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삼치를 지나면 성벽에 큰 통로가 보인다. 통로 앞에는 진달래 화장실과 화성관광안내소가 있다. 화성에서 중간에 밖으로 이렇게 출입을 할 수 있는 곳이 군데군데 있다. 그곳을 지나면 오르막길이다. 서장대를 향해 가는 길. 아마도 그 위에서 호령을 하던 옛 장용영의 장수들은 목소리도 우렁찼을 것이다.

 

성벽으로 달라붙는 적군을 무찌르려면 목소리께나 커야 호령을 할 것이 아닌가. 옛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구간은 전쟁도 피해갔을 것이다. 조금 걷다보니 오르막길에 소나무의 가지들이 앞 다투어 성벽을 오른다. 아마도 화성을 쌓고 전쟁을 했다면, 이렇게 성벽을 기어오르느라 수도 없이 곤경을 치러야 했을 것만 같다.

 

 

 

젖은 풀을 헤치며 걷다

 

갑자기 길이 미끄럽다. 조금은 정리가 되었던 길이 그저 편편한 흙길로 변했다. 비는 계속 뿌려대는데, 밟을 때마다 미끄럽다. 신발 안은 이미 물에 젖어 질척인다. 풀이 무성한 길을 걸으며 좌우를 살펴본다. 아무도 그곳엔 없었다. 그저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알 수 없는 새의 울음소리만이 숲을 지키고 있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걷는다. 자칫 한 발이라도 헛디디면 그대로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저만큼 성벽이 돌출이 된 치 위에 전각이 보인다. 서포루, 화성에는 두 가지의 포루가 있다. 바로 '포루(鋪樓)'와 '포루(砲樓)'이다. 전자의 포루는 군사들을 보호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고, 후자의 포루는 포를 쏠 수 있는 구조물이다.

 

 

 

난 말 없이 200년의 역사를 지켜보았다

 

병사들을 보호하고 쉴 수 있는 포루는 모두 5개소가 있다. 휴식공간이기도 한 포루는 성곽에서 돌출된 치성의 위에 올렸다. 휴식공간과 중간 지휘소 역할도 하는 화성의 포루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사면을 개방을 한 형태이고, 또 하나는 입구에 문을 내고 사면을 벽으로 둘러친 형태이다.

 

그 포루로 지나치면 커다란 노송 한 그루가 비를 맞고 고고히 서 있다. 성안을 들여다보고 서 있는 소나무는 주변의 시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곳의 성벽은 모두 200년 전 정조의 명에 의해서 축성이 된 그대로이다, 다만 성위에 여장만 새로 올렸을 뿐이다. 그 소나무는 200년 동안 화성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듯하다. 마치 역사를 알고 있다는 듯,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다.

 

 

 

화성의 성벽은 모두 병사들이 위장을 한 것

 

9월 4일, 빗길을 걷기 시작한지 한 시간이 지났다. 그냥 걸으면 얼마나 걸리려는지? 일일이 성돌과 대화를 하다가보면, 언제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굳이 시간을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성벽을 쌓은 돌 하나하나를 다 어루만지지는 못해도, 눈으로 이야기는 해야 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저만큼 성벽 위로 우뚝 솟은 서장대가 보인다. 이곳이 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 위에서 장용영의 대장군이 정조에게 보고를 하고는 했을 것이다. 그 가까이가면 기단만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는 벽돌로 쌓은 부분이 보인다. 검은 벽돌이 비에 젖어 더욱 윤기가 난다. 갑자기 한 무리의 군사들이 성벽을 뚫고 쏟아져 나온다. 혼비백산한 적들은 줄행랑을 치기 바쁘다.

 

 

 

 

“장군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저 화성의 성을 쌓은 돌은, 돌이 아닙니다.”

“이놈이 정신이 빠졌느냐.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돌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저 돌처럼 생긴 것들은 모두 장용영의 군사들이 위장을 한 것입니다. 성벽이 갑자기 장용영의 군사들이 되어 저희를 공격했습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거긴 움푹 들어간 성벽 안에 교묘히 감춘 서암문이 있었다. 암문은 군수물자를 들이거나, 적의 배후를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이다. 서장대를 공격하는 적을 급습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서암문을 지키기 위해, 가까운 곳에 서포루를 두었다. 서암문을 지나면 갑자기 성이 높아진다. 바로 위에 서장대와 서노대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 주춤했던 비가 갑자기 세차게 쏟아진다. 아마도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이곳에서 교전을 했다고 하면, 적은 단 한명도 살아남질 못했을 것이다. 빗속에서 앞이 잘 보이질 않는데, 뒤편에서까지 공격을 받는다면 이길 장사는 없다. 잠시 발길을 멈춘다. 서암문 안으로 들어가 비를 피해본다. 오늘따라 정말로 암문의 성벽들이 장용영의 군사들이 될 것만 같다.

