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에 소재한 경기안택굿보존회. 이 집에 거주하는 경기안택굿 고성주 명인은 18세에 내림을 받은 후 이곳에서 45년을 거주하고 있다. 그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일 년에 봄·가을 두 차례씩 맞이굿을 올리고 있다. 힘들어도 봄 가을에 열리는 맞이굿은 거르지 않는다.

 

맞이굿이란 무격이 자신이 모시고 있는 무속신들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수양부리들의 안녕을 위해 행해지는 가장 큰 굿판이다. 흔히 맞이굿을 진적굿이라고도 한다. 맞이굿이라 부르는 것은 굿거리 제차 중에서 천궁맞이라고 하여 모든 신령들을 굿판으로 청배하기 때문에 맞이한다는 뜻이다.

 

이를 진적굿이라 하는 것은 맞이굿을 하는 날은 일반적인 굿보다 더 많은 제물을 진설하고 굿거리 제차 중에서 무격이 용사슬이라고 하여 물동이 위에 오르거나. 각종 제물을 이용해 사슬세우기를 하는데 이는 신령에게 온전히 받친다고 하여 진적굿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즉 모든 것을 신에게 받친다는 뜻이다.

 

 

110년을 가게로 전승된 경기안택굿

 

흔히 우리는 한양굿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현재는 서울에 많은 무격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고려 때는 도성 밖으로 50회나 무격들을 축줄했으며, 조선조 때도 무격들을 한양 성밖으로 내보냈다. 이들이 한양에서 쫓겨나면 만신들은 노량진인근 한강을 벗어나야 했기 때문에 노들만신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결국 한양굿이란 용어는 근대에 들어 생겨난 것으로 보아야하며, 이들이 도성에서 축줄당해 주로 자리를 잡은 곳이 경기도 수원을 비롯해, 화성, 오산, 안성, 시흥, 안산, 이천 등지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나름대로 가계를 형성해 자신의 굿을 전승시켰기 때문에 경기도 일대의 굿은 나름 지역적 특색을 지니면서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왔다.

 

이중 고성주 명인은 유일하게 강신무이면서도 가계(家系)로 굿이 전승된 특별한 경우이다. 고성주 명인은 할머니를 거쳐 고모, 그리고 고모의 신딸인 최영옥 만신- 고성주로 이어지는 110년의 세월을 집안으로 경기도 전통굿이 전승된 유일한 인물이다, 그가 일 년에 두 차례씩 맞이굿을 열고 있는 것도 가계로 전해진 굿의 법제를 지켜가야 하기 때문이다.

 

 

질펀한 안택굿판, 모든 사람이 즐기는 축제

 

고성주 명인의 경기안택굿은 남다르다. 굿을 열린 축제라고 한다. 열린 축제의 현장을 볼 수 있는 굿판이 바로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판이다. 맞이굿을 열기 1주일 전부터 각종 기물을 정비하고 닦는다. 그리고 굿에 필요한 제물을 직접 집에서 준비한다. 맞이굿에 모이는 수백 명의 인원이 먹을 음식도 집에서 일일이 준비한다.

 

고성주 명인은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을 지켜가고 있는 무격이다. 판이란 무격과 수양부리들이 부모·자식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말한다. 즉 무격이 부모가 되고 수양부리들은 자식이 되는 정신적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하기에 고성주 명인의 신도들은 나이가 고성주 명인보다 더 많아도 모두가 아버님이라고 고성주 명인을 호칭하고, 고성주 명인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수양부리들에게도 아들이나 며느리라고 부른다. 하기에 고성주 명인의 수양부리들은 대개 할머니 - 고모 - 신어머니 때부터 전해지는 대물린 신도들이다.

 

 

3일 오전부터 시작된 ‘2019 경기안택굿 가을맞이’. 열린축제답게 꼭 수양부리가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굿판에 참여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누가와도 먹을 것을 한상 차려준디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수양부리가 아니라고 해도 굿판에 참여하면 누구에게나 똑 같이 복과 굿에서 사용한 제물을 나누어준다.

 

그리고 굿판 내내 먹을 것을 차린다. 더 달라고 해서 노여워하지 않는다. “집에 오는 이는 무조건 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고성주 명인의 철학이다. 하루 종일 굿이 열리고 중간에는 소리꾼과 춤꾼도 한 몫 거든다. 그야말로 종합적인 축제의 모습이다. 그리고 막판에는 모두가 전복을 입고 한바탕 뛰어논다. 이집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누구나 찾아와 먹고, 마시고 함께 즐기는 열린 축제의 장 경기안택굿. 하루빨리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온전한 전승이 되길 바란다.

