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건 어떻게 알았어?”

너희 엄마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아냐. 심지어는 나한테도 돈 빌려주고 이자 받았어

그러니까 말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았데.”

그것뿐이 아냐. 돈 들어오는 날이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사무실에 와서 버티고 있다가 주판 들고 계산해서 다 들고 갔어.”

맞아, 그래서 금고도 커다란 것 마련했잖아

 

모녀간의 대화이다. 그런데 그냥 모녀의 대화가 아니다.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모녀간의 대화다.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현세에 살아있는 딸이 한 대화이기 때문에 듣고 있자니 소름이 끼친다.

 

 

 

굿판에서 만난 저승의 아버지와 이승의 딸

 

22일 오전 10시부터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있는 고성주(, 60)의 전안(전안이란 무속인들이 신령을 모신 곳을 말한다). 악사와 무녀 등 6명이 굿판에 앉았다. 제가(제가란 굿을 의뢰한 집을 말한다) 집은 수원시 장안구 정자2동 두견마을에 거주하는 이아무개(, 66)이다. 굿판에는 부인인 이아무개(, 59)가 함께 했다.

 

아침부터 시작한 굿은 부정, 천궁맞이, 산거리, 신장 대감 등을 거쳐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조상거리가 시작되었다. 당주(굿을 맡아 진행하는 무속인)인 고성주가 조상거리를 맡아했다. 선대조상부터 고성주의 몸을 빌려 자손을 만나기 위해 현신한다. 안택굿은 경기도 지방에서 보이는 굿으로, 한 해 동안 가내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굿이다. 구래서 안택굿은 대개 음력 정월에 한다. 예전에는 집에서 했지만 지금은 대개 전문 굿당이나 무속인의 전안에서 이루어진다.

 

 

 

선대의 조상들이 먼저 현신을 하고 난 후, 친정아버지가 고성주의 몸과 입을 빌려 현신을 했다. 처음부터 살아생전 부녀사이를 알 수 있는 대화가 오고갔다. 아마도 부친이 살아생전에 21녀인 맏이인 딸을 부친이 엄청 예뻐했던 것 같다. 부친이 세상을 뜬 지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무당을 통해 현신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대화 중에 그대로 나타난다.

 

굿은 이래서 하는 것인가 보다

 

아버지는 어떻게 엄마를 그렇게 잘 알아?”

엄마가 얼마나 돈에 대해 지독한지 아냐. 그래도 그렇게 했으니까 너희들이 물질에 어려움 안당하고 살고 있는 거야

그럼 뭐해. 아들만 알고 아들들한테만 재산을 주는데

너도 올 추석이 지나면 줄 거야 걱정하지 마라

이건 녹음해놓아야 되는데

내가 살아생전에 딱 한 번 바람을 피우다가 마누라한테 걸렸는데, 그때부터 쥐죽은 듯 살았다오.”

 

 

 

대화가 점점 흥미 있어진다. 무당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하는 망자는 평소에 술을 좋아했다고 하면서, 굿상에 놓인 술을 연신 마셔댄다. 살아생전에는 본인이 한량에다 잘 났다고 이야기를 한다. 망자를 만난 딸도 맞다고 맞장구를 친다. 한참이나 딸과 상면을 한 저승의 부친이 이제는 간다고 하니, 딸이 주머니에서 노자 돈을 하라고 돈을 꺼내 쥐어준다.

 

그것 갖고 돼 아버지. 더 드릴까?”

나야 더 주면 좋지. 저승 가는 길에 막걸리도 한 잔 사먹고 목마르면 물도 사 마시고

 

그 말에 주머니에서 얼마인가를 더 꺼내준다. 부녀간의 대화를 듣다가 보니 아버지가 환갑도 못 넘기도 돌아가셨단다. 그러니 맏이인 딸로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남다를 수밖에.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도 덩달아 웃다가 울다가 한다. 굿은 열린축제라고 한다. 누구나 다 굿판은 참여를 할 수가 있다. 아무도 굿판을 구경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생전에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말도 굿판에서는 가능하다. 그리고 속에 품은 생각을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비록 무당의 입을 빌려 하는 말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딸은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굿을 하는 것인지.

