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장!!

수원시 연화장은 이 세상을 떠난 고인들을 화장하는 곳입니다

이 연화장은 요즘 젊은 채 피지도 못한 꽃들이 이승을 하직하는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수학여행길에서 참변을 당한

세월호의 아픔은 날마다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아픔을 무엇이라고 위로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누가 그 아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전 국민이 모두 슬퍼하지만 그 중에 이상한 인간들도 있습니다

그저 터진 아가리라고 마구 지껄여대는 사람들

그들도 자식들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 사람들...

과연 자기 자식이 세월호에서 참변을 당했다고 해도 그리 지껄여댈까요?

 

"다시는 이 나라에 태어나지 마라"

 

"내 새끼를 살려주세요

내가 세상을 잘못 산것이 있으면 차라리 나를 데려가세요

그리고 우리 아이를 돌려주세요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춥고 무서움에 떨었을까요"

 

한 어머니의 절규입니다.

벌써 10여일이 다 돼갑니다

히지만 아직도 물속에서 뭍으로 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죽은 혼백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무능한 어른들을 탓하겠습니까?

정말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아들아 다시는 이 나라에 태어나지 마라"

 

어머니의 절규입니다.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수를 하면서 어린 학생들의 시신을 찾아냈지만

결국 단 한 명도 생존자를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정말 미안하다. 얘들아 할말이 없구나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입이 있다고 한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장본인들입니다

백배사죄를 한들 그 아이들이 살아오겠습니까?

아무리 슬퍼한 들 그 부모, 형제들의 아픔보다 더 하겠습니까?

절말 부끄럽고 또 미안합니다.

다시는 이 나라에 태어나지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

정말 가슴이 미어집니다.

얘들아 저 세상에서는 고통스럽고 춥지말고 평온하게 살아라.

 

 

무예24기 상설공연시 노란 리본착용

 

"단 한명의 생존자라도 찾기를 염원합니다."

 

수원문화재단(이사장 라수홍)은 수원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진행하는 무예24기 시범과 관련해,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단 한 명의 생존자라도 찾기를 염원하는 의미에서 노란 리본을 왼팔에 착용한 후 공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원문화재단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야외 공연 등의 행사를 취소 및 연기했으며, 무예24기 시범공연은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엄숙하면서 차분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란 리본은 전쟁터에 있는 사람의 조속한 무사귀환을 바라는 뜻으로 노란 리본을 나무에 매달은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참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우리의 현실이 어찌 이리 되었단 말인가? 하는 자괴감까지 든다. 그것도 멀리 이국에서 고생을 하러 온 것도 아닌데, 국제결혼이라는 허울을 쓴 채, 종살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니.

그렇다고 대우가 좋은 것도 아니다. 심심하면 음주를 하고 폭력까지 휘두른다는 것이다. 영화 속이나 드라마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부끄럽다.


다문화가정, 그 안에 숨은 슬픔

요즈음은 우리 주변에 외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사람들을 자주 볼 수가 있다. 흔히 이런 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한다. 다문화가정이 많은 곳에서는 지자체 나름대로, 이주해 온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외국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그 안에서 다문화가정은 남다른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인끼리 결혼을 해 자녀를 둔 가정이 이혼을 하여, 외국인 여성을 맞아들이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가 없다.


이런 동남아 쪽의 여성들이 한국남성과 결혼을 하여,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은 결코 사랑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중 거개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스스로의 부모형제에게 도움을 주고자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냥 좋게 이야기를 하자면 국제적인 결혼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돈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인 결혼’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돈 때문에,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을 떠나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있는 머나 먼 나라로 떠난 여인들. 그 중에는 물론 적응을 잘하고 잘사는 사람들도 있다. 안락한 가정을 꾸미고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은 자신의 나라를 찾아가기도 하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복된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일시키고, 때리고, 폭언을 퍼붓고

