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산사로 오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밑에 있는 상점에서 물을 한 병 사들고 뒷짐을 지고 산을 오르다보면, 계곡 물에 노니는 작은 물고기들과 산새소리에 절로 마음이 맑아진다. 바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늘 그렇듯 천천히 호흡을 해가면서 숨을 들이킨다. 그렇게 산을 오른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산을 오르는 길은 늘 새롭다.

그렇게 오르는 산에는 오늘따라 한가하다. 딴 때 같으면 복잡하게 사람들이 앞을 다투듯 오르는 산길이다. 그런데 오늘은 시간이 이른 이유도 있겠지만, 단풍철에 오르기 위해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만 같다. 산사의 단풍은 정말 아름답다. 마치 터널을 이루듯 하는 단풍이 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힘이들기도 하지만, 그 주변에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 위해 오르고는 하기 때문이다.


큰 소리 나는 이유를 듣고보니

천천히 계곡을 들여다보면서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큰 소리가 난다. 큰 소리로 고함을 치는 남자 목소리만 들린다. 남의 일에는 관여를 하지 않는터라 그냥 못본체 하고 지나치려는데, 남자가 어떻게 한 것인지 여자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앉아있다. 울기라도 하는가 보다. 무슨 일일까?

"내 하도 이상해서 뒤를 따랐다. 어째 날마다 산을 간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지"

무슨 이야기일까? 이어서 하는 남자의 소리에 대충은 짐작이 간다.

"애들 떼어놓고 미치지 않았으면 산에가서 서방질을 해"

정말 그런 것일까? 이야기를 듣고보니 여자가 아침에 일찍 친구들과 산을 오르겠다고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울면서 매달리는 것도 떼어놓고, 서둘러 나가는 것이 이상해 뒤를 밟았고 낯선 남자와 만나 같이 산을 오르는 것을 보고, 여자를 혼내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아니라고 극구 부인을 한다. 친구들과 약속을 했는데 늦어서 길을 몰라 길 안내를 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남의 가정 일에 참견을 할수는 없지만, 곁에서 보고 있자니 정말 답답하다. 시소한 오해로 인해 자신의 아내를 부정한 여자로 몰아가는 남자도 그렇고, 어린아이를 떼어놓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여자도 그렇다. 문제는 이런 불신이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닌 것만 같다.

남자의 실직에서 온 불안감이 의심병으로

이 부부에게 길에서 그렇게 다투지 말고, 집에가서 조용히 해결을 하시라고 한 마디 했다. 그랬더니 남자가 하는 말이 자신이 실직을 하고 난 뒤에 여자의 행동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야한다고 전과 다르게 바깥출입이 잦은가 하면, 가끔은 술 냄새를 풍기고 집을 들어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듣고보니 이 부부의 문제는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해고로 인한 무력함이 결국은 부인에 대한 불신으로 커진 것은 아닐까? 집에서 부인의 눈치를 보아야만 하는 남자로서는 여자의 바깥출입이 불안했을 테고, 그런 것이 결국은 여자를 의심하는 증세까지 보인 것은 아니었을까?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남자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남자는 믿지 않는 눈치이다. 같이 산으로 오르던 남자가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자기 부인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면 사실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도망을 간 것을 보면 무엇인가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은 남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가 않다. 사람들이 많이 올라오는 시간이니 망신 당하지 말고, 집에 가셔서 두분이 조용히 해결을 하라고 거듭 당부를 하고 길을 돌아 선다. 부부가 티격이면서 산을 내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남자의 실직에서 오는 문제가 의외로 심각한 듯하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날마다 만난다. 그러다가보면 인사를 하고 다닐 수도 있다. 나 역시 산사에서 만나는 사람 중에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자가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실직으로 인한 무력증에서 온 것 같다.    

