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5월이 가깝다. 5월이 되면 주말에는 산행을 한다. 겨울 동안 비둔해진 몸을 빼기 위해서이다. 그동안 매일 취재하고 책상에 앉아 기사를 쓰다가 보니, 몸이 불어도 너무 불었다. 특히 배가 무슨 임신부처럼 불러오고 있으니, 영 몸이 무거워 날렵하지가 않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살이 찌고, 5월부터 10월까지는 좀 빠진다. 그것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그래도 살이 빠지는 것일까? 그것은 주말이 되면 산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산은 왜 가세요?” 이렇게 묻는 분들도 있다. 물론 산을 오르는 것이야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다. 나에게도 산을 오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산에 가면 지천에 깔린 것이 먹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아직 덕돌이 인 것을...”

 

가끔 산에 함께 올라가는 스님이 한 분 계시다. 이 분 심마니 못지않다. 산을 오르기만 하면 하다못해 작은 산삼 한 뿌리라도 들고 내려오신다. 삼이 자라는 지세 등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산삼이 매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산삼이 아니라고 해도, 더덕이며 버섯 등을 따 갖고 내려오신다.

 

감독님은 아직 덕돌이예요.”

 

이 말은 나에게 스님이 하는 말이다. 예전에 프로덕션에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 때 만난 분들이라, 나에게 당시의 명칭인 감독이라는 호칭을 쓴다. 그리고 산삼 몇 뿌리를 캤다고 해도, 아직은 더덕을 주로 캐는 덕돌이이라는 것이다. 그야 심마니가 되었거나 덕돌이가 되었거나 중요하지가 않다. 내가 산을 오르고 거기서 자연산 먹거리를 하나라도 들고 오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산삼을 좀 캐려나?

 

그래도 올해는 열심히 산을 돌아다녀야겠다. 우선 배를 줄여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주변에 산삼을 나누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주변에 몸이 허한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산삼을 캐러 산을 가야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따라가겠다고 하는 지인들이 많이 늘었다.

 

하지만 산삼이라는 것이 그렇게 늘 보이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산을 올라가면 7~8시간을 쉬지 않고 돌아다닌다. 그것도 등산로를 다니는 것이 아니다. 계곡을 따라 험한 길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산행을 하다가보면 남들보다 몇 배 더 체력을 소모하게 된다. 또 계곡에 있는 큰 돌들은 굴러 떨어질 염려가 있어 이래저래 위험하다.

 

 

그래도 올해는 열심히 다녀보아야겠다. 소문으로 들은 산삼(물론 개복삼이겠지만)이 난다는 곳을 몇 곳을 알아냈다. 그러니 더욱 열심히 산을 뒤져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우리 〇○○좀 먼저 살리자고요

 

참 이런 말을 들으면 난감하다. 산삼을 어디 길거리에 봄나물 나듯 찾는 것도 아닌데, 흡사 맡겨 놓은 듯 달라고 한다. 물론 그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마음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더 열심히 산을 누벼야 할 것 같다. 지난해는 그래도 스님 덕분에 꽤나 큰 것을 구경했는데.

 

 

5월이 되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많은 것들 중에, 그래도 나에게는 주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산삼 몇 뿌리가 눈에 뜨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별것이든가? 누구에게라도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나 혼자 움켜잡고 배 불린다고 좋은 세상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광교산 산행을 마치고 나면, 등산로 입구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보리밥을 먹거나, 막걸리를 한 잔 하고는 한다. 갈증과 배고픔으로 인해 항상 찾게 되는 집 중에는 보리밥 집이 있다. 이 집은 광교산 등산로 입구에서는 좀 더 시내 쪽으로 떨어져 있다. 그래도 일부러 걸어 이곳까지 찾아가는 것은 남다른 음식 때문이다.

 

수원시 장안구 하광교동 332번지에 소재하는 ‘토담집’. 우선은 그 이름부터가 마음에 든다. 문화재를 답사하다가 보니 성격까지 바뀐 듯하다. 예전에는 조금은 서양스런 음식을 좋아하기도 했는데, 요즈음은 비빔밥이나 국밥, 찌개 등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도 답사를 하게 되면서 우리 것을 즐기게 된 모양이다.

 

 

 

맛집, 각자의 기호에 맞아야

 

음식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맛을 느끼는 것이 다르다. 언젠가 맛집에 소개된 집을 우연히 찾아들었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한 마디로 조미료를 갖고 맛을 낸 집이기 때문이다. 체질적으로 조미료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런 집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수저를 놓고 나와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맛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텁텁한 맛을 싫어할 수도 있다. 하기에 맛집을 소개한다는 것은 사실 상당히 조심스럽다. 내가 소개하는 맛집이야 일부러 찾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답사를 하거나 사람들과 만났을 때, 그 ㅈ비에서 내오놓는 그대로를 휴대폰 등으로 촬영을 한 뿐이다.