 

이정숙의 맞이굿 판, 신령들이 모두 감응하셨소.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어려움이 없을 때가 있겠느냐? 세상살이가 다 어렵지만 내가 도와주마. 세상살이가 어려울 때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 자신을 아는 사람만이 남을 도울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7일 오전 일찍부터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274에 소재한 김성겸(, 61)의 집에서는 덩덕쿵 소리가 들린다. 이 집 대문에는 <경기안택굿보존회 부천지부>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이정숙(56)은 경기안택굿보존회장인 고성주에게 내림굿을 받은 신딸이다. 내림을 주관한 무격은 신아버지 혹은 신엄마로 호칭이 되며, 이들의 관계는 영적으로 맺어진 부녀지간으로 오히려 친 부녀지간보다 더 돈독하기도 하다.

 

이날 이정숙의 집에서 열린 굿은 맞이굿이다. 맞이굿이란 신을 모시고 있는 기자(祈者)들이 자신이 섬기는 신을 위로하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수양부리들의 안녕을 위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올리는 제의식이다.

 

 

가득 차려진 제물들과 많은 기자들

 

넓지 않은 집안이다. 단독주택인 이 집 안에는 온갖 재물들이 차려졌다. 맞이굿을 할 때는 진적상을 차리고 천궁맞이상을 따로 차린다. 천궁맞이는 밖에서 신령들을 청해 들이는 상이지만, 이날은 집안에 상을 차렸다. 그러다가보니 넓지 않은 집안이 온통 상에 차려놓은 제물로 가득하다.

 

이날 굿에 참석한 사람들도 당주인 이정숙과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회장을 비롯해 제자들까지 8명이나 되는 무격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 굿판에 모이기란 특별한 행사나 굿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 경기안택굿보존회 회원들을 늘 이렇게 모여서 굿을 한다.

 

 

이렇게 모여서 선생님들이나 신형제들이 굿을 하는 모습을 보고, 상을 차리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굿 속을 배워가는 것이죠. 예전부터 선생님들은 끼고 가르치지를 않아요. 스스로가 보고 느끼면서 터득을 하는 것이죠.”

 

고성주 회장은 굿상을 보아가면서 이야기를 한다. 과거 많은 만신들이 제자들을 끼고 가르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지금 이렇게 따라다니면서 학습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훌륭한 만신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진다는 것.

 

 

13시간에 건친 맞이굿, 정말 장엄하다

 

오전 9시에 상을 다 차린 다음, 이정숙의 맞이굿이 시작이 되었다. 처음에 이정숙이 모든 신령들을 맞아들이는 천궁맞이로 시작해, 조상들을 천도시키는 지노귀까지 다 마친 시간은 밤 10시가 넘었다. 13시간이 걸린 셈이다. 요즈음 굿이 보편적으로 7~8시간, 짧게는 5~6시간에 그치는 것을 생각하면 그 두 배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이 굿을 할 때 수양부리나 굿을 부탁한 제가집에게 상당히 강압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강압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이 기자가 아닌 몸에 실린 신령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안택굿보존회 사람들은 그렇게 강압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신령이 왜 사람들에게 욕을 하느냐는 것이 이들이 반문이다. 이들의 굿판에 들어가면 누구나 흥겨운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즘 많이 힘들지. 요즈음은 누구나 다 힘들 때지. 하지만 세상을 탓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한 번 돌아봐. 혹 나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닌지. 내년에는 좋아질 것이야. 조금 힘이 들어도 참고 노력을 하면 나아질 거야. 걱정마라 내가 도와주마.”

 

 

입살이 보살이라는 속담이 있다. 남을 계속 험담을 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을 험담하는 말을 조심해왔다. 거기다가 신령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 남에게 좋지 않은 계속 말을 한다면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기에 굿판에서 기자들은 제가집에게 쉴 새 없이 도와준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잘 될 것이라고 염려를 하지 말란다.

 

그런 말 중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고 한다.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고, 혹 일이 잘못 되었을 때 그것이 내 탓은 아니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나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말. 굿판에서 큰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결국 나 스스로의 노력을 다한 후에야 신령도 도움을 준다는 것을.