우연히 듣는 이야기에서 분노를 느낀다. 정말 내가 그런 인간과 동족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지 못한 한 남자가 베트남에 가서 부인을 데려왔단다. 얼마인가 돈을 주고 부인을 데려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외국인 부인을 데리고 와서 생활이 달라졌다고 한다. 어린 부인을 굶기고 싶지 않다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부인을 자기나라로 보내준다는 것이다. 참으로 바람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이 인간은, 도대체 인간답지가 않다. 부인을 데려다 놓고 집안에서 판판히 놓고 먹는단다. 그리고 부인을 식당에 내보내 돈을 벌게 한다는 것이다. 딸린 아이도 둘이나 된단다. 그러면서도 놀고먹는다는 이 인간. 거기다가 술만 먹으면 부인을 때리고, 욕을 한다고 하니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면 쫓아가 귀싸대기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먼 이국으로 낯선 남자를 따라와 사랑을 받기는커녕, 죽어라하고 일을 하는 이국 여인. 거기다가 폭력에 심한 욕설까지 들어가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 가슴이 얼마나 아플 것인가? 아마 스스로 빗을 졌다고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낯이 부끄럽다.

이런 인간들. 부인을 돈을 주고 사왔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인간아, 어찌 그러고 사냐? 제발 정신 좀 차려라. 2009년인가 다문화가족들이 슨 글을 도자기로 만들엇던 후배가 있다. 경기으뜸이가 글을 쓰고 아우녀석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다문화가정의 부인들과 이주노동자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때 한 어린 초등학생이 쓴 글이 있다. 오늘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어린학생의 글이 생각이 난다.

우리와는 다르다고 무시하지 마요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자기가 살던 나라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더욱 더 많이 알고 있는 걸...


여주군 북내면 중암리와 강천면 도전리에는 ‘라파엘의 집’이 있다.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는 운영하는 단체(사회복지법인 하상복지회, 원장 정지훈)가 같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우들이 묵고 있는 이 두 곳은, 중암리에는 20세 미만이 도전리에는 20세 이상의 장애우들이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들린 이유는 ‘스님 짜장’ 봉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곳을 둘러보고 난 후, 참으로 부끄러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도전리에 있는 라파엘의 집을 찾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난 후, 이들의 생활에 오히려 내가 위안을 받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란 생각이다. 현재 라파엘의 집에는 170명 정도의 장애우들이 묵고 있다. ‘시각중복 장애인의 재활과 교육의 메카’라는 슬로건을 걸고 생활하는 라파엘의 집을 돌아보았다.




이른 아침에 떠난 길

아침 6시 30분. 채 잠도 깨지 않은 상태에서 남원을 출발했다. 3시간 30분을 달려 라파엘의 집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도전리에 있는 라파엘의 집을 찾아가, 김정식 시설부장의 안내로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말끔히 정리가 된 경내는 여기저기 장애우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한 곳을 들어가니 스태플 작업을 자원봉사를 하는 학생들과 장애우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 눈이 보이지가 않는다고 하는데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저들에게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우문을 해본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가 시각중복장애우 들입니다. 모든 분들은 각자 통장을 갖고 있어 이렇게 일을 하고 받은 수당은, 모두 당신들의 통장으로 바로 입금이 됩니다. 사회인들과 똑 같이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 것이죠.”




다음 칸으로 가니 구슬 꿰기, 머그컵 만들기 등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 판매를 하기도 한다. 함께 동행을 한 도자 작가들도 그들의 작품을 보고 감탄을 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들, 내가 정말 부끄럽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살이를 하면서 불평을 한다. 살기가 어렵다. 누가 보기 싫다 등. 이런 말을 수도 없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 라파엘의 집 사람들은 오직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같은 시각장애우면서 지도선생이라는 분이 찬찬히 안내를 시작한다.



