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앞으로 3일간 글 발행하지 않습니다.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에서 벌어지는 올림픽이 심판들의 오심, 거기다가 일부 나라를 편드는 개 걸레같은 짓거리. 올림픽의 정신마저 잃어버린 이런 올림픽을 보면서 열 받았습니다. 물론 제가 이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당연하죠. 일부 가진넘들 빼고는 다 힘없는 백성에,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나라 아닙니까? 거기다가 우리는 허벌한 외교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 대신 열심히 하고도 아픔을 당한 선수들에게, 머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혼자 3일간 길을 걷겠습니다. 

 

 

 

하필이면 찌는 더위에 일이 많아졌다. 살다가 보면 어디 좋은 계절에만 일이 생기라는 법이 있을까? 그저 가만히 있어도 찜통인 이 복중에, 왜 그리 장거리 여행할 일이 많이 생기는 것인지. 아마도 타고난 일복 때문인가 보다. 일복이 터진 것이야 그런 데로 괜찮다. 무료하게 세월을 사는 것 보다는 한결 바람직한 일이니까?

 

요즈음 영동고속도로는 몸살을 앓고 있다. 고속도로는 꽉꽉 막히고, 차들은 거북이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그나마 조금씩이라고 움직이니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이 더위에 갑갑한 차 안에서 불쾌감까지 돋우는 일들은 정말 참기가 힘들다.

  

버스는 대중교통인데, 예의는 지켜야지.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면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많다. 우선은 경비절감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승용차를 한 대 타고 여행을 하면 기름 값이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버스야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좋다. 또한 버스를 타면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거나 아니면 아이폰으로 인터넷 접속을 하여 이것저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있다.

 

매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는 나로서는 에어컨이 시원한 버스 안에서 곧잘 잠을 청하고는 한다. 보통 2~4시간 정도의 장거리 여행을 하기 때문에, 30분 ~ 1시간 정도 잠을 잘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시간을 방해를 받을 때는 정말 불쾌하다. 물론 대중교통이라는 것이 나 혼자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중교통에도 지켜야 할 예의는 있지 않을까?

 

가장 짜증을 유발하는 사람들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차를 타자마자 전화를 걸기 시작하면, 그칠 줄을 모른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전화를 해대면서 목소리는 왜 그리 크게 내는지. 아마도 자신이 인맥이 많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저기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어댄다.

 

기사 양반 내 생명 맡기지 못하겠소.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는 20여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다행히 갈 때와는 달리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 없고, 시끄럽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없다. 가끔 아이 하나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빼고는, 모처럼 여유로운 여행길이란 생각이다.

 

일부러 버스를 탈 때는 표를 구입할 때 맨 앞자리를 달라고 한다.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길이 막히거나 가다가 사진을 꼭 찍을 일이 생기면, 바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자꾸 들린다. 마치 연인과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리는 소리가 신경을 자극한다.

 

그 소리의 범인은 바로 버스 운전기사였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한 손으로는 소형 마이크가 부착 된 줄을 잡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버스 기사 분들 중에는 ‘교통정보원’이 있다. 가다가 길이 막히거나 하면 ‘교통방송’에 곧 그 사실을 알리고는 한다. 그런 경우에는 운전석 위에 교통정보원임을 알리는 아이디카드를 부착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알 수가 있다.

 

처음에는 그렇게 교통정보를 알리는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대화 내용을 보니 그런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핸들은 한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는 소형 마이크를 잡고 연신 통화를 한다.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아마도 한 시간 이상은 통화를 하는 것 같다.

 

물론 사고 없이 종착지에 도착을 하기는 했지만, 오는 내내 불안하다. 저렇게 한 손으로 운전을 하다가 자칫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더운 여름 날 그런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 20여명이나 되는 승객들의 안전은 무시한 체, 줄기차게 전화를 해대는 모습에서. 

취재를 하거나 답사를 할 때 이동수단이 버스나 열차인 나로서는, 그 시간에 할 일이 많다. 우선은 출발지에서 신문을 하나사서(주로 시사주간지이지만) 꼼꼼히 읽어본다. 그 안에 기삿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면 블로그에 접속을 해서 글을 읽거나 추천을 한다. 그런 시간이 꽤 걸리기도 한다.

 

물론 트윗과 페이스북 역시 이동 중에 하는 일이 잦다. 하기에 주변의 이야기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더 더욱 바깥으로 지나는 경치는 아예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 가는 길이라면 예외이기도 하지만.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뒤에서 거는 전화 자꾸만 신경이 쓰여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라야 고작 10여 몀이다. 자리가 많아 일부러 신문을 보느라고 뒤편으로 가 앉았다. 그런데 그 많은 자릴 두고 한 분이 내 뒤에 앉는다. 문제는 차가 출발하자마자 전화를 건다. 친구들 모임에라도 나가는 것인지, 약속시간과 장소를 이야기를 하는데 마치 연인에게라도 하듯 소곤거린다. 뒤에서 계속 소곤거리는 전화소리에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여보, 나 차 탔어 갔다 올게. 일찍 올꺼야.”

