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담은 도자기젊은 그대 낭만을 담다

 

팔달구 지동 창룡마을 창작센터는 지동 주민들에게는 가장 편한 휴식처이자 새롭게 무엇인가를 배울 수 베움의 공간이다. 창룡마을 창작센터가 이루어낸 가장 큰 소득은 주민들을 위해 많은 문화강좌를 개설했으며, 주민들은 이곳에서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배움을 터득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주민제안공모사업으로 채택 된 세대공감이 있는 문화마을은 지동주민들이 타 지역과 다르게 지역주민들을 위한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강의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단순히 강의를 듣는데 만족하지 못한 주민들은 직접 사진촬영을 하고, 도자기를 만들면서 문화적인 소양을 키웠다.

 

 

그 중 꽃은 담은 도자기는 도자기 페인팅과 꽃차 만들기 수업으로 직접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가마에 소성하는 작업까지 이어졌다. 김미경 강사의 강의로 424일부터 87일까지 도자기 수업을 받은 주민들은 자신이 직접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고, 그 도자기를 가마에 소성해 전시에 출품했다.

 

사진촬영 방법을 조성근 강사로부터 배운 주민들은, ‘젊은 그대, 낭만을 담다라는 강의 제목으로 522일부터 816일까지 총 11회 사진촬영에 대한 강의를 들었으며, 강습 도중 직접 지동 경내 경로당을 찾아가 어르신들의 영정사진 촬영을 하는 등 자신이 직접 촬영하고 사진 출력을 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도자기와 사진, 작품 전시회 열어

 

31일 오전에 찾아간 창룡마을 창작센터. 2층 갤러리에 새로운 작품을 진열했다는 창작센터 관리자의 이야길 듣고 갤러리로 올라갔다. 벽면에는 김종 작가의 그림이 걸려있고 그 아래편에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다. 사진촬영 기술을 강의로 배운 주민들이 마을 어르신들의 사진을 찍은 것이다.

 

11회 동안 지동주민들 중 사진 촬영술을 배우고자 신청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론수업과 현장실습, 그리고 사진을 수정할 수 있는 포토샵 수업까지 알려주었다고 한다. 특히 사진촬영을 배울 때 관내 경로당을 직접 방문하여 어르신들께 메이크업을 해드리고, 사진을 찍어드리며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촬영한 시진들을 현상해 전시해놓았다. 사진 안에는 부부가 찍은 사진도 있고, 경로당 어르신들이 단체로 촬영한 사진도 있다. 갤러리 안쪽으로는 도자기와 꽃차 수업을 받은 주민들이 아름답게 그려낸 도자기들을 전시해 놓았다. 16회의 수업을 받은 주민들은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소성을 한 것이다.

 

 

2주 동안 창작센터 갤러리에 전시

 

주민들이 16회 동안 배운 도자기 그림그리기와 꽃차 수업. 그동안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꽃차를 만들 때마다 향기로운 꽃차를 마셔보기도 했다. 이렇게 주민들이 직접 그려 아름답게 조성한 도자기를 전시하는 것도 자랑할 만한데, 그 도자기에 꽃차를 담아 주민들과 함께 즐거움을 공유한다고 한다.

 

그동안 지동 창룡마을 창작센터는 주민들의 소통공간으로 이용되면서 많은 문화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2주 동안 전시한다는 주민들이 배우고 익힌 작품인 사진과 도자기. 지난번에는 주민들이 한지를 갖고 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를 갖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사진과 도자기 수업을 받은 주민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다. 날마다 달라지고 있는 창룡마을 창작센터. 앞으로 또 어떤 즐거움을 전해줄 것인지 기대가 된다.

 

아침에 전화를 한통 받았다.

 

기자님 저 ○○인데요.”

,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이른 시간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참 선뜻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질문의 요지는 이렇다. 본인도 정부 모 부처의 블로그 기자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블로그에도 글을 올리고 해당 부서 게시판에도 글을 올리는가 보다. 그런데 갑자기 그 부처에서 기자들에게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취재를 하지 않은 기사는 올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요즈음 블로그들은 기본적으로 고가의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다. 그것은 블로그라는 일인미디어들이 자신의 블로그를 방분하는 사람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사진 실력들도 프로급을 능가하는 블로그들이 상당수가 있다.