 

 

 

 

 

이런 것을 두고 ‘맛집 소개’라고 한다면 좀 미안한 감도 없지를 않다. 가격이라고 해보아야 기껏해야 1인분에 5,000 ~ 8,000원 정도의 집들이니, 그 안에 장식이 값나가고 분위기 있는 집은 더 더욱 아니다. 이 토담집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도, 그저 선술집이나 객주 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찬 한 가지 더 놓았을 뿐인데

 

광교산 입구 식당마다 보리밥을 시키면 나오는 것이 거의 동일하다. 나물과 된장국, 야채 등이다. 그런데 집집마다 한 가지씩 색다른 것을 내어놓는다. 어느 집은 두부를 주기도 하고, 어느 집은 묵을 내어놓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전혀 색다른 것을 한 가지 주는 집들도 있다.

 

 

 

 

 

자연농원 토담집도 색다른 것을 한 가지 내준다. 바로 돼지고기볶음이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주는 고기는 밥을 먹을 때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준다. 가격은 거의 동일하다. 1인 분에 6,000원이다. 그런데 이 돼지고기가 무엇이라고, 그 고기에 그냥 눈이 멀어버렸다.

 

그래서 광교산을 오를 때면 가끔 이 집을 찾아간다. 우선 푸짐하고 보기에 좋은 것이 먹기도 좋다고 했던가? 그저 한 가지 더 얹어 줄 뿐인데, 무엇인가 많은 것을 받았다는 기분이 들어 좋다. 혹 광교산을 들릴 일이 있으면 이 토담집을 찾아가 보리밥 한 그릇 먹어보길 권한다. 하지만 음식은 사람마다 먹는 법이 다르니, 꼭 사전에 싱겁게 먹는다거나, 짜게 먹는다거나 이야기를 하고 말이다.

 

참 황당하다. 이런 말을 듣고 있자니 세상이 참 어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산은 무엇 하러 올라온 것인지, 그리고 왜 산에서 이런 짓거리를 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산이 좋아서 산을 다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산에 볼 것이 있다면 더욱 더 산이 좋다. 소로 길만 걷고 있어도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곳이 산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수원에는 광교산이 있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이 산만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산도 흔치는 않다. 광교산은 수원의 북쪽에서 오는 찬바람을 막아주며 시가지를 품에 안고 있는 수원의 주산이다. 원래 이름은 ‘광악산’이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광교산으로 명명되었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광교산은 수원팔경 중 한 곳

 

광교산은 산의 능선이 매우 한적하면서도 완만하고 사방에 수목이 우거져 있어, 삼림욕을 하거나, 당일 코스로 오붓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예부터 광교산은 수원 8경의 하나로 불렸는데, ‘광교적설(光敎積雪)’이라 하여 광교산에 눈이 내려 나무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경치가 8경중에서도 첫 번째로 손꼽힌다.

 

광교산은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하루에 수십만 명이 오르내리는 산이다. 높지도 않지만 우거진 숲과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이 있어, 언제나 걷기에 좋은 산이기 때문이다. 광교산은 그저 이웃집 나들이를 하 듯 올라가도 좋은 산이다. 이런 산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살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한가지이기도 하다.

 

산은 그 자리에 있어 좋다

 

광교산은 자주 걷는다. 굳이 ‘오른다’는 말로 표현을 하지 않고 ‘걷는다’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광교산을 자주 가기 때문이다. 특히 일로 인해 술이라도 많이 마신 다음날은, 일부러 광교산을 천천히 걷는다. 버스를 타고 상광교 종점까지 가서, 뒷짐을 지고 걸어 오르다 보면 무거운 머리가 맑아지기 때문이다.

광교산을 오르다가 보면 여기저기 쉴 수 있는 의자들이 있다. 그 의자에 앉아 잠시 책이라도 읽노라면, 참 신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옛날 선인들이 산이 좋아, 그곳에 정자를 지은 까닭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산이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그곳에 가면 볼 수 있어 더욱 좋은 까닭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산을 왜  오염을 시켜

 

비가 온 다음 날 산을 오르면 더욱 좋다. 숲에서 나는 나무들과 풀의 짙은 향과, 조금은 물기를 머금고 있는 시원한 바람 때문이다. 그런 숲이 가까이 있어서 늘 머리를 식히러 걷고는 한다. 암반 위를 흐르는 계곡의 물이 더욱 더 좋은 곳이기 때문에, 그저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걷는다.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치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산행을 목숨 걸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은 느껴야 더 좋다는 나름대로의 생각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데 두 중년의 남여가 의자에 앉아 사랑을 확인한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저 정신없이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휴대용 카메라를 늘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뒤에서 그 모습을 담아두려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 카메라가 보기와는 달리 셔터 떨어지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셔터 소리에 깜짝 놀란 두 사람이 동시에 뒤를 돌아다본다.