“우리는 등록상표가 천사 라파엘입니다. 이곳은 도자기를 만드는 곳이고, 저쪽은 컴퓨터실입니다. 컴퓨터를 켜면 화면을 읽어주는 시스템이 개발되어 편리합니다. 노래도 듣고, 책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 중 음악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조직한 밴드도 있다는 것이다. 라파엘의 집 경내에는 각종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시설까지 마련이 되어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선생님들과 자원봉사 학생들의 손을 잡고, 식당에 모인 라파엘의 집 가족들. 그들이 자장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 우리가 다녀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외롭고 소외된 곳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사람들. 지원이 부족해 늘 안타깝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단다. 말로만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직접 찾아와 그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것 하나에도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당신들. 당신들이 정말 부럽다. 그리고 힘껏 박수를 치고 싶다.

“자 야채 장사가 왔습니다. 과일 장사가 왔습니다. 빨리들 나오세요. 야채들 사가세요. 과일들 사가세요”

차에 야채와 과일을 싣고 다니면서 파는 야채장수가, 사무실 앞에 차를 대고 스피커의 볼륨을 높인다. 사무실이 있는 곳 주변에 예전에는 상가이고 주변에 식당과 주거지역까지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야 하는 장사꾼들의 소리이다.

“알 타리 무 한 다발에 4,000원, 두 다발에 7,000원입니다. 대파 한 다발에 7,000원입니다. 귤 한 상자에 10,000원, 4kg 1관에는 4,000원입니다. 싸고 맛이 없습니다.”

이건 무슨 소리야. 설마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장사꾼이 장사를 하면서 싸고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다니. 그러나 몇 번을 다시 들어보아도 같은 이야기다. ‘싸고 맛이 없다’는 설명이다.

오늘(11월 18일) 낮 사무실 앞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야채장수

정말 맛이 없는 것일까?

과연 그 장사꾼의 이야기대로 귤이 맛이 없는 것일까? 사람들이 야채를 사러 나왔다가 그 말이 이상한지 물어본다.

“아저씨, 정말 귤이 싸고 맛이 없어요?”
“예”
“그래도 그렇지. 장사하시는 분이 맛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아뇨. 정말로 맛이 없어요.”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는 장사꾼이다. 맛이 없어도 있다고 해야 할 텐데, 맛이 없다고 방송을 하고 다니니 누가 그 물건을 살 것인가? 정말로 양심적인 것인지, 아니면 장삿속으로 그러는 것인지 구별이 가질 않는다. 한참이나 그렇게 방송을 해대더니 몇 사람에게 물건을 판다. 아마 그들도 양심적이란 생각 때문에 물건을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장사꾼의 양심에 한 수 배우다


하도 이상해서 직접 물어보았다. 도대체 물건을 파시는 분이 어째서 ‘맛이 없다’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인지.

“‘맛이 있다’라고 하고 팔았는데 맛이 그렇게 좋지가 않으면, 물건을 사신 분들 기분이 어떻겠어요. 차라리 맛이 조금 덜 하니까 ‘맛이 없다’라고 말씀을 드려야지”
“그렇게 장사를 하셔도 사 가시기는 하시나요?”
“사시고 안 사시고는 사시는 분 마음이죠. 그래도 값이 싸니까 사 가시는 분들이 꽤있어요”
“그분들이 나중에 무엇이라고 안 하시나요?”
“하하... 그 분들이 꽤 드실 만 하다고 하시죠.”

장사를 하는 사람은 그 물건이 어느 정도인지, 맛은 어떤지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속여가면서 장사를 하고 싶지가 않다는 것. 이렇게 거리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하는 장사꾼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양심적이다’ 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속이면서까지 팔아버린다면, 스스로 구덩이를 파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장사꾼이 자신을 속이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죠.”

뒤통수가 띵하다. 오히려 그런 장사꾼의 진정한 마음을 의심한 내가 부끄럽다. 벌겋게 낯이 달아오른다. 모든 것을 의심부터 하는 이 버릇을 얼른 고쳐야겠단 생각이다. 아직도 세상엔 양심적인 사람들이 더 많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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