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수원지부(지부장 이주영)가 주최하는 19회 수원 민족에술제<세월의 명()>이라는 재목으로 지난 23일부터 시작을 하여 31일까지 열린다. 이번 수원민족예술제는 미술위원회의 세월아 세월아 가슴 아픈 세월아 전22일부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에 소재한 행궁레지던시 1층 행궁마을커뮤니티아트센터에서 31일까지 열린다

 

이전에 미술위원회와 음악위원회, 풍물위원회, 영화위원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23일 오후 640분부터 화령전 앞 생태교통 홍보관 큰마당에서 열렸다. 이날 음악위원회는 현실의 고단함과 미래의 꿈과 희망 등 우리의 삶이 녹아있는 아름다운 노래들을 보급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풍물위원회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풍물을 올바르게 지역사회에 계승발전 시키고자 풍물굿과 대동놀이와 같은 흥겨운 한마당 판굿으로 신명나는 세상, 살맛나는 우리 풍물을 만들아 가는데 앞장섰다.

 

 

화성박물관 AV실에서는 영화제 열려

 

영화위원회가 마련한 세월이 간다영화제는 수원박물관 AV실에서 24일 오후 430분부터 개회식에 이어 섹션2호 회원들이 제작한 5, 3, 18분 다큐멘터리인 세월아리랑(감독 노수옥), 여기 어디(감독 이정훈), 팽목항 가는 길(감독 오점균) 등의 다큐 영화 상영이 있었으며, 뒤를 이어 감독과의 대화로 이어졌다.

 

630분부터 시작한 섹션1 ‘기억과 치유 초청작 - 달이 기울면에서는 김유신 감독의 향, 정지윤 감독의 흔적, 김다정 감독의 향기, 김성철 감독의 괜찮아, 김상력 감독의 나의 마음이 너에게 가 딯길, 정소영 간독의 달이 기울면 등이 상영되었다.

 

세월호를 주제로 한 미술전 눈길 끌어

 

2014416일 진도 팽목항 앞에서 벌어진 참사인 세월호의 침몰. 우리 모두가 아파하고 분노한 이 인재는 아직도 채 끝나지 않았다. 행궁마을 커뮤니티 아트센터 1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위원회의 전시는 세월호의 아픔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27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미술전은 돌아보는 내내 아픔이었다.

 

전시실에서 만난 손채수의 작품 넋굿은 가변설치 그림과 혼합재료로 조형을 한 작품이다. 바닥의 흰 천에는 한지로 접은 고깔에 꽃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도 역시 흰 종이로 점은 꽃이 있다. 벽에는 넋전을 오려 붙인 그림이 걸려있다. 그저 바라다반 모아도 세월호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온다.

 

전시실 입구 허공에는 오은주의 작품인 피리부는 사나이가 걸려있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의 느낌은 젊은 생명들이 그대로 승천을 하는 형상을 담아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주영의 미안해는 어린 생명들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모습에서 그대로 나타나 보인다.

 

정말 세월호의 아픔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요. 아이들과 힘께 왔는데 아이들도 이 전시를 보면서 언니오빠들이 다시 생각난다고 하네요. 이제는 이 아이들을 놓아주어야 하지만, 아직도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나오지 못한 어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요. 얼른 이 아픔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전시실에서 만난 시민 한 사람은 울먹이면서 말을 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 수원민예총 작가들인 수원민미협 작가들과 경기지역 작가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준비한 이 전시로 인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26일 화성 행궁 앞에서 열리는 무예24기 시범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명의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에 기록된 무예 6종은, 후일 조선에도 전해져 <무예제보>에 실렸다. 이 무예제보의 내용은 이후 <무예도보통지> 까지 이어지면서 조선 무예를 극대화시킨다. 기효신서에는 6가지 무기의 장, 단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장창은 길어 원거리에서 적을 처리하기 좋으며, 낭선은 길이와 더불어 가지의 철붙이로도 공격하니 장창은 낭선을 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낭선은 그 기법이 등패를 뚫지 못하고

등패는 낭선을 이기지만 곤방의 음양수에 당해내지 못한다.