 

무당(巫堂)’, 사회에서는 심심찮게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일부 종교에서는 심할 경우 마귀로 표현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 속에서 무당은 한 때 최고의 권력자요, 신을 대신하는 집제자이기도 했다. ‘()’란 글자를 혹자는 이렇게 해석을 하기도 한다. 하늘(무자의 위 획)과 땅(무자의 아래 획)이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있다(무자 안의 두 개의 사람 인). 그리고 그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l이을신자이다) 것이 바로 무당이다.

 

무당은 본인이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무당은 신내림이라는 무의식을 통해 태어나거나, 지연신통(自然神通)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무당이 된다. 하기에 무당은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접신이 되는 과정을 거치는 강신무(降神巫)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10세부터 신병을 앓았다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235-16에 거주하는 임영복(, 59). 굿판에서는 소리 잘하고 춤 예쁘게 추는 무당으로 소문이 나 있다. 지금은 내놓고 누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나는 무당이다라고 말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가, 수많은 외래종교가, 혹은 사회가 이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았기 때문에, 오래도록 고통 속에서 살아왔단다.

 

어려서부터 정말 힘들게 살아왔어요. 위로 오빠가 있었는데 세 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데요. 그래서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그냥 사용하려고 했데요.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나서 아버지를 따라 증평으로 내려갔어요. 거기서 집을 하나 구해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아버지가 몹시 편찮으셔서 그 집과 땅을 처분하고 고모네 집으로 들어갔죠.”

 

10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환란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몸이 자주 아프고 병치레를 해 고모가 점집을 찾아갔더니, 무당이 하는 말이 그 아이를 무당 집에 양녀로 주어라. 그래야 그 아이가 살 수 있다고 하더란다. 그때만 해도 남의 집에 양녀로 들어가면, 말이 좋아 양녀지 식모나 종과 다름없이 부려먹고는 할 때였다. 할 수 없이 고모가 데리고 살다가 23세에 결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부터 이미 신병이 시작한 것인데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젊어서 결혼을 해 벌써 37년이란 세월을 살았네요.”

 

결혼 후 심해진 환각과 환청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 역시 하나 뿐인 딸을 찾았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의 소개로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 시집을 오고 나니 시집에는 시부모님들과 삼촌들까지 대가족이었다. 새벽이면 일어나 연탄불에 밥을 해야 하는데, 매일 5개씩의 도시락을 싸야 했단다.

 

그런데 밥을 하고 솥뚜껑을 열면 밥 솥 안에 구더기 같은 것들이 뱀처럼 바글거렸어요. 그러면 놀라서 곁에 있는 설거지통에 물을 들이붓고는 했죠. 아침마다 수도 없이 골목길을 파고 한 솥씩 밥을 갖다가 묻었어요. 이 집에서 오래 살다가는 아무래도 제 명을 못 살 것 같아 남편을 졸라 분가를 했죠.”

 

 

그렇게 나가서 생활을 한 곳이 바로 병점이라고 한다. 집에 있으면 날마다 머리가 빠개지듯이 아프고 배가아파 기침을 하면 병원으로 달려가고는 했다. 피가 넘어오는데도 병원에서는 신경성 위장염이라고 했단다.

 

의사에게 욕을 하고는 했어요. 각혈을 하는데 무슨 신경성 위장병이냐고요. 남편은 그런 나를 믿지 않고 사람으로 대우도 해주지 않았어요. 그런 상태에서도 제가 계속 내림을 거부하니까 잡자기 둘째가 아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때는 정말 겁이 덜컥 났죠.”

 

믿어주지 않는 남편으로 인해 고통도 받아

 

이미 신통이 되어있는 상태라 환청과 환각으로 참을 수가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심지어는 3개월이나 6개월씩 대소변을 받아내고는 할 정도로 심하게 몸이 망가졌다. 몸무게도 40kg을 조금 넘을 정도였다고 한다. 남편에게 사업을 그만두라고 했다. 남편이 망할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남편은 무시를 하고 듣지 않았다.