 

열린축제라는 맞이굿판을 찾아가다.

 

그러지 마시고 창부님이 오셨으니 여창부 한 분 모셔오세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마음에 드는 여인이 없고만 그려

그러지 마시고 잘 찾아보세요.”

그려, 댁은 어떻소. 한 바탕 놀아 보려오.”

 

28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번지 경기안택굿보존회라는 간판이 걸린 고성주(, 60)의 집에서는 피리와 해금 소리가 울린다. 장구. , 바라 장단에 맞추어 한바탕 걸 판진 굿판이 벌어졌다. 신을 모시는 사람들은 2~3년에 한번씩 맞이굿이라고 하여서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령들과 수양부리(신도)들을 위한 굿판을 연다.

 

진적굿이라고도 하는 이 맞이굿은 신을 모시는 무속인들이 가장 정성을 다해 판을 여는 굿판이다. 남들은 2~3년에 한 번씩 하는 것도 버겁다고들 하는데, 안택굿보존회 고성주 회장은 매년 봄, 가을로 굿판을 연다. 음력 37일에는 봄 맞이굿을 하고, 음력 107일에는 가을 맞이굿을 한다.

 

 

일주일 전부터 맞이굿 준비를 해

 

고성주 회장의 맞이굿은 일주일 전부터 준비를 한다. 약과와 다식을 직접 전통방식으로 만들고, 300여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이 모든 것을 직접 조리를 한다. 그렇게 음식을 하는데 정성을 들이는 까닭은, 그래야 단골 수양부리들이 잘 풀린다는 것이다.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신령들이 자신의 수양부리들을 돕겠느냐는 것이 고성주 회장의 생각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맞이굿을 하기 전에 먼저 제당맞이를 한다. 제당맞이란 신령들을 굿판으로 청배를 하는 것이다. 제당맞이에는 신령들을 따라 들어오는 잡신인 수비와 영산 등이 있어, 이들을 잘 먹여 굿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 12그릇에 음식을 골고루 담아 잡신들을 먼저 풀어먹이는 것도, 모두 맞이굿을 온전하게 신령들이 향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굿거리 제차가 진행이 되다가 창부거리가 시작됐다. 이 집의 창부거리는 특이하다 항상 남창부인 고성주회장이 여창부 한 사람을 지목해 질펀하게 판을 벌린다. 창부거리는 예능의 신이다. 창부신은 무격(巫覡)들에게 재주를 주고, 노래와 춤을 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격이다. 하기에 창부거리에서는 재미난 재담과 소리, 춤으로 흥을 돋운다,

 

 

질펀한 굿판, 이래서 열린축제이다.

 

아니 내가 전라도 남원을 출발해 여기저기 거쳐 예까지 왔는데 어째 슬 한 잔이 없소

준비했어요. 바로 들어옵니다.”

아니 그래도 내가 명색이 창부인데 이걸 먹으라고 주는 것이요. 잘 차려보소

 

굿판에 상이 들어왔다. 막걸리에 소고기 육회 등이 상 위에 올랐다. 굿판에 있던 여무(女巫)인 홍원영(, 60)이 창부신복을 입고 자리에 앉았다. 이때부터 굿판이 질펀해진다. 춤과 소라를 곁들인다. 보는 이들도 덩달아 흥겹다. 누가 끼어들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굿판은 열린축제이기 때문이다.

 

저는 제가 굿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봄, 가을로 맞이굿을 할 거예요. 신령을 섬기는 사람들이 정성을 들이지 않고, 어떻게 단골(수양부리)들이 잘 되기를 바랄 수 있어요. 그건 말이 안되는 소리죠. 저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전안(신을 모셔놓은 신당)에 들어가면 도독놈이라고 하는 것 같아 정말 죄스러워요

 

 

