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에 초가 한 채. 겉으로 보기에도 운치가 있다.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하다. 이런 곳에서 한 끼 식사를 하거나, 전통 차 한 잔을 마신다면, 도심의 답답함을 조금은 잊을 만할 듯하다. 23일(일) 오후에 찾아간 ‘연꽃잎 행복’이란 연꽃잎 밥과 전통차를 파는 곳이다.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30-50에 소재한 이 연꽃잎 행복은 법원 사거리에서 아주대 삼거리 방향으로 가다가 우측 2차선 도로가 있는 도심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초가로 지붕을 얹었기 때문에 도로에서 바로 찾을 수가 있다. 주변은 연립주택들이 들어서 있지만, 그 안에 혼자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집이다.

 

 

연잎 밥 한 그릇에 1만 냥, 연잎 수제비 7천원

 

안으로 들어서면 지난 과거의 물건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하고 있다. 아주 어릴 적 주변에서 쉽게 보아오던 물건들이다. 그런 것들이 있어 지난 세월 속으로 사람을 끌어갈 듯하다. 연잎 밥을 주문해 놓고 분위기를 한 번 살핀다. 가격도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 아마 주변에 대학에 있어,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가격인 듯하다.

 

연잎 밥 1만 냥, 한방 삼계탕 1만 2천 냥, 연잎 밥과 전통차 1만 3천 냥, 연잎 닭죽 7천 냥, 연잎 수제비 7천 냥 정도의 가격이다. 이 집은 전통차와 연꽃차, 그리고 체질에 맞는 나만의 차도 주문할 수 있다.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찬이 나온다. 그저 평범한 찬이다. 하기야 연잎 밥을 먹는데 머 그리 대단한 차를 필요로 할까?

 

 

반찬은 두부 두 조각, 고기 두 점, 김치 등이다. 작은 전 두 장이 나중에 나왔다. 2인용 상이라고 보기에는 찬의 양이 적은 편이다. 그리고 도자기 그릇 안에 들은 연잎 밥이 나온다. 작은 그릇에 담긴 국물도 깔끔하다. 거창하게 많이 차려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간단한 상으로 거품을 뺀 듯한 가격이다.

 

분위기가 한 몫 하는 집

 

연잎에 쌓인 밥을 풀어본다. 어느 절집에서나 맛 볼 수 있는 그런 음식이다. 남원에 있을 때 작은 연못에 무수하게 달리는 연잎을 이용해, 매년 연잎 밥을 먹어보았고, 전주에는 연잎 밥을 만들어 파는 집이 한옥마을에 있어 자주 먹던 연잎 밥이다. 하지만 이런 도심 속에서 향이 짙은 음식을 앞에 놓고 앉으니 분위기가 영 색다르다.

 

 

주변을 둘러본다. 차보에 적힌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함께 자리를 한 아름다운 여인에게 문구를 보라고 권유를 한다.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을 수 없음을 노여워말고

이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고 원망 말고

애처롭기까지 한 사랑 할 수 없음을 원망 말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선생님 사람이 과연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 할 것 같아요”

 

그럴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사랑을 한다고 하지만,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할까? 저녁 한 그릇에 쌓인 분위기가 오히려 맛이 더 있었던 집이다. 가끔은 도심 속에서 만난 이런 집들이 그리워질 것만 같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어디를 가든지 나가야만 한다. 답사를 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오늘(9월 4일)은 준비를 하는 일이 있어, 멀리는 못가고 가까운 화성 외곽을 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후 2시 경에 집을 나서 화성을 반 바퀴 돌았다. 그런데 낭패가 있나, 카메라에 경고 등이 들어오더니 배터리가 떨어졌단다.

 

이럴 때 난 늘 감사를 한다. 요즈음에는 아이폰으로 촬영을 해도 쓸 만하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 절반만 돌기고 작정을 하고 나갔으니, 당황을 할 필요도 없다. 화성 남쪽의 용도부터 화서문(서문) 까지 걸었다. 이미 바짓가랑이는 다 젖어버렸다. 신발 안에도 물이 들어와 질퍽거린다. 전화벨이 울린다.

 

 

십년 넘어 만나는 반가운 친구의 부탁

 

“예, 하○○입니다”

“야, 임마 나다”

“누구신데요?”

“야, 나 신○○이야, 그저께 한국에 나왔다”

“정말이냐 그럼 진작 연락하지 그랬냐.”

“아버님 묘소에도 찾아뵙고 그러느라고. 너 전화번호 바뀌는 바람에 애 먹었다. 너 지금 어디냐?”

