엎드려 있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일어났습니다. 다시 엎드리라면서 머리통을 쥐어박기에, 이야기나 들어보라고 하면서 사실대로 말을 했죠. 결국은 선생님 댁에 전화를 하고 풀려났지만. 참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옵니다.

 

벌써 45년이나 된 기억입니다. 포도하고 꿀을 함께 먹으면 그것이 발효가 되긴 하나요? 지금까지도 이해가 가질 않는 것 중 하나입니다. 날이 덥다고 하지만, 그렇게 발효가 몸 속에서 빨리 되는 것인지. 아무튼 스승의 날만 되면, 그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그립기도 하고요. 우리들에게는 선생님이기 이전에 아버님 같은 분이셨기도 합니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잊히지 않는 선생님에 대한 기억입니다.

요즈음은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예전에는 그래도 기본적인 예의정도는 선생님들이 입에 달고 다니셨다. 무엇은 어떻게 하면 안된다거나, 어른들을 보면 인사를 잘 하라거나 하는 식으로 학생들이 해야 할 행동거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교육이 요즈음이라고 없지는 않을 것이다. 중학생들에게는 '도덕'시간이 있으니 기본적인 예절을 가르칠 것이다.

음력 초하루라 아침 일찍 산사에 올랐다. 오전 10시 40분부터는 '사시예불'이라고 하는 예불시간이다. 절에서는 하루 중 중요한 가장 중요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 9시 경에 중학교 학생들이 산사로 올라왔다. 가을 소풍이라도 온 것인가 보다. 아이들이 산사 마당에 가득하다 보니, 절 안이 소란하다.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는 소리가 산사 안에 가득하다.

아이들이 내려 간 후 산사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널려있다.

떠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


예불시간이 되었는데도 아이들의 소란은 그치지를 않는다. 예불을 드리는 분들은 시끄럽게 한다고 하면서도 밖을 향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선생님들이 함께 계시니 어련히 알아서 조용히 시키겠지 하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에불이 시작되었는데도 소란은 그치지를 않는다. 심지어는 법당 앞 계단까지 와서 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들이다. 더 화가나는 것은 선생님들이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도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까지 있다. 예불시간 내내 한 번도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지, 한 시간 내내 그렇게 시끄럽다, 에불을 마치고 나와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가고난 뒤 산사는 온통 쓰레기 천지

아이들이 모두 내려갔다.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는 아이들을 보고, 내려갈 때는 쓰레기를 모두 되가져 가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에게 쓰레기를 가져갈 것을 이야기를 한 것일까? 그러나 아이들이 내려 간 뒤 마당을 돌아보니, 온통 쓰레기 투성이다, 정말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휴대폰으로 찍어 화질이 엉망이다. 물병이며 과자껍질. 여기저기 날려있는 쓰레기들

아이들과 함께 온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가르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는 것일까? 산사를 내려오면서 보니 산길 여기저기도 쓰레기가 널려있다. 글쎄다 좋은 상급학교를 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일까? 그런 교육만 잘 시키면 그 다음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것인지. 요즈음 선생님들께 묻고 싶다. 무엇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계시는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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