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절집에 유기견으로 들어 온 깜순이와 새끼들. 깜순이와 3년을 함께 살면서 5번이나 새끼들을 받았다. 첫번 째 난 아이들 5마리는 방에서 우유를 먹여 키워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 하는 분들 많으실 것이다. 어느 부부께서 화성 동남각루 앞에서 다투는 소리의 한 대목이다. 토요일 아침에 화성 행궁 앞에서 행사가 있어 일부러 화성을 거쳐 행사장으로 나가는 길이다. 처음에는 그저 40대 부부가 말다툼을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괜히 사진을 찍는체하면서 어물거리다가 보니, 이 분들 자칫하면 헤어지게 생겼다. 그것도 개 한 마리 때문에.

 

처음부터 듣지를 못했으니 사건의 발단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두 분의 대화로 듣건 데 아마도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 때문인 듯하다.

 

내가 왜 개 아빠가 되냐고? 제발 그 아빠 소리는 빼라니까

남들도 다하는데 당신이 유별나잖아요.”

유별나고 머고 간에 내 개새끼를 낳은 적도 없고, 개를 자식 삼은 적도 없으니 앞으로 그 개 아빠라는 소리는 절대로 하지 마. 아님 그 개 갖다 버리든가

왜 죄 없는 애를 갖고 그래요

그 개한테 신경 쓰는 것 반만이라도 아이들한테 좀 써봐

 

이 정도 이야기라면 대충 알만하다. 여자 분의 가슴에는 작은 개 한 마리가 안겨져 있다. 그 개로 인해 부부가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개를 예뻐하는 것이야 사람의 취향이니 무엇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남편이 굳이 듣기 싫다는 소리를 계속하는 여자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남원 선원사에서 기르는 강아지들. 아래 사진은 엄마와 강아지.

 

사람마다 성격이 달라, 강요는 하지 말아야

 

나도 어릴 적에 집에 개가 몇 마리나 있었다. 지금처럼 집안에서 기르는 그런 작은 것들이 아니라 포인터, 진돗개, 세파트 같은 종류의 큰 개였다. 7마리나 키웠으니 동내에서는 소문이 날 밖에. 아침마다 개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는 것이 내 담당이었으니, 당연히 동내에서 내 별명이 개아범이었다.

 

그러다가 이상하게 일 년도 안 돼 그 많은 개가 다 떠나고 말았다. 그때의 상처가 워낙 깊어, 그 뒤로는 개나 고양이 등 동물들에게 일체 정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까이 하고 싶지가 않다. 두 번 다시 그런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던지 나와 인연이 있는 녀석들을 어찌 마다 하겠는가? 절집에서 키우던 깜순이 생각이 난다. 답사를 다니면서도 녀석들만 보면 찍어서 블로그에 올리고는 했으니, 나도 녀석들을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런데 잠시 뒤 남자가 폭탄발언을 하고 돌아서서 가버린다.

오늘 중으로 앞으로 개를 데리고 살든지, 아니면 개를 데리고 나가든지 둘 중에 하나 택해서 결정을 해. 이제 더 이상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아이들은 내팽개쳐놓고 허구한 날 그 개새끼만 끼고 있는 꼴을 이제 더 이상은 도저히 못 봐줘

 

곁에서 듣고 있는 나도 참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두 사람이 도대체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 한 마리로 인해 얼마나 서로 마음이 맞지가 않았기에, 저 정도까지 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남자가 그렇게 폭탄선언을 하고 가버리고 난 뒤, 여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어쩔 줄을 모른다. 두 사람 다 상처를 심하게 입을 것 같기만 하다.

 

 어디를 가나 개들을 만나면 사진으로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재미도 쏠쏠했다

 

강아지 이름이 복돌인가 보네요. 예쁘게 생겼네요. 왜 그렇게 다투세요?”

함께 산책 나가자고 해서 얘를 데리고 나왔더니 난리를 치네요.”남편분이 개를 안 좋아하나 보네요.”

매일 내다 버리라고 난리예요

두 분이서 잘 상의를 해서 키우세요. 남편 분 앞에서는 아빠라는 호칭은 쓰지 마시고요. 사람들이 성격이 다 달라서 개 아빠라고 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요. 특히 나가서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들은 괜한 일에도 성질이 날 때가 있거든요

아이들도 다 좋아해요. 그런데 애들이 추울까봐 안 데리고 나오고 얘를 데리고 나왔다고 저 난리를 치는 거예요. 애들을 돌보지 않는다고요

들어가서 사과하시고 앞으로는 아빠라는 칭호는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세요. 그러다가 정말 큰일 나겠습니다

 

남의 일이다. 하지만 가끔 지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아내들이 개 이름을 부르면서 뒤에 아빠라는 호칭을 쓰면 기분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종종 있다. 하긴 엄격하게 따지자면 어떻게 사람이 개 아빠가 되겠는가? 논리적이라면 남편이 개가 되는 꼴이니 말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상대가 싫어하는 호칭을 굳이 붙여야 할까? 반려견 한 마리로 인해 가정불화를 일으키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가 서로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사람이나 반려견이나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슬기로움이 필요한 부부의 이야기다.