“나, 지금 화성 돌고 있는데”

“야. 너한테 ○○이 하고 가는 길이다”

 

이런 친구 녀석들이라고는. 십년이 훌쩍 지난 다음에 한국에 나왔다고 찾아온단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가관이다.

 

“부탁 하나하자”

“먼데?”

“야, 한국에 들어와서 매끼 식당에서 먹었더니 죽겠다. 네가 밥 한 그릇 해줘라”

“미친 놈, 내가 어떻게 해줘. 가정식 식당 데리고 갈게”

“필요 없다. 그냥 김치 한 가지만 있으면 된다. 밥이나 해줘라”

 

 

그리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머 이런 녀석이 다 있어.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무슨 먹을 것이 있다고 밥을 해줘. 그러면서도 시간을 보니 한 시간 반 정도 밖에 여유가 없다. 급하게 집으로 들어와 냉장고부터 열어본다. 마땅히 음식을 마련 할 것이 없다. 두부 한모, 명태포, 어묵, 감자 몇 개, 참치 한 통. 그것이 다이다.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망설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십 수 년 만에 한국에 나온 녀석인데 그냥 김치라도 우리 것을 먹이고 싶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녀석이라 형제 같은 놈이다. 서로 집을 돌아가면서 잠도 같이 자고는 했던 녀석이다.

 

친구녀석을 위해 준비한 상차림

 

참 이것을 갖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냥 있는 찬만 갖고 먹을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러기에는 조금 미안한 감도 있다. 우선 있는 것을 갖고 준비를 시작했다.

 

 

 

1. 명태포 계란국

① 우산 명태포를 잘게 잘라 물에 불렸다. ② 그리고 청양 고추를 하나 썰어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가급적이면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너무 짠 것을 피하기 때문이다. ③ 끓고 있는 동안 밥을 앉혔다. ④ 물이 끓을 때 미리 준비한 계란을 넣고 저어준다. 그렇게 동태포 계란국이 완성이 되었다.

 

 

2. 어묵감자볶음

① 감자와 어묵을 채썰기를 한다. ②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약한 불에 볶아준다. ③ 너무 타지 않게 볶다가 통깨를 조금 넣어준다. 간은 소금으로만 맞춘다. 소금은 1,000도에서 구운 소금을 사용하다.

 

 

3. 두부와 소시지 부침

① 두부와 소시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계란에 담갔다가 프라이팬에 부친다. ② 간은 미리 계란을 풀을 때 맞추어 둔다. ③ 너무 타지 않게 적당히 익힌다.

 

 

4. 참치 김치찌개

① 언제나 빠지지 않는 나의 주 메뉴이다, 굳이 많은 반찬이 필요하지 않다. ② 김치와 참치통조림을 함께 넣고 된장으로 간을 맞춘다. ③ 고춧가루를 조금 풀어 매콤하게 만든다. ④ 팔팔 끓을 때 떡을 조금 넣어준다.

 

있는 자료를 갖고 준비한 음식이다. 그런데 참 블로그가 무엇인지. 요리하랴 사진 찍으랴 하다가 보니 땀이 줄줄 흐른다. 그리고 집에 있던 찬인 김치와 깻잎, 명란젓과 조개젓, 무장아치, 김을 차려 놓았다. 보기에는 그럴 듯하다. 한 시간이 좀 더 걸렸나 보다.

 

 

단 두 녀석이 왔다 갔을 뿐인데

 

준비를 마치고 나니 두 녀석이 들이닥친다. 하도 허겁지겁 준비를 하느라 배고픈 줄도 모르겠다. 두 녀석은 연신 ‘고맙다’와 ‘맛있다’를 연발한다.

 

“야, 너 옛날 음식솜씨 안 변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먹기나 해라“

“그런데 이제 사람 필요하지 않냐, 언제까지 혼자 밥 해 먹을래?”

“됐네, 이 사람아”

 

농을 할 정신은 있다. 전화가 울린다. 연신 “예, 예”를 연발하더니 수저를 놓자마자 올라간단다. 사업차 왔는데 시간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야, 네가 내일 서울로 올라와라”

“시간이 어찌 되려나 모르겠네.”

“너 안 오면 내일 또 밥 먹으로 온다.”

 

 

그렇게 두 녀석은 가버렸다. 전쟁이 따로 없다. 단 두 녀석이 왔다갔을 뿐인데, 그릇이 산더미다. 내일은 어디 멀리 답사를 가던지 해야겠다. 이왕이면 저 녀석들을 끌고 갔으면 좋으련만.

참 어떤 때는 개들을 바라보다가 그냥 웃고 말 때가 있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다가 보면, 이런저런 견공들을 만나게 된다. 절집에서도 만나고 산에사도 만난다. 언느 마을의 집 울안에서도 만나고, 그냥 싸돌아 다니는 녀석들도 만난다.

