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다. 그 사람들은 생김새부터, 마음 씀씀이가 다 다르다. 그러니 몇 사람만 모여도 말이 많아 질 수밖에 없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면 속이라도 편할 것을, 세상 사람들은 남의 일에는 왜 그렇게 오지랖이 넓은지 모르겠다.

 

세상살이가 어디 쉬운 일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 많은 세상 사람들 중에는 꼭 있어야 할 사람도 있고, 있어서는 안 될 사람도 있다. 요즈음은 딱 그런 사람들이 구별이 되는 듯 하다. 물론 있고 없고는 나름대로의 판단이겠지만. 

 

연리목과 같은 세상은 왜 안 돼?

 

연리목이라는 것이 있다. 연리목은 그렇게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나무와 나무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한 부분이 합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나무와 나무가 합해지면 '연리목(連理木)'이라 하고, 가지와 가지가 합해지면 '연리지(連理枝)'라고 한다. 동일한 수목이 합해지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전혀 다른 나무가 하나로 합해지는 것은 보기가 힘들다.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안에는 소나무 연리목이 있다. 연리목은 두 그루의 나무가 하나로 합해지기 때문에 남녀 간의 사랑을 상징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 사랑뿐이겠는가? 세상 인간사 모두가 그렇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같은 부류도 있고, 전혀 다른 부류도 있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도 있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어디 한 군데 정도는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이 공통점이 합해지면, 인간사의 연리목이 된다는 생각이다.

 

나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아니면 내가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매일 헐뜯고 싸움질이나 하고 있으면, 그 어디 세상사는 멋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인가? 요즈음 돌아가는 세상이 그렇다. 그저 뒤숭숭하다. 한 짓을 안했다고도 했다가, 나중에는 생각해보니 한 것 같기도 하단다. 한편에서는 눈물을 흘리는데, 한편에서는 조금은 초연하다.

 

예전 우리의 생활 속에 '목도'라는 것이 있다. 산에서 큰 나무를 베어 들고 오려면 여러 사람이 줄을 묶어 양편에서 들어야 한다. 굵고 큰 나무일 때는 20명이 넘는 사람이 양편으로 갈라져, 나무에 묶은 끈을 어깨에 메고 날라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목도를 하는 사람들은 발을 똑 같이 맞추어야 한다. 만일 한 사람이라도 발이 틀리면, 제대로 나무를 옮길 수가 없다. 거기다가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소리 한 자락에서 좀 배워봐

 

오동나무 열매는 감실감실

큰애기 젖퉁이는 몽실몽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갈 때

큰맘 먹고 넘어가 발발 떤다.

 

덜크덩 쿵덕쿵 찧는 방아

언제나 다 찧고 밤마실 갈까

밤마실 가기에 즐기더니

홍당목 치마가 열두챌세

 

목도꾼들이 사로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무거운 나무를 어깨에 메고 내려오면서 하는 소리다. 목도소리라고 하는 이 소리는 힘이 드는 것을, 조금이나마 잊기 위해서 하는 소리다. 또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산에서 힘든 작업을 하는 남정네들이 부르는, 은근한 소리이기도 하다. 우리소리 안에는 그런 은근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역시 소리도 좀 야해야 제 맛이 나는가 보다. 이렇게 서로가 하나가 되는 소리를 들으면, 연리목이 생각이 난다. 생각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큰 나무를 옮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연리목이 아니라, 서로 다른 나무가 하나가 되는 연리목이 생각이 난다.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에 있는 신흥사 경내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연리목이 잇다. 이 나무는 연리목 수준을 넘어선다. 줄기가 서로 합해진 것이 아니라, 배롱나무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령이 200년이 넘고, 나무의 높이가 5m 가 넘는다. 그런데 어떻게 배롱나무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을까? 배롱나무에 솔 씨가 떨어져 자란 것 같다고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그저 이렇게 상생을 하는 나무라는 것만으로도 희한하다.

 

목도소리에서 인생살이의 참 멋을 좀 배워 보시게나.

 

이 배롱나무를 닮을 수는 없는 것일까? 아니다, 같은 부류라고 해도 서로가 아웅 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다른 수종이 한데 자라는 것을 바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같은 수종이라도 함께 연리목이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신흥사의 배롱나무와 소나무 같이 살기를 바라지만.

 

울타리 꺾으면 나온다더니

행랑채 달아도 왜아니 나와

담넘어 갈 때는 큰 맘 먹고

문고리 잡고서 발발 떤다

 

산중의 기물은 머루다래

인간의 기물은 사랑일세

염천봉 꼭대기 호드기소리

신도안 갈보가 다 모여든다.