이 부부의 앞날이 걱정이 된다. 앞으로 여자는 바깥출입이 불안할 것이고, 남자는 그 의심병이 점점 짙어져 갈 것만 같다. 부부가 함께 산이라도 다닌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불행이 올갓 같기도 하다. 모처럼 일찍 길을나서 오른 산행에서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남의 이야기로 기분이 찝찝하다. 
모처럼 마음을 먹고 산을 올랐다. 요즈음 '능이버섯'이 제철이라고 한다. 그래서 능이버섯을 좀 채취할 수 있으려나 해서, 능이가 많이 난다는 곳을 찾아갔다. 버섯이나 약초를 캘 때,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카메라가 해를 입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보아도 약초를 전문으로 캐러다니는 사람 쯤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으로 산을 오른다. 산은 깔딱산이다. 한발만 잘못 딛어도 저 밑으로 굴러떨어질 그런 험한 산을 오른다.

땀이 비오듯 한다. 그래도 이왕 산을 올랐으니, 무슨 소득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저만큼 사람들이 산을 헤매고 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듯, 산에는 여기저기 발자욱이 수도없이 찍혀있다. 남들보다 늦은 셈이다. 채취하고자 하는 능이 버섯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경사가 70도는 될만한 비탈에 더덕 잎이 보인다. 먼저 간 일행이 더덕을 캔다. 더덕의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 길이가 무려 25cm 정도는 넘을만하다.

하루 종일 산을 뒤져 채취한 각종 식물의 모습이다. 시장 통에 있는 장사를 방불케 한다.

산은 우리에게 수많은 것을 제공한다.

험한 산을 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산을 타면서 땀을 흘리고, 산에서 뿜어나온다는 각종 인체에 좋은 기운을 받다보면 그만큼 건강해 질 것이다. 그래서인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산을 오르면서 상당히 피부가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마 몸안에 있는 노폐물을 많이 배출하기 때문인가 보다. 거기다가 이렇게 다양한 좋은 것을 많이 채취할 수 있으니, 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닐까?

산으로 오르는 이유는 그곳에 우리에게 필요한 수많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들이 모두 땀을 흘려 걷어들일 수 있는 것들이다. 자연은 늘 우리가 땀을 흘린만큼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준다. 그것을 섭취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다. 사람이 키워낸 것이 아닌, 자연이 직접 키워낸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또 있을까 싶다. 그것이 내가 산을 오르면서 자연에게서 배운 것이기도 하다.


산에서 채취한 자연산 더덕. 십년이 지난 것들이다. 그 크기도 상당하다.

산을 탔더니 이런 소득이 있었다네.

더덕은 늘 캐고, 그것을 나누면서 즐거움을 찾고는 한다. 이번 산행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의 소득이 있었다. 능이버섯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참나무에서 서식하던 '노루궁뎅이버섯'을 발견한 것이다. 노루궁뎅이버섯은 그 모습이 노루궁뎅이와 비슷한 털을 갖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원숭이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후두고'라고 부르며, 일본에서는 '야시부시다케'라 부른다.

이 버섯은 줄참나무나 떡갈나무 등 활엽수의 줄기에 하나씩 자란다. 이 버섯은 복용을 하면 위궤양, 십이지장, 신경쇠약 등에 효과를 본다고 한다. 또한 면역기능을 활성화시켜 암세포의 증식 등을 억제시키며, 노루궁뎅이버섯에만 있다는 성분들이 치매나 항암치료 등에 뛰어난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노루궁뎅이버섯. 참 희안하게도 생겼다. 항암효과를 갖고 있다고 한다.

여성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산에서 채취한 자연산 '잔대'가 아닐까 한다. 잔대는 농약, 중금속, 화학약품, 뱀 등의 모든 독을 풀어줄 수 있는 약초이다. 옛 기록에도 잔대는 '백가지 독을 풀어주는 약초'라고 서술하고 있다. 잔대는 여성들의 산후풍과 가래, 해소, 천식 등에 특효약이라고 한다. 잔대는 반찬으로 늘 복용을 하면, 살결이 백옥같이 고와지고 희어진다고 하였다.


여성들에게 특히 좋다는 잔대(위)와 영지(아래)

영지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갖고 있다. 영지는 암종양의 성장을 억제하고, 혈압을 조절하고 혈당을 줄여 피를 맑게한다. 전염병을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높이며, 간을 튼튼하게 한다. 다양한 약효를 갖고 있는 영지는 우수한 약재로, 가장 활발하게 그 효능이 연구된 버섯이기도 하다.