 

갑자기 톤이 달라졌다. 아마도 남편에게 잘 다녀오겠다고 전화를 하는 것인가 보다. 참 이런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것이 참 부럽다. 언제 적에 이런 전화를 걸어 보았는지, 혹은 이런 전화가 걸려왔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런데 정작 조금 후에 이 분의 전화가 이상해졌다.

 

“응 자기야 나야, 모임에 한 30분 정도만 있다가 나갈 테니까 그 앞으로 와 알았지”

“.....”

“아냐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 해. 먼저도 늦어서 눈치 보여 혼났어.”

 

이 여자분 남자가 도대체 몇이여?

 

중간 기착지에서 황급히 차를 내리는 여자분. 그 뒷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열심히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있을, 그 남편이란 분이 불쌍해진다. 물론 남의 사생활에 대해 내가 ‘감 나와라 배 나와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나도 남자인데 이런 사람을 보면서, 요즘 남자들이 바보일까? 아니면 저 여자 분이 너무 한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보면 이런 경우를 참 많이도 보았다. 가끔은 정말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대화 내용으로 본다면 이 분 이렇게 밖으로 돌아다닌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듯하다. 남편을 속이면서까지 꼭 그랬어야만 했을까? 하긴 남녀사이라는 것이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속이야 내 알 수가 없다. 하긴 요즘 하는 말을 들으면 잘 나가시는 분들은 남자가 하나, 둘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말로 연애의 고수 시대가 도래한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노라면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있다.

 

“형님 괜히 부러우니까 시비 거는 것 맞죠?”

 

그런가?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너무 혼자 오래 있었나? 그냥 넘겨버릴 일도 두 귀를 곧추세워 들었으니 말이다. 아우 녀석 이야기대로라면 난 역시 속물일 수밖에 없다. 세상일을 그냥 보아 넘기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블로그를 너무 오래 한 것일까?

이동을 할 때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나로서는 버스나 기차 안에서 많은 일을 보고 듣는다. 어제 버스에 올라 이동을 하는데 버스 뒷 자리에 앉은 여성 한 사람이 손거울을 꺼내들고 화장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저 여성들이야 어딜 가나 화장을 고치는 것을 자주 보았던 터라 그리 눈여겨 보질 않았다.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하다, 흰 위옷을 접고 있는데, 아무래도 교복만 같다.

그 옆에 여성의 커다란 백 안에도 역시 흰 옷이 담겨져 있다. 교복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 방과 후 시간에 버스에 올라 화장을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학생이었다는 소리이다.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런 표정도 없이 열심히 화장을 하고 있다. 도대체 왜 화장을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일까?


미팅에 가는데 교복입고 가나요?

그 여학생들이 내려버렸다. 나야 아직 내릴 정류장이 아니니 내릴 수는 없고, 그런데 옆 자리에 학생 하나가 비슷한 또래인 듯하다. 

"학생 혹 저 사람들 학생 아닌가?"
"예 맞아요"
"그런데 왜 저렇게 화장을 하고 있지" 
"아마 오늘 미팅이 있나보죠 머"  
"미팅을 가면 화장을 하나?"
"그럼요. 그럼 교복입고 미팅 나가나요. 미팅 가면 맥주도 한 잔 하는데 교복입으면 쪽 팔리죠"

참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내릴 시간도 멀었고 해서 옆 학생에게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이 학생 묻는대로 시원하게 답을 한다. 아주 당당하다.

"저렇게 가방이 아닌 것을 들고 학교를 가나?"
"아뇨. 학교 근처에 맡기는 데가 있어요"
"그럼 거기다가 맡겨놓고 저렇게 갈아입고 다녀"
"예 그런 학생들도 있고요. 그냥 등가방 안에 백이랑 옷이랑 넣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어요"

하긴 요즈음은 고등학교 학생만 되어도 화장을 해 놓으면 도대체가 구별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제 저녁인가 방송에서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담배를 못 피우게 한다고 선생님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런 일로 인해 교권 강화를 하야 한다고도 하고. 도대체 우리나라 교육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저렇게 하고 미팅가면 몇시에나 끝나는데?"
"잘 모르겠어요, 어떤 아이들은 밤새도록도 논다고 하는데.."
"밤 새 놀고 그 다음 날 공부를 할 수 있어?"
"공부는요. 수업시간에 자겠죠"

스스럼없이 대답을 하는 이 학생. 미팅을 해보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 못해본 학생들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 웬만하면 중학생들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또 건전한 학생들의 이성교제를 갖고 무엇이라고 할 필요도 없다. 청춘은 마음껏 누리라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 마음대로란 단어 안에는 지킬 것은 지켜가면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버스에 올라 열심히 화장을 하고 있는 학생들.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세상이 변해도 참 너무 빨리 변하고 있는 듯하다.(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특별한 관계가 없습니다)     
밀려오는 통증으로 인해 고집을 피우다가 병원을 향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통증이다. 이제 누구 말마따나 연식이 오래되어 폐차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넘기고는 한다. 그런데 심각할 정도로 통증이 온다. 할 수 없이 병원 신세를 지는 수밖에.