곤방은 장도를 당해내지 못하며

장도는 당파를 당해내지 못한다.

당파는 길이에 있어서 장창을 당해내지 못한다.

 

이렇게 장창과 낭선, 등패, 곤방, 장도, 당파의 무기들의 장, 단점을 서로 보완하면서, 하나로 모아 진으로 구성하여 약점을 보완하고 병력을 극대화 시킨 것이 바로 원앙진이다.

 


 무예 24기 시범단들이 활쏘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백발백중을 자랑한다.

 

서로를 보호해가면서 적을 공격해

 

원앙진(鴛鴦陣)’은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고안한 진법이다. 원앙진이라 함은 진형을 이룬 형세가 마치 원앙의 모습과 흡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원앙은 암수 한 쌍 중 한 마리가 죽으면, 남은 한 마리가 따라죽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원앙진은 12명이 1개 대를 이룬다. 우선 등패와 요도를 든 등패수 2명이 앞에 서고, 그 뒤로 10명의 갖가지 무기를 든 병사가 2열종대로 진을 갖춘다. 이 원앙진은 명나라 중기 절강성을 비롯한 동중국해 연안일대에 출몰하는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만든 진법이다.

 

위는 무예24기 시범단이 '원앙진'을 펼치기 위해 도열해 있는 모습

아래는 KBS TV '원앙진'의 방송 자료화면


 

 

원앙진은 근접전 무기인 낭선, 당파, 장창, 등패 등을 채택하여, 왜구의 장기인 큰 칼을 이용한 근접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원앙진을 사용하기 전에는 왜구는 먼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조총으로 선제공격을 한 뒤, 장검을 갖고 근접전에 대응을 하여 언제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군이 원앙진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병학지남연의>라는 병서에는 원앙진의 위력을 이렇게 적고 있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으로 진입한 다음 먼저 화포를 발사하고 이어서 화전을 발사하니,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 듯했다. 화포와 화전의 공격에 왜적들은 기가 꺾였다. 적이 먼저 돌진해오면 낭선부대를 집중시켜 대기하고,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등패수들이 먼저 공격해 들어간다. 왜적이 패하여 도망가니 가히 천하무적이다

 

 

12명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여

 

원앙진은 6가지 무기를 장비한 12명을 1대로 편성한다. 한 대에는 지휘자인 대장 1명과 등패와 표창을 가진 등패수(이하 요도수) 2, 낭선을 가진 낭선수 2, 장창을 든 장창수 4, 당파와 화전(火箭)으로 무장한 당파수 2, 그리고 취사 등 잡일을 담당하는 화병(火兵) 1명이 편성되어 있다.

 

전투시에는 이 대의 군사 중에서 화병은 빠지고 대장을 선두로 하여 등패수-낭선수-장창수-당파수의 순으로 서서 적군을 향해 나아가 낭선, 장창, 당파 등을 이용하여 격투를 벌이게 된다. 접전시 진형은 2열 종대로써 등패와 요도로 무장한 요도수 2명이 장창 4명을 보호한다. 좌측의 요도수는 작고 둥근 등패를, 우측은 대형방패인 장패를 들고 표창이나 요도로 접근을 차단한다. 낭선수는 적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견제를 한다. 대열 후미에는 당파를 든 당파수가 화전을 이용하여 마찬가지로 근접하는 적을 막는다.

 

 

무예24기 시범단 활성화 방안 마련해야

 

26일 오후 3. 수원 화성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앞에서는 수원문화재단 소속 무예24기 시범단의 무예시범이 펼쳐졌다. 권법, 활쏘기, 창검술 등의 시범을 보인 후 뒤에 원앙진이 시범을 보였다. 11명의 인원이 각자 6가지의 무기를 들고 이리저리 치고 빠지면서 시범을 보여준 원앙진. 진법이 끝나고 나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수원 화성이 유형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면, 무예24기는 무형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화성과 무예24기는 떼어놓을 수 없는 수원의 자랑이다. 하지만 무예24기 시범단은 열악한 환경에서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시범을 보이고 있다.