그래서 이집의 굿판은 늘 질펀하다. 비가 오는 바람에 일찍 해가졌다. 딴 때 같으면 한창 굿거리 제차가 남아있을 시간인데 막판 터주대감굿이 시작되었다. 터주대감굿은 집을 지키는 신격을 위하는 굿이다.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천막을 친 마당에는 떡시루와 소족발이 제상에 올랐다. 그리고 그 밑에는 숯이 놓였다. 굿이 막판으로 치달을 때 항상 이집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숯을 사람들의 얼굴에 칠한다. 그리고 숯검뎅이가 된 사람들이 지하 무용연습실로 들어가 한바탕 질펀하게 춤판을 벌인다. ‘몸을 푼다는 터주대감굿은 쌓인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간다. 굿판을 찾았던 사람들이 일을 보러갔다가도, 이 시간이 되면 다시 굿판으로 찾아온다. 바로 이 터주대감굿 때문이다. 열린축제라는 맞이굿판. 그래서 늘 사람들은 이 굿판을 기다린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창룡문로 56번길. 집 대문 앞에는 경기안택굿보존회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안택굿은 집안의 안녕을 위해서 하는 축원굿으로, 이 집에는 4대째 대물림을 하면서 경기지역의 안택굿을 보존, 전승시키고 있는 고성주(, 60) 회장의 집이다. 23일 오후 집안에 북적인다.

 

한편에서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튀기고 있고, 집 안에서는 연신 덩이진 밀가루를 손으로 곱게 부수고 있다. 28일은 고성주 회장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령들과 수양부리(자신을 따르는 신도를 일컫는다)들을 위해 맞이굿을 하는 날이다. ‘진적굿이라고도 하는 맞이굿은 신령을 섬기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굿이기도 하다.

 

 

자신을 비롯해 10여 명의 사람들이 준비를 하고 있는 약과와 다식은 바로 맞이굿을 할 때 상에 진설할 음식 중 하나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편하게 모두 사다가 사용을 하지만, 이 집은 40년이 넘는 세월을 한 번도 사다가 진설한 적이 없다. 직접 모든 음식을 조리를 하기 때문에 짧게는 5, 길게는 1주일 전부터 준비를 한다.

 

정성이 깃들지 않으면 음식 올릴 필요 없어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신령님들이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 것을 좋아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아요. 적어도 나를 주관하고 내 수양부리들을 잘 살게 만들어주는 신게 제물을 드린다고 하면서 약과나 다식도 다 사다가 쓴다면 무슨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 되겠어요. 저희는 40년 동안 한 번도 사다가 올린 적이 없습니다.”

 

 

23일 오후 내내 정성을 들인 약과와 다식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힘이 들겠지만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약과와 다식 등은 맞이굿을 마치고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싸들고 간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먹을 음식이기 때문에 더 정성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방식 그대로 만드는 약과와 다식

 

약과는 조청, 계란노른자, 생강가루, 찹쌀, 들기름 등을 잘 반죽해 둥그렇게 누른 다음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가운데 칼집을 내고 그 안으로 양편을 집어넣어 모양을 만든다. 그리고 기름에 튀겨내면 다시 조청에 담가 잘 젖게 만든다. 채로 걸러내면 달라붙지 않게 고물을 뿌려서 말린다.

 

 

다식은 콩가루와 쌀가루, 조청 등을 혼합해 가루를 잘게 부순다. 가루가 곱게 부수어질수록 다신이 깨끗하게 만들어진다는 것. 거기다가 식용색소를 포함하여 색을 낸 다음에 다식판에 반죽을 둥글게 만들어 놓은 다음 손으로 힘을 다해 누른다. 다식판에 참기름 칠을 한 다음에 찍어내면 아름다운 문양이 있는 다식이 된다.

 

저희는 다식을 다섯가지 색으로 만들어요.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방을 뜻하는 것이죠. 많은 재료를 이용하지만 그 중 어느 것 하나 재료를 싼 것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야 나중에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건강에도 좋으니까요.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내는 약과와 디식은 사람들도 좋아하죠.”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요즈음은 기계로 쉽게 만들 수가 있지만, 음식을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년 봄, 가을로 올리는 맞이굿에 진설하는 음식은 모두가 직접 만든다고 한다.

 

 

저희 고성주회장님은 아직 한 번도 음식을 사서 하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아무리 힘이 들아도 정성을 올리는 음식을 사서 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맞이를 올릴 때는 보통 일주일 전부터 준비를 하죠. 맞이굿을 하는 날은 300명 정도의 음식 장만을 직접 하세요. 김치 담그고 나물 무치고, 전도 이틀 전부터 부치고요. 모든 음식은 집에서 직접 장만을 합니다. 그것이 손님을 맞이하는 예의라는 것이죠.”