 

 

취재를 할 때는 꼼꼼히 현장에서

 

사실 취재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전에 충분한 공부를 한 후 임해야 한다는 것도 번거롭지만, 취재를 마치고나서도 많은 자료를 찾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사란 활자로 남기 때문이다. 자칫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 기사를 쓰는 일이고보면, 많은 공부를 하지 않고 써 내려가는 기사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문화재나 역사적인 기록을 하는 기사를 쓴다면, 더욱 꼼꼼하게 모든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칫 엉뚱한 기사를 써서 남의 비웃음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로 나의 경우는 문화재 하나를 취재할 때, 문화재 한 점의 사진을 30장 이상을 찍는다. 행여 빠트릴 부분이 있을까봐, 부분 부분을 세밀하게 촬영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요즈음은 휴대폰의 성능이 뛰어나다. 휴대폰의 화소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사실 카메라를 지참하지 못한 경우에는, 휴대폰이라는 이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리고 SNS가 활성화되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사진을 촬영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에 글을 내보낼 때는 휴대폰보다 실용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식으로 기사를 쓸 때는 사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기사에 인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만일 그 기사를 인쇄물로 제작을 하려고 하면, 화질이 좋은 것 같은 사진도 뭉그러지거나 깨어지기 때문이다. 취재기자들이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좋은 사진 한 장을 찍겠다고 이리저리 뛰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취재를 할 때 마음가짐부터 달라야

 

기자는 취재에 임할 때 먼저 취재를 하겠다고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카메라와 수첩, 그리고 필기도구는 기본이다. 언제 어디서 기삿거리를 만날 줄 모른다. 하기에 작은 소형카메라라도 몸에 지니는 것은 취재기자의 근본이다. 요즈음은 가격대가 착한 카메라도 성능이 뛰어나다.

 

기자가 취재를 하고, 그것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하는 신분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불필요한 사진을 찍어서 자신의 얼굴을 알리려고 하지말자. 독자는 기사를 보고 싶은 것이지, 기자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사진이 나오는 기사, 초점도 제대로 맞지 않는 기사를 보면서 좋은 기사라고 이야기할 독자는 아무도 없다.

 

독자들의 수준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기자들도 그 독자들의 수준을 웃돌아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날로 변화하는 미디어 시대에 뒤처지는 불량신문과 미숙한 기자 밖에는 되지 않는다. 정성을 다해 써내려가는 기사 한 줄. 그것이 많은 독자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4월 17일 하루 온종일 모악산은 몸살을 앓았습니다. 지난 해보다 더 많은 분들이 모악산을 찾았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축제가 끝나는 오후 5시경까지 모악산은 그야말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올 축제에는 송월주 큰 스님께서 직접 산사를 찾아 사람들을 격려해 주셨고, 김승환 전북교육감도 아이들 격려차 산사에 올라 그 어느 때보다도 값진 축제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벌써 그 세월이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스스로 알아서 즐기고, 즐기게 하는 축제로 자리를 잡은 듯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길은 어린이들이 오르고 내리기에는 조금은 위험한 산길입니다. 부모님들이 동행을 하시지만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제11회 모악산진달래화전축제, 그 끝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아저씨 나 폼이 어때요? 제법 그럴 듯 하지 않아요?

모두가 즐거운 축제, 이것이 진정한 축제다

언제나 인기가 좋은 진달래 화전

사진촬영대회 대상 한 번 먹어봐!!

이번 종합대상은 당연히 내것...

한 손으로는 그림을... 또 한 손에는 먹을 것을...축제는 즐거워

'한 마리 잡았다!!' 산사 작은 연못의 올챙이와 개구리들의 수난 

고등학교 언니들도 산사에 올라 멋진 춤판을..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뒤질세라 아름다운 춤을...
 

모두가 즐거운 축제. 그래도 우리가 제일이지....
 

 산사로 오르는 길 양편은 그야말로 흐드러진 꽃 길


(주) 지난 해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답니다. 미리미리 올려드리지 못했습니다. 컴이 워낙 늦는 바람에

‘전문블로거’라는 용어가 생소한 듯하기도 하다. 사실 블로거들이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그 전문성을 인정하기도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같이 블로그의 추세가 일상다반사나 연예 쪽으로 많이 치중을 하다보면, 글을 쓰는 블로거들이 그 방향으로 글의 소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포스팅을 하는 분야는 문화 쪽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문화가 아닌 전통문화 부분이고, 그 중에서도 문화재에 많은 양을 할애한다. 아무래도 전국을 다니면서 문화재답사를 하다가보니, 그 방향으로 설정이 된 것만 같다. 답사를 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이런 일 저런 일도 올릴 경우가 있다 보니, 나 역시 가끔은 일상다반사 부분으로 분류가 되는 날도 있다. 하지만 난 고집스럽게 문화블로거임을 강조하고 싶다.

삼성궁으로 오르는 길. 단풍이 물든 암벽 길을 걷는다.
 