 

매일 아침 보는 뉴스도 지겹다. 토막살인, 근친상간, 강제추행, 강간살인... 등. 어떻게 세상에 좋은 소식은 별로 없고, 그저 눈만 뜨고 나면 이상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나고, 정작 조용해야 할 사람들만 나와서 난리를 친다. 그런 것 말고 이렇게 좋은 소리나, 연리지 같은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오늘 목도소리 한 번들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제발 국민들을 기만하지 말고, 이렇게 조금은 야스러운 소리를 하면서, 힘없는 국민들을 위해 발 좀 맞추면 누가 머라고 하나?

 

매번 마음도 바꾸고, 말도 잘 바꾸는 사람들. 이렇게 두 나무가 함께 실듯이 세상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길은 어디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길을 이용한다. 지금이야 차를 갖고 다니기 때문에, 차를 타고 휑하니 달려가 볼일을 보고는 한다. 그러나 예전에는 걷거나 말을 타지 않으면 다닐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니던 길이 이제는 나름대로 멋진 이름을 붙여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 길을 걷는 재미에 빠지면, 길이 다시 보인다.

전주 이목대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 이안사가 살던 곳이다. 시조인 이한 때부터 누대에 걸쳐 살던 곳으로, 조선개국을 칭송한 「용비어천가」에 이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 금강으로 침입한 왜구는 군선 5백 척을 진포(군산)에 대놓고 백성들을 괴롭혔다. 우왕은 수군을 총지휘하던 최영에게 명하여 이를 무찌르게 하였는데, 패전한 왜군은 퇴로를 찾아 남원으로 내려왔다. 이성계는 이들을 맞아 운봉싸움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는 길에, 오목대에서 개선 잔치를 베풀었다고 전한다.


조선개국의 뜻을 품은 길

한옥마을에서 오목대를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조성을 하였다. 오목대길은 가끔 산책을 나가기도 하는 곳이지만, 하필 가장 찜통이라는 날을 골랐다. 그래도 나선 길이니 어찌하랴 천천히 계단을 오르면서 돌아보니, 한옥마을의 지붕들이 줄을 지어 보인다. 사람들은 연신 한옥마을을 촬영하느라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마을을 찍기 좋은 장소를 골라,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한 마음이 따듯하다.




이목대로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이다. 위로 오르면 한옥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한옥마을이 옛날 이야기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낮은 야산이지만 숲이 좋은 길이다. 여기저기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배려를 해놓았다. 오목대로 오른다. 그 옛날 이성계가 운봉으로 출동하여 황산에 진을 치고 적과 싸우다가, 왜장 ‘아지발도’를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 이성계는 승전을 하고 귀경 도중 전주에 있는 종친들을 모시고 승전축하연을 이 오목대에서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성계는 이 자리에서 한고조가 불렀다는 ‘대풍가’를 불렀다. 대풍가는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고향에서 종친을 모시고 읊은 시가 아니던가. 바로 한나라를 세우겠다는 마음을 은연중 내비친 시이다.

오목대를 비켜서면 이목대가 있다. 보호책을 둘러놓은 이목대 전각 양편으로는 배롱나무 두 그루가 문지기라도 된 양 꽃을 피우고 있다. 전각 안에 비석은 바로 고종황제가 친필로 썼다는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 쓰여 있다. 결국 이곳 이목대와 오목대는 조선이라는 한 나라가 출발하는데 있어, 그 뜻이 모인 곳이다.




오목대와 이목대. 오목대는 이성계가 승전을 하고 잔치를 벌인 곳이며,
이목대는 이곳이 이씨들이 살던 곳임을 알려주는 표지이다.

매미소리 시원한 당산 길

이목대를 지나면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시원한 숲길에서 매미소리가 시끄럽다. 아마 마지막 더위를 아쉬워하는 듯하다. 내리막길에 커다란 당산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500년 동안 전주 한옥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온 나무이다.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이곳에서 정결하게 제를 올린다는 것이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리는 당산나무

다시 한옥마을 들어가기 전에 양산재 길로 향한다. 여기저기 목책의자들이 정겹게 놓여있다. 이 찜통더위에 잠시라도 숨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 않는다. 여기도 역시 낙서는 빠지지 않는다. ‘윤진아 사랑해 - 남편’이란 글이 시야에 가득찬다.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 이런데 낙서를 하면 그 사랑이 깊어지는 것일까? 괜한 헛웃음만 허공에 날리고 있는데, 더위에 날기를 지친 나비 한 마리 나뭇잎에 숨을 고른다.



쉴수 있도록 마련된 나무의자. 이 길에는 나무의자들이 많이 있다.
누군가 한 낙서와 따라오던 나비 한 마리가 같이 날개를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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