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수원시 연무동 전입신고 마쳐

 

만인보의 저자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고은(80)시인이 경기도 수원시민이 됐다. 수원시는 광교산 자락인 상광교동에 그동안 생태박물관이나 전시장 용도로 매입해둔, 옛 이안과 원장의 개인주택을 리모델링해 고은시인이게 제공했다. 광교산 자락에 있는 이 집은 지하 1, 지상 1, 연면적 265규모로 서재와 작업실, 침실 등을 갖추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체류하며 문학축제 참가, 강연, 북 투어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 귀국한 고은 시인은, 그동안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만정리 대림동산 전원주택단지에서 30여 년째 거주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해왔다. 고은 시인은 인문학 도시 구현을 목표로 하는 수원시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지난 19일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행정동 연무동)으로 이사했다.

 

 

수원시 인문학 도시 구현에 박차

 

수원시는 그동안 수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친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계의 대부인, 고은 시인을 모셔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은시인 모시기를 추진해왔다. 고은시인은 끈질긴 수원시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수원시민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고사를 해오기도 했다.

 

19일 수원으로 자리를 옮긴 고은시인은 지난 20일 부인과 함께 경기도문화의전당을 찾아, 공연관람 후 가진 리셉션 현장에서 오랫동안 살며 정들었던 안성을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아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수원에서 새로운 삶과 문학을 시작하게 돼 기쁘다며 그동안의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이로써 수원시는 인문학 도시 구현을 추구하는 품격 있는 문화예술도시로 한 단계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수원시의 한 관계자는 문화예술특구를 지정하고, ‘고은문학관건립 등 인문학적 이미지를 갖춘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날 것이라고 전했다.

 

 

한 때는 승려생활도 한 고은 시인

 

고은(본명: 고은태(髙銀泰), 193381~ )시인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참여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전라북도 옥구 출생으로 호는 파옹(波翁)’이며 본관은 제주이다. 전북 군산고등보통학교 4학년을 중퇴하였다. 한국 전쟁 시기였던 1952년 일본 조동종의 군산 동국사에 출가하여, 중장 혜초로 부터 일초(一超)’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 승려가 되었다.

 

1958년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폐결핵>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60년대 초에 본산(本山) 주지, 불교신문사 주필 등을 지냈으며, 1960년 첫 시집인 피안감성을 출간하고 1962년 환속하여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동안 발간한 고은시인의 시집으로는 <피안감성(1960)>, <해변의 운문집(1964)>, <신 언어의 마을(1967)>, <새노야(1970)>,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1974)>, <부활(1975)>, <제주도(1976)>, <고은 시선집(1983)>, <시여 날아가라(1987)>, <너와 나의 황토(1987)>, <대륙(1988)>, <만인보(萬人譜)(연작: 1986 ~ 201049)>, <독도(1995)>, <허공(창비, 2008)> 등 많은 시집과 소설, 에세이집 등이 있다.

 

 

수원의 문학적 위상 높아져

 

고은시인은 29일 오전 1115분 경, 비가 뿌리는 가운데 홍성관 장안구청장의 안내를 받아 연무동 주민센터에 들어섰다. 연무동 주민센터 입구에는 고은시인, 행복한 연무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있다. 고은시인이 입구에 들어서자 연무동 여직원이 꽃다발을 드렸으며, 곧 이어 전입신고를 마쳤다.

 

수원시인협회 김우영 회장은 고은시인이 수원시민이 된 것을 환영한다면서

고은 시인은 그동안 로벨문학상 수상자 명단에 이름이 자주 거론 되었던 우리 문학계의 큰 별이다. 이런 분이 수원시민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인문학 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으로서는 큰 힘을 얻었다. 앞으로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고 하면, 수원은 문학사에 길이 빛날 도시로 명성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다.

 

 

겨울 文義(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신성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달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小白山脈(소백산맥)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고 서서 참으면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文義(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다참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여름의 부용꽃인 듯

준엄한 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文義(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민음사(1974)에서 펴낸 문의 마을에 가서라는 고은 시인의 다섯 번 째 시집에 수록된 시이다. ‘문의마을에 가서는 친구의 장례식에 참가했던 경험을 시로 옮긴 것으로서, 고요하고 적막한 겨울 마을을 배경으로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순간의 깨달음을 서정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광교산 산행을 마치고 나면, 등산로 입구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보리밥을 먹거나, 막걸리를 한 잔 하고는 한다. 갈증과 배고픔으로 인해 항상 찾게 되는 집 중에는 보리밥 집이 있다. 이 집은 광교산 등산로 입구에서는 좀 더 시내 쪽으로 떨어져 있다. 그래도 일부러 걸어 이곳까지 찾아가는 것은 남다른 음식 때문이다.

 

수원시 장안구 하광교동 332번지에 소재하는 ‘토담집’. 우선은 그 이름부터가 마음에 든다. 문화재를 답사하다가 보니 성격까지 바뀐 듯하다. 예전에는 조금은 서양스런 음식을 좋아하기도 했는데, 요즈음은 비빔밥이나 국밥, 찌개 등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도 답사를 하게 되면서 우리 것을 즐기게 된 모양이다.

 

 

 

맛집, 각자의 기호에 맞아야

 

음식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맛을 느끼는 것이 다르다. 언젠가 맛집에 소개된 집을 우연히 찾아들었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한 마디로 조미료를 갖고 맛을 낸 집이기 때문이다. 체질적으로 조미료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런 집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수저를 놓고 나와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맛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텁텁한 맛을 싫어할 수도 있다. 하기에 맛집을 소개한다는 것은 사실 상당히 조심스럽다. 내가 소개하는 맛집이야 일부러 찾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답사를 하거나 사람들과 만났을 때, 그 ㅈ비에서 내오놓는 그대로를 휴대폰 등으로 촬영을 한 뿐이다.

 

 

 

 

 

이런 것을 두고 ‘맛집 소개’라고 한다면 좀 미안한 감도 없지를 않다. 가격이라고 해보아야 기껏해야 1인분에 5,000 ~ 8,000원 정도의 집들이니, 그 안에 장식이 값나가고 분위기 있는 집은 더 더욱 아니다. 이 토담집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도, 그저 선술집이나 객주 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찬 한 가지 더 놓았을 뿐인데

 

광교산 입구 식당마다 보리밥을 시키면 나오는 것이 거의 동일하다. 나물과 된장국, 야채 등이다. 그런데 집집마다 한 가지씩 색다른 것을 내어놓는다. 어느 집은 두부를 주기도 하고, 어느 집은 묵을 내어놓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전혀 색다른 것을 한 가지 주는 집들도 있다.

 

 

 

 

 

자연농원 토담집도 색다른 것을 한 가지 내준다. 바로 돼지고기볶음이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주는 고기는 밥을 먹을 때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준다. 가격은 거의 동일하다. 1인 분에 6,000원이다. 그런데 이 돼지고기가 무엇이라고, 그 고기에 그냥 눈이 멀어버렸다.

 

그래서 광교산을 오를 때면 가끔 이 집을 찾아간다. 우선 푸짐하고 보기에 좋은 것이 먹기도 좋다고 했던가? 그저 한 가지 더 얹어 줄 뿐인데, 무엇인가 많은 것을 받았다는 기분이 들어 좋다. 혹 광교산을 들릴 일이 있으면 이 토담집을 찾아가 보리밥 한 그릇 먹어보길 권한다. 하지만 음식은 사람마다 먹는 법이 다르니, 꼭 사전에 싱겁게 먹는다거나, 짜게 먹는다거나 이야기를 하고 말이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