좋은 만남으로 이어지는 여행

티스토리에서 <김천령의 바람흔적>을 운영하는 천령님과는 꽤 오랫동안 만남을 가졌다. 이제는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그만큼 자주 만나기도 한다. 가끔은 함께 답사를 하는 일도 있는 터라, 이런저런 취향을 서로가 알게 된 듯하다. 천령님은 다 알고 있듯 여행블로거이다. 아우지만 늘 그 사진들을 보면서 부럽게만 느껴진다.

10월 22일 전주한옥마을에서 열리는 ‘술잔전’에서 만난 또 한 사람의 지기인 ‘지우재 김원주’님은 블로그를 운영하시지만, 자주 글을 올리지는 않는다. 이 셋이 언제부터인가 의형제가 되어버렸다. 전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만나기만 하면 술로 날을 새우기 일쑤이니, 주변에서는 정말 부러운 형제라고 까지 할 정도이다.

굴을 지나며. 좌측이 여행블로가 김천령님. 우측이 도예가인 김원주님이다.
 
셋이서 하루를 보낸 뒤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을 들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우재는 이 삼성궁에서 오랜 시간 생활을 한 탓에, 천제를 지내니 꼭 참석을 해보자고 권유로 인해서다. 전날 지리산 근처에서 숙박을 하고 난 뒤, 아침에 지리산으로 향했다. 전날부터 내리는 비가 그치지를 않는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오른 삼성궁이다.

여행블로거는 무엇을 담나?

비옷을 하나씩 구해 입고 빗길을 걸어 삼성궁으로 향한다. 비속에서 만나는 단풍이 그 빛깔이 더욱 붉은 듯하다. 작은 폭포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나와 천령님의 사진을 찍는 곳이 영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필요로 찍는 곳은 천령님은 거의 찍지를 않는다. 천령님이 열심히 찍고 있는 곳을 보면 나에게는 그렇게 열심히 찍고 들여다보고를 반복할 만한 곳이 아니다.

솟대인 돌탑.

전날 구례 연곡사에 가서도 느낀 바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진 촬영을 한다. 나는 문화재 하나를 보면 그 조각 부분까지 세세하게 촬영을 한다. 부도탑 하나를 찍는데 거의 70~80장 가까운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 그러나 천령님은 두 세장 찍을 뿐이다. 딴 것으로 이동을 하면서 천령님이 그렇게 많은 양을 찍어대는데 나는 한 장도 찍지를 않는다.

바로 전문블로거의 모습이다.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을 강조하다가 보니, 서로가 사진을 찍는 포인트가 전혀 다르다.

“형님은 오늘 공쳤네요. 천제 하나만 겨우 건졌네요, 여기까지 힘들에 올라와서”
“그러게 말이다. 그 시간에 문화재를 찍었으면 글 10개는 쓸 수 있었을 텐데”
“저는 오늘 많이 건졌습니다. 오늘의 답사는 나를 위한 것 같네요”

돌길을 걷고 있는 김원주님. 빗길을 걸어 삼성궁으로 올랐다. 단풍이 타는 듯하다.

웃고는 있지만 내심 속이 상하다. 좀 더 많은 글 소재를 갖고 내려갔으면 좋았을 것을. 현장답사는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비용이 상당히 들어간다는 것이다. 1박이나 2박 정도를 하면, 몇 십 만원이 훌쩍 날아간다. 그렇다 보니 한번 나가면 하나라도 더 찍어야하는 것이 문화블로거의 욕심이다.

여행전문블로거인 김천령님과 함께 떠난 답사길. 그렇게 땀을 흘리면서 찍어 온 자료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이 뿌듯하다. 좋은 형제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녀 온 여행이기 때문이다. 서로 알려주고 기다려주면서 다녀 온 이번 답사길에서, 어느 분야나 현장을 다니는 블로거들의 쉽지 않은 내력을 본다.

“아우님, 담부터는 글 하나하나 더 열심히 보아 주마”

인사동, 참으로 오랜만에 들려본 곳이다. 고향이 서울이고 더구나 본적은 창덕궁 뒤편에 있는 재동이다. 학교를 운니동에서 다녔으니 인사동과는 길 하나 차이이다. 그런데도 서울을 떠난 뒤로는 인사동이라는 곳을 몇 번 밖에는 가 본 기억이 없다. 아마 그곳에 문화재가 많이 있었다고 하면 자주도 찾아갔을 텐데 말이다.

