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피곤할 때면 산에 오른다. 그저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고, 그 산에서 무엇인가를 채취하기 위해서이다. 남들은 건강을 위해서 산을 오른다고 하지만, 나는 건강을 위해서 오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산을 오르다가 보니 건강이 저절로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다니기 때문에, 몸 안에 노폐물이 배출이 되기 때문이다.

 

산을 오를 때는 항상 마음을 먼저 가다듬는다. 그저 무작정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에게 입산 신고를 마음속으로 하는 것이다. 등산로를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그만한 위험이 따른다. 요즈음 산에는 각종 벌레들과 뱀들이 눈에 자주 띤다. 모기는 산을 내려올 때까지 주변에 윙윙대고 달라붙는다.

 

산행의 즐거움은 늘 있게 마련

 

사람들은 산을 오를 때 많은 것을 만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혹여 빈손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나쁠 것이 없다. 산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숲이 주는 좋은 기운을 가득 받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즐거운데 거기다가 귀한 것 두어 뿌리를 더하면 그 날은 괜히 발걸음이 가벼워 질 수 밖에 없다.

 

14일 아침부터 몸이 뻐근하다. 아우 녀석과 산을 가기로 약속을 했으니 몸이 뻐근하다고 약속을 깰 수는 없는 일. 멀리는 갈 수 없으니 강원도 쪽으로 길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계곡을 타고 산으로 오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낙엽 속에 파묻혀 있는 산삼 한 뿌리를 발견한다. 무릎을 꿇고 주변의 흙을 털어낸다. 꽤 실한 산삼 한 뿌리가 드러났다.

 

 

그 주변을 찬찬히 살펴본다.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이 작은 잎을 낙엽 속에 드러내고 있는 산삼 잎이 보인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마음속으로 생각을 해본다. 이건 누구주고, 저건 누구주고. 그렇게 줄 사람을 정하고 보니 오늘은 그만 산을 돌아다녀도 될 듯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항상 그랬다. 필요한 만큼, 그것도 미리 정한 만큼만 손에 잡았으면 그만이다. 더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늘 다짐을 하고 산을 오르기 때문이다. 산을 내려오다가 물가에 낀 이끼를 따서 비닐봉지를 담는다. 삼이 마르지 않도록 이끼로 잘 싸야 하기 때문이다.

 

 

주는 마음의 정성이 더 중요해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삼을 정리하는 것이다. 비닐지퍼 팩에 이끼로 잘 싼 삼을 물을 조금 뿌려 집어넣는다. 그래야 산에서 채취한 그대로 전해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유난히 힘든 날이 있다. 땀도 많이 흐르고 벌레들도 기승을 떨며 달라붙는다. 요즈음은 뱀들도 유난히 많이 눈에 띤다.

 

숲속에서 만나는 뱀은 낙엽과 같은 색이라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그만큼 주변을 잘 살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더 든다. 그것이 크던 작던 그렇게 고생을 해서 채취한 것이니, 더 정성을 들여 전해주어야 한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받는 사람보다 주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제일 먼저 줄 사람을 정하고 정리를 해 구분을 해 놓는다.

 

 

다 끝내고나서 땀으로 젖은 몸을 씻는다. 시원한 물줄기에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손목이 근지럽다. 얼마나 벌레에 물렸는지 우툴두툴하다. 아마도 극성스럽게 달라붙은 모기떼에게 물린 듯하다. 사람들은 흔히 하기 좋은 말로 비아냥대기도 한다.

 

그렇게 벌레에 물리면서 무엇 하러 힘들여 돌아다녀. 그 시간에 잠이나 자지

그도 그렇다. 하지만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술자리에서 약속을 했다고 해도, 약속은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는 사람의 정성을 담은 마음이기 때문에.

 

‘텃밭’이란, 그야말로 집 안 뜰 한편이나 귀퉁이에 작은 밭을 말한다. 요즈음은 이런 텃밭의 개념이 달라졌다. 흔히 주말농장이라고 해서 집에서 떨어져 있는 밭을 임대해 일 년간 농사를 짓기도 하니 말이다. 또는 대문이나 벽 밑에 화분 등 여러 가지 식물을 키울 용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집안에서 먹을 수 있는 채소 등은 스스로 키우기 시작했다. 집터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마당에 깔라놓았던 보도블록 등을 들어내고, 그 곳에 채소 등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농산물까지 수입품이 급증하자, 이제는 가족들을 위한 먹거리를 직접 재배를 한다는 것이다.

