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팍팍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을 알고, 이기주의적 사고가 팽배해 있다고들 한다. 사실 그런 말에 부정을 할 수 없는 시대이다. 누구나 다 아집과 편견으로 뭉쳐진 요즈음의 세상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을 다 알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기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어제 수원시청 별관 2층 대강당에서는 혜민스님이 강의가 있었다. 이런 강의는 놓칠 수가 없어 시간 전에 대강당을 찾았다. 그러나 이미 의자는 물론,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까지 꽉 들어찼다. 혜민스님의 강의가 시작이 되었다. 뜨겁다. 열기는 대강당을 지나 중회의실까지 사람들로 꽉 메우고 있다.

 

 

이걸 어쩐다. 지갑을 잃어버렸네 

 

대강당과 중회의실을 오가며 취재를 하다가 보니, 날이 더워서인지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다.

 

세상에 상처를 받는 종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상처입니다. 둘째는 잘 아는 사람들이 주는 상처입니다. 셋째는 가족들에게서 받는 상처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해인사에서 행자노릇을 할 때, 그렇게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혜민스님의 열강이 이어진다.

 

해인사에서 행자노릇을 하려고 들어갔는데, 몇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데 저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기 마련이죠. 몇 분이 저를 이유도 없이 미워하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에 가려고 비자신청을 했는데, 그것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죠.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지 못한 것이 제 탓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왔다니까 무조건 미워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당해 본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기에 공감을 하기 때문이다.

 

열기가 뜨겁다보니,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다. 웃옷을 벗었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바람이라도 잠시 쐬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웃옷을 입다가 보니 무엇인가 허전하다. 속주머니에 넣어 놓은 지갑이 사라졌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데 난감하다. 순간 전화를 걸어야 할 곳이 몇 곳이 있다. 얼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기자님이세요.”

 

전화가 걸려온다.

○○○ 기자님이세요?”

예 그렇습니다.”

복도에서 지갑을 주었습니다.”

, 바로 가겠습니다.”

회의실이 있는 곳으로 가니 지갑을 주었다는 분들이 계시다.

 

 

방금 지나가시는 것을 보았는데 지갑이 떨어져 있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팀장님이 바로 보시고 연락을 취했습니다. 안에 명함이 있어 한 장 꺼내 연락을 드린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경황이 없어 인사만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퇴근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걸었다. 부서와 성함이라도 알려달라고.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다.

 

정상근 영통구 건축과 건축행정팀장

신소영 수원시 자치행정과 주무관

 

오늘은 작은 선물이라도 이분들에게 해야겠다.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는 사람, 그리고 받은 만큼만 주는 사람, 또 하나는 받은 것 이상으로 받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혜민스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받은 것보다 더 바라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는 사람이, 오래도록 성공을 이어갈 수가 있다고 한다. 이왕이면 더 많은 것을 이분들에게 드리고 싶지만, 오늘은 그저 작은 선물 하나를 드려야겠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에서 406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보면 공근면 상동리 496-3에 소재한 3층 석탑과 나란히 있는 석불을 도로 옆에서 만날 수가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0호인 이 상동리 석불좌상은 광배만 파손되어 흩어져 있을 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와 불신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다.

 

앞으로는 금계천이 흐르고 있고, 옆에는 상동리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머리 부분은 잘려나가 흩어져 있던 것을 올려놓았는데, 그것마저 잃어버려 다시 조성한 것이다. 현재의 머리 부분 이전에 모습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둥글고 복스러운 얼굴에 입가에는 미소를 띠어 자비스럽게 보였다고 한다.

 

 

통일신라 후기의 석불좌상

 

이 석불좌상의 신체부분을 조성한 실력으로 미루어 보아도, 신라 전성기 불상의 이상적 사실미가 엿보인다. 당당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무릎 위에 올려 왼손 손바닥이 위를 향하고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이러한 수인의 형태는 부처가 깨달음을 상징하는 상징이다.

 

남아있는 신체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런 손 모양과 당당한 체구,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의 유려한 옷 주름 등에서도 역시 이상적 사실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머리에서부터 양어깨를 거쳐 무릎에 이르는 선이 유려하다. 이 석불좌상은 그 형태와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경에 뛰어난 석공에 의해 조상된 것으로 보인다.

 

 

대좌는 8각 연화좌인데 하대는 안상을 새겨 넣었는데, 부분이 심하게 훼손이 되었다. 그 위로는 두장의 꽃잎이 아래를 향하게 조각을 하였으며, 연꽃을 새긴 원형의 상대와 각 면에 안상을 새긴 중대는 전형적인 9세기 대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석불좌상에 비해 좌대가 조금 왜소한 듯하다. 이 석불좌상은 부드러운 옷 주름과 8각의 대좌 등에 나타난 표현으로 보아, 8세기의 불상양식을 잘 계승한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좌상으로 추정한다.

 

 

고려시대의 석탑과 함께 모셔져

 

석불좌상의 옆에는 성덕사의 옛터에 석불좌상과 함께 남아있는 3층 석탑이 서 있다. 석탑의 기단은 이단으로 되어있으며, 아래기단은 네모난 지대석 위에 각 면에 두 개의 안상을 새겨 넣었다. 위기단은 중앙에 탱주와 양편에 우주를 새겼으며, 그 위로 3층의 탑신을 올려놓았다.

 

탑신인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는데, 3층 몸돌은 잃어버려 없어진 것을 탑을 복원하면서 새로 조성을 해 끼워 넣었다고 한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1층과 2층은 4단씩, 3층은 3단으로 새겼으며, 낙수면에는 느린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는 살짝 위로 들려 있다.

 

 

이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나, 지붕돌의 너비가 좁고 두꺼워지는 등 양식상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일반적인 밋밋한 형식으로 조성을 한 삼층석탑은 상륜부는 남아있지가 않다.

 

두상을 잃어 새롭게 조형을 해서 올린 상동리 석불좌상. 뛰어난 조각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새로 만들어 조성한 머리로 인해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변했다. 흔히 요즈음 말로 ‘훈남’이 된 것이다. 문화재 답사를 할 때 만나는 이런 문화재로 인해 마음이 아픔이 가실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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