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불은 암벽에 새긴 불상을 말한다. 마애불은 바위 면에 선각을 하거나, 주변을 파내고 돋을새김을 하여 조성을 한다. 그래서 마애불을 조성하려면 대개는 편편한 바위가 있는 곳에 마애불을 조성하게 도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석불과 달리 마애불을 간략하게 선각 처리를 하거나 일부만 돋을새김을 하는 것도, 벽면에 붙어 작업을 하기 때문에 힘이 들기 때문이다.

남원시내에서 운봉을 가다가 보면 이정표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우측에 보이는 이정표에는 <호기리 마애여래좌상>이라는 작은 안내판이 붙어있다. 이 안내판을 따라 들어가면 전각이 보이고, 그 전각 안에는 커다란 바위가 덩그러니 자리한다. 어떻게 저렇게 모가 난 바위가 있을까 궁금하다.


바위를 옮겨온 호기리 마애불

그런데 마애불 앞에 놓인 설명문을 보면 이 마애불을 조성한 바위가 왜 이렇게 잘라낸 것 같은지 이해가 간다. 처음에 이 마애불은 이곳에서 50m 정도 떨어진 ‘부처모퉁이’라고 불리던 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곳에 동쪽을 향한 채로 3m 높이의 바위 면에 돋을새김을 하고, 그 주변을 파내어 감실에 모셔진 것처럼 조성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마애불이 왜 이곳에 와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인근 사람들에게 물어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다. 이 마애불을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리로 옮겨 놓았을까? 바위를 쪼개 이곳으로 옮겨올 때 그런 것인지, 바위에 많은 금이 가 있다. 그리고 마애불의 현재 모습도 많이 달라져있는 듯하다.


마치 기계로 절단한 듯 바위를 잘라냈다.

감실처럼 만들었다는 마애불은 지금은 약간의 돋을새김을 한 흔적만 보인다. 주변에 깨진 바위는 여러 조각이 나있다. 그것을 일일이 부쳐 놓은 것이다. 이 마애불의 처음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무슨 연유로 이 집채만 한 바위덩이를 50m나 옮겨 온 것일까? 여기저기 수도 없이 붙여놓은 조각들을 보면, 이렇게 조각을 내어 어디로 옮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고려초기의 마애불상

불상의 얼굴부분은 거의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훼손이 되었다. 그러나 머리는 소발이고 육계가 표현이 되어 있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졌으며, 법의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게 표현을 하였다. 수인을 보면 한 손에는 무엇인가를 들고 잇는 듯한 것이 약사여래마애불 인듯 하다.

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로 표현을 하였으나 형태가 희미해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대좌에는 연화문을 조각하였으나, 쉽게 구별이 되질 않는다. 대좌를 제외한 좌상의 높이는 120cm 정도이다. 몸에 비하여 손발이 크고, 어깨가 좁은 점 등으로 보면 이 마애불은 고려 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 앞에는 등을 달고, 촛불을 켜 놓았다. 주변의 정리도 말끔히 한 것으로 보면 누군가 이 마애불을 돌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뒤편으로 돌아가니 빗자루 등이 보인다. 뒤편도 바위 면을 쪼개낼 때 파손이 된듯, 여기저기 금이 가 있다. 도대체 무엇으로 이 마애불을 바위 면에서 쪼개 이곳까지 옮겨온 것일까?

수많은 문화재들이 훼손을 당하고, 찬탈을 당해 나라를 떠났다. 혹 이 마애불도 그런 이유로 원래 있던 바위 면에서 떼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조차 없는 커다란 바위. 그 바위덩어리를 떼어 내 어디로 옮기고 싶었던 것일까? 입도 눈도 다 훼손이 되어 분간조차 할 수 없는 마애불은, 혹 세상의 시끄러움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호기리 마애여래좌상은 말없이 그렇게 커다란 바위를 등 뒤에 지고 있다.

답사를 하다가보면 아주 가끔이지만, 주변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헤매는 수도 있다. 만일 그 문화재가 있는 곳이 산속 같다면, 이렇게 헤매다가는 날이 저물기 일쑤다. 그래서 답사를 나갈 때는 늘 비상용 손전등을 지참을 해야만 한다. 이번 원주 지역 답사는 비가 온 뒷날이라 힘도 들었지만, 보이지 않는 마애삼존불을 찾아 인근을 이 잡듯 뒤져야만 했다.

원주시 소초면 수암리에는 고려 전기에 조형된 마애삼존불상이 있다. 이 불상은 길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만날 수가 있다. 큰 길에서 마애불을 찾아 걷는, 비가 온 뒤의 시골길은 기분이 좋다. 물기가 축축하게 젖은 풀들이 가끔 발길을 붙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진한 땀을 흘리지 않아도 좋기 때문이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8호 마애삼존불이 선각되어 있는 바위(우측)

갑자기 사라진 이정표

큰길가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마애불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려준다. 몇 km 쯤이야 답사를 나가면 늘 걷는 길이다. 천천히 걸어가다가 보니 마을이 끝나는 곳에 이정표가 서 있다. ‘수암리 마애삼존불상’이라는. 가슴이 뛴다. 답사를 하면서 늘 새로운 문화재를 만날 때는 이렇게 가슴이 벅차다. 수암리 마애삼존불은 현재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8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길을 꺾어들어 작은 도로를 따라간다. 저수지가 보인다. 그런데 양 갈림길인 이곳에는 정작 이정표가 없다. 할 수 없이 앞으로 향하는데 길이 막혀있다. 원주시청에 전화를 걸어 길을 물어보고 다시 주변을 살핀다. 여기저기 한참 찾다가보니, 저 건너편 길 끝에 이정표가 보인다.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었다.


