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황당하다. 이런 말을 듣고 있자니 세상이 참 어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산은 무엇 하러 올라온 것인지, 그리고 왜 산에서 이런 짓거리를 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산이 좋아서 산을 다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산에 볼 것이 있다면 더욱 더 산이 좋다. 소로 길만 걷고 있어도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곳이 산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수원에는 광교산이 있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이 산만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산도 흔치는 않다. 광교산은 수원의 북쪽에서 오는 찬바람을 막아주며 시가지를 품에 안고 있는 수원의 주산이다. 원래 이름은 ‘광악산’이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광교산으로 명명되었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광교산은 수원팔경 중 한 곳

 

광교산은 산의 능선이 매우 한적하면서도 완만하고 사방에 수목이 우거져 있어, 삼림욕을 하거나, 당일 코스로 오붓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예부터 광교산은 수원 8경의 하나로 불렸는데, ‘광교적설(光敎積雪)’이라 하여 광교산에 눈이 내려 나무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경치가 8경중에서도 첫 번째로 손꼽힌다.

 

광교산은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하루에 수십만 명이 오르내리는 산이다. 높지도 않지만 우거진 숲과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이 있어, 언제나 걷기에 좋은 산이기 때문이다. 광교산은 그저 이웃집 나들이를 하 듯 올라가도 좋은 산이다. 이런 산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살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한가지이기도 하다.

 

산은 그 자리에 있어 좋다

 

광교산은 자주 걷는다. 굳이 ‘오른다’는 말로 표현을 하지 않고 ‘걷는다’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광교산을 자주 가기 때문이다. 특히 일로 인해 술이라도 많이 마신 다음날은, 일부러 광교산을 천천히 걷는다. 버스를 타고 상광교 종점까지 가서, 뒷짐을 지고 걸어 오르다 보면 무거운 머리가 맑아지기 때문이다.

광교산을 오르다가 보면 여기저기 쉴 수 있는 의자들이 있다. 그 의자에 앉아 잠시 책이라도 읽노라면, 참 신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옛날 선인들이 산이 좋아, 그곳에 정자를 지은 까닭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산이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그곳에 가면 볼 수 있어 더욱 좋은 까닭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산을 왜  오염을 시켜

 

비가 온 다음 날 산을 오르면 더욱 좋다. 숲에서 나는 나무들과 풀의 짙은 향과, 조금은 물기를 머금고 있는 시원한 바람 때문이다. 그런 숲이 가까이 있어서 늘 머리를 식히러 걷고는 한다. 암반 위를 흐르는 계곡의 물이 더욱 더 좋은 곳이기 때문에, 그저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걷는다.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치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산행을 목숨 걸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은 느껴야 더 좋다는 나름대로의 생각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데 두 중년의 남여가 의자에 앉아 사랑을 확인한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저 정신없이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휴대용 카메라를 늘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뒤에서 그 모습을 담아두려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 카메라가 보기와는 달리 셔터 떨어지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셔터 소리에 깜짝 놀란 두 사람이 동시에 뒤를 돌아다본다.

 

‘선생님 지금 저희들 찍으셨나요?“

“예, 모습이 아름다워서요”

“선생님 제발 저희 사진 좀 지워주세요”

“왜요? 앞도 아니고 뒷모습인데”

“안됩니다, 제발 지워주세요.”

 

 

이쯤 되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만하다. 이 두 남녀 정상적인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부인과 남편 몰래 산에 와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현장이 재수 없게 나에게 찍힌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절대로 지워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도 사정을 하니 어찌 할 것인가? 사진을 지워주고 나서도 영 기분이 찝찝하다.

 

요즈음 세상이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하긴 드라마다 무엇이다 해서 보이는 것이 모두 불륜 등을 부추기고 있으니,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런 것으로 꽉 차 있을 것만 같다. 세상 참 돌아가는 꼴이 점점 추악해지기만 한다.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답답하기만 하다.(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바로 엊그제인 듯했다. 그런데 강원도 지방에는 폭설이 내려 길이 미끄럽다고 연신 화면을 하얗게 장식하고 있다. 참 시간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가보다. 경기도 지역에도 비가내렸다. 이 비가 그치면 날이 추워질 것이라고 한다.

아우네 집 마당을 나갔다. 빗줄기에 젖어있는 담벼락 밑에 서 있는 하루방들, 그런데 그 옆 단풍나무가 올해는 제대로 물이 들지 않았다. 그러던 단풍이 하루만에 비에 젖어 잎을 떨구었다. 비에 젖은 반쯤 물이 든 단풍잎이 그렇게 아름다운줄 몰랐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비를 맞으면 땅에 떨어진 단풍잎을 담아낸다.



그런데 돌하루방마다 단풍잎 한장씩을 머리에 붙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다가 그저 웃고말았다. 왜 꼭 한 장만일까? 아마도 저 하루방님들 욕심이 없는 것인가보다. 그런 자연 하나에서도 사람들이 배울 것은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장의 비에 젖은 단픙잎으로 멋을 내고 있는 돌하루방들. 그 모습에 여유가 묻어있다. 그저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러고보니 요즈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사를 하고 난후 그 많은 CD를 자시 정리를 하느라고. 12월 2일 새벽 3시 27분, 이제야 정리를 마치고 허리를 편다. 찬 물 한 잔이 장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좋다. 그동안 메말라 있던 장에 축축하게 젖어드는 느낌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어찌보면 말없이 서 있는 저 돌하루방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살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밥 한끼 배부르게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그런데도 기름끼가 가득 낀 배를 매일 기름으로 도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눌줄 모르는 사람들. 죽어서도 그 많은 재물 때문에 아마 저승 길 조차 제대로 걷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다. 돌하루방은 낙엽이 된 단풍잎 하나를 갖고도 저리 만족을 하는데 말이다.



어제부터 무엇인가 달라졌다. 종편채널들이 일제히 방송을 시작했다고 한다. 고집스레 보는 방송 외에는 보기채널에서 모두 삭제를 시켜버린다. 들여다보았자 세상살이에 도움이 안될 것 같아서이다. 요즈음은 방송이 사람들을 홀리고 있다.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바람을 넣기도 하고, 불륜을 하라고 조장을 하기도 한다. 예전처럼 방송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권선징악'이란 것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제 더 많은 채널들이 앞다투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방송들을 해댈 것이다. 그저 혼자 걱정을 한다. 이넘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 것인지. 그저 돌하루방의 마음을 닮고 싶다. 단풍 한 장으로도 만족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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