모처럼 출장길에 들리게 된 인사동은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곳이 아니었다. 한국적 냄새가 물씬 풍기던 곳, 그리고 어디를 가나 고집 센 문화예술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 난 인사동을 그런 곳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10여년 만에 찾아간 인사동은 왠지 감칠맛이 없어 보인다. 무엇인가 달라지긴 했는데 딱히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예전보다 인사동다운 맛이 떨어졌다고나 할까.


오랜만에 막걸리 집을 찾아들다.

알다시피 인사동은 한옥촌이다. 뒷길로 들어가면 즐비한 한옥들이 붙어있다. 아마 인사동만의 그런 모습 때문에 늘 기억을 하는 것이고, 그 한옥의 정겨움에 익숙해져 있는 터라 스스럼없이 발길을 향했을 것이다. 출장길에 나섰으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바람에 어차피 출장길을 재촉한다는 것도 무리일 것만 같아, 자연스럽게 도예인들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한 곳을 찾아 들어가니 ‘푸른별 주막’이란다. 이름부터가 마음에 든다. 고택기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 한옥만 보면 우선 그 구조부터 살피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문간채가 있는데, 이곳은 광으로 사용을 한다. 인사동의 한옥들은 넓지 않은 터에 집을 지어서인가 공간을 최대로 활용을 한다. 집은 ㄱ 자 구조로 사랑방과 대청, 안방이 나란히 있고, 꺾인 부분에 부엌과 건넌방이 있다.

좁은 집을 이용하려다 보니 입구부터 복잡하다

처마에 부연을 단 것으로 보아 꽤 잘 지어진 한옥이다

좁은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 화장실 위에 장독대를 올렸다. 그 앞에는 장승도 서 있다. 

앞에는 타일로 바른 목욕탕 겸 화장실을 두고 그 위에 장독대를 올렸다. 처마에 부연을 댄 것으로 보아서는 좁기는 하지만 나름 충실한 집이다. 집을 지은 부재도 단단해 보인다. 지금은 건넌방 하나만을 신을 벗고 들어가기 만들고, 나머지는 모두 신을 신고 들어가는 방으로 만들었다.

개성 있는 막걸리집서 사진으로 만난 스승

자리를 잡고 벽을 둘러보니 낯익은 것들이 보인다. 어릴 적 나도 그랬을 캐캐묵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강에서 발가벗고 수영을 하는 아이들. 운동회 날 달리기 준비를 하는 아이들. 한 쪽 벽에 기대고 머리를 처박고 하는 말타기. 또 한 장은 아마 즐거운 소풍날일게다. 그 옆으로 이 집의 메뉴가 주욱 나열이 되어있다. 딴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단 한 가지가 마음에 든다. ‘푸른별에서는 화학조미료와 수입 식자재를 쓰지 않습니다’ 라는.

옛날을 그립게 만드는 사진들

벽에 가득한 이 집의 메뉴판이다.

망자의 넋을 올린다는 지전으로 된 넋전

마당에는 종이배와 넋전들이 허공에 매달려 음산하기도 하다.

작은 마당에는 장독대 앞에 장승이며 넋전, 그리고 종이배들이 공중에 떠 있다. 한 많은 사람들이 저 배를 타고 극락으로 떠났을까? 그 배에 저 넋전에 붙은 혼백이라도 띄워 보낸 것일까? 밝지 않은 종이등 불빛에 흐늘거리는 넋전이 묘한 분위기를 낸다. 그래서 인사동일게다. 무엇이라도 수용을 할 수 있는 곳이니.

집을 돌아보다가 그만 얼음이 되고 말았다. 한편 벽에는 어느 작가의 작품인 듯 ‘그 때 그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달렸는데 김수환 추기경, 정당인 김근태 등이 보인다. 그런데 그 끝에 아주 낯익은 여자 분이 눈에 띤다. 바로 채희아 선생님이다. 반가운 얼굴이다. 개인적으로 채희아 선생님은 내가 중학생일 때 나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사진작가의 작품인 듯. 그 안에 채희아 선생의 모습이 보인다.(아래 좌측)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남다른 스승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셔서 황해도 내림굿을 받고 만신의 길을 걷기도 했다. 당시 채희아 선생님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가 되었다. 서울대 출신에 미모의 여인이 내림굿을 받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사진 속이나마 바라보자니 눈물이 난다. 겉으로는 웃고 마시지만, 아주 어릴 적 스승의 대한 기억이 많아서인가 보다.

인사동. 그래서 인사동은 추억의 거리라고 한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추억을 찾고 싶어 한다. 까맣게 잊고 살던 옛날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제 인사동이 그 기억을 지워버리고 있는 듯해 마음이 아프다. 그것이 비록 아름답지가 않고, 아픈 기억이긴 하지만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는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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