걷고 또 걸아야 하는 답사길. 과수원 길을 지나(위) 발이 빠지는 논둑길을 걸어 찾아갔다(아래)

젖은 길에 빠지며 찾아간 마애불


저수지를 끼고 논길을 따라 걷다가 보니 과수원이 나온다. 올해는 잦은 비로 과수농가가 피해를 많이 당했다고 하는데, 이곳은 그래도 열매가 실하게 달려있는 것 같다. 이정표에는 마애불이 100m 전방에 있다고 표시를 하였다. 그런데 마땅한 길이 없다. 할 수 없이 논둑 길을 올라서니 젖은 논둑은 발이 푹푹 빠진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빠지는 발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마애불 안내판이 서 있는 곳까지 들어갔다. 근처에는 큰 돌이 없는데, 이곳만 큰 바위가 모여 있다.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마애불이 눈에 뜨이지가 않는다. 한참을 주변을 돌다가 보니, 위쪽에 있는 바위에 선으로 죽죽 그은 것 같은 선각한 마애불이 보인다. 그저 얼핏 보아서는 누군가 바위에 날카로운 것으로 낙서를 한 것처럼 보인다.



마애불이 선각되어 있는 바위군과(위) 흐려서 찾기조차 힘든 마애불(가운데) 확대된 사진(아래)

형태를 알아볼 수조차 없는 마애삼존불

이 마애삼존불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에는 좌불상을 선각하고, 양편으로 보살상을 새겨 넣었다. 입상으로 처리된 불상의 좌측보살상은 알아보기도 힘들다. 아예 있었다는 자취를 찾기도 힘이 들 지경이다. 연화대 위에 좌정을 한 부처는 얼굴은 마모가 되었다. 아래쪽에 대좌를 그리고 그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았는데, 손은 가슴께로 끌어 올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왼손은 아래로 오른손은 약간 위로 한 것으로 보아, 지권인을 하고 있다. 이러한 수인은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의 형태이다.

불상의 우측에 서 있는 보살상도 얼굴의 형체는 알아보기가 힘들다. 굳이 이 마애불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강원도 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삼존불이 선각으로 조성이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심하게 마모가 되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법의를 나타낸 선이 유려하고, 전체적인 균형이 잘 맞아 뛰어난 마애불임을 알 수 있다.


중앙의 불상은 연화대 위에 앉아있고(위) 양편에는 보살입상이 선각되어 있다(아래)

걷고 또 걷고 한참을 헤매고 난 뒤에도, 발목까지 빠지는 길을 걸아 찾아간 마애삼존불. 비록 그 정확한 모습은 찾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렇게 하나의 문화재를 만날 때마다 가슴이 뛴다. 그런 가슴 벅찬 느낌이 좋아 답사를 계속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바위군에는 풍화작용으로 인한 바위와(위) 마애불을 새겨 넣을만한 벽이 보인다.

 


이 곳에는 이런 내용들이 있습니다. 이 내용들은 2009년부터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던 300 여개의 기사를 옮겨놓는 것으로 시작하여, 답사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적어가려고 합니다.

정자기행
'바람 정자 위에 불다'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정자들을 둘러보면서 적은 글입니다. 정자에 얽힌 이야기와 나그네가 정자를 보고 느낀 것들을 적는 곳입니다.

고택답사
'고택을 따라 나서다'는
중요민속자료, 문화재자료와 비지정인 옛 고택들을 둘러보면서 그 안에 내재된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고택답사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곳은 거의가 잠겨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은 마음대로 돌아볼 수가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애불답사
'천년 마애불의 미소'는
마애불을 따로 모았습니다. 마애불은 거대한 암벽 등에 조각한 불상을 말합니다. 대개는 선각이나 돋을새김을 하는 마애불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선조들의 한 없는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천년세월 그 자리에'는 천연기념물과  기념물, 고목 등을 모은 곳입니다. 답사를 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천연기념물에 대한 생각이나 모습 등을 담았습니다.

유형문화재
'기억해야 할 것들이'는
석불, 석탑, 부도, 석교, 석실, 선돌, 고인돌, 동종 등 문화재 등을 다루는 곳입니다. 수많은 문화재들을 일일이 구분을 지을 수가 없어서 이 곳에 모았습니다. 

역사의 흔적
'걸어도 매번 그 자리'에는
절집, 사지, 향교, 서원, 성곽 등의 답사내용입니다. 때로는 그러한 것들 하나가 더욱 재미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곳,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를 봅니다.

풍물이야기
'이런 것도 있었다네'는
예전 우리 생활 속에 있던 사물을 현대에 새롭게 만나보는 것입니다. 아스라히 잊혀져 가는 정겨운 모습들입니다. 옛 풍물을 비롯해 장승, 당집, 살아가는데 필요했던 놀이나 도구 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사람이 사는 세상사'는
사람들을 만나서 보고 들은 것을 적는 곳입니다. 이 곳은 '여주 5일장' 책을 쓰기 위해 9개월 동안 여주장을 돌아보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는 곳입니다. 때로는 애환도 있고, 때로는 진한 고통이 있기도 하지만 사람사는 세상이 다 그렇다는 생각입니다.

지역축제
'가보자 축제 한마당'은
지역의 축제를 돌아보면서 그 모습들을 올리는 곳입니다. 그저 즐거운 모습만이 아닌 지역축제의 문제점들을 함께 다룰 생각입니다.

최신 댓글