 

‘선생님 지금 저희들 찍으셨나요?“

“예, 모습이 아름다워서요”

“선생님 제발 저희 사진 좀 지워주세요”

“왜요? 앞도 아니고 뒷모습인데”

“안됩니다, 제발 지워주세요.”

 

 

이쯤 되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만하다. 이 두 남녀 정상적인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부인과 남편 몰래 산에 와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현장이 재수 없게 나에게 찍힌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절대로 지워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도 사정을 하니 어찌 할 것인가? 사진을 지워주고 나서도 영 기분이 찝찝하다.

 

요즈음 세상이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하긴 드라마다 무엇이다 해서 보이는 것이 모두 불륜 등을 부추기고 있으니,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런 것으로 꽉 차 있을 것만 같다. 세상 참 돌아가는 꼴이 점점 추악해지기만 한다.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답답하기만 하다.(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7월 23일, 30도를 훌쩍 넘은 살인적인 더위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른다. 이런 날 이천에 있는 설봉산 영월암에 올랐다. 영월암 대웅전 뒤편 암벽에 새겨진 보물 제822호 마애여래입상을 보기 위해서이다. 남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문화재라는 것을 한 번만 보면 되지 않나?’라는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한번 답사를 한 문화재라도 갈 기회가 있으면 다시 들리고는 한다. 그것은 문화재란 늘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바위를 누가 떠 매고 갈 것도 아닌데’라고도 한다. 그래도 지켜보아야만 할 것이 바로 소중한 우리 문화재이다.

 

 

이천 설봉산 영월암(위)과 자연암석에 새긴 보물 마애불(아래)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도 없는데


주차장에서 영월암까지의 거리는 1.5km이다. 그리 높지 않은 설봉산이지만, 차도 오르기 힘든 가파른 길이다. 거기다가 그 무더운 날에 한 어깨에는 무거운 카메라 가방까지 메고 있다. 돈을 준다고 오르라고 해도 마다할 산행이다. 하지만 절집을 찾아 참선을 하는 마음으로 주변 경치를 보면서 걸음을 옮긴다.


옷은 모두 젖어버렸다. 땀으로 흥건히 젖어버린 몰골은 꼭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그렇게 오른 영월암. 대웅전을 비켜 뒤로 오르니, 커다란 자연 암벽에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이 마애불은, 머리 부분과 손 부분은 얇게 돋을새김을 하였고 나머지는 선으로 음각하였다.

 

 

 

 

고려 초기에 조성한 거대마애불

 

높이 9.6m의 거대한 이 마애불은 ‘마애여래불’로 명칭을 붙였지만, 민머리 등으로 보아 ‘마애조사상’으로 보인다. 둥근 얼굴에 눈, 코와 입을 큼지막하게 새겼다. 두툼한 입술에 넙적한 코, 지그시 감은 눈과 커다랗게 양편에 걸린 귀. 그저 투박하기만 한 이 마애불에서 친근한 이웃집 어른을 만난 듯하다. 두 손은 가슴에 모아 모두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왼손을 안으로 향했다.


얼굴과 두 손만 부조로 조성을 했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우편견단의 형식으로 조성한 법의는 몸 전체를 감싸며 유연한 사선으로 흘러내린다. 이러한 옷의 주름이나 팔꿈치가 직각으로 굽혀진 것은 고려시대 마애불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마애불은 그 형태로 보아 조사상이나 나한상으로 보기도 한다.


천 년 세월을 온갖 풍상에 저리도 의연하게 서 있는 마애불. 머리 부분은 암벽의 상단에 조각이 되어 올려다보면 몸에 비해 조금은 작은 듯도 하다. 전체적인 균형은 조금 비례가 맞지 않은 듯하지만, 저 단단한 암벽을 쪼개고 갈아 내어 저런 걸작을 만들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여인이여 무슨 사연이 있길래


마애불 앞에 한 여인이 절을 하고 있다. 이 복중에 어찌 그리 애를 닳는 것인지. 수도 없이 절을 하는 모습으로 보아, 아마 천배를 하는 듯하다. 물을 마시면서 해도 자칫 탈진이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저렇게 이 복중에 절을 하다가 보면, 자칫 탈진이 올 수도 있는데. 나도 더운 복중에 천배를 해보았기에, 그 진한 고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렇게 간절할까? 아마도 이렇게 자신을 던져 기원을 하는 것이라면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곁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조차 죄스럽다. 그저 마음속으로 함께 기원을 하는 수밖에.