 

남편의 사업이 망하는 것이 눈에 보여 그만두라고 했더니 네가 뭔데 그만 두라느냐고 무시를 하데요. 결국엔 말 그대로 망했지만요. 내림을 받고서도 풍파는 가시질 않았어요. 우선은 시집에 알릴 수도 없었지만 제일 먼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도 친구를 마음대로 집으로 한 번도 데려오질 못했으니까요. 거기다가 집에서 징소리가 나면 아이들이 제 시간에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요. 부모님들을 거역하기 일쑤였죠.”

 

 

그렇게 내림을 받고도 한참이나 고통을 받았단다. 현재 살고 있는 수원 연무동 시장 인근에서 고기 집을 시작했는데 그것도 다 날려버렸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생전 장사라고는 해보지 않았으니, 남들에게 이용만 당했다고.

 

기자(祈子)라면 제대로 굿을 해야

 

한 번은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에 스님이 찾아 오셨데요. 그런데 남편을 보고 집안에 우환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손금을 좀 보자고 하더니 손금 안에서 여인이 고깔을 쓰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이 보이더라고 했데요.”

 

그때는 이미 내림을 받고난 후였다. 처음에 내림을 받고난 후에는 상당히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일도 꽤 많았다. 하지만 남편은 심하게 단속을 시작했고 애꿎은 소리를 하기 일쑤였다. 굿은 보통 밤에 하기 때문에 밤새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어디 가서 누구와 무슨 짓을 하고 왔느냐고 다그쳤다는 것이다.

 

참 힘든 세월이었어요.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없애고 나서 전안 문을 걸어 잠가놓고 계룡산으로 들어갔죠. 거기서 단판을 지으려고요. 참 울며불며 매달렸더니 제자야 나하고 같이 팔도유람이나 하자는 말이 들렸어요. 그리고는 벌써 10년 정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지금은 남편이 제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어요. 아이들도 이젠 다 커서 이해를 하고 있고요.”

 

 

무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누구나 다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임영복씨는 어려서부터 신병이 와 있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해 더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벌써 신내림을 받은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세월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때의 고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제가 기자들에게 굿과 소리를 가르치는 것은 저라고 남들보다 잘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신령을 모시는 사람들이 절차를 무시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떻게 신령의 이름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굿거리 제차를 무시하면서 밥을 먹을 수가 있나요. 그래서 지하에 조그마한 연습실을 조성해 놓고 사람들을 일대 일로 가르치고 있어요.”

 

60년 세월 중에서 50년을 시달렸다. 그나마 이제야 겨우 좀 편안해졌다고 한다. 앞으로도 신령의 사람으로 생활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내 운명이 그렇다면 좀 더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단다. 문을 나서는데 인사를 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귓가에 오랜 여운을 남긴다.

 

어차피 이렇게 고통을 받고 살 운명이라면, 차라리 아프지나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당을 택했어요. 남들이 내 인생을 살아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지난 7일 KBS 2TV '여유만만‘에서 자신이 인기가수 김아무개의 전처였고, 1980년대 고등학생 때 CF 모델 및 영화 주연배우까지 섭렵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고 밝힌 박미령. ’여유만만‘에 나온 박미령의 이야기로, 오늘 하루 종일 온통 인터넷이 뜨겁게 달구어졌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인기를 뒤로 하고, 21살 어린나이에 결혼했지만 신병을 앓으며 남편과 아이 가족들을 떠나보냈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이날 방송에서 박미령은 자신이 신병을 앓으면서, 아버지마저 "우리집안에 무당은 없다"는 말로 자신을 내쳐 죽음을 기도했기도 했지만, 차가 폐차가 될 정도로 큰 사고에도 찰과상 하나 입지 않아 자신의 운명을 신의 계시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KBS 2TV '여유만만' 화면 갈무리


'신병'의 실체는 무엇인가?

‘무병(巫病)’ 혹은 ‘신병(神病)’ 이라고 부르는 병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먼저 궁금해 할 것 같아 해답을 밝힌다. 신병을 앓기 시작하면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일까? 대답은 ‘없다’이다. 신병에 깊숙이 전이가 되면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다만 그 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신내림’ 뿐이다.