 

무예24기 시범단 단원이 실제 검으로 베짚베기를 실연하고 있다 

 

수원이 세계적인 위상에 걸 맞는 도시로 도약하려면, 많은 문화예술 단체의 자랑도 필요하지만 화성과 연계가 되어있는 무예24기의 활성화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이들이 생계 걱정을 하지 않고 오직 무예24기의 연마와 시범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금선무일 듯하다. 정조와 화성, 그리고 정조의 친위부대인 장용외영과 무예24기는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천년을 사는 나무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 묵은 은행나무는 용문사 은행나무로, 그 수령이 1,000~1,500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나무에 큰 뜻이 새겨진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바로 청주시 중앙공원 안에 있는 수령이 1,000년 가까이 된 은행나무인 ‘압각수(鴨脚樹)'이다.

압각수란 청주 중앙공원 안에 있는 은행나무 이름인데, 잎의 모양이 오리의 발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는 설과, 이 나무의 뿌리가 물오리 발처럼 사이가 붙어 있어 생겼다는 설이 있다. 이 나무가 왜 유명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이곳 압각수가 서 있는 장소가 청주목의 객사 문 앞이었다. 그런데 고려 공양왕 2년인 1390년 5월에, 이색, 권근 등 10여명이 이성계의 반대파로 지목되어 청주옥에 갇히게 되었다.


죄 없는 충신들을 살려낸 압각수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 공양왕 2년인 1390년에 이초와 윤이가 ‘이초의 난’을 일으켰다. 이초의 난이란 고려 말엽 정선 사람인 이초가 고려말엽 공양왕 때 정5품의 무관직인 중랑장 벼슬을 하였는데, 윤이와 함께 명나라에 있을 때 명나라 황제에게 호소하여 명나라의 힘을 빌려 시중 이성계를 없애기 위하여 모의를 하고 하였다.

그들은 명나라 태조에게 공양왕과 이성계가 군사를 일으켜 명나라를 치려한다고 거짓으로 고하였다. 또한 이를 반대한 이색 등을 살해하고, 우현보 등은 유배하였다고 거짓으로 알렸다. 그때 사신으로 명나라에 머물던 동지 밀직사 조반이 귀국하여 이 사실을 조정에 알리자, 공양왕 2년인 1370년에 이들을 잡아들였다.



천년 세월을 버텨 온 압각수의 밑동
 
그리고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양촌 권근, 인재 이종학, 우현보 등 충신 10여명을 잡아들여, 청주 옥사에 하옥하는 청주옥사가 일어났다. 이 무렵 청주지방에는 갑자기 집중호우가 쏟아져, 청주성의 민가와 옥사가 침수되었다. 이색 등 옥에 갇혀 있던 충신들은 객사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인 압각수로 올라가 화를 면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공민왕은 이색 등이 죄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여 이들을 방면하였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5호인 압각수는 수령이 천년 가까이 되었고, 높이는 30m에 밑동의 둘레가 8m에 이른다. 은행나무 앞에는 양촌 권근이 옥에서 풀려난 후 지었다는 시비가 서 있다.



권근의 시비와(위) 압각수의 줄기. 이 줄기에 충신들이 올라가 홍수를 피해 목숨을 건졌다.

근거 없는 소문으로 주 무왕의 아우 주공에게 불행이 미치니
갑자기 큰 바람이 일어 벼를 쓰러뜨렸네.
고려 공양왕이 청주에 큰물이 넘쳤다는 말을 듣고
하늘의 뜻이 예나 이제나 같음을 알았도다.

압각수. 천년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 이 나무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죄가 없는 사람은 하늘도 그들을 살려낸다는 깊은 뜻을 알려주는데, 이 말은 죄가 있는 사람은 곧 하늘이 벌을 내린다는 말과 같은 뜻은 아닐까? 죄 없는 백성들을 위해 일을 하지 않는 무리들은, 언젠가는 이런 벌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괜한 생각을 한 것조차 죄스러워, 나무 옆에서 얼굴을 붉힌다.


압각수의 주변에는 축대를 쌓아 보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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