 

 

또 다시 200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누군가 이곳을 돌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그도 나처럼 이 성벽과 대화를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 마음 하나 주어 담아 발길을 옮긴다.

"저 병사들은 땅에서 솟아났느냐?"

화성은 실제로 축성을 하고 난 뒤 전쟁을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화성을 시물레이션으로 전쟁 장면을 제작한다고 하면, 정말 장관일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것도 화성 안에 주둔하고 있는 장용위의 군사들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할 것이다. 화성은 그만큼 수성(守城)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적이 성으로 밀려왔다. 4대문을 아무리 깨트리려고 공성무기를 총 동원했지만, 문 앞까지 다가서지도 못했다. 겨우 옹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무기를 움직일 공간이 없이, 옹성 안에 들어 온 병사들이 전멸을 당했다. 그것이 바로 화성이다. 적들은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었다. 성벽을 타고 오르기로 한 것이다.


화성의 서암문. 성벽 안에 감추어졌다.

앞뒤에서 공격하는 성안의 병사들.


긴 사다리를 이용해 성벽을 오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성벽을 오를 수가 없다. 여장에 걸친 사다리는 긴 창을 이용한 성안의 병사들에 의해 제거가 되고, 뒤에서도 화살이 날아왔다. 성벽이 돌출된 치성에서 쏘아대는 화살이다. 앞뒤로 협공을 당하는 적은 성을 오르기를 포기하고 만다. 가히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번에는 후미진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 성 앞으로 조금씩 지형지물을 이용해 다가들었다. 성벽에 줄을 던지고 사다리를 걸치고 성벽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뒤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적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도망가기에 급급하다.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한 무리의 장용위 군사들이 나타난다,


암문의 문은 계단을 내려가 성벽 아랫쪽에 나 있다. 암문 여장에서 내다 본 바깥

“도대체 어떻게 저 많은 병사들이 어디서 나왔단 말이냐. 저 병사들은 땅에서 솟아난 병사들이란 말이냐?“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성 밖은 자신의 병사들이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딴 곳에서 지원군이 올만한 길도 모두 차단을 했다. 그런데 어디서 저 많은 군사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 저 군사들은 어디서 나타났단 말이냐?”

화성에는 암문이 있다. 현재는 네 곳의 암문이 남아있다. 이 암문들은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적의 눈에 잘 띠질 않는다. 그곳은 전쟁이 나면 무기를 공수하거나,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통로이다. 거기다가 몰래 성을 빠져나간 군사들의 적의 배후를 공격하게 된다. 성으로 접근을 했던 적들은 혼비백산을 할 수 밖에.


북암문의 바깥과 안

화성에는 처음으로 축성을 하고 난 뒤에는 5곳의 암문이 있었다. 현재는 4개의 암문이 남아있다. 동문에서 남문 사이에는 암문이 없다. 그리고 남문에서 서장대를 오르는 산꼭대기에는 서남암문이 있다. 서남암문의 위에는 주변을 관찰하는 ‘포루(鋪樓)’가 있으며, 앞으로는 용도(甬道)가 시작되는 곳으로 그 끝에는 화양루가 자리한다.

암문은 철판으로 문 바깥부분을 덮었다.

벽돌로 쌓은 아름다운 암문

서장대의 남쪽에는 서암문이 있다. 팔달산 남쪽 기슭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이 암문을 찾아내기가 쉽지가 않다. 암문이 연결되는 곳은 가파른 비탈로 성벽이 이어지고 있다. 이 암문을 통해 쏟아져 나온 병사들이 뒤를 공격하고 난 후, 바람처럼 사라져버린다고 생각을 해보자. 모골이 송연하지 않겠는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방화수류정 옆에도 암문이 있다. 북암문은 화성 전체구간 중에서 유일하게 좌우의 성벽을 벽돌로 쌓은 곳이다. 정조 20년인 1796년 3월 27일에 완성이 되었다. 이 북암문 앞에는 연지가 있다. 요즈음 연지는 한창 보수공사 중이다. 만일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고 하면, 적군의 시신으로 메워질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혼자 놀란다.



동암문

그리고 동장대 가까이 또 하나의 암문이 있다. 바로 동암문이다. 동암문은 북암문보다 이틀 빠른 정조 20년인 1796년 3월 25일에 완성이 되었다. 만일에 대비해 4대문 외에도 후미지고 적당한 곳에 마련한 암문. 이 암문이 있어 적들을 물리치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 이러한 많은 구조물들이 적절하게 자리를 하고 있어, 자연과 더불어 아름답기도 하지만, 최고의 성이란 찬사를 받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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