신내림이란 내림굿을 거치고 바로 ‘무당(巫堂)’, 혹은 ‘기자(祈子)’의 길로 들어서는 것뿐이다, 아무리 아픈 사람도 그 길로 들어서면 씻은 듯이 병이 낫는다. 이것이 바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결국 신을 모시는 제자가 되어야만, 그 다음부터 나름대로의 생활을 영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신병은 누가 앓게 되는 것일까? 누구라고 정해진 것은 없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다 신병을 앓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신병을 앓게 되면 여러 가지 증상이 오게 된다. 그 증상을 미리 알았다고 하면, 그렇게 심한 고통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병(神病)’의 증상 어떤 것이 있나?

신병을 앓는 사람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증상을 거치게 된다. 그 첫째는 ‘물질의 병’이다. 이유도 없이 몸이 아프거나 하여 병원을 찾아도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를 않는다. 결국 돈을 들여 이리저리 병원을 찾게 된다. 이 물질의 병은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들이 갑자기 아프다거나 사고 등으로 물질이 축나는 것이다. 결국 가진 것을 다 잃고 난 다음에 신내림을 받게 된다.

두 번째는 ‘정신적인 신병’이다. 이 상태는 대개 ‘환시(幻視)’, 혹은 ‘환청(幻聽)’을 거치게 된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신병을 앓는 사람에게만 보이고 들리는 것이다.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지만, 정신이상은 아니다. 이 병을 앓게 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남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런 상태가 되면 무병이 상당히 깊이 전이가 된 상태이다.

‘인다리(=人橋)’ 까지 거치기도

그렇다면 신병을 앓는 사람들이 죽을 수 있나? 답은 역시 ‘없다’이다. 신병을 앓는다는 것을 알고 손목을 칼로 긋는 사람도 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도 있다. 목을 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동일하다. 아무도 죽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목숨이 자신의 것이 아닌, 신령의 것이기 때문이다.

신병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인다리’이다. 인다리란 말 그대로 사람으로 다리를 놓는 다는 말이다. 이 인다리는 신병에 걸린 사람이 계속 신내림을 받지 않을 경우,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한 사람씩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많은 경우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 나서 신내림을 받은 사람도 있다. 가족 5명이 모두 사고가 당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고란 죽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병을 앓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박미령. 물론 방송에서 그런 것을 일일이 이야기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신병이다. 박미령은 어머니가 먼저 알고 내림을 받으라고 종용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받아야 할 내림굿을 거부하자, 그 신병이 박미령에게로 전이가 되었다고. 그래서 자신도 자식에게 전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신내림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무속에서는 이런 경우를 ‘부리’가 있다고 한다. 부리란 바로 ‘뿌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선대가 무속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면 그 자손들이 바로 무속신과 접하게 되고, 그 영역 안으로 들어가 결국엔 내림을 받아야 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만일 어머니가 받았다고 하면, 박미령은 그 신병을 벗어날 수도 있었다.

한창 잘 나가던 박미령. 지금은 그저 방송에 나와 담담하게 지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느라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을 것인지. 무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 고통의 세월을 이야기 할 수 없다. 그저 글로 간단히 성명할 만한 그런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는 방송에 나와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박미령. 앞으로 올곧은 신제자로써, 정말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주) 정말 쓰기  싫었던 글 하나 씁니다. 20여 년이 넘게 무속을 연구한다고 전국을 다니면서, 그들의 아픔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요. '신병'이란 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그 고통을 모릅니다. 지금 담담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박미령을 보면서 이제는 더 이상의 고통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빙의란 ‘죽은 생명의 원혼이 살아있는 생명에 붙는 것’을 말한다. 요즈음 드라마 ‘여우누이뎐’인가의 막바지에 빙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듯하다. 나야 원래 드라마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니 여우누이뎐이란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빙의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원혼이 붙는 현상이 아니다.

요즈음 들어 빙의현상을 체험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에게 붙은 원귀를 떼어준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빙의와는 달리, 빙의에 접한 사람의 입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귀신들림’ 혹은 ‘귀신접함’이란 형태의 빙의의 실체는 무엇일까?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지전춤(기사의 특정사실과는 무관합니다 

한 몸에 두 영혼이 존재할 수 있는가?