산으로 올라 얻을 수 있는 자연의 선물. 이런 것을 채취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인데, 그것보다 더욱 좋은 것은 스스로가 몸이 튼튼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과 동화될 때, 가장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땀을 흘리며 즐거움으로 채취한 자연의 선물. 이렇게 사는 것이 참 즐거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요즈음은 건강을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집 가까이 있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물병 하나를 들고 산책삼아 오르기도 하지만. 일부러 멀리서 까지 산을 오르기 위해 차로 이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보니 꼭 건강을 위해 산을 오르지 않아도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전북 전주시, 완주군, 김제시에 접해 있는 모악산은 ‘어머니의 산’이라고 한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생태계가 살아있는 청정지역이다. 아마 산을 오르는 차도가 없는, 산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모악산에는 평일이면 수천 명에서 주말과 휴일이 되면 만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산행을 한다고 한다.


모악산 입구에 서 있는 고은선생의 시비와 모악산 산길(아래)

벌써 10년 째 오른 산, 별 사람 다 있다

모악산을 올라다닌지가 벌써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처음 모악산의 고찰에 일이 있어 찾아갔다가 인연이 되어,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참 묘하다. 그렇게 모악산을 오르내리면서도 늘 모악산은 좋았다. 굳이 어머니의 품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아도, 아무런 공해도 없는 그 산 자체가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산을 오랜 시간 오르내리다보니 이제는 제법 산길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고 지내는 사람들도 생겼다. 물론 전문적으로 산행을 했다고 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교분을 쌓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르고 내려가는 길목에서나 만나는 정도이니, 이 정도라도 꽤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쉼터인 의자 곁에는 항상 쓰레기가  널려있다.

그런데 요즈음 산을 오르면서 만나는 사람 중에는 정말로 산으로 올라오지 않았으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제 발로 걸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런 분들은 조금 삼가를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솔직한 표현이다.

이런 사람 정말로 오지 않았으면

1. 쓰레기를 버리러 산에 오나?
사람들이 다녀간 후에 산을 올라보면 정말 가관이다. 중간에 쉬라고 의자를 놓았는데, 그 주변에 가면 꼭 쓰레기가 보인다. 빈 캔이며 물통, 팩 음료, 심지어는 커피를 사들고 와 마시고는 그냥 놓아두고 간다. 그뿐만이 아니다. 산사에 와서 전각의 마루에 앉아 먹을 것을 다 먹고는, 쓰레기를 돌담 틈이나 기둥 뒤에 숨겨놓고 가기도 한다. 쓰레기를 버릴 때가 없어 산을 오르는 것인지. 이런 사람들 제발 산에 올라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2.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데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도 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악산 등산로 입구에 보면 ‘개나 고양이 등 동물을 데리고 산에 오르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글을 못 읽는 것인지, 본체도 안하고 산으로 데리고 올라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가끔 동물의 배설물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치우고나 갔으면 좋을 것을. 이런 사람들 동물을 키울 자격은 있는지 모르겠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산사는 온통 쓰레기가 널려있다

3. 라디오 볼륨을 있는 대로 높이는 사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때로는 조용히 생각을 하고 싶어 오르기도 한다. 특히 모악산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산사까지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가면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띤다. 뒷짐을 지고 걸어도 20분이면 산사까지 갈 수가 있어, 사색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보면 라디오를 있는 대로 볼륨을 높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만 들으면 될 것을, 그렇게 크게 틀고 다니면서 남까지 불쾌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4. 화장품 홍보사원인지.
사람들이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꼭 잘나서가 아니고 그 아름다움이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헌데 얼마나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일까? 곁으로 지나치면 화장품 냄새로 코를 들을 수가 없을 정도다. 역겹기까지 한 냄새가 아름답게 보이려는 것인지. 난 차라리 땀 냄새가 더 좋다.

학생들이 올라왔다가 그나마 일부 들고 내려간다. 아이들에게 정말 낯 부끄럽다.