 


“천년 세월 이곳을 지켜 오신 설봉산 마애불님. 저리 간절히 비는 것이라면, 꼭 들어주세요. 세상엔 나쁜 사람들도 잘 사는데, 저리 땀을 흘리는 사람의 사연은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세상을 지켜가는 것일 테니.”

남들은 산에 산삼을 캐러 간다고 하면, 은근히 기대를 겁니다. 물론 운이 좋은 날은 조복삼일 망정 많게는 5구짜리를 합해 10뿌리 정도는 캐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날나다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은 며칠을 산을 뒤져보아도, 가방에 아무 것도 없이 빈 가방일 때도 상당히 많습니다.

 

어제(토)와 오늘(일), 이틀 동안 산행을 한 시간이 다 합해서 12시간 정도는 될 듯합니다. 날도 덮고 그동안의 산행과는 다르게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집중 호우로 계곡의 돌들이 구르고 산이 무너져 내려 조금만 잘 못 딛어도 그냥 흙과 함께 미끄러지기 일쑤이고, 무릎이고 이마고 팔이고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을 정도입니다.

 

이틀 간의 산행에서 만난 산삼

 

그래도 빈손은 아니잖아

 

정말 엄청 힘든 산생이었습니다. 제가 산삼을 캐러 다니는 것은, 꼭 산삼을 캐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산에 가서 힘든 비탈과 계곡, 깔딱 고개 같은 비탈을 다니다가 보면, 일반 등산로를 따라 걷는 것의 몇 배 더 체력적으로 소모가 된다고 합니다. 날인 덮고 수풀 속으로 돌아다니니 긴팔을 입고, 목까지 완전히 방비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산모기와 날파리 등살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비가 온 후라 산 속에 풀은 왜 그리 많이 우거졌는지, 조금만 길을 잘못 들어도 가시덤불 숲에서 헤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오늘 산생은 몇 시간을 헤맨 끝에 겨우 2구짜리 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캐고 보니 이 삼이 적은 것은 압니다. 굵기도 칫솔 정도인 것이 나름 꽤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오후 산행에서 캔 더덕 한 뿌리. 뇌두 부분에 있는 작은 더덕과 비교하면 굵기를 알만하다

 

오후 산행에서 초주검이 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시작한 산행. 돌이 제 자리를 잃은 계곡을 따라 오른다는 것은 정말 죽을 맛입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헤맨 끝에 발견한 더덕 한 뿌리.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고 캐어보니, 대박입니다. 아마 20년은 족히 넘은 듯합니다. 길이도 20cm 정도입니다. 그렇게 12시간의 산행에서 얻은 것이 더덕 한 뿌리와, 2구짜리 산삼 한 뿌리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개고생을 하고 얻은 것이 없다’라고 할만 하죠. 하지만 나는 전문 심마니도 아니고, 그저 캐면 좋고 못 캐도 무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30도가 넘는 더위에 왜 산을 가느냐고요. 산에 가서 땀을 흘린 후 계곡 물을 마시고, 세족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릅니다. 내가 왜 개고생을 하는 것인지.

 

산 삼의 굵기는 칫솔의 손잡이와 비슷하다

 

내 몸 안에 세속의 찌꺼기를 걷어내는 산행

 

일주일 동안 술 마시고 사람들과 아웅다웅하고, 살다보니 남에게 못된 말도 해야 하고, 이렇게 산다는 것은 참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산에 가서 마음껏 땀을 흘려, 몸 안에 있는 세속의 찌꺼기를 내버리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운이 좋아 산삼이라도 몇 뿌리 캐면, 주변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기분 좋은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난 뒤 보는 사람이 없는 계곡에서, 암반 위를 흐르는 깨끗한 물에 발이라도 담구고 있으면,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이런 기분을 말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더욱 산에 가면 먹을 것이 참 많습니다. 100% 자연산이죠. 더구나 그 위에는 집도 축사도 없는 곳이라, 오렴이라고는 될 수 없는 곳이죠.

 

더덕의 길이는 밥 주걱의 길이와 흡사하다

 

그런 곳에서 산딸기라도 만나면 정말 신선한 것들을 마음껏 섭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는 것이죠. 자연인 인간이 되고 싶어,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캐면 좋고, 못 캐도 서운하지 않은 산행이죠. 말로는 산삼을 캔다고 하지만, 산삼이 어디 동네마다 널린 인삼과 같은 것은 아니니까요.

 

이틀 동안 12시간의 산행 후리 많이 지쳐있습니다. 땀에 젖은 빨래 세탁하고, 시원하게 찬물에 샤워라고 한 후 잠을 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는 것에 감사를 하면서.

 

산행으로 부은 발을 찬 계곡 물에 세족을 하면서 세상의 찌든 때를 씻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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