아침 일찍 산사로 오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밑에 있는 상점에서 물을 한 병 사들고 뒷짐을 지고 산을 오르다보면, 계곡 물에 노니는 작은 물고기들과 산새소리에 절로 마음이 맑아진다. 바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늘 그렇듯 천천히 호흡을 해가면서 숨을 들이킨다. 그렇게 산을 오른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산을 오르는 길은 늘 새롭다.

그렇게 오르는 산에는 오늘따라 한가하다. 딴 때 같으면 복잡하게 사람들이 앞을 다투듯 오르는 산길이다. 그런데 오늘은 시간이 이른 이유도 있겠지만, 단풍철에 오르기 위해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만 같다. 산사의 단풍은 정말 아름답다. 마치 터널을 이루듯 하는 단풍이 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힘이들기도 하지만, 그 주변에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 위해 오르고는 하기 때문이다.


큰 소리 나는 이유를 듣고보니

천천히 계곡을 들여다보면서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큰 소리가 난다. 큰 소리로 고함을 치는 남자 목소리만 들린다. 남의 일에는 관여를 하지 않는터라 그냥 못본체 하고 지나치려는데, 남자가 어떻게 한 것인지 여자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앉아있다. 울기라도 하는가 보다. 무슨 일일까?

"내 하도 이상해서 뒤를 따랐다. 어째 날마다 산을 간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지"

무슨 이야기일까? 이어서 하는 남자의 소리에 대충은 짐작이 간다.

"애들 떼어놓고 미치지 않았으면 산에가서 서방질을 해"

정말 그런 것일까? 이야기를 듣고보니 여자가 아침에 일찍 친구들과 산을 오르겠다고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울면서 매달리는 것도 떼어놓고, 서둘러 나가는 것이 이상해 뒤를 밟았고 낯선 남자와 만나 같이 산을 오르는 것을 보고, 여자를 혼내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아니라고 극구 부인을 한다. 친구들과 약속을 했는데 늦어서 길을 몰라 길 안내를 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남의 가정 일에 참견을 할수는 없지만, 곁에서 보고 있자니 정말 답답하다. 시소한 오해로 인해 자신의 아내를 부정한 여자로 몰아가는 남자도 그렇고, 어린아이를 떼어놓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여자도 그렇다. 문제는 이런 불신이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닌 것만 같다.

남자의 실직에서 온 불안감이 의심병으로

이 부부에게 길에서 그렇게 다투지 말고, 집에가서 조용히 해결을 하시라고 한 마디 했다. 그랬더니 남자가 하는 말이 자신이 실직을 하고 난 뒤에 여자의 행동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야한다고 전과 다르게 바깥출입이 잦은가 하면, 가끔은 술 냄새를 풍기고 집을 들어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듣고보니 이 부부의 문제는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해고로 인한 무력함이 결국은 부인에 대한 불신으로 커진 것은 아닐까? 집에서 부인의 눈치를 보아야만 하는 남자로서는 여자의 바깥출입이 불안했을 테고, 그런 것이 결국은 여자를 의심하는 증세까지 보인 것은 아니었을까?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남자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남자는 믿지 않는 눈치이다. 같이 산으로 오르던 남자가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자기 부인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면 사실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도망을 간 것을 보면 무엇인가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은 남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가 않다. 사람들이 많이 올라오는 시간이니 망신 당하지 말고, 집에 가셔서 두분이 조용히 해결을 하라고 거듭 당부를 하고 길을 돌아 선다. 부부가 티격이면서 산을 내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남자의 실직에서 오는 문제가 의외로 심각한 듯하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날마다 만난다. 그러다가보면 인사를 하고 다닐 수도 있다. 나 역시 산사에서 만나는 사람 중에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자가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실직으로 인한 무력증에서 온 것 같다.    

이 부부의 앞날이 걱정이 된다. 앞으로 여자는 바깥출입이 불안할 것이고, 남자는 그 의심병이 점점 짙어져 갈 것만 같다. 부부가 함께 산이라도 다닌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불행이 올갓 같기도 하다. 모처럼 일찍 길을나서 오른 산행에서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남의 이야기로 기분이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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