5. 꼴불견도 가지가지
이것저것 쓰라고 하면 하루 종일이라도 쓸 것만 같다. 하지만 다 제멋에 겨워 사는 세상인 것을. 하지만 가끔은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을. 흙과 돌로 된 산길을 굽 높은 하이힐에 짧은 치마를 입고 뒤뚱거리며 오르는 사람. 날이 좀 덥다고 남의 시선 생각도 안하고 가슴까지 다 풀어 헤치는 사람. 산사에 와서 있는 대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거나 말거나 제지를 하지 않는 부모들. 이런 분들은 제발 보고 싶지가 않다. 산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요일이 되면 가끔 산으로 올라간다. 등산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남들처럼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잘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하면 남들은 무엇이라고 할까?

“잘 먹기 위해서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예 살다보면 사람들은 무엇인가 좀 좋은 것이 먹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요?”

질문에 늘 되묻는 말이다. 그럼 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더구나 복중에 산 정상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산을 온통 헤집고 다니는 이유 말이다.

처음 캔 것을 손에들고 휴대폰으로 인증샷을...

'우리들이 무슨 특수부대도 아니고'

산으로 오르는 이유는 바로 산에서 자라는 자연산 더덕이나 도라지 등을 채취하기 위해서다. 올 봄부터 우연히 산을 올랐다가 더덕을 캐게 되었다. 그 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향도 그렇지만 5월 초순까지는 줄기까지 씹어 먹어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가끔은 캔 더덕을 나누어주기도 한다. 많이 캐서가 아니라 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덕을 캐러 산에 오르면 그 복장이 장난이 아니다. 우선 긴팔 윗옷을 입어야 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보면 가시에 찢기는 등 상처가 아물 날이 없기 때문이다. 장갑은 필수요, 다리에는 보호대인 각반을 착용한다. 어디 그것뿐인가? 물과 비상식량(이건 머 아이들 같지만 간식거리를 말한다. 온 산을 누비고 다니면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거기다가 등에는 배낭을 하나 둘러매고, 손에는 곡괭이를 하나 들고 간다. 가끔 운이 좋으면 어린 산삼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섯시간 동안 산을 돌아다니면서 캔 자연산 더덕. 향이 그만이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이미 옷은 땀으로 젖어버린다. 목에 두른 수건은 짜면 물이 주르륵 흐른다. 땀이 이 정도로 비오 듯 쏟아지니 몸이라고 온전할 리가 없다. 쉰내가 난다. 산모기와 작은 파리는 연신 달라붙는다. 참으로 귀찮은 녀석들이다.

이놈의 등산화야 어쩌자는 것이냐?

정확히 말하면 어제(8월 8일) 오후인가 보다. 지인들과 함께 더덕을 캔답시고 산행에 나섰다. 산을 가로질러 몇 고개를 넘는다. 겨우 더덕 몇 뿌리를 캤다. 일단 인증샷을 휴대폰으로 찍어 놓고 한 시간 이상을 돌아다녔지만,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자리를 옮겨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바로 등산화 앞이 떨어져버린 것이다. 산에 무수한 줄기들이 등산화를 물고 놓지를 않는다. 몇 번인가 넘어지고 부터는 실실 화가 난다. 거기다가 나무 가지에 걸려 모자까지 나무가 가져가버렸다. 높지는 않은 나무지만 이미 많이 지쳐있는 터라, 모자를 찾아야겠다는 엄두가 나질 않는다.



장소를 옮겼다. 계곡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더덕이 보인다. 곡괭이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으니 맨손으로 캘 수밖에.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낭패인가. 흙을 파다가보면 더덕의 줄기가 끊어져버린다. 화는 나는데 벌어진 등산화의 주둥이는 연신 흙을 집어삼키고 있다. 발바닥이 까칠 거린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줄기를 물어 걸리고, 넘어지고 미끄러지기를 수십 번은 했다. 어쩌란 말이냐 이 더위에.

다섯 시간 정도 산을 탔다. 손에는 십여 뿌리의 자연산 더덕이 들려있다. 그런데 이 주둥이 빠진 등산화는 어찌할까? 등산화가 입을 벌리고 나에게 항의를 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산을 좀 작작 다녀 이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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