 

그렇게 만난게 되는 녀석들의 이야기를 하자면 참 끝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원래 짐승들의 마음을 아직은 헤아리지 못하고 답답한 인사이다보니, 남들처럼 그 녀석들에 대해 그리 살가운 글을 표현할 수가 없다. 그저 보이는 그대로 적는 수 밖에.

 

 

실눈 뜨고 비둘기 감시하는 진돌이

 

안산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마당에 묶인 진돌이(이름은 순전히 내 마음대로) 한 마리를 보았다. 녀석 갑자기 날이 더워서인가 그냥 축 늘어졌다. 아마도 한 여름 '늘어진 개팔자'라는 것이 저런 모양인가 보다. 그런데 녀석의 밥 그릇에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바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 든 것이다.

 

그런데 이녀석 하는 꼴이 웃긴다. 그냥 누워서 죽은 듯 한다. 그리고 슬그머니 실눈을 뜨더니 비둘기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비둘기가 조금 가까이 가도 그대로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비둘기가 가까이 가도 꿈쩍도 하지 않던 녀석. 막상 밥그릇 쪽으로 비들기가 발길을 옮기자 그때서야 고개를 조금 틀아본다.

 

비둘기는 기척에 놀라 날아가버렸다. 녀석 그래도 나와보지도 않는다. 꿈쩍도 않고 실눈을 뜨고 비들기를 바라보는 녀석. 아마 하도 많이 비들기들에게 밥을 뺐겨, 이제는 거의 도가 퉁한 듯하다.

요즘 하라는 문화재 답사는 하지 않고, 이런 짓만 하고 있다. 그러나 머 문화가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생각이다.

문화, 문화재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은 벌써 20년이 훨씬 지났습니다. 그 동안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고, 기쁜 일도 많았습니다. 또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 좋은 분들 중에는 가까운 지인들도 있고, 이웃 블로거님들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전혀 일자면식도 없는 낯선 거리에서 만난 분들도 있습니다.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도 남들은 돈을 벌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인간은 어찌 된 것인지 지금까지 벌기는커녕, 수없이 없애기만 하였습니다. 그 돈, 절대로 아깝지가 않은 것은 우리문화재에 대해서 단 한 명이라도 더 알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금은 보람된 일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방치된 문화재가 반듯하게 제 자리를 잡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글 정말 쓰기 싫습니다.

문화재 답사를 하고나서 글을 쓰는 일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문화재의 문화적 특징과,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글을 쓰고 싶어 답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답사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난 문화재에게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의 훼손, 관리의 허술, 문화재 폄하 등 정말 쓰기 싫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쓸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합니다. 문화재를 볼 낯이 없습니다. 문화재는 생명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문화재를 조성한 장인의 숨결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기에 전 문화재는 각기 생명을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문화재에 대해 나쁜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문화재를 아프게 하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정제성은 있으십니까? 문화재의 소중함이나 중요성은 알고 계십니까? 아니 그보다 먼저 묻습니다. 문화재가 무엇인지는 아십니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것을 의식 있게 바라보고 있는 분들은 극히 일부라는 것입니다. 아니 일부가 아니라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늘 이런 주장을 해왔습니다. 모든 분들이 문화재 지킴이가 되어 줄 것을 말입니다. 이렇게 백날 소리를 질러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대답 없는 메아리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립니다. 문화재는 우리의 역사와 정신, 그리고 민초들의 애환과 사고를 그 안에 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문화재를 훼손하고 폄하하며 나하고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등한시 하는 행위, 이것은 매국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떻게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가 날마다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는지 아십니까? 왜 사람들은 소중한 문화재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런 것에 더 광분하고 계신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무관심과 문화재를 비하하는 행동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에 동조를 하며 외래의 문화나, 이상한 것들에 심하게 광분하고 있는 분들, 무관심으로 바라보는 문화재와 우리 문화. 그것은 바로 매국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



전 오늘도 길 위에 있습니다. 우리의 낯선 문화재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입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합니다. “문화재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맞습니다. 밥 안 먹여 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길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 문화를 방치한 사람들에 비해서는 말입니다. 일본도 끝내 빼앗지 못한 우리의 정체성은, 바로 우리의 문화에서 온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별 짓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네들은 그들보다 더한 말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중한 우리 문화를 지금 여러분들이 팔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스스로가 문화의 매국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찌 보면 일본인들보다도 못한 쪽팔리는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아닌지?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기 바립니다. 답은 당신들 스스로가 내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즈음은 자식 과잉보호라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 자신이 아이들을 잘 키우지 못했으니, 무엇이라고 말할 자격은 없다. 가끔 이웃블로거들의 아이들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가슴 시리게 반성을 하는 것도 내가 아이들에게 살갑게 대하지를 못했기 때문인가 보다.