원래 병원하고는 담을 싼 사람이다. 째지고 깨어져도 대층 넘어가는 판인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병원을 찾아 가는 길이다. 가면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병원이라는 곳을 다녀왔는데도 다시 통증이 있다면, 이젠 정말로 농담삼아 하는 몸을 바꾸는 수밖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혼지 실실 웃어도 본다 . 아픔을 조금이나마 잊어보려고. 그런데 뒷 자리에서 아이 하나가 심하게 울어댄다. 이제 10개월이라는데 엄마가 진땀을 흘린다.

어린 엄마는 더 울고 싶을 것

뒤돌아보니 아이엄마가 진땀을 흘리고 있다. 아이는 무엇이 그리 불편한 것인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몸도 안좋은데 아이까지 쉴 새 없이 울어대니 솔직히 짜증도 난다. 그런데 아이가 을어대는 것이 엄마의 잘못은 아니지 않을까. 아이 엄마의 나이가 이제 갓 스물이나 넘겼을 것만 같다.

곁에 탄 할머니 한 분이 아이를 추스려보지만 그것도 허사.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도대체 아이가 무엇이 불편한 것일까? 그러고 보니 차 안이 덥다. 요즈음 일기가 다시 여름이 오는 것인지 며칠 간 여름날씨로 돌아간다고 이야기를 할 지경이었으니. 기사분에게 에어컨을 좀 틀어달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를 않는다. 아이엄마도 옆 할머니도 감당할 수 없는가보다. 

내리라는 사람, '너나 내려라'

두 시간 정도를 가는 버스이다. 고속도로에서 나이 어린 아이엄마는 울고 싶을 것만 같다. 그런데 버스에 함께 탄 누군가 한 마디 한다.

"아줌마 아이 데리고 내려요. 듣기 싫어 어디 사람이 살겠소. 자가용 타고 다니든지"

아이를 데리고 내리란다. 여기 고속도로인데 아이를 데리고 어디서 내리라고. 아이엄마는 그 소리를 듣고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런 말에 사람들이 모두 동조를 하는 표정이다. 하긴 버스 안에서 아이가 한 시간이 넘게 울고 있으니, 짜증들이 날 만도 하다. 그렇다고 고속도로 인데 내리라니.

"아저씨 여기 고속도로인데 어딜 내리라고 해요"
"당신은 듣기 싫지도 않소?"
"나도 듣기는 싫죠. 그렇다고 일부러 울리는 것도 아닌데. 고속도로에서 내리라고 하면 되나요"


그런데 이 양반 바로 육두문자가 나온다. 결국 어린 아이엄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얼마나 미안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당황했을까? 옆에 탄 할머니께서 이제는 아이가 아니고 엄마를 달래고 있다.

"아저씨 세상 얼마나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무엇이라 할 일이요. 아이가 우는 것이 엄마 탓도 아니고. 그런 당신이 자가용 타고 다니면 되지"

말이 험해지니 이 양반 바로 꼬릴 내린다.
 
"듣기 싫으니까 그러죠" 
"듣기 싫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렇다고 고속도로에서 내리라고 하면 되겠소. 그렇게 능력이 좋으면 당신이 내리쇼. 차 없어 버스 타는 것도 서러운데 별 소릴 다하네"

사람들이 조용해진다. 차 없는 것이 무슨 죄인가? 아이 엄마를 보니, 아이아빠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20대 중반일텐데. 차 없는 것을 나무라다니. 어쩌다가 세상이 이리 되었는지. 없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살기가 힘들다. 그렇게 아이는 두 시간이 넘게 울었다. 어디가 불편했는지, 아니면 아팠는지. 아이엄마에게 병원을 가보라고 이야기를 한다.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고맙다고 말하는 어린 엄마. 우리 며눌아이도 차 없어 혹 이런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하늘을 본다. 가을 하늘이 참 높다. 어쩌다가 이 어린 사람이 엄마가 되어서 곤욕을 치루나. 세상이 조금만 이해를 하면 될 것을. 이렇게 야박해야만 하는 것일까? 따듯한 사람들이 그립다.

'스님짜장‘ 버스에 팥 새싹이 돋았다

무슨 소리일까? 버스에 새싹이 돋다니. 의아해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스님짜장 버스에 새싹이 잎을 달았습니다. 정말로 이런 일이 있을까 싶네요. 저희들은 그저 이 새싹을 ‘버스 우담바라’라고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우담바라와는 다릅니다. 씨가 떨어져 쇠로 제작된 버스 틈바구니에서 발아가 된 것이니까요. 어제 청도에 있는 운문사호 짜장 봉사를 가는 길입니다. 짜장스님인 운천스님께서 카메라를 갖고 오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인가해서 가보았더니, 세상에 이런 일이. 싹이 자라 벌써 10cm는 족히 되게 자랐습니다.

 


아마 과일을 먹을 때 떨어진 씨가 장마가 지니, 습기가 차서 싹을 냈는가 봅니다. 참 자연의 이치는 인간이 알 수가 없네요. 버스 승강대 계단에 떨어져 자라고 있는 것은 팥이 떨어져 들어간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 참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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