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250분 경 수원시청 청사 안내방송이 다급하게 소식을 전한다. 파장정수장 인근 광교산에서 산불이 발생했으니, 모든 남자 공무원들은 산불진화에 동참하라는 방송이다. 산불이 났다고 하니 누구라도 동참을 해야 할 판이다. 마침 현장으로 나가는 차가 있어, 그 차에 올라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이미 파장저수지 방죽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장 저수지와 광교저수지에서 물을 퍼 산불 현장으로 날아오는 헬기들이 보인다. 5대의 헬기들이 쉴 새 없이 물을 퍼와 산불현장에 투하를 한다. 불이 조금 진정이 되자 기다리고 있던 1,300여명의 수원시청 직원들을 포함한 산림청 관계자들이 잔불을 정리할 도구를 들고 산불 현장으로 들어간다.

 

 

담뱃불에 의한 발화로 추정

 

불은 산림청과 수원시 등의 발 빠른 대처로 인해 4시간 만에 진화가 되었다. 이날 불은 1252분 파장저수지 인근에서 발생해 바람을 타고 북동쪽으로 번져간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큰 불로 번지지 않고 불을 잡을 수가 있었지만, 이날 한 사람이 부주의로 버린 담뱃불로 인해 임야 15소실됐다.

 

불길이 어느 정도 잦아들자 잔불을 정리하기 위해 현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산불이 난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꺼멓게 불에 탄 덤불들을 일일이 헤쳐가면서 혹시라도 남아있을 지도 모를 불씨를 찾느라 쇠스랑 등을 들고 숲을 헤치고 다닌다. 물통을 등에 멘 사람들은 작은 연기만 나도 물을 뿌려댄다.

 

 

오후 5시가 되자 산불이 진화되었다고 한다. 겨울동안 눈비가 오지 않나 가물었기 때문에 불은 더욱 쉽게 번진 듯하다. 광교산은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다, 바싹 마른 나뭇잎들이 쌓여있어 빠른 속도로 불이 번져나갔다고 한다. 산불의 현장에 있던 한 의용소방대원은

 

이렇게 2월이나 3월에 등산객들이 많이 산행을 하면서 늘 산불로 인한 피해가 일어납니다.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라이터나 성냥 등 불을 낼 수 있는 것들은 가져가서는 안 되는데, 잘 가꾼 산이 한 사람의 부주의로 이렇게 타버렸다는 것이 참 마음이 아프네요.”라고 한다.

 

 

발 빠른 대처로 큰 불은 막아

 

수원시를 포함한 공무원 1,200여명과 소방관계자 50여명, 산림청 관계자 40여명, 그리고 산림청 헬기 3대와 소방방제청 헬기 2대 등 많은 인원과 장비가 투입이 된 광교산 산불진화작업. 이 날 불로 인해 수원시 1.2ha와 의왕시 0.3ha1.5ha가 소실이 되었다. 광교산 산불 소식을 듣고 현장에 찾아온 수원시장은 산불 현장을 일일이 돌아보면서 등산객들의 입산통제와 산불조심에 더 각별한 신경을 써 줄 것을 지시했다.

 

잔불정리를 하고 있던 소방관계자 한 사람은

“2월과 3월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산에 쌓인 낙엽들이 작은 불에도 금방 큰 불로 번질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이 계절에 산불이 나면 정말 잔화작업도 어렵습니다. 오늘은 다행히 일찍 불을 잡을 수 있었지만, 이른 봄철에는 제발 산에서 담배 등은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부주의로 인해 아름다운 산도 훼손이 되고, 이 많은 인력과 장비들이 투입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손실입니까?”라면서 산불은 모두가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산사 일주문을 지나 원통보전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보면 돌로 만든 문이 나온다. 이 문은 조선 세조 13년인 1467년에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절 입구에 세운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다. 이 홍예문은 전각이 없이 세웠던  것을, 1963년도에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을 얹은 전각을 세워 아름다움을 더했다.

이 문루는 주변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여 홍예석 주위에 자연석을 쌓아서 특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조가 조성할 당시 강원도에는 26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세조의 뜻에 따라 각 고을의 수령이 석재를 하나씩 내어 26개의 화강석으로 홍예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석재는 화강암 장대석으로 꾸며졌으며, 2단의 기대석을 놓고 그 위에 두 줄로 조성을 하였다.


아픔을 간직한 낙산사 홍예문

낙산사의 홍예문은 2005년 양양지역에 난 산불로 인해서 홍예문 위에 세운 누각이 소실이 되었다. 화마는 낙산사 일대를 뒤덮어 홍예문은 물론, 원통보전과 종각 등을 모두 한줌 재로 만들어버렸다. 당시 TV를 통해 불이타는 낙산사를 보면서, 마음 아파하며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만큼 낙산사는 동해를 바라보며 선 해수관음을 비롯하여 아름답게 자리잡은 절이었다.

이번 양양답사를 하면서 일부러 낙산사를 일정에 집어 넣었다. 숙소도 해돋이도 볼 겸 낙산해수욕장 인근에 잡았으나, 정작 아침에 구름이 가득 낀 흐린 날씨 탓에 해돋이는 보질 못하고 낙산사로 향했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길에 늘어선 노송숲을 보면서, 더 마음이 아픈 낙산사의 정경이다. 저렇게 울창하던 해송 숲이 거의 다 타버렸기 때문이다.



홍예문은 26개 고을에서 가져 온 26개의 장대석을 두 줄로 쌓아 올렸다.

다시 조성된 홍예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

일주문을 지나 차를 놓고, 조금 걸어올라가니 홍예문이 보인다. 현재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홍예문이다. 새롭게 조성을 한 홍예문은 마치 새단장을 한 신부처럼 말끔하게 보인다. 천천히 걸어 홍예문 앞으로 다가서니, 문 위에 올린 누각이 보인다. 예전에는 문루 주변을 강돌로 조형을 하였던 것을, 불이 난 후에 다시 복원을 하면서 산돌로 꾸몄다고 한다.

문루는 처음과 같은 형태로 조성을 하였다. 문루 앙편에 용의 머리가 돌출이 되어 위엄을 보인다. 홍예문은 두 단의 기단을 놓고, 그 위에 장대석을 두 줄로 나란히 올렸다. 장대석을 다듬은 것도 일정한 규격이 있어 보인다. 이렇게 만든 홍예문은 숱한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그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한다. 아픔이 있어 더 아름다워 보이는 낙산사 홍예문. 


문루는 2005년에 난 산불로 인해 소실이 되었던 것을 다시 복구하였다.

사람들은 그 아픔을 알고 있기에 문을 들어서면서 멈칫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런 아름다운 문화재들이 수도없이 소실 된 재난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역사의 아픔속에서 그래도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화재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낙산사의 홍예문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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