우선 빙의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몸에 두 개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틀린 것은 아니다. 빙의에 걸린 사람은 때로는 본인으로, 때로는 몸에 붙은 귀신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개의 영혼이 어떻게 한 몸에 공존을 하는 것일까? 흔히 ‘귀신 들린 사람’들의 형태를 보면, 때로는 정신이 멀쩡했다가 때로는 미친 것 같아 보인다. 이런 형태를 우리는 흔히 ‘반미치광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왜 빙의가 들린 사람들이 이렇게 반은 자신으로 반은 원혼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일까? 오래도록 굿판을 다니면서 ‘귀신 쫒는 굿’, 흔히 ‘ 귀(逐鬼)굿’ 혹은 ‘축사(逐邪)굿’이라고 하는 굿을 수도 없이 보았다. 엎어놓고 소금을 뿌리고 불로 위협하고, 무검(巫劍)을 갖고 찌르는 시늉을 한다. 그럴 때마다 몸에 붙은 귀신은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이런 형태를 흔히 ‘귀신이 집을 짓는다’라고 이야기 한다.


굿을 할 때는 무격(巫覡 - 여자무당은 巫, 남자무당은 覡이라 표현한다)들과 몸에 붙은 귀신들이 협상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혼만 있는 귀신이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사람을 택해야 하는데, 그것을 바로 집을 짓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빙에 걸린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풀려나지는 않는다.

“제가 저를 바라다보고 있어요”

이런 빙의에 걸린 여자가 굿을 했다. 23살인 여자는 8살짜리 남자 아이가 빙의가 되었다고 한다. 굿판에서 여자는 어린아이 목소리를 내면서 안 나간다고 울고불고 한다. 그러다가 학용품과 옷을 사다주면 나가겠다는 것이다. 사람을 시켜 가방이며 옷 등을 사다가 주었더니, 나가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들어왔느냐고 물으니, 길에 있다가(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 아이는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었다고 한다) 마음 좋은 누나가 지나가 길래, 얼른 따라갔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6시간이 넘게 실랑이를 벌리다가 아이가 간다고 인사를 하고 나갔다. 눈에 보이는 실체는 물론 없다. 하지만 그 순간 여자가 한숨을 토하더니 일어난다. 그리고 제 정신이 돌아왔다. 놀라운 이야기는 그다음에 벌어졌다.

“언제 아이가 몸에 들어온 것 같아요”
“두 달 전인가 직장에 갔다가 집에 오는데 갑자기 몸이 섬뜩했어요. 그때인 것 같아요”
“나이가 있어서 본인이 정신을 차리면 괜찮을 듯도 한데”
“그럴 수가 없어요. 그 아이가 내 몸을 뺐으면 저는 몸에서 쫓겨나요. 그리고 그 아이가 마음대로 하죠”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가 저를 보고 있어요. 제가 들어가려고 해도 그 아이가 나가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어요”

세상에 어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빙의란 한 사람의 몸을 두 개의 영혼이 공유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유가 자신이 있고, 귀신이 접하는 것이 아니라, 몸은 하나를 갖고 서로 번갈아가면서 몸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결국 ‘여우누이뎐’에서도 자식의 병을 고치려고 딴 아이를 죽여 간을 먹은 초옥에게, 죽은 연이의 원혼이 씌었다는 것이다. 결국 초옥이의 몸을 초옥이와 연이가 공유를 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설정은 초옥이 연이가 되어 구산댁과 모녀사이가 된다고 하지만, 이런 설정의 경우 설득력이 부족하다. 몸의 주인인 초옥이가 없는 연이는 그 몸을 지탱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몸의 주인이 살아있을 때라야 귀신도 그 몸을 함께 공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인 경우와 같이 귀신이 씌었다고 해도, 언제나 연이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여우뉴이뎐’이 방영되면서 여러 사람이 빙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해오기에, 굿판에서 본 내용을 정리를 해본다. 결국 빙의란 우리가 알고 있듯 의지가 약해 들린다는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무속에서 이야기를 하듯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무당이 될 수 있듯, 누구나 빙의에 접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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