일을 보러 여기저기 다니다가 보면 거의 외식을 해야만 한다. 원래 분위기 없는 인사인지라 그럴 듯한 레스트랑은 그만두고라도, 시설 좋은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 것은 아예 꿈조차 꾸질 못한다. 그렇게 다니다가 보면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집을 선호하는 편이다. 오랜 시간 답사를 하다가보니 이젠 대충 느낌으로도, 저 집이 괜찮겠다는 정도는 되었으니 말이다.  

이미지 사진입니다

식당을 헤짚고 다니는 아이

밥을 먹으러 식당을 들어갔다. 넓지 않은 식당 안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식사중이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리는 없다. 늘 그렇게 혼자 먹고 다니지만, 아직도 혼자 먹는다는 그런 불편함이 가시지를 않았나보다. 한편에 자리를 잡고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너댓살 먹은 꼬마가 식탁위로 기어 오른다. 처음에는 그저 무심히 바라다보고 있었는데, 아예 식탁 위에 올라가 쿵쿵거리기 까지 한다.

꼬마를 달래 내려놓으니, 이 녀석 다시 올라가 난리를 친다. 이 식당안에서 밥을 먹는 누군가의 아이일텐데 말리지를 않는다. 밥을 차려 놓았는데도, 이 녀석 상 위로 오르기를 그치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한 마디 했다.

"이 꼬마 어떤 분이 데리고 왔어요? 좀 부르세요"
"얘... 이리오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 녀석 도대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쯤 되면 슬슬 부아가 치민다.

'아줌마라뇨? 내가 아줌마 같아요?'

"아이좀 부르세요 아줌마"
"머라고요?"
"아이좀 부르라고요 밥좀 먹게"
"이 아저씨봐. 내가 아줌마처럼 보여요?"
"이 아이 엄마 아니세요?"
"참 어이가 없네. 아저씨 눈좀 독바로 뜨고 다니세요. 내가 어딜봐서 아줌마예요?"

이쯤되면 밥이고 머고 기분 다 상했다.

"아줌마, 아이를 데리고 다니려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지. 밥 먹는데 아이가 이렇게 해도 놓아둡니까?"
"나 아줌마 아니란 말에요"
"그럼 이 아이는 누구예요?"
"우리 이웃집 아이인데 잠시 맡아 있는거라구요. 나에게 아줌마라니.."

아이를 부르라고 했더니, '아줌마'에 목숨을 건다. 이런 세상에. 아무리 보아도 아줌마처럼 보이는데.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한다. 이럴 땐 무엇이라고 해야하나? 사과를 해야하나? 아니면 끝까지 우겨야만 하나. 참으로 난감하다.

"남의집 아이를 맡았다고 해도, 이 아이 아줌마가 데리고 왔으니 데리고 있어야지 밥을 먹을 수가 없잖아요"
"아저씨 나 아줌마 아니라는데 왜 자꾸만 아줌마라고 하는 거예요"

급기야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소리를 지른다. 식당 안에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다. 이건 내가 잘못한 것으로 매도를 당하는 것만 같다.

"아줌마가 아니라면 미안해요. 그래도 그렇지 아이를 데리고 오셨으면 적어도 남에게 방해는 주지 말아야죠"
"내가 무슨 방해를 주었어요. 그 아이가 그리 간 것이지"

이쯤되면 할 말이 없다. 그저 모든 것은 다 내탓이다. 밥을 먹는다는 것도 불편하다. 누구 아이이건 이렇게 아이를 방치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도대체 아이 교육이란 무엇일까? 괜히 아이가 잘못한 것을 '아줌마'로 이야길 돌리는 수단에 놀랄 수밖에. 할 수 없이 돈을 계산하고 그냥 나오고 말았다. 밤 기차를 타야하는데 쫄쫄 굶고가게 생겼다. 밖으로 나오니 식당 주인이 따라나와 한 마디 한다.

"손님 죄송해요. 식사도 안하셨는데 밥값을 내시네. 저 아이 저 여자분이 맨날 데리고 다니는 아이예요"

참 이제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람. 저 아줌마는 죽어도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하고, 아줌마도 아니라는데. 이제와 다시 들어가 계속 따질 수도 없고. 아줌마가 아니라고 이마에 써 붙인 것도 아니고. 괜히 죄없는 배 탓만 할 수 밖에. 걸음을 걸으면서 비 맞은 무엇처럼 혼자 중얼거린다.

'맨날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아줌마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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