 

 

마음에 담겨있어 더욱 아름다운 텃밭들

 

시골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땅 한 뙤기도 함부로 놀리는 법이 없다. 고추를 심거나 상추, 혹은 옥수수라도 심어 놓는다. 상추 같은 것이야 여름 내내 즐길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거움이다. 멀리 타지에 나가있는 자녀라도 찾아오면, 정성스레 텃밭에서 가꾼 상추며 고추 등으로 정성어린 밥상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집 뒤편 비탈에는 호박을 심는다. 이 호박 역시 가을이 되면 대개 자손들에게 나누어 줄 용도로 사용한다. 몇 포기 심지 않은 옥수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머니의 텃밭에는 별별 것들이 다 심겨져 있다. 그리고 그 몫은 순전히 자녀들의 것이다. 손수 품 들여 농사를 지은 것을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는 어머니의 마음. 텃밭에 정겨운 것은 바로 그런 마음이 함께 자랐기 때문이다.

 

 

“그거 거름만 준 것이야”

 

어머니의 텃밭은 조그맣지만, 그 안에 들은 내용물은 그 어딴 것보다 값지다.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등 굽은 어머니가 산에서 부엽토 한 삽을 떠오시느라 땀을 흘리신다. 그리고 그 부엽토를 텃밭 여기저기 소복하게 쌓아준다. 텃밭에 심어놓은 채소들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머니, 채소가 참 자랐네요.”

“그거 비료 안 준 것이지. 아이들이 먹을 것에 벌레 좀 생긴다고 비료를 주면, 우리 아이들이 안 좋아질 것 아녀. 그래서 벌레도 내가 다 손으로 잡아주어”

 

어머니의 마음이 고맙다. 자손들에게 화학비료를 준 채소를 먹이지 않겠다고 뙤약볕에서 채소의 잎을 들춰가며 벌레를 잡고 있는 노모의 마음을 자식들은 제대로 알기는 할까? 텃밭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이런 마음 때문이다.

 

 

벌레를 잡겠다고 텃밭에 친 화학약품

 

시골에 텃밭이 있다면, 도심에는 작은 공간마다 놓인 화분 텃밭이 있다. 화분이나 스티로폼 빈 박스를 이용한 텃밭들은 별별 것이 다 심겨져 있다. 심지어는 작은 스티로폼 상자에 고구마도 보인다. 요즈음 도심의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이렇게 잘 자라고 있는 채소들 덕분에 한결 기분이 맑아지는 듯하다.

 

그런데 한 곳을 보니 잎에 무슨 허연 반점들이 보인다. 벌레가 생긴 것을 걱정해, 화학약품을 준 것 같다. 집안 식구들이 먹을 것에 저렇게 잘 키운 채소에 화학약품이라니. 괜한 걱정이 앞선다.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곁으로 지나는 어르신이 한 마디 하신다.

 

“집에서 잘 키운 채소에 저렇게 화학약품을 주면 우짜노? 그냥 벌레 좀 먹어도 가족들이 먹을 것인데, 함께 나누어 먹어야지”

 

자연과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여유를 갖고 키운 채소. 그리고 그 텃밭에서 함께 자란 어머니의 마음. 텃밭의 미학이란 바로 그런 마음일 것이다.

모과나무는 어디나 있다. 모과는 장미과에 속하는 교목으로 중국이 원산지이다. 모과나무는 높이가 10m 정도까지 자라나며, 가을에 노랗게 익는 열매가 달린다. 이 모과나무는 차를 끓여먹기도 하고, 향기가 좋아 방안에 놓아두면 상쾌한 기분이 돌게한다.

모과나무를 수도 없이 보아오고, 에전 집안에는 모과나무가 있기도 했다. 그런데 수확철이 되면 이상하게 벌레가 먹고, 그나마 몇개 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난생 처음으로 정말 실한 모과나무를 만났다. 한 그루에 300여개는 괼만한 모과가 달린 나무이다. 단 한 그루 뿐인 모과나무에 어떻게 저렇게 많은 모과가 달렸을까? 정말로 불가사의하다. 그 모과나무를 열심히 찍어왔다. 혼자 본다는 것이 아까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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