 

아직 한 번도 사서 쓰는 음식을 신을 모시는 전안에 진설하거나 손님들의 상에 올려보지 않았다고 하는 고성주 회장. 전통방밥으로 만든 약과와 다식을 만들면서도 연신 잘 만들어야 한다고 독려를 한다. 정성을 들인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이 집의 축제준비는 늘 웃음이 넘친다.

 

서슬이 퍼런 작두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많은 단골들에게 별상님이 하는 말이다.

내가 다들 도와주마 어려워도 걱정하지 마라

6, 수원시 팔달구 창룡문로 56번길 18호에서 이른 아침부터 맞이굿이 열렸다. 맞이굿이란 신을 모시는 무당이 자신을 따르는 단골들의 일 년간의 안녕을 위해 신에게 정성을 드리는 굿을 말한다. 맞이굿은 제물을 쌓아놓고 신에게 드린다고 해서 진적굿이라고도 한다.

 

아침부터 시작한 굿은 밤 11시가 넘어서 끝났다. 그 안에 들락거린 단골들만 해도 족히 200명은 넘을 듯하다. 전안(무당들이 신을 모셔 놓은 곳)에서 시작한 굿은 마당에 차려놓은 천궁맞이 상으로 이어진다. 천궁맞이란 선계인 하늘에 있는 신령들을 맞이하는 자리이다. 여기서 무당은 용사슬을 탄다. 용사슬이란 물동이에 물을 가득 담고 그 위에서 뛰는 것이다. 무당 스스로 제물이 되는 행위이다.

 

 

날선 작두 위에서 주는 공수는 영험하다고

 

전안으로 들어가 굿을 이어간다. 하루 종일 사람들은 상을 받는다. 굿판에서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저 누구라도 들어오면 한 상 차려 내어놓는다. 굿은 열린축제라고 한다. 굿판을 찾은 사람들은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는다. 그만큼 열러있는 곳이다. 지금은 이렇게 차리고 굿을 하는 집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고성주(, 60)씨의 굿은 남다르다. 넓은 전안의 수미단(신령들을 모셔 놓은 곳의 앞에 조성한 단으로 음식 등을 놓을 수 있는 곳)에는 온갖 과일 등이 차려져 있다. 그 제물만 해도 엄청나다. 누구라도 이렇게 차리기가 쉽지가 않은데, 일 년에 두 번을 봄, 가을로 차리고 굿을 한다.

 

 

전안의 굿이 끝날 때쯤 별상이 접신이 되었다. 밖으로 나가 작두 위에 오른다. 날이 시퍼렇게 선 작두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그 위에 올라서 오방기를 뽑게 하고 공수를 준다. 굿판에서는 작두 공수가 가장 효험하다고 한다. 한 사람씩 공수를 주고 난 다음 마당에 모인 단골들에게 내가 도와주마 걱정하지마라라고 한다.

 

열린 굿판 축제가 따로 없네.

 

사람들은 수없이 들락거린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올 때마다 일일이 상을 차려 내어 놓는다. 굿판에서는 배불리 먹어야 한단다. 신령이 좋아하는 일이란다. 부엌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힘이 들만도 한데, 모두가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신령이 참 좋기는 합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인지. 저 분들 모두 복 받으실 겁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단골 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만큼 고성주씨의 맞이굿판에는 먹거리가 넘쳐난다.

 

굿판에는 장고, 피리, 대금. 아쟁을 연주하는 악사 4, 그리고 고성주씨와 신딸들을 비롯해 8명이 참여를 했다. 이들이 돌아가면서 굿을 한다. 밤이 되자 텃대감거리가 시작되었다. 이 집의 텃대감님은 참 드세단 생각이 든다. 단골들이 모두 대감쾌자를 입고 얼굴에는 검뎅칠을 하고 지하로 내려간다.

 

 

안택굿의 보존을 위해 문하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고성주씨의 집에는 지하실에 24, 2층에 34평의 연습실이 있다. 이곳에서는 꽹과리를 치고 난리법석을 떨어도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를 않는다. 마음껏 뛰고 난리들을 친다. 그리고 다시 전안으로 들어와 서낭과 뒷전을 한다.

 

아침부터 시작한 굿이 밤 12시가 다 되어서 끝이 났다. 그리고 전안에 차려놓은 음식들을 모두 싸서 단골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 복을 골고루 나누어준다는 의미가 있단다. 사람들은 그렇게 봉송이라는 제물을 나누어 갖고 돌아가면서 흐뭇해한다. 열린축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 굿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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